브러시 소재집 : 흑백 일러스트·만화 편 - CLIP STUDIO PAINT 브러시 소재
배경창고 지음, 김재훈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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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그림책보다 만화를 더 많이 봤다. 그림책은 비싸고 만화는 싼 데다 빌려볼 수 있는 만화가게가 학교뿐만 아니라 동네 주변에도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기억나는 만화가 이름과 캐릭터 등이 많다. 그때 본 만화들은 남성이어서인지 주로 전쟁만화가 많았다. 독일군과 미군의 제 2차 세계대전이 시간적 배경이었고, 공간적 배경으로는 유럽 일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말로만 듣던 유럽 풍경도 사실 그때 봤던 만화의 배경이 주로 머릿속에 입력돼 있다. 특히 캐릭터는 얼굴을 지나치게 길게 그렸던 만화작가의 인물이 가장 기억에 난다. 조금 고학년이 되어서는 가족 중심의 만화도 적지 않게 봤다. 지금은 없어진 듯 보이는 '독고 탁'이 주인공이었다. 어려운 생활 환경에서 굳건한 의지로 성공을 위해 나아가는 당찬 어린이였다. 캐릭터도 동글동글해 한눈에 선하게만 보이는 인물이었다. 만화작가의 그림 솜씨도 좋았지만 스토리가 좋아 즐겨봤던 기억이 지금도 독자에게는 그대로 남아 있다.

만화는 학교에 가져가면 '매를 버는' 행위라 독자는 만화를 책가방에 숨겨 가는 일은 없었지만 간혹 친구 중 그런 학생은 들키기만 하면 어김없이 매를 맞았다. 매를 맞는 경험이 있는 학생들은 대개는 다시 책가방 속에 만화를 가져오지 않았지만 두 번, 세 번 들켜서 매를 맞는 학생도 있긴 했다.

 


 

그리고 중학교에 입학한 후부터는 한동안 만화를 보질 않았다. 읽는 책이 만화에서 세계 명작 도서로 옮겨진 후 만화에 대해 흥미를 잃었다. 세계 명작은 대부분 전집이어서 50권, 100권 단위였다. 여느 집에서 그런 접집류를 사놓고 보는 친구들은 드물었다. 그러나 우리 집은 아버지 영향으로 여러 번 사다 주셔서 적지 않은 책을 읽었다고 생각된다. 물론 대부분이 축약본이고 대하소설처럼 긴 소설은 두 권, 세 권으로 묶어 전집류에 끼어 있었다.

그래도 책이 그렇게 많지는 않던 시절이라 소중하게 다루고 읽었다. 그러다 축구에 맛들인 이후부터 그나마 읽던 세계 명작 전집류와 멀어졌다. 오히려 가끔 단행본으로 나온 것을 친구들이 갖고 있을 경우 읽긴 했지만 비가 와서 축구를 못할 정도일 때만 읽었기 때문에 과독이라고 고백한다.

고등학교에서는 우리나라 소설책은 꽤 읽었지만 대입 앞에서 소설은 사치였다. 대입의 당위성은 독자의 되살아나는 독서욕을 채울 수 없이 시간을 빼앗아갔다. 결국 생각보다 많은 책을 읽지 못한 채 대학에 입학했다. 이제는 이성과 술뿐만 아니라 사회 정치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사회과학 책에 매료됐다. 사회과학 책 중에는 금서로 지정된 책이 많았다. 누가 지었나보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독재를 다룬 책은 모두 금서로 지정됐다.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다.

 


 

결국 사회에 나와서 책을 다시 손에 잡기 시작했으나 정말 책 읽을 시간이 없었다. 산업화 민주화 시대를 거쳐 디지털 시대로 가면서 독서를 훼방치는 것들은 어떤 형식으로든 독자의 전 생애에 걸쳐 나타난 셈이다. 그래서 지금도 "책은 시간이 없어서 못 읽는 게 아니라 읽을 생각이 없어서 시간을 못 내는 것이다"란 말이 기억속에 남아 있다.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책 읽는 것을 많이도 피해온 셈이다. 그런 와중에 만화가 크게 인기를 누린 적이 있었다. 지금도 모두 잘 아는 스포츠 신문에 연재되는 중국 고전을 바탕으로 한 만화작가의 스토리 구성력이 좋아 대히트를 쳤던 시대다. 일본은 이미 만화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라는 '만화 전성시대'였다. 그때 반짝 만화를 보다가 50대를 넘어서는 만화로부터 완전히 멀어졌다. 필요한 업무 관련 서적도 읽지 않은데 한가하게 만화를 읽을 시간이나 사회적 분위기는 조성되지 않았다. 해외 여행을 처음 갔을 때 "사진만 남는다"고 한목소리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그러다 문득 "그림을 그릴 줄 알면 난 좀 독특하게 남길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데생이었다. 정통 화가가 될 사람이 시작한다는 것이다. 독자는 그럴 생각도 없었고 나이를 생각해서도 터무니없는 일이라 급히 풍경, 인물 등을 중점적으로 연습하기도

했다. 이미 우리도 출판 문화의 엄청난 발전으로 원하기만 하면 국가기밀 기관 내부도 유추해 놓은 그림을 구할 수 있을 정도로 개방됐고, 따라 그리기도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조금은 흉내를 낼 정도가 되자 이번에는 디지털, 즉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는 시대라 한다. 그럼 만화작가는 어떻게 먹고 살아? 이런 것을 '쓸데없는 걱정'이라 한다. 이미 유명한 만화작가들은 문하생들이 그린단다. 정작 본인은 캐릭터와 스토리만 구상하고 창작해 내면 나머지는 모두 알아서 해준다고 한다.

유명 만화작가가 이미 기업 사장이라고 한다. 사실인지 확인할 필요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이 책 『브러시 소재집 : 흑백 일러스트 만화편』을 만났다. 정말 만화의 신세계였다. 문하생들도 일일이 붓이나 펜으로 그리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이 책은 그 사실을 증명해준다.

'CLIP STUDIO 유저 필독서' 제2탄이라고 표시된 이 책은 흑백 일러스트와 만화를 그릴 때 유용한 브러시 195점 수록. 현역 프로 작가들이 사용한다고 명시돼 있다. 또 그들이 검증한 브러시 전문 제작팀의 명품 브러시와 활용 테크닉을 수록했다는 것이다. 고층 건물과 나무 등을 그대로 브러시의 「모양」으로 등록한다는 「발상」. 이 놀라운 발상을 만난 브러시는 타블렛으로도 연필 「비슷한」, 펜 「비슷한」 선을 긋게 해주는 단순한 기능에서 단 몇 초 펜을 움직이기만 해도 빈 공간을 각종 배경 요소와 효과로 채워주는 「시간 단축」과 「퀄리티 향상」의 비결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이러한 「브러시 소재의 혁명」에 이끌려 찾아온 디지털 작업, 대브러시의 시대라는 화려한 막을 올린 것 같다. 이 책은 그러한 시대를 오래 전부터 지켜보고 예감한 선구적인 작가들이 흑백으로, 선화 중심으로(컬러에도 활용 가능) 작품을 제작할 때 널리 이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사용법을 설명한 브러시 모음집이다.

 


 

이 책은 '브러시 설치 방법'을 가장 먼저 소개한다. 더 멋진 그림 연출을 위한 브러시의 존재와 쓰임을 시작하도록 만들어준다. 그래서 'CLIP STUDIO PAINT'가 가지는 기본적인 내용들까지도 파악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다음으로는 본격적으로 브러시의 기본적인 기능들과 구성을 파악할 수 있고 연습하면서 익히게 구성했다. 주로 이 책에서 다루는 브러시로 벽이나 문, 학교, 울타리 등등의 '인공물 브러시'의 예를 들어주고 어떻게 완성도 있게 만들어낼 수 있는지도 소개한다. 또 우리 주변의 꽃과 나무, 풀, 구름, 바위, 날씨 등등을 표현하는 '자연물 브러시'를 재미있게 알려준다. '소품 브러시'는 우리 일상에서 옷이나 음식, 혹은 관객, 거리 등등의 말그대로 소품에 대해서 작업하는 것이다. 마지막에 가서는

'효과 브러시'라고 해서 '충격파'와 '만화적 효과'들도 재미있게 보고 배울 수 있게 해준다.

 


 

배경적인 요소로 충분히 그 가치와 효과를 가지는 브러시들이 작품들을 질적으로 향상시키는 것임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에서 '무료 사용'을 강조한 대로 수많은 브러시들을 사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 허가해 준 것도 특장점이다. 부록으로 많은 브러시들이 제공되어서 그것의 가치도 대단할 것 같다. 더욱이 제공되는 브러시들은 모두 특별한 허가를 받거나 할 필요 없이 사적으로도, 혹은 상업적으로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해주다니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아마 더 진화한 기술 개발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만 가질 뿐이다.

이 책으로 그냥 흘려버리거나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었던 배경 브러시들에 더 큰 관심과 그 가치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독자의 만화를 대하는 태도가 좀 더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앞으로 브러시 작업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특색있게 표현되는지 알아가는 시간이 가질 계획이다. 만화를 보더라도 더 즐겁게 볼 수 있을 것 같고, 펜과 붓으로 못 그린 그림을 컴퓨터로 그릴 수 있을 것이라는 꿈도 갖게 됐다.

 


 

1. 인공물 브러시 : 길거리나 문, 벽, 가게 같은 인공물 블러시의 활용

2. 자연물 브러시 : 다양한 나무 표현, 배경이 될 수 있는 잡초, 꽃, 날씨와 판타지에서 자주 등장하는 크리스털 수정

3. 소품 브러시 : 많이 사용되는 옷의 무늬, 끈, 지퍼 음식

4. 군중 브러시 : 뒷배경으로 사용되는 응원하거나, 손뼉 치거나, 구경꾼들

5. 효과 브러시 : 충격파, 속도 효과선, 강조 등 캐릭터 머리 위에 뜨는 각종 기호 등

 


 

부록으로 제공되는 브러시는 모두 별도의 허가 없이 사적 활동은 물론 상업 활동에서도 이용이 가능하다(자세한 사항은 CD에 수록된<위 사진> 텍스트 파일 참고). 또 전문 제작팀의 기술력에 현장에서 비롯된 발상력이 더해져 실제 일러스트/만화 원고 제작에 사용될 일이 많은 군중[Mob], 작품의 미세한 디테일을 좌우하는 소도구[Accessory] 등이 새롭게 마련되었다.

브러시가 없었다면 아예 처음부터 포기하고 생략했을 부분을, 같은 시간을 들여 훨씬 더 화려하게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이 브러시의 가장 큰 미덕이다. 목표로 하는 이상과 실제 작품-그리고 마감-이라는 현실 사이에서 오늘도 무언가를 '포기'해야만 하는 모든 창작자분들에게 큰 응원이 될 듯하다.

 


 

저자 : 배경창고

 

㈜리프레드가 운영하고 있는 만화, 일러스트 배경 소재 전문 사이트. 만화 제작 환경에서 발생하는 「시간 부족」, 「인력 부족」, 「배경 작업 시간 부족」 등의 문제 해결을 콘셉트로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배경 소재(데이터)를 다운로드와 CD-ROM의 형태로 제공한다. 주요 저서로는 『캐릭터 포즈 배경집』(하비재팬)이 있다.

 

역자 : 김재훈

 

한때 만화가가 꿈이었고, 판타지 소설 쓰기와 낙서가 유일한 취미인 일본어 번역가. 그림에 미련을 버리지 못해 만화 작법서 번역에 뛰어들었다. 창작자들의 어두운 앞길을 밝혀줄 좋은 작법서 전문 번역가를 목표로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다. 옮긴 책으로 「디지털 배경 카탈로그 학교 편」, 「판타지 배경 그리는 법」, 「대담한 포즈 그리는 법」, 「프로의 작화로 배우는 만화 데생 마스터」, 「프로의 작화로 배우는 여자 캐릭터 작화 마스터」, 「CLIP STUDIO PAINT 매혹적인 빛의 표현법 : 보석ㆍ광물ㆍ금속에 광채를 더하는 테크닉」, 「인물을 빠르게 그리는 기본 남성 편」, 「코픽 마커로 그리는 기본」, 「ZBRUSH 피규어 제작 입문」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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