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고 발칙하게
원진주 지음 / 미래와사람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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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괜찮은 직업'에 '적지 않은 연봉'을 받으니 괜찮은 평가를 받는다. 방송기자나 아나운서, PD 등처럼 사회적 조명을 받지는 못하지만 글은 잘 쓰는 매우 세심한 방송 제작팀의 필수적 위치라는 신분에 대해선 후한 점수를 주는 듯하다. 선망의 대상은 아니지만 나름대로의 방송 제작에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평가엔 부정할 필요없는 보너스 점수도 주는 것 같다. 일반인들의 이 같은 평은 방송 제작 시간이 일정치 않은 데다 밤이든 해외이든 제작팀과 함께 움직여야 하는 생활인으로서의 직업 환경을 고려치 않기 때문이다. 아니 잘 모르기 때문일 터다. 방송에 대한 환상이라고 할까? 그런 것이 작용한 것 역시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보수도 그렇게 높은 편이 아니라는 게 방송계의 귀띔이고 보니 그들의 고충을 한 번도 깊게 생각해본 일은 없었던 것이 독자의 입장이다. 일반적인 세평과는 달리 방송작가들의 생활은 최근 나오는 에세이 등에 가끔씩 비춰지는 생활 환경이 대부분 녹록치 않음이 엿보인다. 일반 직장인 수준의 낮은 급여 수준에 일정한 근무 시간 보장도 안 되기 때문에 개인 생활을 제대로 즐길 수도, 계획하기도 힘든 직업인 것 같다. 인기 작가(드라마 극을 쓰는)처럼 많은 돈을 벌지 못하는 데다 특별히 그런 기회도 없는 것 같다. 한마디로 그렇게 썩 좋은 직업은 아닌 듯하다.

 


 

이 책 『솔직하고 발칙하게』의 저자 원진주도 방송작가이다. 저자의 아버지가 방송국에서만 36년을 일하면서 간간히 연예인을 보기 위해 갔던 것이 있는데 시간이 엇갈려서 잠시 기다리는 동안 태어나서 한 번도 집안에서는 하지 않던 욕을 거기서는 하고 계신 것을 보았고 그렇게 잘생기고 이쁜 연예인들이 담배 뻑뻑 피워대며 욕을 산더미처럼 하는 것을 보면서(당연히 뭔가 수가 틀려서 혹은 기다림이 지겨워서 그런 것이겠지만) 환상이 다 깨졌다고 한다. 너무 예뻐 보였던 연예인에게 사인을 받는데 짙은 향수 냄새와 담배냄새가 같이 섞여 있는 것을 보면서 "아, 쟤네도 다 사람이구나" "그냥 얼굴만 저렇게 생긴 거구나"라는 '인간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근데 그런 사람과 맨날 같이 호흡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 중 하나가 방송작가이다.

 


 

책에 따르면 저자는 연봉이 거의 억대에 이르는(사실 연봉이라기보다는 이것저것 수당 다 합쳐서 원천징수가 그 정도 일 것이라 생각은 되지만...) 사람이지만 대부분의 방송작가들은 이렇게 커 나가기 전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고 거기다가 수시로 밤샘 작업을 반복해서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다른 직종과는 다르게 시간이 굉장히 가변적이고(이건 아버지 근무 시간을 봐도 알았다. 매일매일 근무가 바뀌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근데 내가 들어간 회사는 교대근무를 한다) 체력적으로나 건강상으로나 문제가 많은 경우가 빈번하다. 이렇게 10년 이상 버틴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이니 진짜 버티기만 해도 몸값이 올라가는 것은 자명한 사실일까? 실력도 있어야겠지만 그만큼 체력 관리도 중요한 듯싶다.

 


 

저자에 따르면 예전에 아버지에게도 여쭤본 적이 있는데 어떤 연예인이 이쁘냐고 물어봤을 때 대부분 못생겼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유가 뭔가 했더니 너무 예쁜 애들 천지라서 그냥 다 비슷해 보인다는 답변이었는데 이곳 사람들이 얼마나 눈이 높을지 알게 되는 답변이었다. 아직까지는 남성 위주의 제작 현장이기 때문에 성희롱적인 발언이 굉장히 자연스럽기도 하고 괜시레 여자들은 이뻐야 한다는 이상한 고정관념(?)이 박혀 있다. 심지어 얼굴이 나오지도 않은 방송작가들조차 이뻐야 한다는 희한한 차별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많이 싸우는데 얼굴을 보면 그래도 마음이 풀어진다고 하나? 희한하다. 물론 얼굴이 전혀 영향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게 실력을 가르는 요소는 아닐 텐데 왜 그런 편견이 생기는 것일까? 혹시 지금도 있다면 개선될 터이다.

 


 

저자는 연차가 올라가면서 다른 방송작가를 위해 권리를 대변하는 경우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시도했고 성공사례도 보여주었다. 하지만 크게 바뀐 것은 없는 듯하다. 당장의 불합리한 점 몇 개 정도는 해결할 수 있지만 위와 같은 성희롱 문제와 더불어 방송작가들의 불안정한 고용형태 등에 대해서는 아직 갈 길이 먼 듯하다. 물론 회사 입장에서는 현 상황이 굉장히 좋은 방식의 고용형태라고 할지 모르지만. 여러 입장에서 봤을 때도 굉장히 불안한 고용형태인 것은 사실이다. 투쟁, 단결도 답이겠지만 과연 언제쯤 바뀔 수 있을까? 책을 보면서 답답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권리를 얻기 위한 그녀들의 노력은 계속될 것임을 독자는 확신한다. 미투도 사회구조의 불합리한 부분도, 시스템의 불공정도 개혁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거의 모두 동의하고, 변화는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 하루 아침에 변할 정도로 대한민국은 불안정한 사회는 아니다. 사회 구성원 중 누가 시작했어도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절차를 거친다면 그리 오래지 않아 바뀔 것이다. 대한민국은 그만한 힘이 내재돼 있다고 독자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유명한 TV 프로들의 작가였던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힘들고 답답한 독자들에게 괜찮다고 위로를 전한다. 자신도 25일 월급날을 기다리며 지옥철로 9-6로 근무하던 직장인 시절. 고용보험도 없이 3.3%를 떼며 혼자 일하던 프리랜서 시절. 아이들 키우며 매달 신랑 월급만 기다리던 주부시절. 이 모든 시절에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었다. 먹고살기 고달프다. "남의 돈 벌어먹고 살기 참 힘들다."란 생각도 수없이 했을 터다.

또 "보통만 가도 잘하는거다. 보통만 해도 밥은 먹고 산다. 잘하지도 덜하지도 말고 보통만 해라"는 저자의 속마음과 같은 생각을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 테니까. 독자는 대학 다닐 때부터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평범한 것이다"는 말에 굉장히 매달린 적이 있다. 사회 시스템이 조금은 허술하고 산업 사회를 거쳐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이 뿌리내릴 때쯤 대한민국은 하루가 다르게 격변했다. 변화하는 사회에서 눈에 띄지 않게 자신의 일에만 묵묵히 매진하는 것이 무척 어려운 일이라는 표현을 문학 서클 내의 한 친구가 그렇게 말했고, 그것은 평생 독자의 화두가 될 정도로 따라다녔다. 평범-보통-일반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로부터 나는 아니다를 말하며 "사회 어느 분야에 가든 '특별한 인재'는 조금만 노력하면 된다"는 오만한 자신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오만함을 없앤 채 조용히 평범하고 보통의 일반 시민으로 같은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 산다. 오늘도 분명 또 치열하게 제작을 위해 노력하고 있을 방송 작가들에게 저자와 함께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동시대를 함께 웃고 울며 사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힘내라는 말과 응원을 보낸다. 그 응원 속에는 독자 자신에게 보내는 응원도 포함돼 있다.

 


 

10년이 넘는 동안 방송계에서 사람과 일에 치이며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책에 담았다. 사회생활을 한다면 누구나 겪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친구처럼, 때론 언니나 누나처럼 이야기하면서 치열하게 살아온 독자들과 우리의 삶을 다독여준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열심히 달려 온 우리에게 저자는 조금 쉬었다 가도 된다며, ‘그래도 괜찮다’고 말한다. 앞으로의 여정을 위해 함께 하기 좋은 책 『솔직하고 발칙하게』는 공감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저자 특유의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해주며 읽는 이의 마음을 위로해 준다.

 

저자 : 원진주

 

2009년 방송에 입문, 구성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매일 불안병에 시달리며 사람들을 관찰하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집하는 것이 취미다. 끊임없이 수집하는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세상에서 하나뿐인 글을 쓰기 위해 고민한다. 10년 넘게 방송을 했지만 지금도 방송이 좋다. 여름에 마시는 맥주를 지극히도 사랑하는 사람. 지나가는 길에 동물과 마주하면 리액션이 절로 나오는 사람. 잘 쓰인 글보다는 편안한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SBS [현장21], KBS [황금의 펜타곤 시즌3], [도전! K-스타트업 2017], [굿모닝 대한민국], 채널A [김현욱의 굿모닝], YTN [강소기업이 힘이다] 등을 집필했고, 지상파와 종편 프로그램을 넘나들며 [TV 동물농장], [모닝와이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 [생방송 투데이], [생방송 아침이 좋다], [반려동물극장 단짝], [나누면 행복], [풍문으로 들었쇼] 등 시사, 교양 프로그램을 집필하고 있다. 한국방송작가협회 회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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