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아무렇지 않은 척 살고 있지만 - 스물다섯, 저마다의 이야기 그리고 인터뷰
황연웅 지음 / SISO / 2021년 1월
평점 :
절판



 

이 책 『다들 아무렇지 않은 척 살고 있지만』은 처음 접할 때 제목이 몹시 끌렸다. 긴 인생을 살아온 노 작가의 삶에 관한 이야기인 것으로 보였다. 요즘 에세이가 대부분 그렇듯 위로와 공감을 바탕으로 잔잔한 삶의 모습들을 얘기하면서 혹시 독자들이 받았을지 모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주기 위해 쓴 책으로 느껴졌다. 독자가 부제를 자세히 읽지 않은 탓이었음을 고백한다. 저자 황연웅은 스물다섯 살의 나이에 이 책을 썼다고 해서 도대체 얼마나 삶을 살았다고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의아해 했는데 의문은 책을 펼치면서 풀렸다.

저자가 좋아하던 A라는 친구에게 선물 받은 노트에 저자와 같은 스물다섯 살의 이야기를 인터뷰식으로 담은 책이라는 것이다. 마음 치유 에세이가 아니라 스물다섯 살 또래의 이야기를 삶의 현장에서 인터뷰해 그 내용을 실은 것이 주된 내용이다. 그러나 인터뷰 내용을 그대로 실어서는 저자의 이름으로 책을 낼 수는 없는 일인데... 조금 아는 척하는 독자에 저자는 일침을 가한다. 이 책에는 미래가 불확실한 사람, 꿈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 부모를 잃은 사람, 꿈을 찾아 왔지만 그 속에서 내가 뭔지 모르겠다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이 나타난다. 저자는 현재 자신의 삶을 모습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같은 또래의 스물다섯 명을 인터뷰해 자신의 생각과 연결함으로써 지금 대한민국 스물다섯 살의 청춘남녀의 삶의 모습과 안고 있는 고민 등을 알리려 한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다.

 


 

이 때문에 생각보다 인터뷰는 분량이 적었고, 인터뷰이와의 연결고리와 작가의 이야기가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읽는 동안 독자가 25살이었을 때의 상황과 비교도 되고, 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등 좋은 책이라는 느낌이 온몸을 휘감아 오랜만에 차분하게 우리 사회 젊은이들의 인생관이나 가치관 등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또 독자 세대와 비교도 하고 변화된 점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고, 삶의 중심 즉 인생관이 정착된 게 언제냐고 물으면 20대라고 답한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을 가고 남성의 경우 군 복무까지 마쳐야 하므로 사실 20대 중반까지 확고한 인생관을 세운 사람은 드물 것이다. 너무나 빨리 변하는 사회를 조금 살아본 20대로서는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다라는 확고한 의지가 뒷받침되는 인생관을 세우기가 버겁다. 독자도 인생관이나 가치관을 30대 중반에 가서야 세웠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확고한 인생관을 갖고 살기가 불확실한 시대였다. 세상의 변화가 너무 빨라서는 아니지만 '불확실성의 시대'였고, 미래가 '예측불가능한 시대'였기 때문이라고 독자는 합리적인 핑계를 댈 수 있다. 그래도 아직은 자본주의에 덜 물들었는지 가치관을 정립하는 데 '돈'은 없었다. 오히려 돈을 배제시켜야 좋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고전적, 유교적 가치관이 많이 반영되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직업관도 돈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직업을 택하겠다고 확고하게 세울 때까지는 오히려 자유스러웠던 것 같다.

 


 

이 책은 20대와 30대 가운데서 선 청춘들의 생각을 매우 잘 정리한 세 가지의 챕터로 나뉘어 구성됐다.

소심과 용기 사이

평범과 비범 사이

젊음과 슬픔 사이

처음 페이지를 열었을 때 조금 당황한 이야기들도 있었다. 그러나 허례도 허식도 없는 그들의 말에 독자로서는 조금은 부끄럽기까지 했다. 25개의 청춘은 각기 저마다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 인터뷰어는 직전 인터뷰이가 말한 단어를 다음 인터뷰이에게 던진다. 어떤 이들은 그 말에 추가를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부정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의 공통점은 현재에 '솔직하다'는 것이다. 감정에 어떤 화려한 수식도 없다. 한 명 한 명 책을 읽을 때마다 책을 쓴 저자에 대한 느낌은 대견하다에서 경이로움으로 바뀌기도 한다. 다들 아무렇지 않은 척 살고 있지만.

 


 

독자의 경우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사회로 나가기 직전 불안감은 취업이나 직업에 대한 것보다 사회 정의나 소득재분배 같은 문제에 더 큰 관심을 가졌다. 자본주의 시대에 젖어드는 산업화 시대에 학교를 다녔지만 '돈'이나, 돈과 직결되는 '직업'에 대한 고민은 크지 않았다. 일을 하려 한다면 먹고 살 만큼 할 일은 많아서일까. 돈을 많이 벌겠다는 욕망이 없어서일까. 그때는 대학을 서울에서 나온 것만으로도 본인이 원하면 웬만한 직장은 갈 수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돈을 많이 받는 직장이나 권력을 향하는 직업은 요즘과 다르지 않았지만. 아무튼 직업 선택에 대한 고민과 '돈'에 대한 개념이 다른 '세대차'를 느끼게 해 독자로서는 약간은 서글프기도 하다.

 


 

모두가 그렇듯 똑같이 주어지 시간, 같은 시기를 보내게 되면 누구는 한 걸음 먼저 나아가고, 누구는 갈 길조차 정하지 못해 제자리에 머물러 있기도 한다. 나이와 무관한 것이다. 저마다의 위치에서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며 여러 고민을 마주하는 것이다. 때문에 동시대를 같은 공간을 살아가는 사람은 다른 시대, 다른 공간에서 산 사람과는 감성적, 이성적 차이점을 보인다. 사회적 이슈이든 개인적 삶의 경제적 문제이든 공감하기 쉬운 이유다.

그럴 때 우리는 생각하게 된다. 나의 주변은, 나의 또래는, 나와 같은 사람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저자는 쓰인 것 하나 없는 빈 노트를 건네받고 자신의 이야기를 써보겠다 다짐했지만, 막상 무엇을 채워야 할지,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한다. 마치 빈 페이지가 멈춰 있는 자신의 모습과도 같다고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 자신의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들여다봐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그 다른 사람이 저자가 마주한 스물다섯의 친구이기도 했고, 낯선 누군가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과의 대화에서, 그들의 이야기에서, 저자는 흔들리던 지난날에서 벗어날 힘을 얻고, 조금식 앞으로 나아갈 여유를 찾는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자신의 위치를 확실하게 인지하게 된 것이다. 스물다섯 살은 처음이라 설레기도 두렵기도 한, 이십 대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나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대학과 군대, 취업 등이 머릿속을 가득 채울 나이다. 그래서 책 속 이야기는 저자 자신의 이야기이면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스물다섯 누군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또한 스물다섯, 서로가 서로에게 건네는 격려와 안부이기도 하다. 분명 그 안에 연결고리가 존재한다. 책을 읽으며 같은 시간을 지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공감과 위로를 받게 되는 이유다.

 


 

나는 둥지에 홀로 남은 털 뭉치였다. 그런데 둥지가 더 비좁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너는 둥지를 벗어났다. 둥지는 알과 같았다. 전부였던 내 세상은 다시금 깨야 할 알이 되었다.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너는 날아갔다. 나만 이리 어려운 걸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뭘 하고 싶은 걸까? 너무 큰 자유 앞에 갈 곳을 잃었다. 방향을 찾지 못해 구름이 흘러가는 하늘만 바라보며 같은 질문을 되뇌었다. 둥지를 떠난 새는 어디로 날아갔을까?(p. 13)

 

N과 여행하며 많이 다퉜다. 한번은 휠체어가 이유였다. N은 휠체어 타는 것을 정말 싫어했고, 난 여행 때마다 휠체어를 타자고 말했다. N은 목발이 있으면 걸을 수 있다며 매번 휠체어를 타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럼 나는 오늘 들르기로 한 곳이 세 군데라 휠체어를 타야만 전부 볼 수 있다고 말했고, N은 휠체어가 없어도 괜찮다며 고집을 부렸다. 그리고 쓰러진 자전거를 바라보며 깨달았다. 고집을 부린 사람은 나였다. 굳이 세 곳을 모두 돌아봐야 할 이유는 없었다. 하루 한 곳만 가도 괜찮았다. 우린 우리의 속도로 가면 되었다.(p. 104~105)

 


 

A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우울하게 만들려고 꺼낸 말이 아니었다. 꿈이 뭐냐는 질문에 대답하고 싶었고, 꿈을 꾸며 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야 했다. 욕심만 쥐고 있던 손을 놓아야 다시 쥘 수 있었다. 스무 살의 내가 하얀 미래에 그림을 그리듯, 다시 노트를 채우고 싶었다.

“그런 표정 하지 않아도 돼. 난 여전히 여기 앉는 걸 좋아해. 스무 살 때처럼 나를 믿고 싶어서, 여기 앉을 때마다 다짐을 하나씩 하거든. 그리고 지금도 이렇게 앉아 있잖아. 그러니깐 다짐을 하고 싶어서 여기 앉자고 했어. 네가 준 노트 있잖아? 그 노트에 다시 글을 쓸 거야. 지금 내 꿈은 일단 노트를 채우는 거야.”(p. 149)

 

노트를 채우는 과정은 나를 보이는 작업이었다.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문장이 써졌다. 그렇기에 줄곧 노트를 채우는 일이 어려웠다. 나는 보잘것없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그러한 사실을 인정하지 못해 도통 다음 페이지로 넘기지 못했다.

노트를 채우는 일은 그런 나를 받아들이는 일이었고, 변화는 차근차근 일어났다. 나를 인정하는 일은 의외로 재밌었다.(p. 226)

 

저자 : 황연웅

 

사람들에겐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 대화를 나누며 사람들 목소리가 묻어나는 단어를 주웠다. 그렇게 단어가 많이 쌓이면 ‘나를 설명할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차곡차곡 모은 단어들을 이 책에 담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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