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오늘 하루 - 일상이 빛이 된다면
도진호 지음 / 오도스(odos)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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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해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일상을 지배하면서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사는 시기였다. 지금도 예전의 일상이 아닌 '코로나 팬데믹 일상'에 갇혀 하루하루를 보내지만 백신과 치료제 개발 소식이 들리고 있어 그나마 조금은 희망의 빛 한줄기쯤은 가슴속에 품고 산다. 예전처럼 친구들과 만나 카페에서 수다를 떤다거나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마음껏 뛰어다니는 일은 쉽게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자유롭게 할 수 있었던 많은 것들이 이제는 누릴 수 없는 일상이 돼버렸다. 우리 대부분은 코로나 방역에 지칠 대로 지쳐가지만 또다시 예전처럼 함께 웃고 울며 사는 날이 되돌아올 것을 기대하며 힘겹지만 움츠린 채 살고 있다. 지난 한 해는 마스크를 쓰고 표정을 숨긴 채 바이러스에 노출되지 않기 위해 거리를 두어야 하는 삶 때문에 우리의 활기 차고 빛나는 일상은 온데간데없이 우울했다. 거리도 온통 잿빛이고 활기 없는 건물들은 휑하니 썰렁하기만 했다. 모두가 함께하지 못하고 개인적인 삶에 집중하고 있을 때 한 사진작가는 나름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아 기록했다. 오롯이 렌즈를 통해본 우리의 삶은 우울한 기억을 깨우치지만 이런 상황을 함께 헤쳐왔다는 자긍심을 깨닫게 해준다. 또 앞으로 다가온 포스트 코로나 사회에 대한 기대에 한껏 가슴을 부풀리고 신선한 겨울 공기를 들이마신다.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삶의 소중함을 돌아보기도 전에 마주한 자신과의 많은 시간을 한 사진작가가 기록한 세상으로 들어가본다.

 


 

바쁘게 살다 보면 갑자기 몸이 아프기도 한다. 특별한 원인 없이 몸이 아프기도 한다. 우리와 같은 공기를 들이마시고 같은 세상을 살던 한 사진작가는 어느 날부터 늘 함께하던 술자리도 갈 수 없고 병든 몸으로 직장 생활도 못한 채 코로나로 닥친 통제된 세상과 맞닥뜨렸다. 그는 지금까지의 삶과는 다르게 몸을 아끼며 살아야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코로나바이러스마저 일상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아픈 몸과 더불어 새로운 일상이 펼쳐지게 된 것이다.

새롭게 맞이하는 인생의 전환점을 돌면서 그는 불현듯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결심한다. 화려하고 다양한 색깔처럼 어지럽고 불필요한 감정은 내려놓고 좀 더 차분하게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17년 전 사진으로 마지막 밥벌이를 한 이후 카메라를 처음으로 다시 들었다.

오랜만에 찍어서 낯설어진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렀다. 출근하거나 산책을 하거나 그의 손에는 항상 카메라가 있었다. 그렇게 일상을 다시 마주하기 시작했고, 찍은 사진을 자신의 SNS에 올리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보지 않아도 좋았다. 그렇게 아픈 몸과 마음에 사진이 위로를 건네기 시작했고 마음 치유가 되기도 했다.

 


 

이 책은 사진을 통해 일상을 기록한 일기 같은 에세이이다. 감정을 전달하기 위한 화려한 수식이나 복잡한 문법이 아니라 담백한 흑백사진 하나를 통해 일상의 소중함을 잘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짤막하게 자신의 감정을 일기처럼 기록했다. 멋들어진 배경이나 인물은 없다. 사진을 찍은 장소는 주로 집(일산), 사무실(상암동), 출판단지(파주) 등 저자가 일상을 보내는 곳들 근처이다. 당초 의식하거나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책의 대부분 사진과 기록이 코로나 시대 우리들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자칫 단절과 외로움이 익숙해지기 쉽지만, 저자는 익숙한 공간들을 낯설고 새롭게 느껴지도록 사진으로 찍고 짧은 글로 말을 걸어온다. 힘들고 지칠 때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는 좋은 방법의 하나는 익숙한 것을 낯설고 새롭게 느끼는 것이다. 코로나 시대를 살아내느라 모두가 힘든 순간이다. 이 시기를 잘 극복하기 위해 잠시 멈춘 자리에서 주변을 둘러볼 것을 저자는 권유한다. 그러면 새롭게 보이는 익숙하지만 낯선 일상이 마음에 쉼과 평안을 가져다준다고 말한다. 이 책의 흑백사진들이 그 역할을 해준다.

 


 

이 책은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의 '오늘의 짧은 일상'을 일기처럼 기록된 포토에세이이다. 겨울에서 봄, 여름, 가을을 거쳐 다시 겨울이 되고 어쩌다보니 코로나 속 일상의 기록이 함께 담겨 있다고 저자는 읊조린다. 맨날 보는 일상을 흑백 사진으로 찍어서 새로운 것처럼 보이는 것도 좋고, 흑백사진으로 계절의 흐름을 느껴보는 것도 좋다. 저자는 그냥 자신의 일상을 흑백사진과 메모식의 짧은 글로 정리했고, 감상은 독자몫이니. 각 장은 모두 흑백사진과 1 ~5 줄의 글로 되어 있다. 이 책에 실린 사진은 200여컷에 달한다.

 

1月 우두커니 햇살을 받는 나무처럼 올해도 묵묵히

2月 익숙하지만 오래된 겨울과 낯설지만 새로운 봄 사이에서

3月 이 비가 그치면 성큼 더 다가오겠지요? 그토록 기다리던 봄이

4月 따스한 봄 햇살, 흐드러지게 핀 꽃이 마음에 불을 지르네

5月 눈부신 하늘, 예쁜 구름 가득한 아름다운 계절에

6月 비가 내리고, 또 비가 내리고, 여름이 오기는 하늘 걸까?

7月 여름, 짙어가는 녹음은 눈동자를 찌르고 따가워진 햇볕은 피부를 찌르고

8月 저녁이 되면 바람이 시원합니다. 여름이 다 지나가네요, 찬란한 나의 여름이여

9月 자꾸 미련이 남는 여름과 갈 길 가야겠다는 가을의 경계에서

10月 소원을 들어주는 아름다운 달님은 올해도 뜨시려나?

11月 바스락, 낙엽 밟는 소리는 떠나는 가을의 몸짓인가 봐

12月 만남은 언제나 눈부시고 인연은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저자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 책의 흑백사진은 코로나로 멈춰버린 우리 일상을 되돌아보는 느낌을 준다. 아름다운 풍경보다는 흑과 백, 명과 암의 기록, 즉 모든 장면을 추억으로 만든다. 아무리 햇살이 쨍쨍 내리쬐는 여름이라도 흑백사진이 된 순간부터 열기를 잃어버린 듯 보이고, 건물 공간은 텅 비어 폐허처럼 보이기도 한다. 시간이 흘러도 계절이 바뀌어도 기억 속의 모습은 모두 흑백으로만 존재한다. 암울한 도시, 빛 바랜 기억처럼...

독자는 사진을 공부한 적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한다. 그러나 많은 작품 사진 속에서 작가들이 표현하려는 것을 알아내는 순간 묘하게도 짜릿한 느낌과 희열이 느껴지고 작가와 공감하는 순간엔 예술적 카타르시스를 맛보기도 한다. 사진이 예술이 되는 순간이다. 지금은 사진이 예술의 한 분야로 대우 받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못했다. 독자가 알기로는 있는 것을 그대로 그려내는 것은 예술적 감각이 불필요한 작업이기 때문에 예술의 범주에 넣어주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사진 예술을 하는 분들은 사진 찍는 순간 사진 작가의 감각이나 감성, 바라보는 각도나 보이지 않은 것을 사진 속에 담아내기에 사진은 예술임을 주장한다. 지금 생각하면 이 쪽도 저 쪽도 다 맞는 말인 것 같다. 사진 전문가인 후배에게 들은 말로는 사진으로도 문학, 미술, 음악 등 다른 예술 분야에서 추구하는 예술성을 얼마든지 사진에 투영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타당성이 있고 설득력 있는 말이라 생각한다.

 


 

세상이 컬러화 돼 지금 흑백사진은 거의 사라진 것 같지만 작품 사진을 하는 분들은 흑백사진을 고집한다. 줄곧 흑백사진만을 찍는다는 것. 흑백은 오래 남기기 좋고(컬러사진에 비해) 명암이나 빛과 그림자를 강조하는 등 대조적 표현을 강조할 때는 컬러사진이 갖지 못한 오묘한 예술적 감성을 담아낼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사실 옛날 1970년대 이전의 사진은 대부분 흑백사진으로 남아 있다. 컬러사진 기술(카메라 등)도 시원찮았고, 인화하는 기술도 지금처럼 정밀하지 못한 시절의 사진들이다. 무엇보다 컬러사진은 필름값도 엄청나게 비싸서 함부로 개인용으로 찍기에는 어려웠다고 한다. 출판계나 인쇄계에서도 컬러 원판이 지금처럼 정밀하지 못하는 데다 인쇄술이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 정밀하지 못해 잘못 인쇄될 경우 매우 조잡하게 보이기 때문에 컬러사진을 여간해선 사용하지 않았다고도 한다. 지금에 비하면 불과 50여년 전의 일이지만 카메라, 필름, 작가의 기술(카메라 조작 등), 색도 조절, 인쇄 등 모든 면에서 엄두도 못냈다고 한다. 값도 흑백인쇄와 컬러인쇄는 단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차이가 났다는 것. 모두 예전에 들은 얘기지만 이 흑백사진 책을 보니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그때의 정감이나 감성이 묻어나오기도 하고...

 


 

이 책 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은 흑백사진과 함께 이야기하는 일상들이다. 화려한 멋을 내기 위해 찍은 사진이 아닌 평범한 일상, 저자가 느끼는 그때 그때의 감정이 담겨 있는 사진들이다. 페이지마다 캡션(사진설명)처럼 쓰인 짧은 글을 읽으며 저자의 일상이 작년 한 해 독자의 일상인 듯 다가온다. 아마 컬러사진이었으면 그런 감성이 느껴지지 않았을 터다. 흑백에서 오는 강렬한 명암 대비, 썰렁하고 차가운 느낌의 텅 빈 거리나 건물 등 황량하고 황폐화된 코로나 팬데믹에서 살아가는 움츠린 인간의 감정에 딱 들어맞는 느낌을 준다. 이 책에 실린 200여컷의 장면에는 사람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고양이만 유일하게 생물로 등장한다. 고양이를 저자가 좋아해서 등장시킨 것인지, 작품 상 고양이(길고양이)가 들어가야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유일한 등장 생물이다. 활기 있는 생물은 볼 수 없고 우리 일상에서 가장 활기 있게 느껴지는 시장의 모습도 없다. 저자 사진의 의도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컬러가 들어가지 않아 마치 그림자로 비춰지는 세상인 듯 보일 때도 있지만 그 또한 새로운 감정들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눈을 조금만 돌리면 보이는 익숙한 일상의 사진들이지만 다른 이의 눈을 통해 들여다보는 일상은 독자에게 무척 긴장감과 새로운 느낌의 이중적 고찰을 강요하는 것 같다. 저자와 같은 곳을 바라보아도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는 수 많은 순간들이 이 책에는 담겨 있다. 저자의 건강 때문에 일부러 흑백사진을 고집하지는 않았다는 것임이 확실하다. 일상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평소 일상에서 자주 보이던 모습은 낯설고, 자주 보이지 않던 모습이 클로즈업되어서 다가오는 느낌이다. 일상이 비상(非常)이고, 비상이 일상이다.

 


 

긴 복도를 따라 햇살이 비춥니다. 여기는 병원. 여기저기에 병원을 다니는 시간이 길어집니다.그만큼 제 인생도 살아온 세월이 길어진 걸까요? 아픈 게 지겹지만 또 한 줄기 햇살이 비치듯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렇게 남은 삶도 세월이 쌓여가겠죠? 비추는 햇살과 함께요.(P. 49)

꼭 멋진 풍경을 보고 싶었던 것은 아닙니다. 나름 재미있는 풍경이지만 창밖을 본다는 것이 꼭 멀리 있는 것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P. 146)

무언가에 비친 모습은 진짜가 아닙니다. 자기 생각이 비친 모습을 진짜로 믿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서 자기 생각이 객관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을 저는 믿지 않습니다.(P. 191)

한참을 걷다 보니 여기가 어디죠?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가고 있었어요. 머릿속은 다른 세상을 헤매고 있었나 봐요. 요즘 자꾸 이럽니다. 현실의 목적지와 소망의 목적지가 달라서일까요?(P. 250)

 

저자 : 도진호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대학교에서 사진을 전공했습니다. 몇몇 잡지사를 다녔고 지금은 출판사에서 일합니다. ‘사진에는 정답이 없다’라는 생각으로 몇 차례 사진 그룹전에 참가했으며, 언젠가 평생 사진 촬영할 주제를 찾는 것이 목표입니다. 인생에서 술이 빠진 빈자리를 사진, 로큰롤, 영화, 역사, 야구, 마작 등으로 채워 넣고 있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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