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신은 우리에게 두 개의 콩팥을 주었다
류정호 지음 / 파람북 / 2021년 1월
평점 :
사랑의 힘과 생명의 숭고함, 삶의 진정성이 빛을 발하는 감동의 이야기를 오랜만에 접한다. 세상이 모든 이슈를 잠재우고 온통 코로나 얘기뿐이다.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가장 큰 문제인 전쟁에 버금가는, 어쩌면 전쟁보다 더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에 생업마저 뒤로 미루다보니 힘든 하루 하루가 그야말로 '지옥'이다. 다소 과장된 표현이긴 하지만 아무 의미 없는 하루 하루를 연명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삶의 의미를 새삼 되돌아보는 일도 있지만, 대개는 코로나 종식만을 바라며 한껏 움츠리고 있는 형국이다. 온 세상이 다 그렇다. TV에서 그렇게 자주 눈에 띄던 전쟁 고아 문제나 식량 위기의 아프리카 난민 돕기 등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국내에서도 자주 방송에 나오는 이웃돕기가 쏘옥 들어간 채 연말연시를 보낸 것 같다. 병원에서 불치나 난치병으로 힘든 투병 생활을 하는 사람들마저도 매스컴에서 잘 다루지 않는다. 관심을 덜 가지기 때문이리라. 그만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생활을 '해내느라' 우리 일상에 감동 스토리는 잘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런 감동적인 일도 모두 코로나로 잠식된 듯하다. 출판가, 서점가도 감동 스토리를 다룬 책 발간이 작년 한 해는 여느 해보다 적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는 감동 스토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관심이 덜 가기 때문이다.
이 책 『신은 우리에게 두 개의 콩팥을 주었다』는 만성신부전증으로 투석을 이어오던 남편의 보호자로서 병상을 지키고, 남편에게 신장을 기증하는 공여자로서 이식수술을 자처하며, 퇴원 후 예후의 관리자로서 일상을 회복해나가는 과정을 솔직하고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은 일종의 간병 일기이며 치유 에세이이다. ‘치유’라는 수식이 가능한 것은, 저자가 신장 이식의 특별한 경험과 치료의 과정을 통해 독자에게 자신의 내면을 살피고 일상을 성찰하게 하며, 위로와 더불어 난관을 극복하고 주변과 화해할 수 있는 용기를 전하기 때문이다. 부부이긴 하지만 자신의 장기를 선뜻 내준다는 말은 언제 들어도 진한 사랑이 느껴지는 감동이다. 저자의 이 책은 장기 기증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의 이야기며, 삶에 대한 무한 의지를 담았기 때문에 감동이 훨씬 크다. 또 사랑이 원래 그런 것이긴 하지만 고통을 함께하며 세속적 욕망을 넘어서는 생명의 존엄성을 느낄 수 있어 더욱 소중하다.
코로나로 각박해진 이웃과의 관계, 함께 일하는 동료와의 관계, 잠시이지만 소홀해진 친구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사랑, 희생, 이타적 행동 등 인간의 존엄성을 느끼도록 해주기 때문에 더 감동적이다.
저자 류정호는 병상 한쪽 구석에서, 퇴원 후 남편 곁에서 틈틈이 기록해온 이 이야기들은 부부의 애틋한 사랑을 넘어 인간과 삶에 대한 무한한 신뢰, 고통을 받아들이는 태도와 이타적 헌신, 신을 마주 대하는 겸허한 자세를 감동적으로 드러낸다. 온갖 세속적 욕망과 이기심으로 가득한 세태 속에서 생명에 대한 존엄과 사랑의 참뜻을 일깨우는, 한 줄기 빛과도 같은 책이다.
저자는 "신이 우리에게 두 개의 콩팥을 준 것은, 우리는 고난에 처한 이들보다 여분의 삶을 누리고 있으며, 가슴속에 늘 베풂과 나눔의 마음을 간직하라는 뜻이리라"며 사랑의 힘을 우리에게 전해주기도 한다. 저자가 크리스찬인지는 모르지만 예수의 가르침에 따른 삶을 살고 있는 저자에게서 인간 사랑, 생명의 외경, 인간 존엄, 이웃 사랑 등 많은 감동적이고 신비로움마저 느낄 정도로 독자에게 감동으로 다가온다. 독자는 이 책을 한 번에 쫘악 읽어내려가지 못하고 저자의 마음을 헤아리느려고 몇 번씩 책을 놓았다가 다시 감정을 가라앉히고 읽곤 했다. 오랜만에 감동적인 이야기를 직접 읽다보니 더 크게 다가온 것 같다.
책에 따르면 다도 전문가로서 강의와 저술 활동을 이어오며 차향처럼 그윽한 인생을 살던 저자는 남편의 만성신부전증으로 인생의 반전을 맞는다. 30여 년 전에 발병한 당뇨병으로 여러 합병증을 겪었으며, 대장암으로 수술까지 했으나 이때까지 만해도 비교적 잘 관리되어왔다. 그러나 투석을 해야 삶을 겨우 버텨갈 수 있는 만성신부전증은 천형과도 같은 병이었다. 부부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던 지난해 봄, 하나의 신장(콩팥)을 두고 공여자와 수혜자가 되었다. 공여자는 이 책의 저자이고 수혜자는 남편이다. 살아 있는 사람의 신장을 적출해 다른 사람에게 이식하는 생체이식은 매우 어렵고 까다로운 수술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대통령보다 만나기 힘들다는 기증자가 나서야만 가능한 일이다. 장기 기증이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겠는가. 배우자가 기증자로 나서더라도, 이식수술을 위한 교차반응검사와 혈액형 일치에서 ‘적합’ 판정을 받는 희박한 가능성을 통과해야 하며, 다른 장기들과 호응할 수 있도록 미세한 신경과 혈관들을 연결시키는 고도의 의료 기술이 따라야 한다.
저자는 혈육이 아님에도 자식들과 배우자의 형제들을 만류하고 스스로 기증을 자처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길 간절히 바랐다. 부부는 애초에 한 몸이며, 배우자의 고통을 방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눈부신 부부애보다 더 값지게 와닿는 것은 글의 전편에 녹아 흐르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 희생적 사랑에 주저함이 없는 태도와 고통을 받아들이고 결연히 극복해가는 자세이다.
하나의 장기에는 한 사람의 생애에 아로새겨진 모든 유전자 정보가 담긴다고 한다. 과학적 논의를 떠나 장기 이식은 온전히 한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단지 부품 하나를 갈아 끼우는 기계적 공정이 아닌 것이다. 그러니 부부간이라 해도 내어주는 것도 받아드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기꺼이 내어주고 겸허히 받아드는 줄탁동시(?啄同時)의 순간에 사랑은 빛을 발하는 것이리라.
인생의 한쪽 문이 열릴 때, 다른 한쪽 문이 닫힌다. 누구의 인생도 행복으로만 채워지는 일은 없으며, 불행은 도처에 잠복해 우리를 기다린다. 예고 없이 닥치는 좌절의 순간들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위엄과 품위를 잃지 않고 견디어낸 사람만이 기쁨을 맞이할 자격이 있다. 저자는 청천벽력처럼 다가온 난관들 앞에서 의연함을 잃지 않고 오히려 의료진과 주변에 감사를 전한다. 그 힘의 근원이 바로 사랑과 삶에 대한 진정성일 것이다.
책은 이식수술을 전후로 ‘기꺼이 내어주다’와 ‘겸허히 받아들다’ 2부로 나뉘어 있으며, 에필로그를 통해 현재 자신이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투병 중임을 고백하고 있다. 이식 전 모든 검사에서 어떤 징후도 발견할 수 없었던 건강한 저자에게 이식수술 후 6개월 만에 일어난 급작스러운 일이다. 이식수술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이후의 예후 또한 잘 관리되고 있을 때, 또 다른 난관의 문이 열린 것이다. 이 대목에선 참담한 슬픔이 복받쳐 눈시울을 뜨겁게 하지만, 저자는 의외로 담담하게 말한다. “다 잘될 거예요.”
다음 두 분의 추천사는 저자의 숭고한 정신을 더욱 빛나게 할 뿐 아니라 우리가 말하는 사랑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은 사색의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이와 함께 예부터 내려오던 말의 가치를 빛내고 진실되게 한다. 우리는 사실 나눌 수 있는 것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과 직결되는 ‘장기’를 나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생명과 사랑에 대한 숭고한 정신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이 책은 솔직하고 겸손한 자세로 남편에 대한 신장 이식 전후의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인간과 삶에 대한 깊은 이해와 무한한 신뢰, 고통을 받아들이고 신을 마주하는 겸허한 자세가 감동의 빛을 발합니다. 저자의 진정한 사랑에 경의를 표합니다.
- 염수정 추기경(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
인간은 신의 숨결이 스민 고귀한 존재이다. 인간의 마음속에 지극하고 숭고한 신의 ‘뜻’이 깃들어 있다는 말일 텐데, 세상이 암울하기만 한 것은 인간이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마음이 납덩이처럼 무거운 시절에 모처럼 가슴이 뜨거워지는 글을 만났다. 류정호 선생의 글은 우리가 잊고 지내던 사랑의 지고지순한 가치를 일깨워 어둡고 우울한 세상에 한 줄기 빛을 드러낸다. ‘베풂’과 ‘나눔’의 미덕이야말로 우리가 살펴야 할 신의 ‘뜻’이 아닐까. 저자의 웅숭깊고 정갈한 성품과 글의 진정성으로 인하여 읽는 내내 따뜻하고 행복했다.
- 정호승 시인
"사랑은 모든 것을 극복한다. 아모르 빈치트 옴니아(Amor Vincit Omnia)"
삶의 난관을 배회하는 남편 곁을 지키며 짧은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틈이 날 때마다 끄적여온 글이 점점 부풀어올라, 이식 후 여섯 달이 지나는 동안 예상치 않게 책으로 엮였습니다.
‘고통은 선물이다.’
닳고 닳은 이 말도 아픈 사람에게만은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저 또한 아픔 앞에서 한탄하고 원망에 빠졌더라면 그럴싸하게 포장된 저 말에 계속 분노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이 말이 정말 가슴으로 다가오더군요. 유한한 삶에 무한한 욕심과 기대를 욱여넣고 살던 내가 남편의 병마를 지켜보면서, 우리 부부의 이식 과정을 경험하면서 생로병사의 뜻을 다시 짚어보게 되었습니다.
「작가의 말」 - 좀 더 진한 사랑이 담기기를
저자 : 류정호
부산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한 후 10년간 물리교사로 지냈으며, 금당 최규용 선생의 금당다회를 거쳐 다도에 입문했다. 스승의 차 한잔에 매혹되어 물리교사에서 차(茶) 선생이 된 지 35년 동안 국내외 차의 현장을 찾아다니며 차의 길을 걸어왔다. 한국다도대학원과 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서원대학교에서 ‘차학교육학’과 ‘차학교수학습이론’을 강의했고, 서울대학교 ‘다향만당’에서 15년 동안 다도 특강을 진행해 왔으며, 인문학아카데미 ‘꽃과 문학’, ‘차 한잔의 인문학’ 강의로 차에 인문적 감성을 불어넣고 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의 생명사목연구회와 가톨릭대학교 가톨릭생명윤리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저서로는 『스토리텔링으로 떠나는 꽃차여행』, 『여행길에 찻집』 , 『마음 하나 챙겨 떠나는 찻집여행』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