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간에
수잰 레드펀 지음, 김마림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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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늘 수많은 감정과 생각 사이에서 쉼 없는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이 소설 『한순간에』는 눈 속 조난 사고로 인해 드러나는 두 가족의 생존과 우정 사이의 갈등, 우선순위와 선택 사이의 이해 등 현장 안에서 숨은그림찾기 하듯 다양한 감정을 엮어서 독자들을 분노하게 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면서도 다시금 슬퍼지게 하기도 한다.

이 소설 속 이야기는 모든 종류의 감정과 그 이상을 내포한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강한 것은 희망의 감정이다. 총 94장으로 이루어진 이 이야기는 마치 영화의 장면들 같다. 읽어 가다 보면 각 장마다 처음에는 슬픔과 분노가, 이후에는 기쁨, 안타까움, 그리고 마지막에는 희망의 감정에 북받치게 된다. 우리는 생존이 최우선이 된 혹한의 상황에서 일어난 분투와 구조 그리고 이후의 회복 과정들을 지켜보면서 생사의 갈림길에 선 인간들의 대처와 선택이 이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 묘사된 인간의 나약함과, 동시에 느끼게 되는 강인함이 인상적이다. 저자는 우리가 가진 감정이 분노와 대척점에 슬픔이, 나약함의 대척점에는 강인함이 있는 점을 대조적으로 드러나게 함으로써 선택의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소설은 사고 순간 죽은 '나'가 육신을 이탈해 사고 현장과 이후의 모든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현장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나'는 열여섯 살 고등학생 핀이다. 이번 겨울에도 어김없이 가족 스키 여행이 시작되었다. 우리 가족과 나의 절친 모린, 엄마의 절친 캐런 이모 부부와 그 딸까지 열 명이 캠핑카를 타고 함께한다. 즐거웠던 기분도 잠시, 산속에 들어설수록 눈보라는 강해지고, 눈 깜짝할 사이 세상은 어둡게 변한다. 조심히 움직이던 캠핑카 앞에 사슴이 나타나고, 불행히도 캠핑카는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산자락으로 추락한다. 이때 나(핀)는 즉사한다. 나는 육체를 벗어난 영혼이 되어 그 자리에 있는 모두를 자세히 볼 수 있는 상태가 된다. 나의 죽음에 가족들 모두 충격을 받지만 어두워지는 저녁, 즉시 조난 요청을 하러 이동해야 할지 그대로 하룻밤을 버틴 뒤 밝아지면 행동할 것인지 벌써부터 의견 충돌이 시작된다.

언니네 커플은 이대로 있을 수 없다며 먼저 눈길을 나선다. 아빠는 심한 부상으로 기절 상태이고, 엄마 역시 구조대를 찾으러 길을 나선다. 엄마가 캠핑카를 떠나기 전 내 시체에서 옷을 벗겨 내 절친 모린에게 줄지, 엄마 친구 딸인 내털리에게 줄지 잠시 고민하지만 모린에게 주고, 그때 캐런 이모의 얼굴에는 친구에 대한 심한 배신감이 서린다.

 

 

엄마가 떠나자 캠핑카에는 기절한 아빠 옆에 내 친구 모린, 내 동생이 있고, 캠핑카 뒤쪽에 캐런 이모네 가족이 모여 있다. 그때부터 이 캠핑카 안에는 이전에 없던 경계와 미묘한 긴장감이 생긴다. 지금까지 우리를 삼촌처럼 챙기고 우리 엄마 아빠와도 좋은 우정을 유지해 왔던 이모와 그 남편 밥이 자꾸 아빠의 노스페이스 모자 그리고 내 동생의 장갑을 쳐다본다. 이때 물을 마시고 싶다며 동생이 큰 몸을 움직여 이모를 밀친다. 그러자 이모가 한마디 한다. "이러다 쟤 때문에 우리가 죽겠어." 정신연령이 3세인 내 동생은, 우리 가족 모두가 사랑과 애정으로 잘 돌보아 왔다. 누구를 해할 아이가 아니다. 이모의 그 한마디가 나의 피를 얼어붙게 한다. 그 이후 밥은 동생을 캠핑카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파르르 떨며 눈을 뜬 아빠는, 통증뿐 아니라 점점 선명해지는 시야로 들어오는 광경에 겁에 질려 한 번 더 신음을 내뱉는다.

아빠는 작은 소리로 내 이름을 중얼거리다가 나를 발견하고 끔찍한 비명을 내지른다. 아빠를 따라 같이 내 쪽을 돌아본 나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버린다. 나의 죽음은 생각했던 것만큼 순식간에 일어난 일도, 고통 없는 죽음도 아니었다. 반쯤 잘린 내 머리에 있는 눈과 입은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벌려진 채 굳어 있고 괴기하게 아빠 쪽을 향해 있다. 내 몸에 그 많은 피가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엄청난 양의 피가 흘러 아빠 주변에 웅덩이를 만들고 있다."(p. 67)

 

 

누군가의 도움없이는 드나들 수 없는 차 상태다. 힘 좋은 오즈도 한몫 하며 서로 돕는 가운데 서서히 아침이 밝아온다. 그리고 다시 누군가의 구원을 요청하기위해 떠난다. 앤과 카일이. 그 뒤로는 사고가 아닌 선택에 의한 살인 혹은 일 뻔한 후회의 감정으로 사람이 피폐하게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스스로 놓을 뻔한 생명줄로 그 한순간의 선택이 역풍이 되어 앤을 괴롭힌다.. 또한 모두 구출되지만 막내 오즈는 장갑에 욕심낸 밥 삼촌에 의해 길을 잃고 영영 돌아오지 못하고 만다.(아래 단락 고딕체는 소설 속 '나'의 생각과 말을 현실과 구분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네 엄마가 떠난 지 한참이 지났잖아. 가다가 길을 잃었을까 봐 말이야."

오즈가 미간을 찌푸리고, 나의 맥박이 요동친다.

"누군가 너희 엄마를 찾으러 가야 할 것 같아." 밥 삼촌이 말한다.

오즈가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가고 싶은데, 발목을 너무 심하게 다쳐서."

나는 고개를 흔든다. 너무 믿어지지가 않아서 공포감마저 천천히 찾아 든다.

"내가 갈 수 있어." 오즈는 아주 좋은 생각이라는 듯이 신이 나서 말한다.

안 돼! 나는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든다. 나는 밥 삼촌 앞에 코가 닿을 만큼 가까이 다가간다. 이러지 마세요.

"엄마를 찾을 수 있겠어?" 밥 삼촌은 마치 오즈의 생각에 감동이라도 한 듯이 눈썹을 치켜 올리며 말한다.

"빙고가 같이 가면 돼." 오즈가 말한다. "빙고는 누구든 찾을 수 있어. 핀이랑 숨바꼭질하면 언제나 빙고가 찾아냈어. 누나는 아주 잘 숨는데도."

"아주 좋은 생각이네!"

제발요. 나는 애원한다. 제발, 밥 삼촌,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다시 생각해 봐요.(p. 115)

 

 

텅 빈 집, 영웅이 된 밥 삼촌네 가족, 하지만 진실은 드러나는 법. 조난자들 한 명 한 명 회복을 위해 애쓰는 가운데 엮여있던 실타래가 풀리고 과거와의 관계가 스러지는 모습들이 보인다. 핀의 멋진 남자친구가 될 뻔한 누구 얘기, 모의 새로운 남자친구 얘기 등등. 상처 난 구멍들이 하나씩 메꿔지고 메꿔지며 결국 일어서는 모습들...

무사히 구조를 마치고 돌아온 남겨진 자들의 이후의 생활모습을 통해 각기 저마다의 말 못할 비밀과 상처의 아픔을 대하는 방식, 그리고 이를 이겨나가는 모습들을 통해 물음을 던진다. 누가 잘못했다고 비난만은 할 수 없는 저마다 처한 상황을 통해 독자들에게 판단을 맡긴 듯하다. 하지만 적어도 뒷부분 저자의 말에서 느낀 것은 도덕적인 면에서 최선을 다했더라면 두 배의 상처는 오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았나 하는 말로 독자들에게 질문을 하는 것 같다.

 

 

생명은 누구나 하나뿐이다. 내 생명은 물론 타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하지만 소설 속 일어나는 일들처럼 만약 이런 일들이 몇날이고 지속이 된다면, 과연 우리들은 우선순위를 어떻게 매기고 일을 처리할까. 나 자신부터? 아니면 연약한 타인부터? 도덕과 양심에 배치되는 본성의 행동은 과연 어떻게 봐야 할까? 엄마가 보인, 핀의 옷을 벗겨 모린에게 준 것을 본 캐린이 느꼈던 감정, 밥 삼촌이 오즈에게 엄마를 찾아볼 것을 꾀하며 거래한 두 개의 초콜릿 바와 오즈의 장갑 사건, 아빠와 엄마가 느끼는 상실의 아픔과 극복의 과정들이 현실로 부딪치는 모습들에서 독자들은 어떤 느낌이 들까. 생각과 판단, 판단에서 실행까지... 제목처럼 '한순간에'란 말이 의미를 가지고 독자에게 다가온다. 도덕성과 이율배반적인 나를 보호하고자 하는 본성 앞에서 닥친 이런 일들을 통해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 내용들은 공감과 아픔,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나름대로 이유를 대며 이겨나가려 하는 모습들이 정말 아픔으로 다가온다. 특히 아빠가 오즈에 대해 말한 부분들에선 슬픔이 느껴지고, 비록 양심의 가책이고 부모의 입장에서는 생각해선 안될 일이었다고 해도 실제 생활에서 겪어온 아빠의 힘든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기도 한다.

이 소설은 삶과 죽음 사이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 판단, 생각, 실행 등의 거의 모든 것이 도덕과 비도덕, 양심과 비양심, 선과 악 사이의 어디쯤 위치하는지 묻고 있는 것 같다. 책을 다 읽어도 카타르시스 같은 개운함보다는 도덕이나 양심이라는 가면을 쓴 비도덕과 비양심의 현상들이 나타나는 것에 무거운 중압감이 느껴지는 것은 본성일까, 내 이익을 취하려는 순간의 이성적 판단일까.

 

 

저자 : 수잰 레드펀(SUZANNE REDFEARN)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끊임없이 소설적 상상력을 작동시키는 이야기꾼이자 진정한 페이지 터너.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 공과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2013년 학대하는 남편에게서 자신과 두 아이를 구하는 한 여인의 이야기 『허시 리틀 베이비』를 발표해 처음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2016년 남편 없이 TV 스타가 된 아이를 키우는 한 엄마의 삶과 내면의 갈등을 들여다본 『평범하지 않은 삶』을 발표하며 가족의 이야기를 설득력 있는 서사로 풀어내는 작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2020년 두 가족의 조난과 그 이후 벌어지는 갈등을 생생한 캐릭터와 감각적 묘사로 그려 낸 『한순간에』를 발표해 평론으로부터 경이로운 소설을 썼다는 찬사를 받았다. 이를 증명하듯 『한순간에』는 아마존 킨들 베스트셀러 1위에 한동안 머물렀고, 전 세계 13개 언어로 알려지게 되었다. 레드펀은 건축을 하듯 다양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핵심을 파고들며 플롯을 만드는 작가다. 현재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캘리포니아 러구나비치에 살면서 주거 및 상업 설계 전문 건축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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