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혼자라는 즐거움 - 나의 자발적 비대면 집콕 생활
정재혁 지음 / 파람북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낮에 일하고 저녁 퇴근 후에는 동료들이나 친구들과 식사를 하든지, 여흥을 위해 술을 한 잔 한다든지, 또 때로는 영화 관람이나 콘서트에 가는 등 우리의 일상은 평범했지만 아름다움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정을 나누고 사랑을 하며 좀 더 나은 내일을 기약하며 열심히 일에 매진한다. 일도, 여가도 혼자서 즐기기보다는 역시 함께 어울려 즐겨야 기쁨이 크다. 또 함께 어울려 나누는 정은 삶의 즐거움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렇게 즐겁고 행복한 일상을 어느 날부터 우리 모두는 잃어버렸다. 가끔씩 ‘잠시 멈춤’을 하고 또 때에 따라서는 ‘거리 두기’가 방역의 기준이 돼 단계가 올랐다내렸다를 계속하며 제자리를 못 찾고 있다. 우리의 올 한 해 일상은 그렇게 잃어버렸다. 내년을 기약하지만 언제쯤일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잠시 멈춤과 거리 두기가 계속된다면 우리의 생활 양상이 송두리째 바뀔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비대면이 일상화 되고, 거의 모든 문제를 서서히 혼자 하게 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앞당겨진다는 것이다. 4차산업 혁명이라 해서 컴퓨터, 인공지능, 자율주행 등의 편리한 점만 알고 있는 독자로서는 4차 산업혁명 시대는 필수적으로 비대면 시대라는 말에 두려움도 느낀다. 아날로그 감성을 갖고 최첨단의 디지털 문화에 공감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우려다. 그래도 코로나 팬데믹 상황만 종료된다면 예전의 일상을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은 버리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접어든다면 그때 가서 맞춰 살면 되니까. 그것이 삶이니까. 마스크를 사기 위해 요일별로 줄을 서다 지금은 그런 일은 없지 않은가. 이미 변해버린 지구 환경 속에서 계속 당황하고 우울해할 수만은 없는 일이니. 다가올 걱정보다는 현재의 문제를 극복하는 게 먼저니까.

 

 

COVID-19로 '집콕'이란 말이 널리 퍼졌다. 이번 팬데믹으로 처음 나온 신조어는 아니지만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게 코로나 때문이다. 방역을 위해 가급적 외출을 삼가라는 방역당국의 지침에 따라 집안에 들어앉아야 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생업도 학업도 불가피하지만 될 수 있는 대로 사람들의 모임이나 집합을 꺼리다보니 자연히 집밖에는 갈 데도 없고, 갈 수도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비자발적 칩거이다.

'집콕'이란 한때 유행했던 '방콕'에 이은 신조어로 컴퓨터 인터넷 등에서 자주 쓰이다 일반적으로 많이 쓰이게 된 말이다. 원래 우리 선조들이 쓰던 '두문불출(杜門不出)'이란 말도, 칩거(蟄居)란 말도 모두 한자어로 요즘 말로 하면 자발적 집콕인 셈이다. 두문불출이란 말이 잘 쓰이지 않은 이유는 요즘 우리가 하는 집콕과는 성격이 다르기 때문으로 보인다. 자발적인 뜻은 같지만 말의 어원이 정치적인 뜻을 담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이성계가 역성혁명을 일으킨 뒤 1392년 7월 16일에 공양왕의 선위 형식을 빌려 조선 국왕에 즉위하자 고려의 유신 72인이 끝까지 고려에 충성을 다하고 지조를 지키기 위하여 이른바 부조현(不朝峴)이라는 고개에서 조복을 벗어던지고 이곳에 들어와 새 왕조에 출사하지 않았다. 이때 조선 왕조는 두문동을 포위하고 고려 충신 72인을 불살라 죽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칩거나 은둔도 자발적이긴 하나 정치적 의미보다는 사회로부터의 피난이라는 점에서 조금 다른 듯하다.

 

 

이 용어들의 뜻을 굳이 말하는 것은 이 책 『때로는 혼자라는 즐거움』의 저자 정재혁이 '능동적' '자발적' 집콕을 말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미 5년 전부터 능동적으로 비대면 집콕 생활을 실천해 왔다고 한다. 저자는 그만의 노하우로 ‘혼자’의 시간을 즐기는 법에 대해 차분히 귀띔한다. 일반인들은 집에만 있는 시간이 괴로운데 저자는 자신이 실천해보니 꼭 괴로운 것만은 아니다라는 점을 이 책에서 피력하기 때문이다. '비대면'도 사회적 용어이지 우리가 자주 쓰는 말이 아니다. 사람간 접촉이 가장 큰 전염 원인이기 때문에 사람간 접촉을 피하기 위해 최대한의 방법은 비접촉이고 비대면이다. 저자의 비대면 실천은 능동적, 자발적이지 코로나로 인한 비자발적 집콕이 아니기 때문에 상황이 다를지 모른다. 그러나 어차피 비대면이 한시적으로 가장 좋은 방역 활동 실천 방법이니 '집콕' 선배인 저자의 말은 일상이 예전대로 돌아가기 전에는 유용할 수 있으니 경청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저자의 집콕 생활 중 하나인 동네 산책과 빵 만들기, 반려견과의 놀이, 해시태그를 통해 온라인상으로 즐길거리 찾기 등 다소 사소한 실천들이지만, 약간의 주의와 관찰만 곁들인다면 제법 새로운 모험과 도전, 어깨가 들썩이는 항해와 발견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봄이 아닌 코로나가 찾아왔던 지난 봄. 하는 수 없이 집에 머무는 시절은 일상에 해시태그를 달았다. 만남이 제한된 시대가 되어버렸지만, 21세기 우리는 와이파이 망 안에도 살고 있다. #를 붙여가며 별 탈 없이 어제와 오늘이 지속된다. 집에서 라이브, 집에서 영화, 집에서 스포츠, 심지어 술자리…. 디지털, 웹의 역사도 반 세기를 향하고 있으니 니름의 역사가 쌓일 만도 하다. 사람은 참 뭘 하지 못해 안달난 존재다. 얼마 전 어느 기사에서 일본의 SF 소설가 오가와 사토시는 “코로나는 인류 최대의 즐거움 중 하나인 ‘집회’를 앗아가버렸다”고 성을 냈는데, 지금의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오히려 #을 통해 시공간을 넘나드는 만남으로 가득하다. 나조차 #에 접속해 라이브 공연을 보고, 영화를 감상하고, 심지어 몇달 전에는 처음으로 랜선 인터뷰까지 했으니, 인간은 웬만해선 어떤 상황에서든 무언가를 하려는 동물인지도 모르겠다. 정전이 되면 우린 오래전부터 촛불을 찾곤 했다.(p. 51~52)

 

 

저자는 서서히 얘기를 풀어간다. 자신의 집콕 생활이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현재 일상의 멈춤과 거리 두기를 하는 독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말을 주기 위해서다. 또 그 희망의 메시지에는 슬기로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있을지 모른다. 독자도 이 책을 열심히 읽게 된 이유 중의 하나이다.

"‘멈춤’은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않는 것이지만, 결코 물러서는 걸음이 아니었다."

많은 뜻을 내포한 이 한줄의 문장에서 어느새 저자는 코로나 탓에 갑작스러운 거리 두기 일상을 보내느라 골머리를 앓는 이들에게 슬며시 자신이 먼저 겪어 익숙한 ‘비대면 집콕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다. ‘멈춤’을 통해 알게 된 고마운 일상과 의미들에 관해. 에세이 『때로는 혼자라는 즐거움』은 언제나 가족과 연인, 그리고 떠들썩한 모임을 찾게 마련인 우리에게 혼자 지내는 것이 전혀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즐거울 수 있다고 귀띔한다. 홈트레이닝과 랜선 술자리, 홈터파크 등의 트렌드는 일시적 위안일 뿐이다. 독자로서는 도무지 재미 있거나 즐겁지 않을 것 같은데 저자로서는 나쁘지 않나보다. 저자도 역시 ‘멈춤’이 처음에는 당황스럽고 외로웠으며, 두려움을 느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혼자 겪고 느끼고 관찰해서 깨달았던 저자의 일상은 답답하기만 한 코로나 시절을 힘겹게 통과하는 우리에게 반가운 힌트를 줄 것으로 믿는다.

 

 

"'오프'라는 말을 좋아한다. 치장을 하지 않는, 남을 의식하지 않는, 자랑하지 않아도 기죽지 않는 수더분한 오프의 시간을 좋아한다. 오프라는 말은 요즘 유행하는 아날로그의 오프이기도 하지만 그 말이 유행되려 할 때 한 발짝 뒤로 물러서는 '자리'로서의 오프를 좋아한다. 벌써 5년째 집에서만 생활하고 있지만, 내게 그런 오프의 시간은 좀처럼 흐르지 않았다. 오늘도 종일 집, 그리고 아파트 단지 안만 어슬렁거렸지만 오프의 시간은 흐르지 않았다. 오프라는 건 내게 '온' 바로 옆자리 - 너와 그들의 곁, 그리고 세상과 나 사이에 작동하는 말이었다.

집에만 틀어박혀 보내는 일상에 그런 스위치는 애초 성립할 리 없다. 매일이 무언가를 하기 위함이어떤 애씀의 시간,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바보 같은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무게, 그렇게 '온'을 갈망했던 날들에 '오프'는오히려 그들을 다시 만나는 일이었따. 그곳을 다시 찾는 오후였고, 그 지긋지긋했던 마감 언저리의 일상을 다시 서성이는 것이었다. 그렇게 바보 같은 걸음으로 5년여. 나는 스위치를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p. 20~21)

 

 

저자는 이 책에 담긴 에피소드 31편을 통해 ‘마주 오는 누군가를 피해 걷고, 주위 인기척에 신경을 곤두세우’던 자신이 직장 생활을 했던 때는 알 수 없었던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고 변화와 성장을 덤덤하게 드러내고 있다. 어쩌면 내 가까운 이웃일 수도 있는 그의 고백이 여전히 코로나 시절을 감당해내야 하는 우리에게 뜻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책에는 《바자》와 《싱글즈》 등 여러 잡지에 게재되었던 저자의 흥미로운 칼럼들도 함께 실었다. 표지 그림은 에드워드 호퍼의 《ROOM BY SAE》로, 저자의 기호와 책 내용을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이미지다.

 

 

저자 : 정재혁

 

저자는 5년 전 뜻밖의 병원 신세를 지면서 직장을 관두고 집에 머물러야 했다. 치료를 반복하며 가족의 보호를 받아야 했던 순간에는 당혹스럽고 열패감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그대로 멈춰 지낼 수만은 없었다. 불가능할 줄 알았건만 다시 크고 작은 매체에 글을 쓰고, 낯설기만 했던 동네 산책에 나서고, 제빵 기술을 배우거나 해시태그의 도움을 얻어 온라인 공연 관람에 심취하기도 하면서 그는 서서히 혼자만의 일상을 만끽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볼 기회도 얻었다. SNS를 통해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했는가 하면 《미스터 트롯》에 심취한 어머니와 서먹했던 이웃의 존재까지 마음에 담을 수 있었다.

성균관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영화 전문지 《씨네21》, 여행지 《AB-ROAD》, 남성지 《GEEK》, 패션지 《VOGUE KOREA》 등에서 기자로 10여 년간 근무했다. 그 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통신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2017년 온라인 콘텐츠 플랫폼 'PUBLY’에서 ‘팔리는 기획을 배운다’, ‘쓰는 시대의 도래’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발행했고, 부산국제영화제에 게스트 통역 업무, 교통방송 DMB 채널에서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일본어 프로그램 레귤러 패널과 일본문화원 리포터 경력이 있다. 저서로 《도쿄의 시간 기록자들》이 있으며, 《일주일은 금요일부터 시작하라》를 번역했다. 현재는 문화와 사회 전반에 관한 사사로운 글을 쓰면서 정기 혹은 비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