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건너는 집 특서 청소년문학 17
김하연 지음 / 특별한서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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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 쯤은 지금 이 시간이 아닌 다른 시간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특히 현실에서 자신의 힘으로 헤쳐나가기 어려운 문제에 부닥칠 경우 그냥 막연하게 '다른 세상'을 생각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거창하게 타임머신을 타고 다른 시간과 다른 공간으로의 여행 같은 것을 꿈꾸는 것 말고도 완전히 자신을 모르는 다른 세상으로의 여행을 생각해보기도 한다. 그것은 어쩌면 도피가 아니라 삶에 대한 희망과 의지를 되살리는 묘한 에너지가 되기도 하니까. 그러나 그 세상은 평소 자신이 꿈꾸는 세상일 뿐이지 실제로 일어날 수 없다. 시간의 관념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미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막상 시간을 건너는 집이 있고, 과거, 현재, 미래의 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떤 문을 열지 고민이 될 것이다. 그렇게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일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실이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그런 문을 열 기회가 주어진다면 과연 아이들은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해진다. 그것은 요즘 청소년들이 어떤 생각으로 세상을 살고 싶은지 궁금한 기성세대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



이 책 『시간을 건너는 집』에는 각자의 상처를 안은 아이들이 등장한다. 학교 폭력 피해자인 자영이, 췌장암 말기인 엄마 곁에서 지쳐가는 선미, 어린 시절 부모의 방임으로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이수, 그리고 비밀을 간직한 강민이. 선미는 췌장암 말기인 엄마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도 않고, 다른 친구들의 화목한 가족을 보고 싶지도 않아 일부러 학교에서 겉돌며 홀로 지내는 아이다. 친했던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자영은 막내동생을 돌보는 엄마에게 짐이 될까, 자신의 편이 한 명도 없는 교실에서 혼자 묵묵히 괴로움을 감내한다.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가진 이수는 자신을 ‘사이코패스’라고 생각하며, 엄마를 ‘엄마’ 대신 ‘저기’라고 부르며 철저히 선을 긋는다.


어머님의 모습이 두렵고 낯설다고 해서 부디 외면하지 않길 바란다. 어머님이 왜 계속 항암 치료를 받겠다고 고집하셨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본 적 있니? 그건 당신이 아니라 너를 위해서였을 거야. 어떻게든 나아서 네 옆을 지켜 주고 싶으셨겠지. 그러니 나중에 후회가 되지 않도록 자주 찾아뵙고 이야기를 나누렴. 혹시 대화가 안 될 정도로 상태가 안 좋으시다면, 너 혼자서라도 이야기해라. 네가 어머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끊임없이 말해 드려라.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고, 아직까지도 그 일을 후회하고 있다. 내게 하얀 운동화가 주어진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과거로 가 다시 아버지를 만날 거다. 그리고 사랑한다고 말해 드릴 거다. 너는 부디 나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면 좋겠다. 궁금한 점이나 힘든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편지를 보내라. 시간의 집사는 남는 게 시간밖에 없단다.(p. 126)


이 아이들은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기댈 곳이 없어 홀로 버텨왔던 아이들은 시간의 집에서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고 마음을 열어 간다. 그러나 선택의 날을 앞둔 어느 날, 이수는 학교 폭력을 당하는 자영을 도우려 나섰다가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만다.

예기치 못한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야기는 한 치 앞도 가늠할 수 없이 절정으로 치닫는다. 과연 아이들은 한 번뿐인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고 선택의 날, 각자 어떤 문을 선택하게 될까?기댈 곳이 없어 오롯이 혼자 외로움을 버티고 있는 수많은 청소년을 닮았다. ‘시간의 집’에 모인 아이들은 처음엔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선택을 고민하지만, 차츰 서로를 위한 선택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시간의 집’은 단순히 과거와 미래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니라, 서툰 아이들이 사람에게 기대는 법을 배우는 기회가 되어 준다.


이 집에 처음 왔을 때는 당연히 미래의 문을 선택할 거라고 생각했다. 되도록이면 5년 뒤의 미래로 가서 대학생이 되어 있고 싶었다. 하지만 아저씨의 편지를 되풀이해 읽는 동안 불쑥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미래로 가야 하나. 시간의 집은 미래의 문을 선택한 아이에게는 뛰어넘은 시간의 공백을 채울 수 있는 새로운 삶을 만들어 준다고 했지만, 그걸 진짜 내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현재를 살아가다 멤버들처럼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또 존재한다면?(p. 151)



이들에게 앞으로 좋은 일만 있을 거라는 위로는 그저 허울뿐인 위로에 불과하다. 『시간을 건너는 집』이 건네는 위로가 더욱 감동적인 것은, 감히 ‘쉬운 위로’를 건네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세상은 만만하지 않기에 분명 앞으로도 힘든 일이 찾아오겠지만, 힘든 시기를 함께 견뎌 줄 사람들도 분명 만나게 될 거라고 말한다.

시간의 문을 선택한 아이들의 기억은 사라지더라도 가슴에 품은 용기와 희망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김하연 작가는 청소년들에게 어떤 미래가 닥쳐와도 손을 잡아 줄 누군가가 있다면 괜찮을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과 애정을 보여준다.


“네가 어떻게 알아?” 유나가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아까 그랬잖아. 내가 네 입장이어도 그랬을 거라고. 만약 네가 왕따를 당했다면 나는 안 그랬을 거야. 종은이랑 세은이가 무서워도 네 옆에 있어 주려고 끝까지 용기를 냈을 거야.” “그래서 지금 날 욕하는 거야? 나도 처음에는 노력했어. 당연히 걔들이 잘못한 거니까. 게다가 우리 넷은 절친이었으니까. 근데 못 하겠더라. 계속 네 편을 들었다가는 나도 왕따가 되겠더라고. 내가 잘했다고 말하는 거 아냐. 하지만 우리 반 어떤 애라도 그 상황에 놓였다면 다 널 모른 체했을 거야. 이제 와서 나를 원망하다니 진짜 황당하다. 널 괴롭히기 시작한 건 내가 아니라 종은이랑 세은이잖아.” “그래. 나도 알아. 하지만 너까지 나를 외면했을 때는…… 걔들한테 괴롭힘을 당했을 때보다 훨씬 마음이 아팠어.” 자영의 메마른 뺨에 눈물이 흘렀다. “넌 걔들이 먼저 시작한 일이라고 변명하겠지. 하지만 어떤 일이 얼마만큼의 상처가 되는지는 아무도 몰라.”(pp. 166~167)



네 명의 아이들은 힘겨워하는 현재를 피해 미래로 갈지, 과거로 돌아갈지 선택을 할 수 있다. 주인공인 이수는 과거를 선택해서 현재의 시련과 상처를 극복해 나가고, 나머지 친구들은 각자의 다양한 선택에 따라 여러 가지 상황과 사건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기도 한다. 이런 얽히고설킨 문제의 와중에서도 작가는 학교 폭력에 관한 자영이와 이수의 에피소드로 현실을 표현해주고,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독자들은 자신의 경험이 있든 없든 작가가 이끄는 대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진다. 작품에 몰입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 지점을 잘 포착해 독자들의 집중력을 높이고 노련하게 그 문제를 풀어간다. 상처 있는 아이들의 운명의 순간에 독자들이 외면할 리 없다.

작가는 독자들의 궁금증을끌어내고 소설 속으로 몰입시키기 위한 준비를 끝낸 것이다. 이젠 이 아이들의 부닥칠 상황과 운명은 소설 속 인물들의 문제가 아니라 독자들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소설 속으로 걸어들어 간다. 힘든 시련을 아이들이 이겨낼지, 어떻게 전개되고 마무리될지 오로지 작가의 손에 달렸다. 함부로 해피엔딩을 끌어내지는 않는다. 너무 뻔한 결과가 독자들에게 설득력을 갖추려면 복선도 필요하고, 유기적 구성도 필수적이다.


자영은 차가운 바람을 한껏 들이마시며 마지막으로 시간의 집을 올려다봤다. 이 집은 자신이 불행하다고 여기는 아이들을 언젠가 또다시 맞아 줄 것이다. 새로운 멤버들은 의심과 불안, 그리고 희망으로 가슴을 두근거리며 하얀 운동화를 신고 돌계단을 오를 것이다. 지금보다 행복한 삶을 꿈꾸며. 오늘, 자영은 선택을 해야 한다. 이제 자신만을 위한 선택을 할 수는 없다. 자영은 이미 마음을 정했다. 자신의 선택이 옳은지 조금은 불안하지만 이제 예전처럼 두렵지 않다. 모두가 걱정해 준 만큼 씩씩하게 일어설 것이다. 아무도 자신을 괴롭히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자영은 돌계단을 올라 현관문을 열었다.(p. 227)



작가는 '시간'을 선택했고, 결말을 어떻게 내든 관계 없는 독자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야 한다. 소설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이나 상황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내고 독서의 즐거움도 줄 수 있는 것, 그것은 소설의 결말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독자들에게는 이미 보상한 것들이다. 그래서 독자들은 결말이 어떻게 끝나는가보다 어떻게 스토리가 진행되는가에 더 관심이 있는 것이다.

공감되고 좋은 느낌을 받았다면 독자는 그 책을 다시 읽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독자는 한 번 읽은 것으로 만족할 수도 있다. 소설로 작가는 주인공 인물들이 닥치는 상황이나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되고, 그 속에서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이미 받았다. 그것이 형상화돼 나타난 것이 이 소설이다. 시간을 매개로...

작가의 창작노트에 쓴 이 말이 다시 또렷이 기억속에서 나온다.

“어떤 고난 속에서도 사람은 사람을 통해 위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길에는 꼭 그런 사람이 함께하기를.”


“이 세상에는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이 꽤 많다. 막 세상에 태어난 아이, 누군가에게 했던 모진 말,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그리고 시간. 신조차도 사람이 살아가는 시간을 움직일 수는 없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건 오직 이 집뿐이지. 단 한 번뿐인 이 놀랍고 엄청난 기회를 너희는 과연 어떻게 쓸까. 자신을 위해서? 아니면 가족이나 친구를 위해서? 너희가 어떤 선택을 하든 지금보다 더 행복해지길 바란다. 이 집이 너희에게 정말로 선물해 주고 싶었던 건 미래나 과거에서 삶을 새롭게 시작하는 기회가 아니라 바로 행복일 테니까. 자, 누구부터 올라갈래?”(p. 231)


저자 : 김하연


대학에서 국문학을 공부하고, 프랑스 리옹3대학에서 현대 문학을 공부했다. 공부를 마친 뒤에는 어린이책 출판사에서 오랫동안 책 만드는 일을 했다. 지금은 아이들에게 책 읽는 재미와 즐거움을 주는 동화를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쓴 책으로 〈소능력자들〉 시리즈, 《똥 학교는 싫어요!》, 《어린이를 위해 어린이가 뭉쳤다》, 《날아라 모네 탐정단》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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