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길 위의 인생 수업 - 보름달이 건너가도록 밤은 깊었다
김정한 지음 / 미래북 / 2020년 11월
평점 :
시인 김정한의 언어는 감성적이다. 감수성 짙은 그의 언어는 갈고 닦은 특별한 언어가 아니다. 우리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평범한 언어다. 그런 언어들이 시인의 가슴과 손을 거쳐 우리 가슴에 와 닿을 땐 우리 마음을 촉촉히 적시고 때에 따라선 깊은 영혼에까지 울림을 준다. 그 언어는 우리 삶에 깊이 녹아든 언어를 치열한 사유를 거쳐 시인의 가슴에서 응축되고 농익어 우리 마음으로 또는 영혼으로 흘러든다.
시인은 언어를 단순히 대화나 소통의 도구로 보지 않고 우리 감정이나 영혼을 표현하는 인간만의 수단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그에게 언어 하나 하나는 우리 생각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소중하게 갈고 닦기도 하고, 깊은 사유로 가장 적절한 단어가 될 때까지 사색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그의 언어는 시가 되고 독자의 가슴과 영혼을 울리는 말이 된다.
"인생이란 것이 우리가 마음먹은대로 살아가지지는 않는다. 풍파를 겪으면서 사람이 단단해지게 된다. 내 삶이 힘들다고 해서 한탄만 할 것이 아니라, 평범한 오늘의 하루에 감사하고 기쁘게 생각해라."
그가 올해 작품 활동 30년이 됐다고 한다. 이번 시와 산문 모음집 『길 위의 인생 수업』은 새로 쓴 것도 있지만 상당 부분은 기존에 발표된 것들이다. 말하자면 문단 30년 결산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 같다. 누구나 등단하고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하면 30년이 되는 것인데 그것이 뭐 대단한 일이라고 결산 작품집을 내는 이유가 되나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 작품집에 모아 놓은 글을 보면 '30년 결산'이 목적이 아니라 코로나로 힘든 삶을 이어가는 사람 모두에게 위로와 격려, 그리고 삶에의 의지와 희망을 북돋우는 글임을 금세 알게 된다. 즉 길 위의 모든 이들에게 보내는 삶의 의지를 북돋우는 '수업'이 된 셈이다. 여기서 '길'은 삶의 현장이고 '수업'은 용기와 희망을 북돋우는 시간이 된다.
이번 작품은 총 5부로 나누어, 살면서 부딪치는 일과 사랑, 그리고 상실, 대인관계와 소통, 삶의 고독, 자아의 발견까지, 치열하게 경험하며 치열하게 사유한 흔적이 문장 곳곳에 배어 있다. 데뷔 30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어 한결같이 ‘인간에 대한 사랑’을 주제로 우리의 메마른 감성을 촉촉이 적셔 주는 김정한의 글은 편안하게 읽히면서도 사랑에 대한 그 순수함과 열정, 영원함에 대해 사색하게 하는 힘을 발견할 수 있다. 거칠고 소란스러운 세상에 마음과 마음 사이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는 어휘 하나하나에 작은 것을 소중히 하라는 겸손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또한 생의 절박함을 고스란히 느끼게 하면서 고독한 마음을 뒤흔들고 끌어당긴다.
1. 보름달이 건너가도록 밤은 깊었다
평범한 일상을 맞이할 수 있어 나는 좋다 13 ∥ 보름달이 건너가도록 밤은 깊었다 26 ∥ 헤세의 시를 읽다가 34 ∥ 아무것도 아닌 날은 없었다 51 ∥ 행복은 우연이 아니었다 55
2. 길 위의 인생수업
길 위에 선다 87 ∥ 나 홀로 여행은 숙려의 시간 98 ∥ 가장으로 산다는 것은 101 ∥ 이대로 두시라 104 ∥ 내 마음은 당신을 사랑한 다음 페이지를 걷는다 106 ∥ 기도하며 감사한다 111 ∥ 첫걸음을 위해 수만 걸음을 지운다 113 ∥ 길 위의 인생 수업 117
3. 토닥토닥, 수고했어
과거 속에 나를 가두지 말자 152 ∥ 끌리는 것들은 마음을 움직인다 154 ∥ 나의 행복한 시간 156 ∥ 아모르 파티(Amor fati) 160 ∥ 산다는 것은 견디는 것이다 170 ∥ 흔들리며 사는 것이 인생이다 172
4. 참 오랜만에 당신, 당신이 그리워 수줍어지는 밤이에요
5. 가끔 사는게 두려울 때는 뒤로 걸어봅니다
가끔 사는 게 두려울 때는 뒤로 걸어봅니다 231 ∥ 너를 사랑하다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249 ∥ 그래, 인생은 단 한 번의 추억 여행이야 270 ∥ 가난한 시인의 기도 274 ∥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에 너와 함께라서 276
<평범한 일상을 맞이할 수 있어 나는 좋다>
시인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일상을 빼앗긴 우리들에게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경험하는 좋은 계기가 됐다고 일러둔다. 시인은 이어 '오랜만에 느끼는 자유'를 여행이나 특별한 생활에서 찾는 게 아니라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며 맞는 햇살 한 줌에서 찾고 있다. 아침에 눈 뜨면 늘 우리 앞에 있는 아침 해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각인시켜준다.
"오늘이라는 초대장을 받아 기분 좋게 눈을 뜰 수 있어 좋다. 평범한 일상을 맞이할 수 있어 나는 좋다."
<헤세의 시를 읽다가>
인생은 고독한 것이다. 자신 앞에 다가온 모든 선택에 혼자 결정해야 하고 혼자 해결해야 한다. 시인은 이 고독을 헤세의 시에서부터 읽는다. '혼자 가는 길'에 나와 있는 누구든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는 말에서다.
"인생이 그렇다. 첫걸음도 혼자, 마지막 한 걸음도 혼자여야 한다. 생이라는 것이 중요한 결정은 혼자서 해야 하고, 본질적이고 치명적인 사실도때로는 마음속에 담아두어야 한다. 가족에게도 숨길 수밖에 없는 비밀이 있고 친구들과 나누지 못할 어려운 상황도 있다. 그래서 더욱 처절하게 고독한 것이 인간이다."
시인은 고독을 자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떻게든 고난과 시련을 극복하는 지혜를 터득하는 계기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스스로 극복할 수 있음을자각케하고 주문한다.
"인간은 스스로 감당하는 지능과 통찰력이 있기에 버거워도 견디게 된다. 그러면서 스스로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아 한 걸음씩 나아가는 거다. 한 걸음이든 두 걸음이든 타인과의 관계를 생각하며 행동해야 하기 때문에 고민하는 거다."
<행복은 우연이 아니었다>
우리는 보통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 가족, 친구, 동료 등을 우선 배려하고 스스로의 만족은 뒤로 미루는 삶을 사는 사람이 많다. 시인도 그랬을 것이라는 점은 고민해볼 필요도 없는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기에.
그러나 시인은 그런 삶에 한 가지를 보탤 것을 주문한다. 그렇게 사는 것은 자신에게 만족을 주는 것이니 계속 그렇게 살 것을 말하면서 단, 삶에 타인과 비교해서 자신의 삶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쉽지 않은 주문이다. 여태껏 내 살을 생각할 때는 타인의 삶과 비교하는 것이 보통이고, 타인보다 낫다고 생각하면 만족하고, 타인보다 뒤떨어진다고 생각하면 불만족할 경우 어떻게든 만족으로 바꾸려고 지나친 노력을 하곤 했다.
만족하면 그걸로 끝나지 남과 비교하지 말아라는 점을 시인은 강조한다. 앞서 가족과 친구를 위해 먼저 배려하는 것은 자신이 만족해서 계속하는 것이지남보다 낫기 때문에 만족한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타인과 비교하지 말고 어제의 나와 비교하면 그만이다. 어제보다 걱정이 덜하고, 어제보다 더 건강하고, 어제보다 물질적으로 조금 더 풍부하면 된다. 커피를 마시고 꽃을 사며 여백을 즐기는 것, 빙그레 미소 짓는 순간이 자주 있으면 된다. 행복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도, 땅에서 황금을 줍는 것도 아니다. 땀 흘려 일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거니까."
<기도하며 감사한다>
시인은 어떤 것을 기도하며 살까. 시인의 일상에는 어떤 기도가 있을까를 알아보는 부분이 이 책에 나와 있다.
"나는 늘 기도한다. 떠오르는 태양을 볼 수 있어 감사의 기도를 한다. 길을 걷다가도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감사의 기도를 한다. 찬란히 하루를 밝히다가 스멀스멀 사라지는 석양을 보며 기도한다. (중략) 두 발로 걸을 수 있어, 두 눈으로 볼 수 있어, 두 귀로 들을 수 있어, 코로 냄새를 맡을 수 있어, 지갑을 열어 물건을 살 수 있어,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건강하게 누릴 수 있어 감사의 기도를 한다."
시인의 기도는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 모든 것에 감사한다. 어찌보면 기독교인인가? 혹시 기도에 너무 빠진...?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각도로 생각하면 단순하기 그지없다. 그것은 자신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그것이 감사해야 할 일이다. 행복에 있어 항상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한 해가 마감되는 12월이 되면 누구나 다이어리 하나쯤 장만한다. 사업가나 직장인이면 누구든 비지니스 다이어리를 먼저 찾을 것이고, 주부라면 가계부 겸용 다이어리를 찾을 것이다. 독자도 늘 회사에서 나오는 다이어리가 있었기 때문에 따로 다이어리를 챙기지 않았지만 가끔씩 선물 받으면 누군가에 다시 선물하곤 했다. 다이어리를 업무용 이외에는 별로 쓸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는 이 책을 읽으며 따로 하나 구입하기로 했다.
개인용 다이어리다. 특별하진 않지만 사적인 일만 기록하는 다이어리다. 독서 기록도 되겠지만 일상 생활 기록용을 위해 따로 하나 준비할 요량이다. 어떤 다이어리가 눈에 띌지 아직 모르지만 어떤 말을 한 마디 적을지는 안다. 누가 보면 크리스찬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독자는 크리스찬이 아니다. 이 책을 읽고 난 다음 이것은 삶에서 생활하해야겠다고 느낀 것이다.
"일상의 평범한 일에 항상 감사하라."
저자 : 김정한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문학세계》 에 시 〈오늘도 난 당신을 만나러 갑니다〉 외 4편으로 데뷔했다. 교사생활, KBS 라디오 청소년광장 집필위원, 교육부 교육마당21 현장편집위원, 국회의원 정책팀에서 일했다. 현재는 시인과 에세이스트의 경계를 넘나들며 온전한 작가로 살고 있다. 서정적인 시와 산문으로 독자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안겨주는 그의 작품은 음악방송, 드라마, 중ㆍ고등학교 학습교재에도 인용되고 있다. 작품집으로는 대표 시집 《고마워요! 내 사랑》을 비롯해 《나는 아직 괜찮습니다》, 《유대인 1퍼센트 부의 지름길》, 《나와 당신의 거리》, 《괜찮은 위로》, 《소중한 사람에게 주는 사랑의 말》, 《난 그대를 만날 때보다 그대를 생각할 때가 더욱 행복합니다》, 《고마운 당신을 만났습니다》, 《새벽 2시에 생각나는 사람》, 《잘 있었나요 내 인생》, 《바람이 데려다 줄 거야》, 《나를 찾아가는 여행》, 《내 마음 들여다보기》, 《멀리 있어도 사랑이다》, 《때로는 달처럼 때로는 별처럼》, 《조금은 서툴고 흔들리는 그대에게 왜 사느냐고 묻거든》, 《그대에게 띄우는 편지》, 《울지 마라 다 지나간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물 사랑》, 《여자의 생각》, 《오늘도 난 당신을 만나러 갑니다》, 《길에서 사랑을 만나다》, 《토닥토닥 힘내세요 당신》, 《흔들리며 사는 것이 인생이다》, 《너를 사랑하다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나는 이별하는 법을 모르는데 이별하고 있다》 등 30권의 시집와 산문집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