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의 글쓰기
니콜 굴로타 지음, 김후 옮김 / 안타레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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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어렵다. 글을 써본 사람이나 써보지 않은(사람은 없겠지만) 사람도 이 말에 모두 동의한다. 글쓰기를 직업으로 하는 작가들도 이 말엔 공감을 표시한다. 그러나 글을 잘 쓰는 사람도 "글은 이렇게 써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런 생각 없이 쓰고 싶어 쓰기 시작했고, 온 노력을 기울이다 보니 언젠가는 짧은 글 몇 개는 쉽게 쓰이더라. 가능성이라 생각하고 읽고, 쓰고, 생각하고, 다시 쓰고 하는 일을 계속하다 보니 조심 조심 글 쓰는 양이 늘어나고 겨우 책으로 쓸 만하지 않을까 정도의 생각이 들었다. 이런 말은 모든 작가들이 공통적으로 입을 모은다. 기간에 대해서는 조금씩 다르지만.

이 책 『있는 그대로의 글쓰기』는 한마디로 '글쓰기 교본'이다. 저자는 글을 쓰기 시작해서 작가가 되는 과정을 10계절로 나누어 '글쓰기 과정에서 할 일'을 차근차근 이해하기 쉽게 풀어썼다. 10계절은 저자의 경험에서 체득한 글쓰기 과정을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구분 짓는 것이며, 당연히 실제 계절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저자가 이 글을 쓴 계절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시간으로 표현한다면 열(10) 계절에 비유할 수 있겠는가. 10년도 넘은 세월을 글쓰기를 해온 작가가 글쓰기의 어려움을 얘기하지 않고 비유적으로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 편의상 구분된 계절일 뿐이다.

각 챕터의 키워드만 모아보면 그 의미가 명확해진다. 시작, 의심, 기억, 불만, 돌봄, 양육, 문턱, 눈뜸, 피정, 완성이다. 키워드만 읽다보면 의미를 알 것 같기도 하고, 애매한 것도 있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이 단어를 기억한다면 반드시 글쓰기의 기본은 마쳤다고 독자는 믿는다.

그리고 10개의 키워드를 잊지 않고 글쓰기 작업을 하면 자신의 글이 어느 위치쯤 왔는지 가늠하고 다음 과정엔 어떤 일을 해야 할까가 명확하게 떠오를 것이다.





글쓰는 삶을 사는 작가의 대부분은 늘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는 계절에 맞춰 사는 농부의 삶과 흡사하다. 그래서 저자의 '글쓰기의 계절' 비유는 탁월하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정직하게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가을 수확을 기대할 수 있는 농부는 날씨 탓, 하늘 탓 하지 않는다. 폭우 속에서도 필요하면 농토를 돌보고, 가뭄이 들면 물을 어떻게든 끌어와 작물에 공급해줘야 한다. 자신만이 할 수 있고, 자신이 해야 수확 역시 자신이 거둘 수 있다는 하늘의 진리, 농부의 삶의 원칙은 글쓰기가 직업인 작가의 삶과 똑같다. 정직한 노력만이 글을 잘 쓸 수 있고 정직한 힘만이 자신이 수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작가와 농부는 다른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첫 문장을 만드는 ‘시작의 계절’에서부터, 자신의 글쓰기 역량에 회의감이 싹트는 ‘의심의 계절’과 여의치 못한 주변 환경(자신의 노력 부족)을 탓하는 ‘불만의 계절’을 지나, 스스로를 돌아보고 삶의 균형을 맞추는 ‘돌봄의 계절’과 ‘피정의 계절’을 거쳐 비로소 맞이하는 글쓰기 마무리 ‘완성의 계절’까지, 이른바 작가로서 살아가는 ‘십계절(TEN SEASONS)’에 관해 말하고 있다.

지은이 자신이 문학소녀로, 직장인으로, 아내로, 엄마로 살아오는 동안 끝내 놓지 않았던 글쓰기의 삶에 관한 이야기는 한 편의 서정적이고 감동적인 에세이를 이루며, 글 중간중간 녹여낸 ‘의식과 루틴’이라는 이름의 섹션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팁을 제공한다.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들을 세심한 필치로 하나씩 챙겨주면서 진심 어린 격려와 위안을 보낸다. “글쓰기 최대의 적은 자기 내면의 두려움”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그 두려움이 잉크가 종이에 스며들어 흐르는 것을 방해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어느 순간 나만의 이야기를 ‘온전히’, ‘있는 그대로’, ‘의식의 흐름대로’ 써내려가고 있는 자신을 만나는 수확의 기쁨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고 모두 10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0개의 장은 각각 10가지 계절에 대응한다. 글을 쓰기로 마음먹고 첫 문장을 고민하는 ‘시작의 계절(Season of Beginnings)’에서부터 원고를 마무리하는 ‘완성의 계절(Season of Finishing)’에 이르기까지 글쓰기의 삶에서 마주하게 되는, 그리고 마주해야 할 ‘십계절(Ten Seasons)’을 다룬다. 분리된 형식은 아니지만 2개의 섹션이다. 우선 글의 중심을 잡고 전개되는 지은이 자신의 이야기가 있다. 매우 서정적이면서 감동적이다.

그 자체로 힐링 에세이처럼 읽힌다. 아마 글쓰기를 해오는 동안 갈고 닦은 글솜씨로 표현의 유려함이나 적확한 단어 사용 능력이 더해져 독자들이 읽기에 훨씬 좋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시를 사랑한 ‘문학소녀’로서, 인정받고 싶은 ‘직장인’으로서, 힘이 되고 싶은 ‘아내’로서, 더 잘해주고 싶은 ‘엄마’로서 살아오는 동안 “계속해(Keep Going)”를 되뇌며 기어이 포기하지 않았던 ‘작가의 꿈’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불특정 다수가 아닌 읽는 이 단 한 사람(이 책에서 ‘당신’)을 향해 자신의 깊은 속마음까지 ‘있는 그대로’ 고백하는 일을 꺼리지 않는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읽다가 중간쯤 지나면 책장을 프롤로그 부분으로 되넘기게 될수도 있다. 이때 저자의 다음과 같은 말이 진심이었음을 느끼면서 더욱 몰입할 것이다. 독자가 그랬듯이.

“내가 당신에게 꼭 말해주고 싶은 것은 당신이 글을 쓰고 싶다면 반드시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꼭 그러자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당신의 이야기를 위해 할애된 공간이 있으며, 당신은 자신의 목소리를 감출 필요가 없다.”





실용적인 측면에서 이 책의 백미는 글의 흐름을 따라 자연스럽게 삽입된 ‘의식과 루틴’ 섹션이다. 저자의 조언이다. 이 부분은 저자의 의도가 반영된 결과인데, 책을 다 읽고 난 뒤 실제로 글쓰기를 진행하면서 해당 계절에 직면했을 때 곧바로 팁을 확인할 수 있게끔 편집한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글쓰기’는 주어와 술어의 논리적 관계와 맥락이 중요한 논설문이나 설명문이 아니다. 물론 비문도 상관없다는 뜻은 아니지만, 논리보다는 감성을 드러내는 시나 에세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더욱이 문장 구조 등을 분석하는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은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 하지만 글은 나의 생각과 마음에서 나온다. 내 안에서 아무런 사고·심리 작용이 일어나지 않으면 문장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저자가 ‘의식(rituals)’과 ‘루틴(routines)’을 통해 글쓰기 리듬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별도의 섹션을 구성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의식’은 해당 계절에 처해 있을 때 도움을 주는 ‘마음 챙김(mindfulness)’이고, ‘루틴’은 글쓰기 생활에 특화된 자신만의 ‘비트(beat)’을 만들어내는 데 유용한 훈련법이다. 저자는 이렇게 약속하고 있다.

“나는 약속을 하는 데 무척 신중한 편이다. 우리 자신의 직관이 가져다주는 지혜 말고는 따라야 할 비법 따위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방법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내게 효과적이었던 글쓰기 방법, 내게 시련이 되었던 상황, 그리고 내 삶을 보다 명확하게 보기 위해 내가 바꾼 사고방식을 당신에게 ‘있는 그대로’ 밝히겠다고 약속한다.”



저자에 따르면 글쓰기는 단순한 작문 행위가 아니다. 글쓰기는 ‘내 안의 나’를 만나게 해주며 ‘내 삶의 공간’을 넓혀준다. 글쓰기는 가장 낮은 가격으로 가장 높은 가치를 창출해주는 유일무이한 활동이다. 또한 저자의 말처럼 “글쓰기는 삶에서 보내는 시간을 명예롭게 만들 수 있는 가장 품위 있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글쓰기는 지난 시간의 ‘내 얼굴’을 보여준다. 현재의 시간을 ‘소비’하는 동시에 과거의 시간을 ‘회복’한다. 그렇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찾게 해준다. 그래서 나는 ‘치유’된다.

이 책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내가 ‘써내려갈 페이지’ 위에, ‘있는 그대로’ 투영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럼으로써 내면의 자아를 돌보고, 내 주변의 모든 것들에 귀 기울이면서, 삶의 갈증을 달랠 수 있게 해준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을 인용한다. "우리의 삶은 언젠가 사라지기에 소중하다." 글쓰기로 그 소중한 삶을 기억하고 남길 수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시’나 ‘에세이’ 형식의 글로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의 중요성이 특별히 강조되는 부분이다.

느린 글쓰기는 ‘적게 쓰는 것이 많이 쓰는 것’이라는 믿음에 기반을 두고 있다. 또한 글쓰기의 삶은 길게 보고 가는 것이기에 서두르거나 경쟁할 필요가 없으며, 스스로를 탈진 상태까지 몰아넣을 까닭도 없다는 생각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좀 더 간결하게 정의한다면, 느린 글쓰기는 ‘모든 것을 전부 다 쓰지는 않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당신의 기억과 경험은 소중하지만 유한한 자원이며, 당신의 시간과 건강은 재생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느린 글쓰기는 당신을 위한 보호 수단이기도 하다. 다음은 느린 글쓰기 사고방식을 당신의 글쓰기 삶과 통합하기 위한 몇 가지 지침을 정리한 것이다.



우리는 매일같이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미디어에서 자신을 표현한다. 블로그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자세하게 설명하기도 한다.

그것은 진실일까?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일까? 자신보다 자신에 대해 더 잘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에 대한 자기 자신의 표현은 진실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 있는 그대로의 생각, 있는 그대로의 삶을 글로 옮기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은 이유다. 하지만 글은 그래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그런 글만이 힘을 갖기 때문이며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제7장: 문턱의 계절」 중에서


공간과 여백이 없다면 우리의 생각은 마무리되지 않는다. 우리는 의지만으로 문장을 완성할 수 없다. 생각은 항상 전체가 아니라 조각조각으로 흩어져 있다. 그 생각은 우리 스스로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으면 합쳐지지 않는다. 우리는 돌아오기 위해 떠난 것이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을 때 비로소 다시 시작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해왔고,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올 때는 낯선 느낌도 든다. 피정은 우리가 새롭게 충전하도록 돕지만, 그 에너지가 무한히 지속되지는 않는다. 또한 우리는 더 많은 낱말이 적힌 마음의 기념품을 갖고 돌아오지만, 필연적으로 우리가 떠나고 싶었던 그 일상에 다시 녹아들어야 한다.

「제9장: 피정의 계절」 중에서



저자 : 니콜 굴로타(NICOLE GULOTTA)


자신이 쓴 글이 ‘있는 그대로의 삶’에서 ‘있는 그대로의 행복’을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작가이자 칼럼니스트, 강연가, 블로거, 콘텐츠 개발자, 요리 레시피 연구가, 녹차 애호가이며, 매일매일 손수 빵을 구워 저녁 식탁을 차리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서 때때로 우울해하는 아내이자 엄마다. 바다를 사랑하며, 오래된 책 냄새를 좋아하고, 비 오는 날 뜨거운 차 한 잔에 책 한 권이면 금세 행복해하는 사람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에서 나고 자라 캘리포니아대학교 샌타바버라 캠퍼스(UCSB)에서 문학과 미술사를 전공한 뒤 버몬트예술대학원(VCFA)에서 시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음식과 글쓰기를 융합한 첫 번째 책 《이 시를 먹어라: 시에서 영감을 얻은 레시피로 차린 문학의 향연(EAT THIS POEM: A LITERARY FEAST OF RECIPES INSPIRED BY POETRY)》을 써서 좋은 평가를 받았고, 이 책 『있는 그대로의 글쓰기』의 바탕이 된 글쓰기 커뮤니티 ‘와일드워즈(WILD WORDS)’를 만들어 작가로서의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내적·외적 성장을 돕고 있다. 〈킨포크(KINFOLK)〉, 〈로스앤젤레스타임스(LOS ANGELES TIMES)〉, 〈라이프앤드타임매거진(LIFE & THYME MAGAZINE)〉,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HRISTIAN SCIENCE MONITOR)〉 칼럼니스트로도 활동 중이다. 남편 앤드루(ANDREW)와 아들 헨리(HENRY) 그리고 반려견 프렌치 불독과 함께 노스캐롤라이나 롤리(RALEIGH)에서 살고 있다.


역자 : 김후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독립연구가로서 역사ㆍ철학ㆍ문화ㆍ정치ㆍ사회ㆍ경제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바탕으로 저술 및 번역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활이 바꾼 세계사》(제43회 한국백상출판문화상 수상)와 《불멸의 여인들》, 《불멸의 제왕들》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밀수 이야기》, 《전쟁 연대기》, 《맛의 제국 이탈리아의 음식문화사 AL DENTE》, 《세상이 버린 위대한 폐허 60》, 《설명할 수 있는 경제학》, 《일자리의 미래》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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