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자살했다 - 상처를 품고 사는 이들에게 건네는 위로
곽경희 지음 / 센시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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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인 선택으로 가족을 잃는 슬픔과 죄책감을 직접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그 정도를 가늠하기 힘들 것이다. 자신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가족의 죽음은 장수해 살다 노환 등으로 운명해도 슬프고 애절하다. 하물며 살 날이 많은 사람들의 극단적인 선택은 남은 유가족에게 얼마만한 슬픔과 고통을 줄지는 몇 마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독자도 가족은 물론 주위에 그런 사람이 없어서 다행스럽게도 그런 슬픔은 겪지 않았다. 결코 겪지 않기를 바라며 저자의 말을 경청해본다. 이 책은 한 집안의 가장인 남편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에 대한 슬픔과 고통을 이겨내고 삶의 의지를 되찾아 가는 한 아내의 얘기다. 그런데 일반 평범한 가정과는 조금 상황이 다르다.

저자는 책의 첫머리를 이렇게 시작한다. "남편이 자살했다. 슬퍼야 하는데 화가 났다. 기가 막힌 건 나도 그가 죽기를 바랐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건 이제야 그가 다시 살아나길 바란다는 것이다."



사실 저자의 남편은 아내와 아이들보다 자신의 어머니를 더 챙겼고, 그 무엇보다 술을 사랑했다. 자신의 건강이나 가족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친구들과 어울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술을 마셨다. 평균 수명이 마흔 살이라는 심각한 병을 앓고 있었음에도 그는 결코 술을 경계하지 않았다.

온갖 방식을 동원해 그가 술을 줄일 수 있도록 노력했지만 어떤 것도 통하지 않았다. 나는 이 모든 것이 남편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내가 못나서 벌어진 일이라 여겼다. 그래서 그를 원망하고 미워하며 나 자신을 깊숙한 우울의 늪으로 끊임없이 밀어 넣었다. 독자가 보기에는 남편은 전형적인 알코올 중독 증세를 보인 것 같다. 아내인 저자는 알코올 중독으로부터 벗어나도록 수단과 방법을 다했다는 것으로 읽힌다. 더욱이 저자는 간호사로서 치료나 회복의 과정을 잘 알 테니 '수단과 방법'을 할 수 있는 데까지 다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저자의 사부곡(思夫曲)이기도 한 이 책에서 저자는 경찰에게서 남편의 자살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애절한 통곡이 아닌 그간 꾹꾹 눌러놓았던 분노가 먼저 터져 나왔다. 사라지든지 죽든지 아무 상관 없는데, 왜 하필이면 ‘자살’이라는 유치하고 치졸한 방식을 선택해서 끝까지 나를 골탕 먹이는지 너무나 밉고 원망스러웠다.

끝끝내 나를 남편 죽인 몹쓸 여자로 만들어 놓아야 속이 시원한지도 궁금했다. 그의 장례를 치르는 내도록 나는 바락바락 악을 쓰며 그에게 따져 물었지만, 그는 끝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왜 남편에게 적의(敵意)를 갖고 있었는지, 쉽게 추측된다. 알코올 중독은 '가족병'이라고도 일컬어진다. 옆에서 지켜봐야 하는 가족이 큰 고통을 겪어야 하기 때문일 터다. 실제로 알코올 중독자는 폭력성, 거짓말, 수치심의 구별이 잘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 전문의의 인터뷰를 독자도 본 적이 있다. 술을 마시기 위해 거짓말을 수시로 하고, 술을 마시면 폭력 성향이 갑자기 폭발적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술 마신 후의 행동에 대해서는 일반 사람이 느끼는 수치심에 비교할 수 없이 무감각하다는 것이다.



남편은 저자인 아내와 결혼했다 이혼했다. 이유는 구구절절 안 해도 짐작이 간다. 다만 일반적으로 흔하지 않은 병을 남편은 앓고 있었다. 결혼 후 안 사실이다. 저자의 남편은 마흔아홉 살에 죽을 거야 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공교롭게도 남편은 마흔아홉 살을 한 달 앞두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베체트병'이라는 희귀난치성 질환을 앓고 있었다는 것. 독자는 처음 들어보는 이 질환을 앓는 환자의 평균 수명이 마흔 살이라고 한다.

그녀는 스물 셋의 어린 나이에 남편과 결혼을 결심했다. 그녀가 어린 나이에 결혼을 결심한 이유는 학대에 가까운 친정 엄마의 폭언과 폭력이 있었던 것 같다. 아마 폭언 등 학대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이른 결혼을 결심한 것 같다. 반면 남편은 어릴 때부터 어머니로부터 과잉보호와 과잉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그런 어머니의 과한 아들 사랑은 결혼 후 집착으로 변했고 파국으로 몰아 넣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저자에 따르면 남편은 더욱이 어머니와 비정상적인 스킨십도 있었다. 이미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하여 자식까지 둔 다 큰 남자가 걸핏하면 어머니 무릎에 누워 젖가슴을 만졌다. 또한 마흔이 넘은 아들을 새벽에 깨워 욕실에 데려가 목욕을 시킨 적도 있다. 아이를 낳으면 남편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첫 째 아들을 낳았다. 하지만 남편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들이 둘이면 좀 더 정신을 차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둘째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남편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혹시 딸이 생기면 딸아이가 주는 색다른 기쁨에 집에 더 일찍 들어오고 술도 덜 마시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에 셋째딸을 낳는다. 그러나 남편은 달라지지 않았다. 주변에서 막내딸이 혼자 있으면 외롭다고 해서 넷째딸을 더 낳는다. 이렇게 저자는 자녀를 넷 둔 엄마가 되었다.



내는 당연히 남편과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남편이 술을 끊고 저녁에 일찍 들어와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과일을 함께 먹으며 대화도 하고 싶었다.

주말이면 함께 장도 보고 가끔 아이들과 함께 야외에 소풍도 나가고 싶었다. 누군가에겐 너무나 평범한 삶이 꿈같은 일이 되어버렸다. 첫 번째 이혼을 하고 남편은 1년만에 몰라보게 달라졌다. 살도 빼고 술도 끊었다. 그래서 다시 합쳤다. 재결합한 것이다. 하지만 합친 이후 남편은 돌변하였고 이전보다 더 많은 술을 마시며 지냈다.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에 대한 원망은 죄책감과 자괴감으로 이어졌다. 나는 이 세상에 전혀 쓸모없는 존재처럼 여겨졌다.

살 가치도 없고,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여자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죽는 것 말고는 딱히 답이 없어 보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남편처럼 덜컥 죽을 수도 없는 처지였다. 내겐 넷이나 되는 아이들이 있었다. 나는 답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이혼을 결심한 것 같다. 그리고 남편의 동의를 얻고 이혼 합의한 날의 하루 전날이다. 남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겪어보진 않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경찰서로부터 받은 남편의 극단적 선택 소식은 슬픔, 분노, 아득함, 빛 하나 없는 공포속 어두움... 표현할 길 없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저자는 간호사라는 직업이고 자녀가 4명이라는 사실을 재인식하면서 그날 받은 충격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삶의 의지를 되찾는 동기가 됐을 것이다. 자신이 살지 않으면 자녀들은 어떻게... 라는 인식이 되살아나면 어머니로서의 모성애는 어떤 위험도 감수하고, 어떤 고난도 겪어내는 힘이 있는 것 같다. 모성애라고 하는. 저자는 이렇게 밝힌다. "나는 지난 시간을 재해석하게 되면서 차츰 남편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낼 수 있었고, 바닥까지 추락했던 자존감도 조금씩 회복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겐 희망이 될 수 있겠다, 아니 꼭 희망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피어올랐다. 세상 어딘가에 있을 가족의 상처로 슬퍼하고 자책하고 있을 또 다른 나에게, 괜찮다고 그건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 따뜻한 진심을 전하고 싶어졌다.

도무지 희망을 찾을 수 없다며 그만 포기하려는 또 다른 나에게 희망이 없는 삶은 없다고 힘찬 응원을 전하고 싶어졌다. 모성애가 우선 삶의 의지를 발현케 했고, 간호사로서 다른 사람들의 이 같은 슬픔과 고통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삶을 탈출하기 위한 격려와 용기를 주고 싶다는 마음이 글을 쓰게 한 것이다.



이같이 저자의 슬픔과 고통을 딛고 일어선 사부곡은 같은 슬픔에 잠긴 유가족들에겐 희망가가 되고 격려 위로하는 안정제 역할을 할 것이다. 저자의 집필 취지도 이와 같은 것이라 독자는 믿는다. 저자의 간절한 삶의 의지와 극복해낸 용기에 먼저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에게도 저자의 의지가 전달돼 세상살이에 큰 위안과 응원의 힘찬 목소리가 전달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 같은 위로와 응원은 전 세계가 겪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을 딛고 일어서는 지구촌 전체에 퍼져 우리가 함께 일상을 되찾는 데 적지 않은 힘이 될 것이다. 그리고 방역과 치료에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동료 간호사와 의료진, 전 국민에게도 힘찬 메이라가 되어 울려 퍼질 것으로 기대한다. 간절한 사람의 노력은 끝내 이루어지니까.

"이 책에 쓰인 많은 사연과 힘겨움, 그리고 토닥임과 격려는 나 자신을 향한 말이기도 하지만 지금 나와 같은 힘겨움을 겪고 있을 당신을 위한 작은 위로이기도 하다. 나의 이야기가 당신에게 작은 숨구멍이 되어주길 간절히 바라면서, 우리 같이 가보자고 조심스레 손 내밀어 본다."

<-서문 중에서>



저자 : 곽경희


갑작스러운 남편의 자살로 하루아침에 자살자 유가족이 되었다. 슬픔과 고통에 빠져 있기에는 책임져야 할 네 아이가 있었다. 이 끔찍한 현실 속에서 도와줄 이가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깊은 우울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럼에도 살아야 하기에 ‘내가 나를 도와야겠다고’ 마음먹고, 상담 치료를 시작했다. 내면 깊은 곳에 응어리져 있던 자신의 마음을 하나둘씩 꺼내 놓기 시작하면서 고통의 무게도 조금씩 줄어갔다.

그렇게 죄책감, 분노, 서러움… 상실의 고통을 넘어 애도의 마음에 이르기까지 더디지만 한 걸음 한 걸음 회복의 길을 걸었다. 포기하고 싶던 순간에도 막연한 빛을 좇으며, 결국 어둠에서 벗어나게 된 자신의 극복 경험을 통해 소중한 사람의 죽음, 상실로 고통에 빠진 이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아픔을 딛고, 헤쳐가는 길을 함께해주기 위해, “이제 행복해져도 된다”는 응원의 메시지를 전해주고자 『남편이 자살했다』를 썼다. 대학교에서 간호학을, 대학원에서 상담심리를 전공했으며, 대학상담실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상담을 하기도, 보건소, 재활요양병원 중환자실 병동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이후 경북교육청 교육 철학 분야 강사에 선정되었으며, ALP ‘삶의 질 향상센터’에서 강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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