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정원
닷 허치슨 지음, 김옥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범죄 추리소설은 여름에 읽기 좋다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독서에 한 번 빠져들면 스토리가 전개됨에 따라 긴장이 고조되고, 분위기 표현 장면이나 범죄 장면이 나올 때는 섬찟한 기분에 온몸이 '얼어붙기' 때문이리라. 독서에 몰입한 추리소설 독자들은 여름 삼복더위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책에 빠져든다. 추리소설 작가들은 대체로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복선을 심어두고 분위기 묘사에 심혈을 기울이기도 한다.

독자들의 눈을 끌어들이기 위한 최고의 장치이다. 이 장면을 무심코 놓친 독자들은 한참 읽어가다 앞에서 못본 것을 인지하고 앞 페이지로 다시 돌아가기도 한다. 범인을 잡기 위해서다. 범죄 사건은 추리력이 있어야 범인을 특정해 잡을 수 있다는 것은 형사가 아니라도 다 아는 사실이다. 이 추리력을 키우기 위해서 독자들은 끔찍하고 도저히 이해할 수 있는 범죄 현장에서도 여간해선 눈을 찌푸리지 않는다. 목적인 범인을 밝혀내고 어떻게 잡아야 할지를 추리하기 때문이다. 이 추리력은 소설에 등장하는 형사나 수사관은 물론, 심지어는 작가보다 더 놀라운 추리력이 동원될 때도 있다.

이쯤 되면 이젠 일상적인 것이나 보통 일어나는 사건은 눈 하나 깜짝이지 않는 독자로 변신해간다. 그야말로 '형사도 잡는 독자'가 돼 가는 것이다.



최근 평범한 일상이 무엇보다도 소중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다. 이럴 땐 무료함이나 더 큰 공포나 불안이 존재하는 범죄소설이 읽기 좋을 때다. 여름에 인기가 많은 추리소설이 겨울 문턱에 선 지금도 큰 인기가 있는 것 같다. 서점의 베스트셀러에 추리소설이 자주 오르는 것을 봐서. 추리소설 인기에 한몫을 하는 미국 추리소설이 최근 발간돼 인기다. 바로 이 책 『나비 정원』이다. 이 소설은 단순 범죄소설이 아니다.

『양들의 침묵』으로 대표되는 사이코패스 범죄소설이다. 사이코패스는 범죄의 잔학성이 일반 범죄와는 다르다. 심리적으로 불안한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끌기에 충분한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양들의 침묵』과 『키스 더 걸』로 대표되는 사이코패스 소설에 『나비 정원』이 한 발을 얹었다고 출판계나 독서계의 평가인 것 같다. 인기에 힘입어 앞의 두 소설처럼 이 책도 영화화 예정이라고 한다. 언제 어디서 할지는 아직 미정이지만. 사실 이 책은 올해 집필된 책은 아니다. 지난 2016년 미국에서 이미 발간돼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며 전 세계로 200만부 이상이 팔렸다고 출판사측은 말한다. 영화화도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나라에선 사이코패스가 큰 인기가 없었지만 이번엔 좀 다를 거란 출판사측의 주장도 일리가 있을 것 같다.



이 소설의 제목은 아름답지만 사이코패스 소설답게 기분이 나쁠 정도의 잔인함이 깃들어 있다. 익숙지 못한 독자들은 책장을 덮을 수도 있다.

‘아름다운 지옥'으로 묘사될 수 있는 '나비 정원'에서 살아남은 소녀와 FBI와의 인터뷰라는 점에서 출판사측의 카피도 좋았다는 평을 받을 것이라고 독자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이코패스인 어떤 이상한 자가 소녀들을 납치해서 꽃처럼 사육하다가 아름다움이 사라지면 살해했다는 끔찍한 이야기이다. 추리소설 독자라면 호기심이 더 강해질 것이다.



예상에 크게 빗나가지 않게 사건은 전개되지만 소설의 도입부일 뿐이다. 사이코패스 범인은 예상보다 훨씬 잔인했다. 상당한 재력을 지닌 범인은 몇 명의 여성이 아니라 20여 명의 여성들을 납치해서 비밀의 정원에서 사육한다. 그것도 16~20세의 소녀들만. 나비에 집착하는 그는 납치한 소녀들의 등에 갖가지 나비들을 직접 문신을 하고 등이 파인 원피스만 입힌 채 감상하는, 말 그대로 정신이상자다. 소녀들은 21세가 되는 해에는 어김없이 목숨을 잃었으며, 그는 소녀들을 박제로 만들어 정원의 실내에 전시하는 것이 취미다. 끔찍하고 일반인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범죄 행각은 혼자가 아니라 부자가 함께 저지른다는 점에서 한 번 더 경악스럽게 한다. 듣기에도 거북한 내용들이 펼쳐지고 있지만 책장을 덮지 않은 것은 독자가 추리소설을 좋아해서일까. 아니면 범인을 잡고 싶다는 수사관 입장에서일까. 아무튼 저자는 독자들의 관심이 흩어지지 않도록 하는 작가의 글솜씨 때문일까.



독자는 개인적으로 몰입할 수 있을 만큼 책의 구성이 좋다고 본다. 이 책은 FBI에 의해 구조된 소녀가 요원들과 인터뷰를 하는 형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요원과 소녀의 인터뷰가 잠시 펼쳐지다가 소녀의 독백 형식이 이어진다. 즉 범죄 현장과 체포 직전의 상황을 왔다갔다 한다.

44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 3단원으로 나눠지지지만 각 챕터의 제목도 없다. 철저한 신비와 비밀의 상징인 듯하다. 그래도 지루함이 없고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것은 작가의 구성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독자가 지루함을 느낄 사이도 없이 인터뷰와 화상 내용이 반복된다. 짧으면 1페이지에서 길어도 10페이지를 넘지 않으면서 넘나든다. 독자가 잠시도 한눈을 팔지 못하도록 하는 최고의 장치인 셈이다. 긴장감의 연속이다.



등장인물들은 당연히 안타까운 처지로 설정해 독자들의 동정과 공감을 이끌어낸다. 이것도 독자들의 눈을 잡아두는 데 작가의 의도적 장치로 읽힌다.

불우한 삶을 살았던 주인공인 소녀는 범인이 붙여준 마야라는 애칭과 이 나라라는 가명만 밝혀졌을 뿐, 본명은 없다. 이것 역시 독자들로부터 신비감을 자아내는 역할을 한다. 물론 동정심도 끌어낸다. 납치되었다 희생 당한 소녀들이 모두 마찬가지다. FBI 수사관인 에디슨도 개인적인 트라우마 때문에, 수사 책임자인 빅터는 자신의 딸들을 생각하면서 소녀의 절망에 공감한다. 독자로서는 당연히 공감과 동정을 아낄 필요가 없다. 사이코패스 범죄 부자를 보면 간호사이자 요리사인 로레인이 범인의 수족이 된 심리마저 이해가 되기도 한다. 범행이 잔혹할수록 범죄 주변인들은 오히려 동정이나 공감을 받는 것 같다.

범인들이 그렇게 되기까지의 심리는 쉽게 이해되지 않지만, 범죄에 가담할 수밖에 없는 범인들의 대해선 일말의 동정심이 든다. 그것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사이코패스의 잔혹한 범죄를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작가의 능력과 긴장감 조성은 성공했지만 남은 과제는 하나 더 있다. 이 분위기의 긴장감을 어디까지 얼마만큼의 밀도로 끌고 갈 것인지. 긴장이 지나치게 올라가면 끝날 때 독자들은 책장을 덮으면서 잊어버릴 수도 있다. 즉 반전과 파국의 장면을 어떻게 설정할지의 부분이다. 자가는 다시 한 번 반전의 복선을 깐다.

20여 명의 소녀들이 어떻게 탈출했으며, 몇몇이 희생되고 이나라가 양손을 다친 이유가 무엇일까가 의문이 들었다면 독자는 굉장히 꼼꼼하고 치밀한 작가일 수 있다. 역시 해답은 마지막까지 읽어야 풀린다. 추리소설을 많이 읽은 독자는 추리력을 동원해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독자는 추리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아서인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그래서 더 재밌었는지 모르겠다. 이해력도 추리력도 없는 독자만의 변명이겠지만.

잘 읽던 독자들도 조금은 헷갈리 만한 장면이 나온다. 범인과 장남 부자의 범행에 대해 차남은 어느 정도 짐작하면서 경찰 신고 등 소녀들을 구출할 방법을 생각하기를 주저한다. 자신은 구출을 위해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지만, 범행에 가담하지 않았으니 중립이라고 주장한다. 즉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점이다. 피해자 이나라는 반박한다. 범죄를 알고도 행동하지 않았다는 것은 공범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범인이면 체포해 처벌해야 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독자들에게 판단을 맡기는 것 같다. 아마 소설의 주제에 엇나가는 부분을 생략한 것이리라 생각하지만.



오랜만에 스릴감 넘치는 소설을 읽었다. 개운치 않은 뒷맛은 있지만 몰입도 높고 긴장감의 연속이어서 눈을 뗄 수 없었다는 점이 좋았다. 작가의 글솜씨가 좋았다고 평가하고 싶지만 독자에게는 문학 작품의 수준이 높고 낮음을 할 만한 이해도 없고, 지식도 없다. 그저 독자로서 재밌고 좋았다. 다른 것 생각 않고 몰입할 수 있어 좋았고, 범인을 잡을 수 있어 좋았고, 작가의 치밀한 구성력도 좋다고 느꼈다. 추리소설이 갖춰야 할 많은 점이 드러나 있고,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긴장감을 높이고 줄이는 능력도 대단해 보여 좋았다.

마치 축구팬이 최우수 팀간의 멋진 경기를 한 게임 관전하고 난 기분이 이럴 것이다. 스트레스 해소에도 좋고, 독서의 즐거움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저자 : 닷 허치슨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기초한 청소년 소설 『상처 입은 이름(A WOUNDED NAME)』과 본 소설인 『나비 정원』을 발표한 작가다. 보이스카우트 캠프, 공예품점, 서점, 역사 전시관에서 (인간 체스 말로) 일한 경험이 많아, 지금도 청소년의 내면을 꾸준히 탐구하는 걸 낙으로 삼는 걸 자랑스러워한다. 되풀이해서 볼 수 있고 또 되풀이해서 봐야 하는 영화, 천둥이 몰아치는 폭풍우, 신화, 역사를 좋아한다. 이 책 『나비 정원』은 아마존 스릴러, 서스펜스 소설 부문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며, 종이책과 이북으로 미국 내 200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고, 영화 판권도 계약되어 영화화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2016년 굿리즈 초이스 어워드 베스트 호러 소설 부문 후보에 오르며 작가로서의 기반도 확고히 했다. 전 세계 22개국에 판권이 판매되는 등 『나비 정원』의 인기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이 책의 후속작으로 수집가 시리즈인 『5월의 장미(THE ROSES OF MAY)』와 『여름 아이들(THE SUMMER CHILDREN)』을 연달아 출간하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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