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명화 - 그림 속 은밀하게 감춰진 인간의 또 다른 본성을 읽다
나카노 교코 지음, 최지영 옮김 / 북라이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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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유홍준 문화평론가가 펴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유명해질 무렵 처음 들은 말이다. 그가 창조해낸 말인지, 어디서 인용했는지는 모르지만 독자에게는 아무래도 상관 없다. 무척 의미 있는 말이고, 그만큼 멋진 말이라고 생각해 머릿속에 저장됐다.

이후 위대한 예술작품을 대할 때마다 생각나는 말이다. 독자처럼 일반 사람들이 예술에 관심이 있다고, 혹은 좋아한다고 작품 하나하나에 담긴 뜻을 알기는 어렵다. 그래서 전문가의 해설을 들으면 그나마 작품의 의미를 더 깊이 새길 수 있다. 예술 작품 감상법이란 것도 책을 통해 잘 나오기는 하지만 모든 예술 작품 감상에는 미치지 못한 것 같다. 예술 작품을 많이 듣고 보고 배운 사람은 자신만의 감상법이 따로 있겠지만 일반 사람들은 전문가들의 해설에 의존해야 한다. 짧은 시간에 더 많은 것을 읽고 보고 듣고 배우기 위해서다. 독자도 그림 전시회에 수없이 갔다. 유명한 그림이라서 간 적도 있고, 누군가에 의해 마지못해 간 적도 많다. 클림트와 샤갈 전시회에도 갔다. 모두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였다. 두 화가의 경우만 얘기한 것은 두 전시회가 가장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슴속 깊이 남았다. 클림트전은 그림의 크기에 놀랐고, 샤갈 전은 전시 그림 수에 놀랐다.

작품의 질이나 의미 등은 보러갈 당시로는 마음에 두지 않아 기억이 어렴풋하다. 다만 놀라울 정도로 화려한 그림이나 전시 그림 수가 많은 것이 의외였기 때문에 깊은 인상으로 남았다는 점은 고백한다. 최소한 역사적 의미라도 미리 알고 갔으면 더 많은 감동이 있었으리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이 책의 저자 나카노 교코는 예술, 특히 미술이라고 하면 어렵고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이유는 미술사나 회화 양식 등 딱딱한 지식을 토대로 암기하는 방식으로만 그림을 봐 왔기 때문이란다. 경직된 그림 감상법에서 벗어나 미술과 친해지고 싶다면 어떻게 작품을 대해야 할까? 저자는 이 책에서 그 질문에 대한 독특하고 재미있는 답을 제시한다.

‘그림은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라는 유행을 가져온 나카노 교코는 한발 더 나아가 ‘상상하기’ 기법으로 명화와의 교감을 극대화해 그림을 더욱 풍성하게 느끼고 즐기도록 한다. 저자는 도입부마다 작품이나 화가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그림에서 놓치기 쉬운 일부분만을 크게 확대해 독자에게 보여 주고 관찰하게 한다. 그러고는 이 부분만으로 그림 전체까지 상상해 보도록 유도한다. 선입견 없이 명화를 감상하도록 하는 이 방법은 독자에게 스스로 ‘이게 뭐지?’, ‘누가 그린 그림일까?’, ‘이게 무슨 그림이더라?’ 하고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 보는 즐거움과 함께 명화를 입체적으로 감상하고 해석해 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저자는 이 책을 사랑, 지식, 생존, 재물, 권력에 사로잡힌 인간의 민낯을 거침없이 파헤친다. '그림 읽어주는 여자' 나카노 교코가 절묘하게 찾아낸 명화 속 욕망 가득한 순간들. 들라크루아의 <격노한 메데이아> 속 사랑의 욕망은 어떻게 증오가 되었는가? 라투르의 <퐁파두르 후작> 속 지식의 욕망은 어떻게 권력까지 장악했는가? 게랭의 <모르페우스와 이리스> 속 생존의 욕망은 어떻게 꿈의 신 모르페우스를 잠들게 했는가?

클림트의 <베토벤 프리즈 적대적인 세력> 속 재물의 욕망은 어떤 모습으로 의인화되었는가? 홀바인의 <헨리 8세> 속 권력의 욕망은 왕을 얼마나 끔찍하게 타락시켰는가? 등에 대한 세밀한 설명을 이 책에 담았다.

이 설명은 바로 이 책을 펴낸 취지이기도 하다. 독자로서는 그림 속에 담긴 뜻을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그림 감상법'을 하나 더 안 셈이다.




이 책은 독자 개인 입장에서 보면 '명화는 보는 것이 아니라 명화는 해석한 것이다'는 저자의 주장을 확인케 해준다.

'퀜틴마치의 환전상과 그의 아내'라는 명화의 해석은 등 뒤 선반에는 에덴동산의 원죄를 상기시키는 사과, 죽음을 암시하는 불꺼진 초, 성모의 순결을 나타내는 로사리오와 투명한 물병 등 상반되는 상징이 나란히 놓여있다. 그렇다면 역시 이 그림은 물욕에 대한 간과일까? 그렇지 않으면 돈을 다루는 일을 생업으로 하는 인간의 성실함에 대한 상찬일까? 저자의 설명이 없다는 일반 그림 감상자인 독자로서는 생각지도 못할 부분이다.



이 책은 명화의 해석에 앞서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일리야 레핀의 볼가강의 배 끄느 인부들' 작품은 짐을 잔뜩 실은 배는 인부들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처럼 무겁기 그지없다. 그들은 벨트에 온몸의 무게를 실은 채 앞으로 고꾸라질 듯이 몸을 기울이고 한 걸음, 한 걸음 땅을 다지듯 밟아가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림 속 땅 밑바닥에서부터 유명한 러시아 민요 볼가강의 뱃노래가 울려 퍼지는 것 같다. 멋진 감상법이다. 실제 예술가들, 특히 화가들이 그림에 그런 뜻을 담았는지는 독자로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설명을 들으면서 가만히 집중하면 실제로 들리는 듯하다. 느껴진다. "아하, 그림은 이렇게 감상하는 거구나" 하는 확신이 선다.





더 나아가 실제로 배를 끌때는 소리 내어 노래를 부르며 리듬을 타고 박자에 맞춰 축 늘어진 양팔과 몸을 좌우로 흔들며 전원이 한 몸이 된 듯 움직이지 않으면 잘 나아갈 수 없다.

어쩌면 러시아의 비참했던 현실 뿐만 아니라 인부가 살아온 인생 그리고 앞으로의 펼쳐질 삶이 뼈에 사무치는 이유의 표현인 것이다. 러시아의 혁명이 눈에 그려진다. 명화를 해석하고 인간의 본성을 읽는 『욕망의 명화』다. 이렇게 독자의 그림 감상법만이 아니라 그림 뒤에 감춰진 시대상이나, 심지어 화가의 의도에 따른 표현의 방법, 그리고 인간의 본성까지 다다른다는 사실은 충격적이기도 하다.

그만큼 독자로서는 소중한 책이 된다. 다 읽었지만 언제든지 다시 읽을 요량으로 가까운 책꽂이에 둔다.

저자는 러시아를 대표하는 화가 일리야 레핀의 〈볼가강의 배 끄는 인부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화가가 포착해 낸 순간을 생생하게 상상해 낸다. 이 그림은 어떠한 사회적 맥락에서 탄생했는가? 힘겹게 배를 끌고 있는 인부들은 무엇을 탐하고 있는가? 혹은 무엇에 분노하고 있는가? 그가 그림을 읽어 내려간 방식을 따라가다 보면 왠지 모르게 우리와 닮아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 섬뜩하고 무섭기까지 하다. 그림 앞에 선 사람은 러시아의 비참한 현실 한복판에 내동댕이쳐질 뿐 아니라, 인부 한 명 한 명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 대해 곱씹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우리와 같은 인간임이 뼈에 사무치지 않을 수 없다.

<- 본문 중에서>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유명한 세 자매는 고르곤이다. 머리카락은 쉭쉭 소리 내는 뱀인데 입속에는 어금니가 엿보이고 그들을 본 사람을 순식간에 돌로 변하게 한다. (……) 특히 고르곤 세 자매의 불쾌한 표정과 적나라한 육체에 대한 묘사, 그림 속에 그려진 성기와 정자, 난자 등이 혐오감을 불러일으켜 외설스럽고 추악하다고 외면받았다. 그러나 잡다하게 뒤섞인 새 건물들이 비난과 함께 수용되었던 일처럼 클림트의 신선한 표현도 비판하는 사람만큼이나 열렬히 지지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클림트는 드디어 세기말 빈의 대표 화가가 되었다.

<p. 151~157, 「구스타프 클림트의 〈베토벤 프리즈 적대적인 세력〉」 중에서>


이 하얀 아몬드처럼 생긴 것은 무엇일까. 보석과 보석 사이를 하얀 천으로 꿰매 붙인 것일까? 그렇지 않다. 상의에 같은 간격으로 옷감을 터서(슬래시 기법) 속에 있는 리넨 안감을 끄집어내 부풀린 것이다. (……) 신흥 튜더 왕조의 2대 왕인 헨리 8세 역시 일종의 ‘왕의 전형’을 몸소 실현하는 존재였는데, 그가 발하는 독특한 이미지는 강렬하면서도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 두꺼운 가슴팍, 190센티미터가 넘는 장신, 육식 동물처럼 아래턱이 커다랗게 부푼 얼굴, 파충류가 떠오르는 냉혹한 눈빛,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어마어마한 에너지, 그것들을 몇 배로 증폭하는 듯이 안감으로 팽팽하게 부풀린 화려한 의상. 이 왕의 앞에 선 외국 대사는 그가 금방이라도 주먹을 휘두르지 않을까 벌벌 떨었다고 하는데 그 기분이 이해될 정도다.

<p. 175~182, 「한스 홀바인(子)의 〈헨리 8세〉」 중에서>



저자의 전작 『신 무서운 그림』을 본 적이 없는 독자로서는 이 책 『욕망의 명화』 저자 나카노 교코를 처음 만났다. 저자는 ‘무서운 그림’을 주제로 한 NHK 교육방송 교양 프로그램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책에 따르면 나카노 교코는 2008년부터 지금까지 독특한 명화 감상법과 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고유한 관점으로 수많은 팬을 사로잡아 왔다. 명화에 얽힌 역사적 사실, 화가의 개인사, 그림 속 인물과 얽힌 이야기 등 역사, 문화, 예술에 대한 저자의 폭넓은 배경지식은 미술사나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비전문인과 교양 독자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어깨에 힘을 빼고 다채로운 각도로 작품을 읽고 감상하게 하는 그의 이야기가 신선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특히 ‘무서운 그림’ 시리즈는 특유의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으로 예술서 분야의 새로운 장을 열었고 국내에서도 8만부 이상 판매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욕망의 명화』는 그가 월간지 〈문예춘추〉(文藝春秋)에 연재한 〈나카노 교코, 명화가 이야기하는 서양사〉 중에서 ‘욕망’이란 주제로 스물여섯 꼭지를 뽑아 엮은 책이다. 연재 당시 잡지에는 달콤한 후식을 맛보는 기분으로 글을 읽기를 바라며 적은 분량을 실었는데, 한 권의 책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구성과 내용을 대폭 보강했다. 어떻게 하면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줄까 고민한 끝에 그림 일부를 확대해 도입부에 싣고 그에 관한 글을 쓰는 지금의 양식을 완성했으며, 원고 분량도 원래보다 서너 배나 더 늘렸다.

사랑의 욕망, 지식의 욕망, 생존의 욕망, 재물의 욕망 그리고 권력의 욕망까지. 이 책을 통해 스물여섯 점에 달하는 명화 속에 감춰진 이야기를 꼼꼼하게 들여다보는 과정은 단순히 그림을 감상하는 데서 더 나아가 욕망을 향한 인간 태초의 모습과 그간의 업보까지 자연스레 살피는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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