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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딧세이 1
한율 지음 / 문학세계사 / 2020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책 『오딧세이』를 처음 봤을 땐 그리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 우선 작가에 대해 잘 몰랐고, 책 표지도 요즘 각광 받는 SF 소설쯤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작품 이름을 『오딧세이』로 정한 것도 신화적 소재를 끌어오기 위한 것쯤으로 여겼다. <오디세이>처럼 장중하면서도 신비로움에 가득한 일이라는 것은 현실엔 흔치 않은 법이다. 이것은 문학이나 예술의 입장에서 보면 이보다 매력적인 소재가 없을 것이다.
진실로 독자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이야기란, 그 자체로 내재된 복잡다단한 모순과 다층적인 구조들 덕분에 겹겹이 둘러쳐진 황금의 베일들 속에 내밀히 숨어서 감동과 신비로움을 모두 갖춘 소재는 신화에 많기 때문이다.
신(神)의 이야기란 언제나 인간에게 옷깃을 여미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버티어 내야 하는, 긴장과 경건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작가 입장에선 유혹적인 소재임이 분명하다.
‘장중함과 신비로움’, ‘심금을 울릴 수 있는 이야기’, ‘다층적인 구조들’, ‘황금의 베일들’, ‘신의 이야기’, ‘긴장과 경건’, 이 단어들이 표현하고 있는 의미들을 모두 견디어내려면 무엇보다도 소설이 풍부해야 한다. 소설의 길이도 길이겠지만, 구조와 형식, 플롯과 내용의 다양함과 방대함이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 즉 소설이 ‘거대한 고래 한 마리’처럼 풍부해야 한다는 뜻이다.
원래 이 제목을 처음 사용한 <오디세이>는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로 저자는 호메로스로 전해진다. 오디세우스의 10년간에 걸친 귀향 모험담을 그린 작품이다. <오디세이(Odyssey)>는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Homeros)가 기원전 약 700년경에 쓴 작품으로, <일리아드(Iliad)>와 함께 그리스ㆍ트로이 간의 전쟁을 다루고 있으며 당시 그리스 영웅들의 귀국담을 노래하여 그들의 세계관과 인생관을 표현하고 있는 장편 서사시(敍事詩)이다. 그 이름이 시사하듯, 이 시는 지혜로 이름이 높은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Odysseus)-로마식으로는 '율리시즈(Ulysses)'-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오디세이아(Οδ?σσεια)는 '오디세우스의 노래'라는 뜻이며 오디세우스는 '증오받는 자'라는 뜻을 가진다. <일리아드>의 후편에 해당하는 <오디세이>는 주인공 오디세우스가 귀향하기까지 겪은 온갖 모험담을 그리고 있다.
<일리아드>와 마찬가지로 그리스의 문자 24개를 딴 24편으로 나뉘어 있으며 1만 2,110행으로 이루어져 있다. 6각운(Hexametre)으로 작곡되었다.
시 속에 묘사된 정황들을 미루어 볼 때 <일리아드>보다 뒤늦게 나온 작품으로 추측된다. 주제는 그리스 신화에서 잘 알려진 트로이전쟁의 영웅인 오디세우스의 10년간에 걸친 모험과 귀향을 다룬 것이다. 때문에 서양 문학사에서는 모험담의 원형으로 여겨지고 있다.
작가 한율은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아마존과 나일강이 한 바다로 흐를 수 있을까?" 그 바다가 바로 한율의 『오딧세이』이다. 『오딧세이』는 200자 원고지로 9,300매의 분량이라고 한다. 작가 한율의 말에 따르면 『전쟁과 평화』에서 「에필로그 제2편」을 빼면 길이가 똑같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하고는 길이가 똑같다고 한다. 아무튼 우선 그 작품의 양이 놀랍다. 14년을 썼다고 한다. 장편소설이다. 대하 장편소설이다. 총 18부로 구성된 『오딧세이』는 총 7권으로, 이번에 4권까지 출간되었고, 나머지 3권도 출간 예정이다.
출판사에 따르면 『오딧세이』는 역사, 종교, 예술, 철학, 과학, 미학, 군사학, 건축, 테마파크, 영화방송미술 등 다양한 분야를 가로지르는 지식과 삶의 향연인 동시에, 신과 인간의 관계, 환상과 실재의 교차, 이 모든 것들을 장중함과 신비로움으로 가득 채워 그려낸 거대한 이야기이다.
지금까지 이처럼 광범위하고 전방위적인 소설은 없었다. 각계 다양한 분야들에 대한 깊은 탐구, 14년의 집필 기간에서 보이는 끈질김으로 작가 한율은 새롭고 놀라운 세계를 탄생시켰다. 출판사 측의 주장을 책을 읽어나가며 확인할 일이다.
이 소설은 수없이 겹쳐진 황금 베일들의 구조적 넘실거림으로 연이어 이어진다. 한율의 『오딧세이』 읽기는 심원한 어두움의 바다를 처녀항해하는 탐험선의 새로운 항로 그리기와도 같다. 앞이 당장은 보이지 않지만,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다 보면 비밀스러운 베일이 한 겹 한 겹 벗겨지고, 독자는 경이롭고 신비로운 세계와 맞닥뜨린다.
『오딧세이』는 「서문」에 이은 「1부 전주곡」에서 예수의 12제자 중 한 사람 도마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사도 도마에 대해, ‘의심 많은 도마’라는 그동안의 단편적 해석에서 벗어나, 편집증 강박증이란 어찌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 속에 믿음을 추구했던 한 인간의 모습으로 재해석하는 작가의 노력은, 인간 존재에 대한 믿음을 편집적 강박적으로 해체시켰던 20세기에 대한 비유적 성찰로서, 새로운 밀레니엄을 준비하려는 사전 정지작업, 바로 ‘전주곡’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마침내 「2부 도화선」부터, 탐험선 ‘험난한 모험의 긴 여정’, 바로 소설 제목 그대로인 우리의 『오딧세이』호가 근해(近海)를 벗어나 원양 항해로 막 접어들게 되었음을 독자들은 깨닫게 된다.
작가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이 『오딧세이』의 집필에 매달렸을까? 대단한 미학적 목적의식이 내재되어서일까? 아니면, 개인적 인생체험 때문일까? 그건 본인이 아닌 이상 제 3자 입장에선 완전히는 알 수 없는 법이다. 그러나 소설 첫머리 「서문」의 문장 몇 가지로도 작가의 속셈을 어슴푸레하니 유추해 볼 수 있다.
『오딧세이』 작가 한율은 무엇보다도 풍부함을 표현하고 싶어했다. 「서문」을 읽다보면, 작가가 로망스 서사(Romance Epic)의 풍부한 장식성과 거침없는 자유로움에 끌려 있는 것과, ‘독자 제위께서는······.’하고 소설가의 말투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고전소설의 어투를 은근히 사랑한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작가는 ‘하드보일드(Hard-Boiled) 너무 좋아하면 먹기에 딱딱해질 거야.’라고 되뇌는 것처럼, 대단히 장식적인 문어체를 간간이 의도적으로 구사하며, 묘사적 생기발랄함으로 작가적 주관과 지면(紙面) 위 객관 사이를 넘나들며 문장을 흔들어대기도 한다. 『오딧세이』를 수사학적 입장에서, 때로는 바다 그 자체가 되어 버린 듯한 ‘고래’같은 풍부함으로 가득 채우고자하는 작가의 예술의지가 선명하다. 바로 ‘고래’와 마찬가지인 소설되기이다. 대양을 헤엄치고 있는 ‘하얀 고래’처럼, 완전히는 알아챌 수 없는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그 무엇으로 『오딧세이』를 만들고자 한 작가의 의도가 문체에서도 나타난다.
‘표류하게 됨’이 싫었던 작가 한율은 소설 속 모험의 방법을 ‘상상’으로 하기에 이른다. ‘상상’이란 것의 의미는, 텅 빈 허공을 굳건하게 걸어갈 수 있는 실제적인 발걸음을 의미하므로……. ‘상상계 여행’이란 새로운 방법론을 구상했는데, 『상상계의 인류학적 구조들』이란 책의 제목에서 영감 어린 단어를 빌려와 만들어 낸 것이다. 작가는 쥘베르 뒤랑(Gilbert Durand)에게 고마움을 표시한다.
『오딧세이』에 나오는 모험의 방법은 절대로 시간 여행이 아니다. 다중우주니 평행우주니 하는 약방의 감초마냥 SF소설에 나오는 합리화를 쓰지도 않았다. 새롭다. 인간 의식의 저편 너머로, 거울 반영의 대칭적 심리적 세계 속으로, ‘상상계’를 통하여, 뿌리가 서로 얽혀 있듯이 상호 만나고 있는 ‘세계’에서의 모험들이다.
그 끝을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나아가야 하는 여행, 신비한 모험, 그리고 이 비천하고 비열할 수 있는 세상에서 벗어나, 정중함과 장엄함에 참예하고픈 욕망이 강하면 강할수록, 이 『오딧세이』가 매력적으로 읽혀질 것이라 작가 한율은 확신하며 글을 써 나간다.
1권의 내용은 대항해의 시작인 만큼 전주곡과 사건의 전개 부분이다. 신문사 기자인 나는 향단고택 발굴과정에서 나온 고대 문서에 깊은 호기심을 가지게 된다. 문서는 종적을 감추었고, 그 전말을 추적하며 사건의 베일들을 차례로 벗겨낸다. 향단고택의 비밀을 깨닫자 친구 한수혁이 겪은 모든 일들이 사실이었음을 확신한다. 결국 나는 숙명같이 이끌린 이 이야기에 매달리며, 고대 인도와 향단을 잇는 연결고리인 「도마전언서」와 빛나는 ‘홍옥석(루비)’, 그리고 방송국에서 지리한 삶을 살던 수혁에게 나타난 ‘구원의 손길’을 글로써 풀어나간다.
이천 년 전 인도아대륙의 한 영역, 개혁과 투쟁, 그 결과인 전쟁의 패배. 상인 압바네스의 배를 타고 왕국을 탈출한 하바수네얀 공주는 한반도의 한 영역에 발길을 내딛는다. 그리고 장대한 시공간의 연결을 통해, 드라마 C스튜디오에서 시작되는 이천 년 후 주인공 한수혁의 이야기. ‘새로운 테마파크’를 만들자며 헨리 유가 내민 손을 잡은 수혁은 운명 지워진 모험 속으로 휩쓸려 들어간다. 이야기가 진전될수록 복잡하게 읽히면서 단숨에 읽어내기엔 쉽지 않은 느낌이다. 그러나 신비로움과 전개될 사건의 중심으로 들어가고 싶은 독자의 마음을 단단히 그러나 서서히 끌어오는 데 성공한다.
저자 : 한율
소설가. 서울 상도동에서 태어났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예술학과에서 미학과 예술이론을 전공했다. 비평가로 글 쓰며 살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방송국 공채를 준비하던 친구의 권유로 같이 시험을 쳤고, 미안하게도 친구는 떨어지고 본인은 붙게 되어 MBC미술센터(현MBC아트)에 입사한다. 방송미술국 무대디자이너(미술감독)로 재직하며 드라마와 쇼 세트를 디자인했다. 지금도 마음에 남는 드라마세트디자인으로 「수줍은 연인」의 레트로 감성 2층집, 「달콤한 스파이」의 펜트하우스, 「닥터 깽」의 오래된 병원, 그리고 퇴사하기 전 마지막 작품인 「얼마나 좋길래」의 달동네세트 등이 있다. MBC 재직 중 딴 궁리도 해 볼 겸, 영화드라마세트와 관련 깊은 테마파크건축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걸 연구하러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에 들어간다. 「테마파크 계획을 위한 영상건축기법의 연구」라는 논문으로 공학석사학위를 받고, 논문의 연구대상지를 모델로 한 「MBC영상테마파크계획안」을 가지고 회사에 복귀한다. 이런 테마파크에 대한 연구들이 『오딧세이』의 주무대인 제주테마파크 ‘피어나기’와 ‘F ZONE’ 만들기의 밑거름이 된다. 저자 한율은 각 권의 표지 일러스트와 타이틀 문자, 그리고 소설 본문 속의 삽화와 도면을 직접 그리고 디자인하였다.
MBC에서 이직할 당시 우연히 읽게 된 『우리 옛 건축에 담긴 표정들』, 그 속의 경주양동마을 ‘향단고택’ 흑백사진들은 저자를 매료시킨다. 그렇게 운명처럼 찾아 간 ‘향단고택’의 모든 장소를 실제로 보는 순간, 온 정신이 경도되며 소설 창작의 첫 영감이 주어진다. 한반도 동남부 지역, 한 고택에서 시작된 섬세하고도 미묘한 실마리로써, 인류보편적인, 인류애에 입각한, 인간의 용기, 위대함을 노래하는, 장중하면서도 신비로운 거대한 이야기를 만들고자 마음먹는다. 써야 된다는 압박감을 가지고, 결국 14년이 넘는 세월을 대하 장편소설 『오딧세이』에 바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