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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자령 전투, 어느 독립군의 일기
정상규 지음 / 아틀리에BOOKS / 2020년 8월
평점 :
품절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이든 교육 받을 나이가 되면 자신이 속한 나라의 역사를 배우기 시작한다. 교과서를 통해 자신이 속한 나라의 정당성과 선조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떻게 나라를 이루고 지켰는지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시켜 주는 주요 요소이기 때문이다. 굴곡진 삶이나 영예로운 삶 모두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는 이유다. 이를 통해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지도 판가름할 수 있다. 특히 나라를 빼앗긴 국민들은 자신의 삶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에 대한 생각의 기회도 준다. 이때 살아 있는 역사 의식은 자신의 삶의 진로를 결정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그러나 교과서에 실려 있는 역사는 현재의 정치 상황에 의해 축소나 확대 왜곡되기도 한다. 이때 역사 의식은 개인의 삶을 변질시키고, 역사의 교훈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댓가를 치를 수도 있다. 역사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지점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일제강점기 아래 우리 독립군의 활동, 특히 교과서에 기록되지 않은 독립군의 활동에 주목했다. 같은 역사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때 새로운 사실을 배우기도 하고 지혜를 얻기도 한다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저자는 지난 3년간 저자가 일본과 중국을 뒤져가며 찾아낸 어느 잊혀진 독립운동가의 기록을 최초로 공개한다. 2020년 올해 초 KBS1 〈독립운동의 숨은 영웅들, 한의사〉 다큐멘터리로 세상에 공개된 어느 독립군의 이야기.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 대전자령 전투에 참전하며 수많은 독립군과 마을 사람들을 치료하고 구해낸 어느 숨겨진 영웅의 이야기를 발굴 공개한다.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의 한 장면, 독립운동의 한 귀퉁이에 있는 독립운동이 재조명되는 순간에 독자는 설레는 기쁨으로 책장을 넘긴다.
2020년 1월 31일 밤 11시 40분. KBS1의 독립운동 숨은 영웅 '한의사' 편이 방영됐다. 심야에 방송된 데다 설 대목을 앞두고 경황이 없을 우리에게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한 안타까움이 있다. 더욱이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 발생으로 어수선한 상황이기도 했다. 저자는 이 방송을 촬영하며, 부족하지만 그동안 찾아낸 한의사들을 알릴 수 있었다.
우리가 어릴 적 배운 근현대사 교과서, 저술서, 수험서는 사실상 '정치사'에 가깝다는 저자는 같은 역사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때 우리는 새로운 사실을 배우기도 하고 지혜를 얻기도 한다는 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가령 경제교역사, 종교사, 한인이민사 등이 그것이다. 한의사 출신 독립운동가는 근현대사를 지역별로, 직업군으로, 연령대별로 분석했던 '인물사' 기준의 연구 중에 우연히 발굴한 독립운동의 조각이었다.
이후 코로나가 세계로 퍼져 세계 각국의 관심사는 모두 코로나로 쏠리고, KBS에서 방송된 발굴한 부분이 시간 제약에 따른 기획물이라 조금은 미흡하다고 판단하고 저자는 책으로 펴내 자세하고 더 많은 내용을 알리기를 원했다.
저자에 따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국가의 본질적 속성 중 하나는 정복전쟁이었다. 고대부터 현재까지 우리나라의 국경선이 수천 번 변경된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전쟁이 있으면 군대가 있고, 군대가 있으면 부상병을 치료하는 군의도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고려 시대는 ‘의공'(醫工)이, 조선 시대는 ‘의원'(醫員)이라 불리는 군의가 있었다. 군의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은 근대식 군제 편제가 이뤄진 1883년 수도 방위 목적으로 ‘친군영’이 조직되면서 부대마다 군의를 두도록 한 것부터 시작됐다. 당시 군의는 국가고시인 과거시험 중 잡과에 합격한 의관들이 임명됐으며, 대부분 한의사였다.
이후 1890년대 들어 한국에도 서양의가 배출되면서 군의 조직에도 한의사뿐 아니라 양의사 출신 군의가 등장했다. 의병 전투와 독립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무렵, 독립군 내 군의는 대부분 한의사가 담당했었다. 독립운동의 성격상 연통제와 교통국의 역할로 한약방, 한약국이 자주 이용됐으며, 산을 넘나들며 약초를 캐러 다니고, 수많은 사람을 치료해주며 대화를 나누던 한의사의 직업적 특상이 주요 정보전달 및 연락책 역할로 독립군을 도울 수 있었음은 놀랍고 감동을 자아내는 발견이었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에서 관련 자료의 부족으로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한의사는 단지 7명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가운데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과 함께 독립군의 3대 대첩으로 꼽히고 있는 대전자령 전투에 직접 참여했던 어느 한의사 출신 군의관에 대한 기억의 조각을 찾아냈고, 그 조각을 완성하기 위해 지난 4년간 국내뿐 아니라, 중국 연길 라자구, 목단강, 장백현과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 공문서사료관, 방위성을 찾아다녔다.
진행 과정은 놀라움의 연속이었고, 결과는 진한 감동을 선사했다. 저자는 "이것(책 발간)이 끝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역사에 기록되지 못했다고 해서 독립운동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는걸, 오늘날 대한민국 후손들이 느끼는 부채의식 속에서 역사는 조금씩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걸, 나아가 수많은 독립투사가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는 못했어도, 지금 대한민국을 살고있는 ‘우리’를 남겼다는 것을 부족하지만 보여줄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고 밝혔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역사에 가려진 모든 선열께 이 책을 바친다는 일념으로 책 발간 답사를 대신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지 75년이 지났지만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고 친일파가 독립군이나 애국지사로 기록되어 있거나, 독립운동을 하였음에도 기록조차 없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우리는 배워 놀랐다. 또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올해가 '청산리 전투' 100주년이라는 것뿐, 청산리 전투에서 죽어간 수많은 이름없는 독립군들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독립운동을 했던 조상들을 찾아내야 한다. 이것이 저자의 신념이다. 특히 독자는 '대전자령 전투'라는 것도 처음 들었다. 이 놀라운 기록을 보는 순간 아직 후손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반성도 한다.
『대전자령 전투, 어느 독립군의 일기』에 따르면 주인공인 신홍균 선생은 한의사로 30세에 가족과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다.
우리나라 독립군 3대 대첩으로 불리는 '대전자령대첩'에서 군의관으로 참여해 대전을 승리로 이끄는데 큰 기여를 했다. 신홍균 선생뿐만 아니라 조카인 신현표 역시 독립군으로 활동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한국전쟁 후 남한에서 한의사 시험에 합격하고 의료재단까지 만들게 된다. 1912년 최운산 장군이 간도 지역에서 자위 부대를 창설한다는 소식을 듣고 가족들을 데리고 만주로 떠났다. 가족 모두가 만주로 떠난다는 소식에 마을 이웃들은 자신의 작은 노리개나 반지, 음식과 찬거리 등을 싸서 주기도 했다. 만주로 왔다고 해서 바로 독립운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최운산 장군과 어렵게 연락이 닿았고 자신이 한의학으로 사람을 치료해 준다고 했다. 몇 년이 지나 군자금을 지원하려고 하는 것도 거절당하기도 했다는 부분에선 독자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신홍균 선생의 일기를 보며 오직 나라의 독립을 걱정하고 독립을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는 점이 낱낱이 적혀 있어 그때 우리 민족의 심정을 헤아리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신흥균 선생은 의술이 독립군에 보탬이 될 수 있지만 그보다 더 많은 도움이 되고 싶어 외국어를 공부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독립운동을 하는 데는 어려움은 계속되었다. 배반자도 생기고 독립군의 사기도 떨어졌지만 그렇다고 나라의 미래를 포기할 수 없었다.
1920년 일본군은 독립군의 국내 진입 작전 기밀을 입수하고 만주 국경지대 주변에 활보하는 독립군들의 활동에 관심을 보였다. 기미 독립만세운동의 영향이었던 듯싶다. 이해 6월 7일 독립군 홍범도 부대와 최진동 부대의 소대가 각각 북간도를 출발해 간도를 거쳐 두만강을 건너 함경북도의 일본군 헌병 국경 초소 지대를 기습 공격 몰살시킨다. 이것이 '봉오동 전투'이고 최근 영화로도 상영됐다. 영화도 잘 만들어져 감동이 컸지만 당시의 활동과 전투의 모습을 담은 이 책을 읽으며 가슴에 뭔가가 치밀어오르는 듯한 느낌도 지울 수 없었다.
이 책에는 당시의 모습이 생생하게 적혀 있고 오직 나라와 국민들을 위해 싸운 독립군들을 발견할 수 있다. 생각보다 훨씬 극한의 상황에서 독립운동을 하신 선열들의 뜻을 되새기며 대한민국의 미래 정신도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