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언티즘 - 지상 최대 경제 사기극
게르트 노엘스 지음, 박홍경 옮김 / 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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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시장경제를 원칙으로 한다. 시장경제는 공급과 수요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자연스러운 경제 원칙이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한 가격 경쟁 체계에 들어간다. 이것이 건전한 자본주의를 지탱시키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경쟁이다.

경쟁은 효율을 만들고, 혁신을 불러온다. 경쟁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면 세상은 정체에 빠진다. 벨기에 경제학자 게르트 노엘스는 이 책 『자이언티즘』을 통해 지금 전 세계 경제가 경쟁 기회를 박탈하는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진단하고 올바른 방향 설정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유럽축구 ‘챔피언스리그 효과’를 통해 이를 설명한다. 유럽 축구리그인 챔피언스리그는 상위에 랭크된 몇몇 클럽에만 막대한 상금을 준다. 승자독식 방식이다. 이게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반박하는 사람들에게 저자는 승자독식 이전 시절과 비교하면 흥미로운 결과가 도출된다는 것을 얘기한다.







과거에는 작은 나라의 작은 리그에서 뛰던 클럽들도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하여 우승컵을 드는 사례가 종종 있었다. 아무리 명문팀이라도 작은 리그 클럽의 돌풍에 희생당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새로운 스타가 탄생하면서 유럽 축구계는 신선한 충격에 빠지며 발 빠르게 진화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즉, 각 축구클럽에게 동등한 기회를 주어야 축구계는 승리를 위해 더 노력하고 축구 발전도 꾀할 수 있다는 논리다. 저자는 챔피언스리그가 승자독식 방식으로 갈아탄 뒤 더 이상 숨은 영웅이 탄생하지 않는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몇 차례 우승을 통해 자금력을 확보한 클럽들은 이제 몸집 불리기에 들어간다.

당장 경기에 출전시키지도 않을 유망 선수를 사재기하여 경쟁 클럽을 좌절시키는 등 독점적 지위를 누리기 시작한다. 가난한 클럽은 두 번 다시 발을 내딛지 못하도록 시장을 완전히 장악한다. 그들은 계속해서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하여 우승 근처에서 놀게 되고, 다시 상금을 벌어들인다.

우승 단골팀이 되면서 전 세계에 수많은 팬들도 확보한다. 티켓도 팔고 유니폼도 팔고 순회공연처럼 친선 경기도 뛰어주며 다시 자금을 긁어모은다.

이게 왜 문제인지 이해하려면 미국 프로야구 MLB나 미국 프로농구 NBA를 보면 된다고 저자는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이들은 꼴찌 팀에 신인드래프트 우선권을 주어 특정 팀이 유망 선수를 독점하는 일을 막고 있다. 이렇게 해서 경쟁이 지속되도록 유도하는 것이 그들의 룰이다. 그러나 게르트 노엘스는 지금 세계 경제가 마치 챔피언스리그처럼 운영된다고 이 책 『자이언티즘』에서 비판한다.





웅장한 정부관사, 거대한 기업 빌딩, 대규모 학교 건물과 병원 건물, 끝이 안 보이는 항만과 항공 허브, 그리고 초대형 도시들. 점점 커져가고 있는 이 모습을 보면서 게르트 노엘스는 ‘비정상적 성장’, 즉 자이언티즘을 떠올렸다. 저자의 눈에 이 모든 거대화는 건전성과 거리가 먼 왜곡 현상이다.

그의 눈에 이런 성장은 실물경제의 성장을 동반하지 않는 금융 잔치다. 그의 눈에 이런 성장은 인간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 성장이다. 그의 눈에 이런 성장은 지구 환경을 생각지 않는 지속불가능한 성장이다. 물론 그는 경제학자답게 자본주의를 반대하지 않는다. 문제는 자본주의 자체가 아니다.

경제 시스템을 독점하고 있는 사람들이 자본주의의 기본적인 규칙마저 어기면서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건전한 자본주의의 경쟁 원칙을 원천적으로 막는 역할을 하는 게 승자독식 방식의 챔피언스리그이고 불건전한 방식의 자본주의 운영방식이라는 주장이다. 그 중심에 있는 대표적인 것으로 유럽축구 챔피언스리그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중앙은행은 금리를 낮추고, 돈을 더 빌려 쓰도록 유도한다. 법인세는 계속 낮아지고, 대기업은 더 싼 이자로 더 많은 돈을 빌려 쓴다. 기업은 몸집이 커지면 설령 위기에 처해도 정부가 국민세금 혹은 새롭게 찍어낸 자금으로 지원해준다는 사실을 잘 알고, 기를 쓰고 몸집을 불린다.

대기업뿐 아니라 병원도, 학교도 마찬가지다. 일단 덩치가 커지면 그 뒤에는 설령 방만 경영으로 위기에 빠져도 정부가 언제든 도와준다는 믿음이 있다. 또한 덩치가 있어야 정부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정부도 큰 기업을 외면하지 못한다. 각국의 정부는 다국적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더 많은 혜택을 안겨준다. 성장률이라는 눈앞의 성과에 급급한 나머지 공정한 경쟁, 건전한 경제 시스템에는 무관심해지고, 더 큰 기업을 만들어 더 큰 성장을 이룩하려고 한다. 지금 세계 주요국들의 성장률은 이런 식으로 달성된다. 실물경제가 나아져서 수치가 좋은 게 아니라 수치를 만들기 위해 억지로 약물을 투입하며 이룩한 기형적 성장이다. 기업들은 과독점 수준의 기업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M&A에 뛰어든다. 역사시대 이래 기업인수합병은 20세기 들어 가장 활발했는데 빈도와 규모 면에서 과거 어느 때에도 볼 수 없었던 수준에 이르렀다. 새로운 경쟁자는 M&A의 희생양이 된다. 아니 그들도 이제는 왜곡된 게임의 룰을 받아들여서 대기업에 팔아버리기 위한 수준까지만 혁신을 시도한다. 대기업이 신흥 경쟁 기업을 인수한 것은 마치 챔피언스리그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클럽이 유망 선수를 사들이기만 하고 시합에는 내보내지 않는 것과 유사하다. 경쟁이 막힌다.

기업과 정부는 인간이 직면한 문제, 예를 들어 번아웃이나 풍요병 따위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지구는 몸살을 앓는다.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없으며, 정부든 기업이든 거인이 되려고만 애를 쓴다.







'자이언티즘'은 거대증이라고 원래 의료 현장에서 신체와 과도한 성장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라고 한다. 자이언티즘은 단지 큰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큰 것을 지칭하는데 '과잉 확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자이언티즘엔 다양한 원인이 있고 그 원인들로 인해 더 많은 곳으로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세계적으로 대기업들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더 커진다는 것이다. 대기업 시가총액이 1조 달러가 넘는 시업들이 많아졌다. 주로 IT 기업의 규모가 비대해졌고 시가총액뿐만 아니라 직원 수, 대차대조표, 매출 면에서도 지나치게 거대하다는 것이다. 이런 자이언티즘에도 불구하고 유럽 기업의 경우 규모가 전보다 축소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유럽 최대의 기업인 식품 그룹과 석유 및 천연가스 회사 등을 합쳐도 미국 최대 기업인 애플에 못 미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유럽의 상위 10대 기업 중에 IT 기업이 없고 석유 기업과 은행이 주를 이룬다는 점이다.





이 같은 자이언티즘은 기업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라는 점에서 더 큰 문제점을 갖고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최근 수십 년 동안 교육, 의료, 행정 등의 분야에서도 자이언티즘은 두드러진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자이언티즘이라고 해서 어려운 용어로 보이지만 쉽게 우리 주변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폐교'되는 학교들이다. 지방의 학교들이 사라지고 폐교 건물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 상황을 종종 볼 수 있다. 매년 입학생들이 줄어들고 작은 학교들은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도심에서는 새로 생기는 학교가 많다. 도심으로 인구 집중 현상으로도 설명할 수 있는데 인구 '집중도' 역시 자이언티즘의 한 징후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의 확대해석이 옳은지 그른지는 독자는 알 수 없지만 논리적으로는 설득력을 갖고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자이언티즘'을 촉진시키는 원인은 무엇일까? 저금리 대출이 가능해진 기업은 규모가 더 큰 합병을 진행하면서도 이자는 조금만 낸다. 그래서 인수합병 건수는 최근 수십 년 동안 급격히 증가했다. 페이스북,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기업은 다른 대기업을 흡수하면서 비대해졌다.

다국적 기업은 세계화의 주요 수혜자였으며 이들의 규모, 성장률, 이익, 영향력은 국경 개방과 무역 지도의 확장이 힘입어 막대하게 커졌다. 세계 최대 규모의 기업에는 일반적인 법인세율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외에도 기술 플랫폼, 정실 자본주의, 무늬만 남은 반독점법, 빅데이터, 인구 폭증 등이 모두 자이언티즘을 촉진시킨다. 자이언티즘은 이미 우리 생활에 너무 가까이 있고 다양한 방면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건전하게 유지하려면 경계해야 할 것이 자이언티즘이라고 저자는 확신한다. 아직 거대담론이어서, 다수의 의견을 이끌어내려면 자이언티즘에 빠져 있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경쟁 방식이어서 자본주의 체계에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야 한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이언티즘을 이미 실행하고 상당한 이익을 차지한 사람들의 반대는 불보듯 뻔한 일이다. 학자의 연구를 토대로 자본주의 경쟁방식으로 채택되려면 갈 길이 먼 느낌이다.





그 누적된 문제가 이제 거꾸로 시스템 붕괴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사실을 경고하기 위해 게르트 노엘스는 이 책을 썼다. 그는 자이언티즘의 문제가 단지 경제에 머물지 않고 환경오염, 인간 소외에도 돌이킬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내고 있다고 진단한다. 왜 저자는 '자이언티즘에 주목하는 걸까. 만능키 같은 ‘성장’이라는 단어가 때로는 자본주의의 건전성을 해치고, 지속불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우리 모두 알아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저자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기 위한 대안 10가지를 제시하며 우리가 살아야 할 미래 사회를 이렇게 표현한다.

“미래는 더 작고, 느리고, 인간적이다. 이 3개의 형용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규모가 더 인간미 있고 전문가와 수학적 시스템으로 관리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작다. 더 이상 성장 촉진 약물과 부채에 대한 중독으로 자극을 가하지 않고 인간 본성의 흐름에 맞춘다는 점에서 느리다. 그러한 경제는 사람에게 더 가깝고 풍요병이 효과적으로 억제되며 더 이상 영구적인 약품과 싸울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인간적이다.

이는 유토피아 경제가 아니라 사회, 생태, 경제 등 인류의 모든 측면을 고려하는 경제다. 수십 년 동안 경제학자가 대학과 준과학적 이론을 통해 정책에 반영한 단면적인 경제 이념과는 매우 다르다.”

이 책은 경제학자가 썼으나 경제학 책이 아니다. 이 시대 함께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읽어야 할 책이다.





저자 : 게르트 노엘스(GEERT NOELS)


자산운용 및 경제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코노폴리스(ECONOPOLIS)의 CEO 겸 수석 이코노미스트다. 노엘스는 여러 신문에 칼럼을 기고하고 TV,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다. 그의 창의적인 사고와 독자적인 거시경제 시각을 높이 사는 다양한 조직과 기관에서 정기적으로 자문을 의뢰하고 있다. 2008년 펴낸 《경제충격(ECONOSHOCK)》에서는 현재 경제, 사회, 일상을 변화시키고 있는 6가지 충격을 다뤘으며 이코노폴리스에서 구사하는 전략의 기초이자 가이드라인으로 활용되고 있다. 노엘스가 2019년 펴낸 두 번째 저서인 《자이언티즘》은 몸집과 힘을 점점 더 키우는 기업과 조직에 대한 강력한 호소를 담고 있다. 거대증은 건전한 경쟁을 해쳐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없게 만들고 인간을 억압한다. 《자이언티즘》에서 그는 게임의 경제 규칙을 수정하고 거인을 길들이며 세계 경제에서 인간과 환경을 배려할 수 있는 10가지 해법을 제안한다. 더 작고, 더 느리고, 더 인간적인 세상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


역자 : 박홍경


서울대학교에서 언론정보학과 지리교육학을 전공했고, KDI MBA 과정 FINANCE&BANKING을 공부했으며,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한영통번역과를 졸업했다. 헤럴드경제와 머니투데이에서 정치·경제 기자로 활동했다. 현재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기획자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긍정적 이탈』, 『경쟁력』, 『나는 돈이 없어도 사업을 한다』, 『구글버스에 돌을 던지다(공역)』, 『앨런 그린스펀의 삶과 시대』, 『무역의 세계사』, 『트럼프공화국』, 『잡담의 인문학』, 『무엇이 역사인가』, 『외교의 몰락』, 『압축세계사』, 『왜 지금 고전인가』, 『세상의 모든 지도 더 맵』, 『리사 비비어의 자존감』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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