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다는 건 - 내게 살아있음이 무엇인지 가르쳐 준 야생에 대하여
김산하 지음 / 갈라파고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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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저마다의 삶을 산다. 자신의 가치관, 인생관, 환경, 위치에서 오로지 삶을 위해 최선을 노력을 기울이며 산다. 이것이 '생명을 가진 모든 생물은 환경에 적응하며 산다'는 다윈의 적자생존론이다.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생물은 죽는다. 삶을 이어가기는커녕 이내 죽는다. 죽으면 번식을 할 수 없고 마침내 멸종된다.

이 같은 생명 유지는 인간의 삶을 다양하게 표현한다. '살아있다' '살아낸다' '살아남는다' '살아간다' 등 수많은 표현이 있다. 인간에만. 인간은 지능과 언어로 삶의 각기 다른 모습을 표현할 때도 다르다. '살아있다'나 '살아간다'는 굉장히 자연스러운 표현으로 들린다.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러나 '살아낸다' '살아남는다'는 불가능할 것 같은 환경이나 역경을 딛고 이겨내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으로 읽힌다. '힘든 삶'이란 뜻을 내포하고 있는 뉘앙스다. 그러나 전자든 후자든 삶을 계속할 수 있은 상태임을 말하는 것은 다르지 않다.

동물의 경우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간에 비해 신체적으로 매우 열악한 조건의 미물마저 삶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면서 '살아내는' 것을 알 수 있다. 환경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식물은 삶의 터전을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므로 오롯이 그 자리에서 삶을 위해 인간의 눈에 보이진 않지만 치열한 노력을 한다는 게 식물학자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인도네시아 야생 밀림에서 긴팔원숭이를 연구했던 저자가 이번에는 우리 주변의 작은 존재들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안내한다. 인공물 사이를 비집고 한 줌 흙에서 피어난 풀로, 얼굴이 있는 모든 동물에게로, 눈으로 볼 순 없지만, 생명과 생명 사이에 분명히 존재하는 사랑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다가올 미래를 몇 걸음 앞서 두려워하지 않고, 그저 씩씩한 자세로 살아가는 존재의 모습과 살아있다는 것의 의미에 관해 묻고 답하는 글과 그림이 이 책 『살아있다는 건』에 담겼다.

"그러나 우리에게 지식과 자유를 주는 과학에도 아쉬운 것이 있다. 과학은 개체가 갖는 고유함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과학은 그래프에 흩뿌려진 여러 개의 점을 모아 거둔 결론에 관심을 둔다. 개별 특징 하나하나에 주목하는 것은 과학이 하는 일이 아니다. 또 한 가지. 과학은 생물을 관찰하면서도 ‘살아있음’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다. 살아있다는 건 연구 대상의 기본 조건이요, 보고자 하는 건 그다음에 벌어지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번쯤은 측량 도구를 다 내려놓은 채 생물을 한없이 바라보고만 싶다. 살아있다는 건 무한히 신기하고 재미있고 주목할 만한 일이다. 옳고 그름의 기준을 홀연히 떠나서 말이다.(pp. 16~17)





삶은 흘러간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여기에, 얼마나 살아있을까? 우리는 종종 살아가는 일에 벅차 살아있음을 잊곤 한다. 오늘의 삶은 다음으로 미루고 멀리까지 계획을 세운다. 틈날 때마다 스마트폰을 확인하고 정신을 비워두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의 삶 속에 완전히 존재하기 어렵다.

다른 존재와의 관계에서는 어떠한가. 타인을 이해하며, 사랑하며, 공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까. 혹시 모를 두려움에 나를 아끼느라 삶 또한 아끼고 있는 건 아닌가.

『살아있다는 건』을 읽으면 살아가면서 생기는 오만가지 잡념이나 쓸데없는 일에 노력을 기울이는 삶을 경계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다. 철학에서나 고민하는 '인간의 삶'을 수많은 작은 생물들의 삶에서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야생 동식물들은 이처럼 삶을 우회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야생에서 살아가는 그들에게는 오로지 지금이 있을 뿐이다.

늘 현재를 사는 그들은 계산하지 않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실패할지라도 발걸음을 내디뎌 사랑을 찾는다. 저자는 빗속에서 잠자리 한 쌍이 기하학적 모양으로 함께 날며 짝짓기를 하는 모습, 여우가 눈이 눈 속에 점프하며 얼굴을 파묻고 놀이하는 모습,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새인 상모솔새가 추운 계절에도 그 작은 입에서 입김을 보이며 씩씩하게 살아가는 모습 등을 묘사하며 살아있음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책은 김산하 저자가 다양한 야생 동·식물과 자연을 관찰하며 그들의 삶 속에 녹아있는 철학을 31묶음의 글과 그림으로 담고 있다. 이를 통해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당신이 살아있다는 특별한 사실을 잊지 않기를'. 숨 쉬듯 당연하여 생각해보지 않았던 우리의 생명이 언젠가 죽음으로 영원히 끝날 것이며, 그러므로 소중하고 빛나는 시간으로 채워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기를. 이토록 소중한 삶이니 부디 아끼지 말고 살기를. 혼자가 아닌 함께, 제각기 고유한 모습을 존중하며 같이 살아갈 길을 모색하기를. 그리하여 우리 모두 가장 본성에 가까운 존재로 사는 길을 알게 되기를. 이 책을 쓴 이유다.

이 책의 세 가지 키워드를 꼽으라면 ‘살아있음’, ‘고유함’ 그리고 ‘다양성’이다. 그러나 삶과 죽음이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존재하듯이, 고유성과 다양성 또한 그렇다. 다양함이 있어야 고유함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너무 당연하여 간과하고 있던 ‘살아있다는 사실’을 독자가 마주하게 하고, 더불어 자연의 다양성과 그 안에 존재하는 무수한 고유성을 이야기하며 획일화된 우리 사회의 생태계의 위험성을 일깨운다. 그리고 건강한 생태계를 구성하며 공존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다양성이라는 개념이 추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은 아주 익숙한 개념이다. 오래전부터 우리는 다종다양한 생물과 함께 살아왔기 때문이다.

지구상에 왜 이토록 다양한 생물이 존재하는지 그 이유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5억 4,000년 전, 캄브리아 폭발이 일어났고 우리의 세계는 이렇게 존재하게 되었다. 자연에서 다양성은 거의 무조건 나타나며, 생태계의 작동 원리, 진화의 전개 방식 모두 다양성을 핵심으로 발휘된다. 그렇다면 다양성은 자연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은 제멋대로 살아가는 이들인 모인 ‘개성의 세계’다. 자연에는 셀 수 없이 다양한 생물이 존재하며, 그 수만큼이나 개성 강한 생활 방식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남극해에 사는 어떤 물고기들은 혈액에 추운 수온을 견딜 수 있는 일종의 ‘부동액’ 성분이 들어있고, 건조한 사막에 사는 도깨비도마뱀은 피부로 물을 빨아들이는 진귀한 능력을 지녔다. 대머리독수리는 시체를 헤집고 썩은 고기를 뜯어 먹어야 하기에 벗어진 머리를 갖고 있다. 자연에서는 자기만의 고유한 삶의 방식을 갖지 못하는 생물은 살아남지 못한다.





인간이라는 단일종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묻는다. 다수가 만들어낸 획일적인 기준을 나의 기준으로 삼고 조금이라도 나와 다른 누군가는 배제하고 있지 않은지. 혹은 모두가 그렇게 살기 때문에 나도 그 전형성을 따르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저자는 ‘한 존재가 다른 존재와 같아지는 것은 어색한 일이며, 생명의 본질에 배치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생태계는 제각기 고유한 삶의 방식이 있는 생물들이 존재하고, 그들이 여러 다른 삶과 잘 맞물려 돌아갈 때 건강히 유지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생태계는 얼마나 건강한지, 나와 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생태계는 어떠한지 되묻게 된다.

그러니까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배울 것들이 많다. 더는 미루지 말고, 과제 하듯 해치우던 삶의 속도를 낮추고, 자연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삶을 되살려야 한다. 살아있음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존재를 가만히 바라보며 이야기를 풀어내는 이 책으로 그 쉼의 시작이 가능할 것이다.





그들에겐 '보장된 내일'이라는 개념이 없기에 매일을 마지막 날처럼 살 수 있는 것일까? 나가는 순간 그 길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언제나 열려있기 때문일까? 사실이다. 하루하루가 마지막이고, 모든 길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길이다. 그것은 그들에게나 우리에게나 마찬가지다.

단지 얼마나 삶에 집중하느냐의 차이다. 챙기고 신경 써야 할 게 너무 많은 우리에겐 좀 버거운 얘기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차피 삶은 갑자기 왔다가 갑자기 간다. 그래서 일상적인 만남도 실은 뛸 듯이 반가울 만한 것이다. 그 반가운 마음은 우리가 살아있다는 생생한 증거다.(p. 226)

「계산 없는 환대 - 일상적인 만남도 뛸 듯이 반갑게」 중에서


나는 인도네시아 밀림의 높은 나무 위에서 긴팔원숭이와 랑구르원숭이가 서로를 쳐다보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은 마치 “네가 여기 웬일이냐”하는 식의 눈빛을 보내는 것같았다. 어쩌면 긴팔원숭이가 있던 나무에 잘 익은 과일이 많아, 랑구르원숭이가 그들이 떠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무 기둥에서 다람쥐와 딱따구리가 마주치는 사례도 있다. 둘 다 나무를 자유롭게 타는 전문가들이라 서로의 존재를 잠시나마 인지하는 그 순간이 흥미로웠다. 운이 좋으면 사람과 마주하기도 한다. 아마존 열대우림을 밤중에 탐험하다 만난 바위만 한 두꺼비, 덴마크의 눈 내리는 정원에서 마주친 붉은여우. 내가 영원히 기억 속에 간직할 장면들이다.(p. 242)

「우연한 만남 - 별 볼 일 없는 사이라도 마주치며 응시하기」 중에서





그런데 21세기인 현재 동물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웃지 못할 축제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웃지 못할 이유는 명확하다. 대부분의 동물축제는 동물에게 축제의 시간은커녕 지옥 같은 시간만을선사하기 때문이다. (...) 대표적인 사례가 생태 도시, 고래 특구를 표방한 울산 고래축제다. 살아있는 고래를 구경한 후 고래 고기를 먹는 고래축제는 세계에서 이곳이 유일하다. 상업 포경이 금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축제장과 고래연구센터 앞 수십 개 식당은 안정적으로 고래 고기를 공급받고 있다. 혼획으로 매년 정식 유통되는 고래가 80마리인 것으로 보고되는데, 그렇다면 나머지는 불법 유통이 아닐 수 없다.(p. 254)


「동물축제 반대축제」 중에서

언제 살았는지 죽었는지 누구도 알지 못하고 기억하지 않는 무수한 생명들. 혼자 고독하게 병치레를 하다 죽음이 가까운 걸 직감하고 어두운 굴속에 제 발로 걸어가 마지막 순간을 조용히 맞이한 많은 동물. 평생 한자리에 박혀 모진 계절의 변화와 사람의 손길을 맞다가 조금씩 시들시들해진 많은 식물. 그리고 이들보다도 더 무명으로 살다 간 곰팡이와 조류와 미생물 들. 눈물 흘리는 이 하나 없이 멋지게 살다 돌아간 생명의 장구한 행렬에 귀를 기울여본다. 나의 때는 언제인지. 그때가 오기 전까지 살아있음에 집중하련다. 생명을 살리고, 음미하고, 칭송하고, 보호하는 일에. 살아있다는 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시간도 너무나 짧으니까.(p. 263)

「나오며 - 언젠가 죽는다는 건」 중에서





저자 : 김산하


1976년 일본 시모노세키에서 출생했다. 외교관이던 아버지를 따라 일본, 스리랑카, 덴마크 등에서 자라면서 다양한 자연환경을 접했으며 한국 국제협력단의 단원으로 인도네시아, 페루 등지를 돌며 봉사 활동을 했다. 서울대학교 동물자원과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생명과학부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인도네시아 구눙할라문 국립공원에서 자바긴팔원숭이를 연구한 우리나라 최초의 야생 영장류학자로, 예술적 감성과 인문학적 소양을 두루 갖춘 과학자다. 생태학자로서 자연과 동물을 관찰하고 연구할 뿐 아니라 생태학과 예술을 융합하는 작업에도 관심을 가져 영국 크랜필드대학교 디자인센터에서 박사 후 연구원을 지냈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연구원이자 생명다양성재단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으며,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지역 사회에서 동물과 환경을 위한 보전 운동을 펼쳐 나갈 수 있도록 돕는 제인 구달 연구소의 ‘뿌리와 새싹(Roots & Shoots)’ 프로그램 한국 지부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동생이자 일러스트레이션 작가인 김한민과 함께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자연 생태계와 환경의 중요성을 알리는 그림 동화 『STOP!』 시리즈를 출간했으며, 저서로 『습지주의자』, 『김산하의 야생학교』, 『비숲』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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