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 여왕
가와조에 아이 지음, 김정환 옮김 / 청미래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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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학교 다닐 때부터 유난히 수(數)에 약했다. 산수를 배울 때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수학'을 배우는 중학교 때부터 시험 성적이 별로 좋지 않았다. 중학교 때까지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었다. 수학과 멀어진 때는 고등학교 때부터였다. 대입 준비도 수학이 적게 반영되는 '문과'를 선택하려 했으나 집안에서 '이과'를 강권하는 바람에 이과반으로 편성됐다. 다른 과목은 별로 다른 것이 없었지만 이과는 수학1에 이어 수학2도 있었다. 당연히 시험 성적은 늘 수학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게 나왔다. 이후 대학은 고집을 꺾지 않고 문과로 택했다.

수학은 그렇게 멀어졌다. 대학은 물론 사회에 나와서도 수학이 필요없었다. 산수 정도만 잘해도 되는 게 사회였다. 직종도 숫자가 필요한 경리, 재정 관련 부서는 피했다. 이 책 『수의 여왕』도 SF소설이니만큼 숫자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천운, 재물운에 쓰이는 '운수'인 줄 알았다. 오해였다는 것은 책을 받아보고서야 확인됐고, 운수(運數)의 수도 숫자를 뜻하는 '셀 수'임을 사전을 찾아보고야 알게 됐다. 주의력 부족이었음을 뒤늦게 후회한들 어쩌랴. 그래도 억지로 이해하다시피 책을 읽고 나서는 생각이 달라졌다. SF소설을 수학을 모티브로 쓰거나 유명 작품도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촘촘히 읽은 게 그나마 위안이 되고 새로운 분야의 독서에의 욕구도 증가했다. 빨리 읽는 것보다 이해하면서 느릿느릿 읽으면 이해하기 쉽고 재미도 한층 더 크다는 점을 확인한 것도 이 책을 읽은 보람 중의 하나다.







이 책은 이렇게 골치 아픈 수학을 갖고 썼지만 이해가 어려운 독자 같은 사람을 위해 저자의 풀어쓰기의 묘미도 애착을 갖게 한 이유이다.

한마디로 이 책은 수학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보여주는 소설이다. 적어도 독자에게는 그렇다.

사람이 저마다 자신의 운명수를 가지고 태어난다면, 그리고 그 운명수가 무엇인지에 따라서 다른 삶을 살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고민거리와 생각거리도 안겨주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운명수로 상대방에게 저주를 거는, 아름답지만 피도 눈물도 없는 메르세인 왕국의 왕비에 대항하여 왕비의 양녀 나쟈가 자신의 잔혹한 운명을 극복하는 환상적인 모험의 이야기이다.

수가 운명을 지배한다는 다소 설득력 떨어지는 명제를 소설, 그것도 SF소설로 엮어낸 저자의 글쓰기 능력과 수학 지식 등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운명수에 관한 수수께끼를 풀기 위한 나쟈와 요정들의 판타지 대모험 이야기는 그렇게 독자와 가까워졌다.





저주와 마법의 세계에서 요정들의 도움으로 성장해나가는 나쟈의 이야기를 다룬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읽다 보니 학교에서 배웠던 수학 이론(사실 이름이나 대충의 공식과 기호들만 생각나지만)들이 생생하고 재미있게 응용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이 소설은 수학에 대해서 품고 있던 거부감을 없애줄 뿐만 아니라 수학이 재미있고, 흥미로운 지적인 놀이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등장인물들에 대한 묘사도 매우 잘 표현됐지만 저자는 독자 같은 상상력 부족인 분들을 위해 등장인물을 책 앞에 컬러그림으로 배치시켰다. 그림을 그리고 책 앞에 배치한 것은 당연하게 편집진의 의도겠지만. 독자는 이 등장인물들 때문에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공간을 상상해볼 수 있는 멋진 시간이 됐다.





스토리는 수학과 다르게 무척 단조롭다. '단조롭다'는 표현은 수학에 비해서 그렇다는 독자의 판단이다. 8년 전에 일어난 참극으로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언니 비앙카가 행방불명된 이후, 나쟈는 왕국에서 왕비의 눈에 띄지 않도록 숨죽이며 살고 있다. 왕국의 왕비이자, 나쟈의 양어머니는 적수에게 저주를 걸어 없애버린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무시무시한 인물이다. 우연히 이상한 편지를 받게 된 나쟈는 편지에 적힌 곳에서 신비로운 거울을 발견하게 된다. 거울을 자신의 방으로 가져온 나쟈는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고, 자신도 알 수 없는 어떤 힘에 이끌려 거울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거울 속에서는 5명의 요정들이 왕비의 지시에 따라서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태어나는 “운명수”를 분해하는 계산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는 이 세계에서는 금지된 행동으로, 계산을 하는 것 자체가 엄금된 것이었다.

이 요정들은 왕비에게 납치되어 이 일을 억지로 하고 있었다. 요정들은 나쟈에게 자신들이 이 거울의 방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줄 열쇠인 운명수를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태초에 수(數)가 있었다. 모든 존재의 근원, 어머니 수, 즉 수의 여왕인 최고신은 대기(大氣)를 낳고, 신들을 낳고, 대지를 창조하고, 요정을 만들고, 그리고 인간을 만들었다. 어머니 수는 모든 ‘자식’에게 수를 하나씩 부여했다. 생명 그 자체, 우리를 형성하는 운명수를.”


“제가 약한 인간이고 저주에 맞설 수 있는 운명수를 갖지 못한 건 사실이잖아요? 제가 좀더 강하고 더 좋은 운명수를 가졌더라면 공포를 느끼지 않았을 거예요.”


요정들과 함께 성에서 도망친 나쟈는 최초의 1인의 직계 후손들이 살고 있다는 낙원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낙원장과 그녀의 딸 타니아를 만난다.

그들의 도움으로 요정들은 다시 힘을 회복하고, 왕비와 왕국의 비밀에 대해서도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제 나쟈는 다시 한번 왕비에 맞서서 자신의 운명을 극복하고자 한다. 보잘것없는 운명수를 가진, 나쟈는 거대한 운명수의 소유자인 왕비에 맞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수학과 판타지의 만남이라는, 독특한 설정은 독자들이 부담 없이 수학의 세계로 모험을 떠날 수 있도록 해준다. 나쟈와 요정들이 일종의 퀘스트를 하나하나 해결해가는 모습은 흥미를 주고 그뿐만 아니라 그 과정을 거치며 성장해가는 나쟈의 모습은 자그마한 감동마저 선사한다.

이야기 곳곳에 숨어 있는 수학이라는 매개는 자연스럽게 수학의 원리를 떠오르게 하고, 수학을 조금은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에서 저자는 소수, 피보나치 수열, 페르마의 정리, 삼각수, 소인수분해, 메르젠 수 등(일부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수학 용어) 어려운 수학적 개념과 이론을 꺼내놓지만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사건 전개와 해결 과정에 따라 재미있게 풀이해준다. 독자로 하여금 "수학은 아름다운 학문이구나"라는 점을 느끼게 해준다. 수학과 SF소설이 완전 다른 분야가 아니라 재밌게 공유되는 부분도 많다는 점을 인식하게 해줌으로써 교묘하게 수학이 어려운 사람에게도, SF소설이 너무 허황된 만화 같은 수준이다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도 쉽게 다가서도록 바꿔놓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수학이 어려운 독자들도 수학과 판타지를 동시에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한 점이 역력하다. 매력적인 작품이다.


저자 : 가와조에 아이


작가. 규슈 대학교 문학부 문학과(언어학 전공)를 졸업하고, 2005년 동 대학 대학원에서 박 사학위(문학)를 취득했다. 전공은 언어학, 자연 언어 처리이다. 국립 정보학 연구소 연구원, 쓰다주쿠 대학교 여성 연구자 지원 센터 특임 준교수 등을 거쳐, 2012년부터 2016년까지 국립 정보학 연구소 사회 공유 지(知) 연구 센터 특임 준교수를 지냈다. 저서로는『게으른 족제비와 말을 알아듣는 로봇』, 『백과 흑의 문─오토 마톤과 형식언어를 탐험하는 모험』,『정령의 상자─튜링머신을 둘러싼 모험』,『컴퓨터는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등이 있다.


역자 : 김정환


건국대학교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일본외국어전문학교 일한통번역과를 수료했다. 21세기가 시작되던 해에 우연히 서점에서 발견한 책 한 권에 흥미를 느끼고 번역의 세계를 발을 들여, 현재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 출판기획 및 일본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경력이 쌓일수록 번역의 오묘함과 어려움을 느끼면서 항상 다음 책에서는 더 나은 번역,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번역을 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 공대 출신의 번역가로서 공대의 특징인 논리성을 살리면서 번역에 필요한 문과의 감성을 접목하는 것이 목표이다. 야구를 좋아해 한때 IMBCSPORTS.COM에서 일본 야구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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