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아름다운 옆길 - 천경의 니체 읽기
천경 지음 / 북코리아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니체는 독자 입장에서 이름을 처음 들은 고등학교 때부터 머릿속에 내재돼 온 철학자다. 아마 철학이라는 것을 알고부터 '철학의 시조'라는 소크라테스 다음으로 이름을 많이 들었고, 아직도 독자의 머릿속에 안개처럼 뿌옇게 깔려 있는 인물이다. 철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지만 사회 생활하면서도 니체의 이름은 자주 듣고, 인용하는 학자도 많아 머릿속에 깊게 각인돼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마음 먹고 책을 읽으려 해도 너무 어려워(철학을 공부한 적이 없는 독자 입장에서는 더욱) 중도에 포기한 적도 많다.

사회 생할도 니체나 철학과는 거리가 먼 직장에서 일했기 때문에 자주 접하기는 어려웠다. 철학이나 니체를 읽기에는 생각 자체가 부족했던 게 아닌가 자성하고 있다. 이 책 『니체의 아름다운 옆길』은 제목부터 니체를 본격 해석한 글이 아니라 옆길(그를 볼 수 있어 본격 해석은 못해도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 아름답다고 표현한 것도 삶에 연결할 수 있는 길이기에 가능한 단어가 아닌가 기대하며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저자 천경이 지난 2017년 11월부터 2019년 7월까지 국내 한 신문사에 〈천경의 니체 읽기 칼럼〉이라는 제목으로 매주 게재한 내용을 엮어서 출간한 것이라는 소개글을 읽고 독자의 생각은 확신을 주기에 충분했다. 신문의 칼럼에 연재된 것이면 우리 삶 중에서 시사성 있는 칼럼을 쓴 것으로 추정했기 때문이다. 특히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가볍고 재미있으며 깊은 울림을 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말에 독자에게는 읽기로 결심하기에 큰 힘이 됐다.




『니체의 아름다운 옆길』은 예상대로 저자가 니체 철학의 여러 가지 개념들을 생활의 이야기와 연결해서 재미있게 풀어 썼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저자는 또 '옆길'이란 표현도 '오류'로 읽힐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면서 니체에 대한 존경심과 우리 일상의 연결 지점에 난 길이라는 의미를 분명히 하고 있다. 가벼운 스케치로 시작되는 이 책의 이야기들은 매 편마다 매우 쉽게 읽히지만, 니체 철학의 깊이를 땀 흘려 담아낸 흔적이 돋보인다. 특히 비유와 상징의 문체로 쓰인 난해한 니체의 저서를, 일상생활에 적용해서 한 편 한 편 담아낸 이야기들이라 설득력과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저자의 삶의 통찰과 오래 닦아온 문장의 힘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이 책의 문장 중에는 유머 코드가 행간마다 숨어 있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쉽고 평이한 문장들과 일상생활에서 길어올린 에피소드로 구성된 각 장마다 영원회귀 사유, 힘에의 의지, 주인도덕과 노예도덕, 위버멘쉬(초인)와 인간 말종, 신의 죽음과 보편진리의 유무, 그리스도교의 폐해와 가치의 전도, 아모르파티(운명애) 등 니체 철학의 핵심 개념들이 소상히 소개되고 있어 니체 철학의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독자에게도 니체에게 가는 길 옆에 옆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직접 알려준 책이기도 하다.




난해하지 않게 니체 철학을 이해할 수 있게 했으면 재미있게 니체를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이제까지 독자가 읽었던 책 중에는 없었던 방식으로 쓰인 철학적 해설서이며 에세이집이다. 이 책을 읽으면 본격적으로 니체를 공부하는 사람이 아닌 한 니체에 접근하는 방법을 깨닫거나 최소한 영감이라도 받을 수 있도록 쓰인 '아름답고 멋진 책'이다.

기존의 철학 해설서가 지닌 난해하고 복잡한 문장과 문맥들이 깨끗이 정리되어 산뜻하고 선명하게 니체 철학의 개념을 소개하는 솜씨는 저자가 니체에 대해 웬만한 철학자쯤 되는 것처럼 보인다. 더욱이 가끔 배꼽 잡는 유머까지 행간에 숨어있으니 니체의 철학에 대해 통찰력도 갖춘 건 같다. 니체의 책을 한 번만이라도 눈여겨 읽어본 사람이라면 니체의 독설도 대개 유머가 섞여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 누구나 재미와 인식의 ‘벼랑에서 한발을 더 내딛는 자’의 희열을 경험하게 될 것으로 독자도 저자에 대한 신뢰감이 크다. 철학이 어렵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평소 철학에의 입문을 꺼렸던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통해 도전해 볼 만하다. 니체 철학을 이해하고 싶지만 어려워서 엄두를 못 낸 사람들에게도 유용하지만, 이미 니체의 저서를 접한 독자들이라면 더 재미있고 깊이 있게 책 속의 메시지들을 소화할 수 있으리라 판단된다.





철학뿐만 아니라 인문학 공부를 하고 싶지만 어렵다고 포기한 적이 있는 독자들이라면 애써 이 책을 소개하고 싶다.

철학을 웃으면서 배우기를 희망하시는 독자들에게도 기꺼이 이 책을 권한다. 독자와 니체 사이에는 헤아릴 수 없는 간극이 있지만 저자가 중간에서 모두 연결해주고, 어떤 점에서 우리의 삶과 연계해야 할지 잘 지적해주기 때문에 그냥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독자에게 그랬듯이 현재와는 다른 삶과 사유를 접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니체는 큰 울림과 만만찮은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니체를 읽고 나서 큰 충격을 경험했다. 자신이 그동안 지켜온 소신들이 해일처럼 부서지는 경험. 그것은 평화로운 일상에 균열을 내고 지금까지 알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의문을 갖게 했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해체하고 재구성해야 하는 위험과 놀람의 세계다. 니체는 그만큼 위험하고 충격적인 '망치'와 '도끼'였다.

저자는 “니체는 나의 안일한 내면의 평화를 깨트렸고, 믿었던 가치관과 존경했던 금언들이나 좋아했던 취향마저 나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회의, 세상에 대한 핑크빛 감흥과 삶에 대한 판타지를 일순간 뒤흔들었다”고 말한다.




또 니체를 만나고부터 세상은 다른 색깔과 다른 질감으로, 다른 관점과 다른 경쾌감과 명랑함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니체를 만나 울고 웃으며 굿판을 벌이듯 글을 썼다고 술회했다.

“니체는 내가 믿어 의심치 않는 모든 것들에게 '아니야, 그게 아니야'라고 말하며 망치를 들고 다가왔다. 그리고 이 현실의 온갖 가치와 덕목과 칭송되던 행위들과 사랑스러운 가족의 얼굴, 평화롭게 지내던 이웃의 친절한 말들, 즉 나의 ‘환영’(幻影)을 되비추어주던 모든 것에 사형선고를 내리듯이 그것들의 민낯을 까발렸다. 그것들은 나의 민낯이기도 했다. 나의 평화와 안전을 지탱해준 얄팍한 지지대, 혹은 의지처 같은 것들, 나와 동류의 이데올로기를 지닌 그 무엇에 대한 안도와 그 안도에 복을 빌며 제사 지내고 경배하는 어리석음, 그 어리석음에 대한 경배, 그것은 그러니까 호모사피엔스종(種)인 내가 이 삶을 버텨내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허위의식들, 허구들, 가짜들, 오류들의 집합이며, 이 삶을 참아내기 위해 꼭 필요한 거짓 덩어리들이었다고 니체는 단호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단호함에 놀라고 예리한 통찰과 용기에 놀라, 살아온 생 전부를 돌아보게 되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니체에 몰입하면서 유머를 배운 것처럼 문체도 다른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울 정도로 난삽하기는 하다. 그것도 니체와 닮은 것 같다.





그리고 독자들을 달래는 데 유감없이 글솜씨를 발휘한다. "이처럼 심각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니체의 문장들은 너무나 가볍고 경쾌하고 명랑해서 다시 놀랐다. 특히 니체는 웃음을 독자들에게 권한다. 망치는 망치로되 웃음과 유머가 넘치며 춤추는 망치, 니체. 특히 저자는 자신이 많이 웃지 않은 성격적인 특성을 감안해 니체를 읽고부터는 많이 웃으며 살 것을 자신에게 추천했다"고 한다. 이 책을 쓰면서 저자는 많이 웃고 울었다고 말한다.

『니체의 아름다운 옆길』은 한마디로 재미있고 웃기기도 한다. 철학 이야기를 하면서 이렇게 웃어도 될까? 답은 웃어도 된다! 아니, 웃어야 한다. 니체는 ‘웃음은 웃음의 미래’라고 주장하고 있으니까. 이 책에 대해 저자는 “진지한 철학을 논하면서 배꼽 빠지게 웃는 역설, 글이 저희끼리 웃고, 글을 쓰는 동안 나도 글과 함께 웃었다”며 책이 재미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행간의 재미를 찾아내고 웃음의 코드를 발견해 내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독자는 약간 당황하지만 '옆길'이라는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볼 즈음이다.

저자에 따르면 웃음은 의미들을 희화하는 힘이 있으며 웃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이데올로기와 담론을 허무는 힘이기도 하다. 물론 한바탕의 큰 웃음만이 책의 전부일 수는 없다. 니체 철학이 그렇게 단일한 맥락으로 쉽게 정리되지는 않는다.





저자는 책을 쓰는 동안 “니체의 친구가 되어 웃으며 놀았다”면서도, 또 니체는 재미있다면서도 니체에게로 가면 갈수록 위험하고, 위험한 만큼 후련하고, 더 많이 니체를 알고 싶지만 어느 순간 더 이상 알고 싶지 않고, 차라리 모르고 싶어진다고 술회한다. 니체, 그 숱한 비밀의 문들의 은밀한 내부로 들어가는 열쇠 같은 니체를 정면으로 만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니체를 직면하고 감당할 용기가 필요하다. 저자의 말을 들어 보자.

“그것은 지금의 내 삶을 통째로 망치질을 해야 하는 순간과 대면하는 사태로 나를 데려갔다. 이만하면 괜찮아, 하고 자신을 위무하며 조용조용 이 삶의 얼룩진 흔적들과 상처들에 연고를 발라주고 자신을 다독이며, 간신히 웃으며, 용감한 척 가면을 쓰고 살고 있는 나약한 실존에 메스를 가한다. 그 망치와 메스가 실은 명랑한 웃음이며 경쾌한 춤이더라도 웃음과 춤과 명랑함은 무서운 망치이며 칼이며 도끼가 되어 지금 나의 욕망의 화로에 내리꽂힌다. 그런데 알고 보니 도끼와 망치는 한바탕의 큰 웃음이었다. 웃음은 가볍되 다른 차원과 다른 평면으로 나를 데려가는 웃음이었다.”





“지금 우울하다면 ‘아름답고 숭고한 행동’을 한 가지 해보시기 바란다. 위험한 행동을 단 한 가지라도 해보시기 바란다. 태어나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어떤 행동을 해보시라. 평소 해보고 싶었으나 하지 못한 것을 해보시라.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빼고 내가 뿌듯함을 느끼는 무엇을. 역설적일지 모르나 이것이 나를 치유해줄 것이다.”

「무기력과 권태 돌파하기」 중에서


“타인과 차이나는 나의 고유성을 발견할 때 기쁨보다는 이거 뭐지? 당황하게 되고 깊이 밀어 넣어버리고 싶다. 좋은 가치로 칭송되는 것이라면 모르되 이곳에서 배척될 만한 어떤 특성이거나 욕망일 때 특히 그렇다. 이제 겨우 중학생인 딸이 한복모델 대회에 나간다고 했을 때 당황했다. 공부할 나이에, 이십 대도 아니고, 사람들이 나를 보고 뭐라 할까, 아나운서, 비행기 승무원 등등 기라성 같은 미인들이 나오는 잔치에 중1년생이 망신당하려고 등등. ‘너 자신이 되려는’ 아이를 주저앉히고 너 자신이 될 수 없는 이유를 수없이 나열하며 가로막는 사람이 바로 엄마인 나 자신이다.”

「너 자신이 되어라」 중에서





“진리란 무엇일까? 진리란 것이 정말 있긴 한 걸까? 나의 진리와 너의 진리는 동일한 것일까? 상식적으로는 그래야 할 것 같다. 플라톤을 따라서 지금 이곳에 도달한, 서양 형이상학의 전통에 기반하고 있는 우리들 삶 아닌가? 그런데 정말 보편 진리라는 것이 있기는 한 걸까?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지금 그걸 받아들이면서 살고 있는 것 아닐까? 그래? 그렇다면 지금 이곳의 진리와 바다 건너, 시간을 거슬러 중세의 어느 시점의 진리는 동일한가? 미래의 진리는 지금 이곳의 진리와 동일할까? 이 지구별과 저 화성의 진리는 동일할까? 진리는 변하는 것일까? 우리는 불변의 진리를 신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진리라는 번개」 중에서


저자 : 천경(천미경)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했다. 그동안 기자 및 편집장으로 일했다. “피로 써라. 그러면 피가 곧 넋임을 알게 될 것이다”라는 니체의 문장을 좋아한다. 현재 서울 홍대 인근에 위치한 대안연구공동체에서 미셀 푸코, 질 들뢰즈, 프리드리히 니체, 레비스트로스 등의 저서를 읽고 공부하는 〈잡종의 책 읽기〉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다음 브런치 사이트의 니체 철학 추천작가이기도 하다.저서로 《고독 혹은 빨강색에 대하여》(시집)와 《키스해도 돼요?》(산문집), 《내 안에는 작은 아이가 산다》(산문집), 《주부 재취업 처방전: 내 안의 천재와 접속하기》(산문집)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