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의 등산가 - 산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김영도 지음 / 리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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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어릴 때부터 '산악인' '등반가'라는 말을 동경했다. 고향이 산악 지역이어서가 아니다. 우연히 에베레스트산을 정복했다는 우리나라 등반가가 TV에 소개되면서부터다. 그때는 '알피니스트'란 말도 몰랐고, '높은 산에 오르는 사람'쯤으로 알던 때다.

그리고 세계적 알피니스트로 힐러리경밖에 모르던 시절이다. 에베레스트에 우리 나라 사람이 오르자 차츰 우리나라 산악인들도 세계적 등반가 반열에 오르고 명성은 대단했다. 우리나라 산악인들의 끝없이 이어지는 도전을 카메라에 담아 TV로 방영한 프로그램을 볼 때는 마치 독자가 간 것처럼 기쁘기도 했다. 다음날 직장에서 하루 종일 화제가 될 정도였으니...

반면 외국의 등반가에 대한 호기심은 점점 줄어갔다. 나이가 들면서 산에 대한 욕심과 그리움은 여전했지만 직접 가기는 어려워졌다. 대신 산악인에 대한 책은 가끔씩 읽고 대리만족을 얻기도 했다. 그들의 산에 대한 애정과 열정은 한마디로 '세계 최고'임에 조금도 낯설지 않았다.



독자는 그렇게 산과 친해졌다. 그리고 한참 때는 일주일마다 근처 가까운 곳에 등산을 갔다. 왜 산에 오르느냐는 질문에 유명한 알피니스트가 "산이 거기 있으니까"라고 답했다고 해서 그 말을 올라간 산에서 하루 종일 곱씹으며 등산가의 깊은 생각도 알게 됐다. 그러나 일주일마다 가던 산도 나이가 40대 이후로 넘어가니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 2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가다가 이젠 조금 유명한 산엔 아예 쳐다보지도 못할 정도가 됐다. 건강 관리를 제대로 못해 병원 신세를 한 번 진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산에 가지 못했다. 호흡기 질환이었으니 근처까지 갔다 해도 오르지 못하고 돌아섰을 터다. 가끔 TV에 방영되는 '산'이라는 프로그램으로 등산의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이 때 『서재의 등산가』가 눈에 띄었다. 왜 제목을 등산가가 서재에 있다고 할까? 궁금했다.



등산가가 나이 들어 산을 오르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살아갈까? 산에 갈 수 없으니 더는 등산가가 아닐까? 이제 오를 수 없어도 산을 떠나고 싶지 않은 등산가들에게 한국 등산의 역사를 써내려간 노(老)등산가는 산서(山書)와 함께 걷는 삶을 추천한다. 저자는 나이가 들어도 사랑하는 산에 대한 열정을 그대로 갖고 있구나 하며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한다. 산을 사랑하는 독자에게 산서(山書)는 산과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인생의 좋은 파트너가 되어줄 것이란 말에 크게 공감한다. 저자는 "등산은 산이 높을수록 오르기 힘들수록 매력이 있다"고 한다. 산에 가기 힘든 때에는 평소 미뤄두었던 산악 명저를 탐독해봄을 추천한다. 한국 최초의 에베레스트 원정을 이끈 노등산가가 회상하는 한국 등산계의 지난 역사, 그리고 지금 등산가들이 직면하고 있는 과제까지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뜻깊은 산악 에세이를 썼다.



우리는 왜 산에 오를까? 산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저자는 스마트폰에 얼굴을 묻은 젊은이들을 보며 우리가 산이라는 마음의 고향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며 안타까워한다. 산에 미친 인생을 살면서 먼저 이 고민에 빠진 사람들은 산에 대해 저마다 다른 생각을 내놓는다.


책에 따르면 발터 보나티는 알프스를 오랫동안 떠났다가 마음의 고향을 잊지 못해 몽블랑으로 돌아오는데, 그때 산록을 덮은 야생화 군락을 보고 넋을 잃는다. 『내 생애의 산들』 끝에 나오는 장면으로, 그때 그는 등반하려고 몽블랑에 온 것이 아니고 옛 고향이 그리워 다시 찾아왔다며 이렇게 써 나간다.

“나는 수년래 여름, 가을, 겨울을 혼자 생각나는 대로 아무런 뉘우침도 없이, 언제나 새로운 즐거움으로 알프스를 돌아다니고 있다.”

근대화와 때를 같이해 알피니즘이 생기고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등산가는 알피니즘을 고향으로 여기고 언제나 거기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것이 250년에 걸친 등산 역사가 아닐까. 이렇게 인류 역사에 나타난 등산 세계는 오늘날 그 독특한 지평선을 넓히고 있다. 이 엄청난 동기는 무엇이며 어디서 왔는가? “등산가는 누구나 산속에 자기의 고향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한 선구자가 있다. 사람이 산에 가는 것은 가지 않을 수 없어 간다는 이야기다. 거기가 자기 고향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인간의 귀소본능인 셈이며, 등산가가 사서 고생하는 까닭이다.(p. 179)



전문 등산가가 남긴 도전의 과정과 소회에 대한 기록은 더 이상 개인적인 체험기에 머물지 않는다. 그래서 등반기를 쓰는 등산가가 많고 그중에 세계적으로 이름난 산악 명저도 있으며 국내에서도 거듭 읽히는 것이다. 그런 산서들의 의미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산악인으로 사는 동안 내게 등산 세계는 바로 사색의 장이었다. 집에서는 산에 대한 책을 읽고 글을 썼으며, 밖에서는 언제나 간편한 등산 차림으로 산친구들과 만나 산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등산이 생활의 연장인 셈이었다. … 물론 고산 등산만 등산으로 본 것은 아니다. 표고가 낮은 설악산 같은 데서도 등산다운 체험을 맛볼 수 있다. 산에서의 사색과 체험은 산을 가는 사람의 자세에 달려 있으며, 엄동의 설악산은 그 좋은 무대다."(p. 144)


등산이 곧 인생이라는 근거는 필경 선구자들의 생의 궤적에서 확인할 수밖에 없다. 산악계에는 산에서 위험과 싸우다 사그라져 간 산악인은 많다.

여기 등산가의 숙명적인 인생이 있으며, 그들에게 등산은 바로 인생이었다. 등산가는 산과 만나면서 그 인생을 시작한다. 알피니즘 250년의 역사는 이렇게 산과 사람이 만난 역사다. 등산이 곧 인생임을 이 이상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 따로 있을까.(P. 176)



저자에 따르면 알피니즘 세계에는 ‘8,000미터 고소의 윤리’라는 불문율이 있다. 죽음의 지대에서는 남을 돕거나 도움을 받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비인간적이고 비도덕적인 듯하지만 히말라야에 도전하는 자의 자세는 그래야 한다는 당위론이다. 히말라야 자이언트 완등을 눈앞에 두고 안나푸르나에서 눈사태로 사망한 아나톨리 부크레예프는 “남의 도움을 기대하는 자는 에베레스트에 오를 자격이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한 히말라야와 알프스 등 세계에 이름난 등산 명소에 상업주의 원정이 유행한 지 이미 오래되었다. 노등산가는 “지난날 존 헌트가 에베레스트 초등을 노리고 항공사진을 보다 힐러리 스텝 부근의 모습을 판독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는데, 오늘날에는 거기에 사람이 몰려 교통정리가 필요하다. 에베레스트 정상에 수백 명이 운집해 장터를 방불케 하며, 로체 사면에 깔린 고정 자일에 사람들이 개미 떼처럼 매달리고 있다.”고 한탄한다. “릭 리지웨이의 ‘터무니없는 몽상’이 사어(死語)가 된 지도 오래다.” (213p) 그러나 산은 아직 거기에 있다. 한국의 산에서도 도전과 극복이라는 멋진 체험을 얻을 수 있다.



저자는 한여름 덕유산에 간다. "사람이 없었다. 모두 바다로 갔는지 아무도 없었다. 무주 구천동을 거쳐 백련사에서 시작하는 오름길은 끝이 없는 듯했다. 가도 가도 전망은 열리지 않았고, 가파른 돌길이 이어져 걷기가 매우 힘들었다. 준비한 물은 동난 지 오래였으며, 확확 달아오르는 지열에 숨이 꽉 막혔다. 덕유산의 여름은 원추리 꽃으로 유명한데, 그 많던 야생화가 한 송이도 눈에 띄지 않았다. 모두 타죽은 모양이었다.

나는 덕유산을 오를 때마다 히말라야를 연상한다. 에베레스트의 아이스폴을 지나 6,000미터 고소부터 로체 사면 밑까지 펼쳐지는 대설원을 걸었을 때 흰 눈의 복사열이 어찌나 심했던지 잊히지 않는다. 한여름 덕유산을 오르며 그 생각이 떠올랐다."(115p)라고 술회한다.

저자는 서재에 앉아 산악 명저와 함께 산을 오르면서 등산이 곧 인생과 같다는 깨달음을 다시금 얻었노라 거듭 말하고 있다. 등반기에는 사람이 담겨 있어야 마음에 스며드는 글이 되고 아직도 그런 글이 나오고 있음에 기뻐한다.



등산은 직업이 아니다. 생계 유지 수단이 아니며, 취미나 여가 선용이나 심지어 건강 관리 수단도 아니다. 산악인들은 조 심슨이라는 알피니스트를 잘 안다. 지난날 남미 고산에서 엄청난 시련을 겪고도 살아 돌아와 『허공으로 떨어지다』라는 불후의 등반기를 남겼지만, 그 뒤 그는 『고요가 부른다』를 썼다. 그저 산이 그립다는 이야기다. 산에 가는 행위에는 동기가 있으며, 그 동기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찾아오는 것이라고 나는 본다. 생활에 지치고 마음에 공허를 느낄 때 사람은 무엇을 할 것인가. 리카르도 캐신은 『등반 50년』에 산과 처음 만난 순간을 털어놓았다. 에드워드 윔퍼는 잡지사의 청탁으로 산의 목판화를 그리러 갔다가 그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헤르만 불은 고향 인스부르크에서 카르벤델(2,749m)이라는 멋진 산을 보며 자랐다. 이런 이야기는 끝도 없다. 우리 마음에는 문명보다는 자연을 그리워하는 잠재의식이 있다.(p. 180)



산은 행동의 장이면서 사색의 장이다. 누구나 산이 좋아 산에 가겠지만 그저 그렇게 끝나기에는 너무나 깊고 넓고 높은 곳이 산이다. 산에 담긴 자연성을 그대로 느끼고 알기는 결코 쉽지 않다. 산의 매력과 등산의 의미란 그런 것에 있다고 본다. 산에 가 서 그대로 돌아오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러고도 우리는 또 산으로 간다. … 그 옛날 머메리가 “정당한 방법으로”라는 말을 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취할 정신과 태도 역시 ‘정당한 방법으로’다. 지구상의 모든 산이 알려질 대로 알려졌지만 오늘날 알피니스트가 갈 곳은 그래도 산밖에 없다. 그 삼십 대 젊은이가 외로이 오른 한여름의 덕유산은 바로 그런 세계였다.(p. 118)


저자 : 김영도


서울대학교 문리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1977년에 한국에베레스트원정대 대장을, 1978년에 한국북극탐험대 대장을 맡았다. 사단법인 대한산악연맹 회장과 제9대 국회의원과 한국등산연구소 소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한국산서회 고문을 맡고 있다. 《우리는 산에 오르고 있는가》,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 《산에서 들려오는 소리》 등을 집필했으며 《검은 고독 흰 고독》, 《제7급》, 《8000미터 위와 아래》, 《죽음의 지대》, 《내 생애의 산들》, 《세로 토레》, 《무상의 정복자》, 《나의 인생 나의 철학》, 《산의 비밀》 등 다수의 산악 명저를 우리말로 옮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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