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 나쁜남자 편
최문정 지음 / 창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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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에 나온 '조선왕조실록'은 우리 나라 사람이라면 전부 다 안다. 맞다. 조선시대 왕이 정사를 돌본 기록을 담은 책이다. 책에서 배운 대로 편년체 사서(史書)로 수량은 2,124책(정족산본,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에 이른다.

조선시대 정사로 정치 및 정가 동향을 기록했다. 주로 왕을 중심으로. 그래서 야사(野史)와 구분된다. 또 활자본(필사본 일부 포함)이다. 1413년(태종 13)에 《태조실록》이 처음 편찬되고, 25대 《철종실록》은 1865년(고종 2)에 완성되었다.

두산백과에 따르면 《실록》의 편찬은 대개 전왕이 죽은 후 다음 왕의 즉위 초기에 이루어지는데, 춘추관 내에 임시로 설치된 실록청(또는 撰修廳·일기청)에서 담당하였다. 실록청의 총재관은 재상이 맡았으며, 대제학 등 문필이 뛰어난 인물이 도청(都廳) 및 각방 당상(各房堂上)으로 임명되었다.

시정기(時政記)와 사관(史官)이 개인적으로 작성한 사초(史草), 각사 등록(謄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가 실록편찬의 기본자료였고, 문집·일기·야사류 등도 이용되었으며, 후기에는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과 《일성록》도 사용되었다.

조선 역사를 다룰 때 이 실록을 기본으로 한다. 사관이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기록으로 남겼다. 비록 왕이 죽은 후에 후왕 때(대부분 아들)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승자의 기록'으로 폄훼되기도 하지만 왕은 절대 이 실록을 열람할 수 없도록 규정해 사관의 독립적 기록을 보장했다.

조선왕조 527년의 시기만큼 방대한 분량과 정사로 인정돼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바 있다.





이 책 『조선왕조실록 : 나쁜 남자 편』은 저자가 밝혔듯 정사를 기본으로 야사를 다룬 소설이다. “역사서에는 같은 인물에 대해서도 다양한 시각이 존재했다. 어느 편에서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내용이 되었다. 그래도 전해지는 이야기는 대부분 약자와 패자를 악하고 비겁하게 묘사하기 마련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의 말대로 '역사 소설'은 정사를 그대로 인용하지 않는다. 새로운 시각으로 재조명하는 일이다. 저자가 말하는 약자와 패자는 시대적 흐름에 따라 변명도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이들을 말한다. 이들은 권력 다툼이나 시대적 희생양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저자는 이 점을 부각시키고자 이 소설을 쓴 것으로 보인다.

『소설로 읽는 조선왕조실록-나쁜 남자 편』에는 7명의 ‘나쁜 남자’가 등장한다. 즉 양녕대군, 문종, 현덕왕후, 연산군, 단경왕후, 장옥정, 봉이의 입장에서 회상하는 이야기를 통해서 정사(正史)에서와는 다른 역사를 만날 수 있다. 순서대로 읽다 보면 조선시대의 ‘나쁜 남자’들을 통해서 본 색다른 역사 흐름을 파악하는 귀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승리했다 하옵니다.”

“참말이냐”

“예. 회안군 방간과 박포를 모두 생포하셨다 하옵니다.”

어머니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말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열린 문으로 어머니만 바라보던 우리 남매에게 달려왔다.

“다행이구나, 다행이야.”

효령대군과 충녕대군은 울면서 어머니의 품에 안겼다. 무슨 일이 벌어진 줄 모르는 아이들이었지만 그저 어머니의 그 말에 안정이 되었는지 그제야 지쳐 잠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가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렸다. 2년 전, 제1차 왕자의 난이 벌어졌던 그때처럼 아버지는 피범벅이 된 채 돌아왔다. 차마 묻지 못했다. 숙부인 회안군 방간은 어떻게 되었는지. 회안군 방간의 큰아들인 의령군은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지만 언제나 나를 무시하지 않고 귀여워해주었다. 의령군도 난에 참여한 걸까? 설마 다른 사촌 형제들도 죽이시는 걸까? 나는 두려워 묻지 못했다. 그저 궁금했다. 왕위란 것이 무엇이기에 친혈육과도 전쟁을 벌여야 하는지.

“쉿!”

그저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에 대해 나누는 대화를 엿듣고 싶었다. 아버지의 한숨과 함께 목소리가 들렸다.

“충녕대군(세종)이 첫째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것을……. 충녕대군이 왕위에 오른다면 만백성이 태평성대를 누릴 텐데.”

“첫째와 셋째가 바뀌어 태어났으면 하는 아쉬움을 말할 데가 아무 데도 없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오늘 그렇게 혼이 났으니 이제 세자도 정신을 차리고 학문에 정진할 것입니다. 그러니 믿고 봐주소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대화에 침전 앞에 있던 궁녀가 바들바들 떨었다. 난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대고는 조용히 물러났다.

「왕위를 버린 남자 - 양녕대군」중에서





폐출을 면했다고는 하나 기쁘지 않았습니다. 눈물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누워 있었습니다. 물 한 모금 넘기지 못했습니다. 그 모든 것이 제가 왕비가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모든 상황을 제어하지 못한 전하께 서운했습니다. 아니, 미웠습니다.

아버지는 권세를 탐할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걸 제일 잘 알고 계신 전하께서 어찌 모른 척 제 아버지가 사사되는 것을 두고 본단 말입니까?

그때부터였습니다. 체한 듯 가슴 한쪽이 답답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가슴을 쳐도 체기가 가시지 않았습니다. 태종대왕께서도, 전하께서도 밥을 들라 명하셨습니다. 임영대군 구를 임신한 몸이었습니다. 배 속의 아이를 위해 억지로 밥 한 술을 삼키면 삼키자마자 신물과 함께 도로 넘어왔습니다. 억지로 먹고 토하길 반복하다 보니 목구멍과 입이 위산으로 헐어버렸습니다. 차라리 먹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며 드러누웠습니다.

생떼 같은 자식을 품에서 떼어놓는 게 쉬운 일이었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왕비여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선대의 후궁들과 전하의 후궁들까지 복잡한 내명부를 다스리기 위한 방편 중 하나였습니다. 내 새끼를 기르는 사람에게는 어떤 어미든 함부로 할 수 없는 법이지요. 아무리 미워도 제 자식을 길러주는 후궁에게는 깍듯하게 예의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자식들을 볼모로 잡힌 채 저는 왕비로 살 수 있었습니다.

자식들을 볼 때마다 어미가 아닌 왕비여야만 했던 저 자신이 원망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모자라고 보잘것없는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던 것을요.

「기도 -소헌왕후」중에서




아바마마는 대신들을 모두 선정전에 불러 모았다.

“윤씨가 흉험하고 악역한 것을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당초에 마땅히 죄를 주어야 하겠지만, 우선 참으면서 개과천선하기를 기다렸다. 이제 원자가 점차 장성하는데 사람들의 마음이 이처럼 안정되지 아니하니, 오늘날에서는 비록 염려할 것이 없다고 하지만 후일의 근심을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는가?”

결국 아바마마는 좌승지 이세좌에게 명해 어머니를 그 집에서 사사하게 하고, 우승지 성준에게 명해 이 뜻을 삼대비전에 아뢰게 했다. 그리고 주서 권주로 하여금 전의감에 가서 비상을 가지고 가게 했다.

어머니가 사사되자마자 나의 외숙부들은 곤장 100대를 맞은 뒤 윤구는 장흥, 윤우는 거제, 윤후는 제주로 유배되었다. 그리고 외할머니 신씨는 어머니의 염장이 끝난 후 장흥에 유배되었다.

그리고 이듬해에 나는 어머니의 사사 덕분에 무사히 세자위에 오를 수 있었다. 나의 생모가 사사되었기에 신하들은 내가 세자가 되는 것에 대해 흠을 잡을 수 없었다. 아니, 신하들은 차라리 세자의 생모가 죽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나는 어머니를 희생해서 내가 즉위했다는 죄책감에 잠이 들 수 없었다.


어제 사묘에 나아가 자친(어머니)을 뵈니

잔 드리고 나서 눈물이 자리를 가득 적셨도다

간절한 정회는 한이 없는데

영령도 응당 이 정성을 돌보시리라


나는 어머니를 위해 시를 자주 지었다. 그래도 억울하게 돌아가신 어머니의 한이 내 가슴에 박혀 날 아프게 했다. 그래서 춤을 췄다. 내가 처용무를 출 때면 손짓과 발짓에 넘쳐나는 슬픔과 좌절감에 후궁들과 기생들이 모두 눈물을 흘렸다.

“제헌왕후께서는 용모가 선녀와 같으셨습니다. 굳이 닮은 사람을 꼽으라면 공민왕의 왕비 노국대장공주가 가장 비슷할 듯합니다.”

어머니의 얼굴을 알고 있는 내관의 말에 나는 노국대장공주가 그려진 초상화를 모조리 사들이라 명했다.

“어머니의 얼굴이 너무 보고 싶구나.”

내가 그렇게 한탄하면 내관은 거울을 가져왔다.

“거울을 보시옵소서. 전하의 용안이 참으로 제헌왕후마마를 닮으셨나이다.”

하지만 노국대장공주의 초상화를 아무리 많이 사들여도, 어머니를 죽인 사람들을 샅샅이 찾아내 모두 벌을 주어도 마음속은 언제나 채워지지 않고 텅 빈 채였다. 여전히 어머니의 부재는 내 가슴을 아프게 했고, 받아보지 못한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갈구는 내 가슴을 쓰리게 했다.

「붉은 적삼 - 연산군」중에서



위 사진들은 일곱 명의 '나쁜 남자'를 묘사한 책 사진이다. 저자가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재조명했는지 알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 쓴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단순히 피해자 시각이라고 하지만 역사적 사건의 피해자도 인간이고, 가해자도 살아가는 인간이다. 정치판에서는 흐름에 따라 어쩔 수 없는 희생양이 필요한 모양이다. 가해자라 해도 이후 정치를 잘해 백성들을 잘 먹고 잘 살게 해주면 추앙받고 존경받는 왕이 되니까. 일곱 남자에 등장하는 대부분 왕이 된 남자들이고 피해자는 왕비를 비롯 양가집 규수까지 다양하다. 이 책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후 사진은 서평의 내용과 상관 없이 독자 임의대로 넣어 독자들의 눈을 피로하지 않게 한 것임을 미리 밝힌다.


태종 이방원은 태조이성계의 아들로 왕자의 난을 일으켜 본인이 왕이 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형제들은 말할 것도 없고 계모를 죽이고 왕위에 오를 때가지 일등 공신들인 처남들까지 모두 죽여 처갓집을 풍비박산 만든 권력욕의 화신이다. 물론 정사에는 권력욕의 화신이란 말을 쓸 수 없다. 왕위에 오를 때까지의 사실들을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 사관의 의무기 때문이다. 사관은 왕의 정책이나 행위 등에 대해 판단하는 사람들은 아니다. 사실만은 기록하는 기록비서관이라 생각하면 맞을 듯하다. 때문에 잘잘못을 쓰는 것은 그들의 의무가 아니다. 사실만은 왜곡, 첨삭 없이 모두 그대로 기록만 할 뿐이다. 이에 대한 판단과 해석은 후손들의 몫이다. 저자는 태종 대의 일을 양녕대군의 시선으로 기술한다.. 세자였던 양녕대군은 여색과 향락에 빠져 폐세자된 인물인데 그의 시선으로 당시 자신의 아버지이며 왕이던 태종 때의 일을 바라본다면 정사와 또다른 해석이 되기 십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로 재조명할 수 있는 것이다.







세종은 양녕대군이 폐세자됨으로써 조선의 왕이 된다. 왕위에 오른 충녕대군으로 역사적으로 가장 완벽한 왕이지만 왕후 밑으로 자식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후궁들을 둔 왕이기도 했다. 또한 아버지인 태종이 세종의 부인인 소현왕후의 집안 역시 풍비박산 낼때도 지켜만 보고 있었기에 소현왕후의 시선으로 보면 역사적인 사실을 새롭게 그려 낼 수 있다.

문종은 세종의 아들로 적장자 중 조선 최초로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문종 역시 첫번째 아내인 휘빈 김씨는 남편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게 압승술을 하다 들켜 폐위되고 두번째 아내 순빈 봉씨는 동성애에 빠져 발각됨으로써 폐위된다. 첫째 부인은 어찌보면 남편의 사랑을 얻고자 한 일이니 세자의 반대가 있었다면 폐위되지 않았겠지만 폐위된 것은 세자 문종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다. 부인에게는 관심이 없었지만 여자관계는 복잡했던 왕 문종의 시선으로 이야기할 때 가능한 일이다.

성종의 아들인 연산군은 어머니 폐비 윤씨 사이의 아들로 아머니의 죽음을 알고 난 뒤 무오사화를 일으켜 수많은 사람을 죽인다. 또 왕으로써 정사를 돌보는 데 힘을 쏟는 것보다 채홍사를 보내 조선 팔도 각 지역에서 1000명이 넘는 흥청을 소집하는 등 폭정과 악정이 심해진다. 결국 중종반정으로 폐왕이 되어 죽는 인물인데 이를 연산군의 눈으로 보면 어떻게 나타날까.

중종반정으로 왕이 된 중종은 연산군의 이복동생으로 왕위계승자도 아니었고, 연산군의 폭정 속에서 몸을 낮추고 살았던 인물이었으나 연산군이 폐위 되는 바람에 어부지리로 왕이 된다. 중종의 부인 단경왕후는 남편이 왕이 됨으로써 왕비가 되었지만 아버지가 중종반정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폐위된다. 권력다툼의 악순환 속에서 그 사실들을 단경왕후의 시선으로 저자는 묘사한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장옥정(장희빈), 거기에 가상의 궁녀 김원미가 등장하여 그녀의 시선으로 장희빈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면 어떤 이야기가 될까.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소설로 보는 역사는 그래서 결과를 알아도 재밌다. 또 역사 재인식의 단초가 되기도 한다. 인현왕후는 현명하고 후덕한 본처이고 장희빈은 악녀로 묘사된다.

이 두 사람이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주장에 설득력을 준다. 기록들을 살펴 보면 장희빈이 그렇게 막무가내의 악녀는 아니었다고 한다. 또한 인현왕후가 폐위될 때 궁녀들이 좋아서 날뛴다는 기록은 선하고 후덕한 왕후가 폐위되는데 저렇게 좋아했을까란 의문이 든다. 그리고 궁녀들에게 장희빈은 인심이 후해서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장희빈이 숨진 후 사후에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최고 대우를 해준다.

숙종은 왕권 강화를 위해 왕후나 후궁일지라도 적절하게 이용하면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는 역사적 사실을 입증하는 사건이 된다. 또하나 재미 있는 사실은 유일하게 외모가 뛰어났다고 기록된 인물이 장희빈이라 한다. 연산군 때 죽은 인물보다 중종 때 죽은 사람이 훨씬 더 수가 많다고 한다.

철종은 두 번이나 역모에 휘말려 유배 보내진 강화도에서 농부로 살면서 첫사랑 봉이와 결혼까지 꿈꾸며 살고 있었다.

하지만 헌종이 후사가 없어 갑작스럽게 왕이 되고 봉이를 떠나게 된다. 드라마로도 방영된 바 있다. 역시 결말은 다 알고 있지만 과정이 극적이고 결말이 비극으로 끝나 드라마로 엮은 것이다. 당시 봉이의 시선으로 철종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생각해보면 무척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역사 소설은 우리가 학교나 책에서 배운 정사에 기초한 사실 외에 피해자나 희생양의 시선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우리에게 교훈을 주기도 한다.

그것이 역사 소설의 필요성이고 묘미이기도 하다. 사실 '나쁜 남자편'이란 제목에서 여성 피해자 중심으로 씌였을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는 다르지만 마치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배운 것 못지 않게 많은 생각거리까지 안겨준 이 소설에 감사한다. 어떤 사건이든 피해자의 시선으로 사건을 보면 또 다른 세상이 보일 것이다.






역사서의 내용은 같은 인물에 대해서도 다양한 시각이 존재했다. 어느 편에서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내용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전해지는 이야기는 대부분 약자와 패자를 악하고 비겁하게 묘사하기 마련이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성공한 자가 아니라 실패한 자의 시각에서, 강한 자가 아니라 약한 자의 입장에서 역사의 한 장면을 내 마음대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약하다는 이유로 악한 인간으로 몰릴 수밖에 없었던 나의 과거가 역사를 달리 바라보게 했다.

그렇게 해석한 한 장면 한 장면이 모여 한 권의 이야기가 완성되었다. 어쩌면 역사왜곡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겠다 싶을 만큼 나는 철저히 패자와 약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물론 《조선왕조실록》을 바탕으로 한 해석이지만, 나와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있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그저 약하기에 악할 수밖에 없었던 작가의 한풀이라고, 독자들이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 저자의 말 중에서


저자 : 최문정


이번에 펴낸 『조선왕조실록 : 나쁜 남자 편』의 최문정 작가는 오랫동안 《조선왕조실록》을 관심 있게 읽어왔다. 그러던 중 ‘성공한 자가 아니라 실패한 자의 시각에서, 강한 자가 아니라 약한 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 작가는 나쁜 남자에 이어 좋은 남자, 나쁜 여자, 좋은 여자 편도 쓸 계획이다. 최문정 작가는 여성과 가족애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해왔다. 주요 작품으로는 삼대에 걸쳐 세 여자의 사랑과 용서,

화해의 과정을 통해 애절한 모성애를 그린 《바보엄마 1, 2》(SBS-TV 주말드라마로 방영)와 발레리나인 딸과 군인 아버지의 오래된 갈등과 뜨거운 화해를 그린 《아빠의 별》, 불우한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네 자매의 뜨거운 우애를 다룬 《허스토리》(2014년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도서)가 있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백제의 딸이 일본의 태양신이 되었다는 도발적 팩션소설 《태양의 여신 1, 2》(원제 《아마테라스 오미카미》)가 있다. 에세이로는 지치지 않고 사랑을 위해 싸웠던 세기(世紀)의 연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사랑, 닿지 못해 절망하고 다 주지 못해 안타까운》, 《나를 찾아 떠난 스페인》(2015년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도서) 등 10여 권이 있다.

최문정(본명 유경愈景) 작가는 경남 진해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과학교육과를 조기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기도의 한 중학교에서 과학교사로 재직 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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