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느 중년의 일상 탈출 고백서 - 어느 날 도망치듯 떠난 여행이 내 인생을 구했다
하이디 엘리어슨 지음, 이길태 옮김 / 탐나는책 / 2020년 8월
평점 :
인간은 누구나 건강하고 활력이 넘칠 때 많은 일을 한다. 대부분 '먹고 살기 위해'서다. 먹고 사는 일로 삶의 대부분을 보낸다는 말이다.
그러나 개인적인 능력이나 기술은 달라서 수십 년간 일을 할 경우 은퇴 후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해 은퇴 후 다시 일을 하기도 한다. 이렇듯 일을 해 먹고 사는 것은 인간이면 누구나에게나 지워진 짐이다. 자신의 취향과 맞거나 그렇지 않거나. 결혼하고 자식을 낳을 경우엔 자녀들이 성장해서 홀로 서기가 가능할 때까지 부양 의무도 진다. 결국 누구나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해야 하고, 자녀들 키워 성장시킬 때까지 돌보아줘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것이 삶의 진리다. 그래야 더 나은 사회가 되고, 인류도 더 좋은 문명을 이뤄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누구나 같은 일을 수십 년 하다보면 문득 자신을 돌아보기도 한다. 자신의 신체는 물론, 사회적 위치, 경제적 능력 등 삶에 필수적 조건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가치관에 따라 열심히 일한 댓가로 충분히 갖춰졌는가를 살피는 것이다. 그럴 땐 보통 은퇴를 기점으로 역산해 남은 일할 기간과 비교해 자신의 현재 위치를 살피는 경우가 많다. 이때 자신의 일상에 회의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즉 어느 정도 경제적 능력도 갖추고 남은 삶을 여유 있게 살 수 있을 때 자신이 해온 일이 자신이 살고자 하는 삶과 너무 멀리 떨어진 것 같은 회의감도 들고, 탈출을 생각하기도 한다.
『어느 중년의 일상 탈출 고백서』는 홀로 딸을 키우며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치열하게 살아온 하이디는 수십 년 동안 갚아야 할 주택담보대출과 아무런 변화도, 아무런 기대도 없이 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일과에 지쳐 갔다. 마치 인생이 덫에 걸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삶의 나침반이었던 딸도 어느덧 자신의 곁을 떠나고 가뜩이나 지친 삶에 더욱 우울하고 외로운 나날을 보내던 하이디는 어느 날 거울 속에서 낯선 여자를 보게 된다. 남은 평생 하고 싶은 게 뭔지도 모르는, 눈에 생기라곤 없는 중년의 여자.
외로움, 목적 상실, 뼛속 깊숙이 스며든 피로, 기억조차 나지 않는 마지막 연애, 기대할 것 없는 하루하루, 몇 주, 몇 달, 몇 년…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 그래서 그녀는 집을 팔고 캠핑카를 구입해 도망치듯 떠난다. 가고 싶은 곳이 어디든, 얼마나 머물지 고민하지 않으며 미지의 시간으로 출발한다. 그녀가 만난 새로운 친구들과 새로운 사랑과 새로운 경험과 전에는 몰랐던 자유. 이 여행에 끝에선 어떤 삶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까?
우리와는 문화가 다르고, 삶의 방식도 다르고, 삶을 대하는 태도도 다르지만 인간으로서는 저자의 얘기에 공감이 간다. 독자도 똑같은 일로 탈출을 꿈꾸기도 했으니까. 다만 다른 점은 저자는 시도했고, 독자는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독자의 삶을 비교하며 읽기에 좋은 책이다. 독자에게는 아직 일상 탈출을 할 기회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일상 탈출은 아주 사소한 일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일상 탈출을 시도하는 저자의 의도가 우리 문화로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
아주 치열하게 삶을 살아온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빨리 지친다. 어쩌면 그동안 참아왔던 것이 어느 날 아주 작은 계기로 터진다는 말이 더 적확한 표현일지 모르겠다. 저자의 경우 그 순간은 출근길에서 노숙자들을 보았을 때였다고 고백한다. 우리와는 다른 문화에서 사는 저자이기에 이 모습이 인상적이고, 이때 일상 탈출을 꿈꿨다는 점이 의아하지만 저자에게는 자유로운 모습으로 보였나 보다. 이성이 있는 사람들에게 노숙자들은 동경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에겐 그들은 동정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위험하고 가혹한 환경에 처해 있는 떠돌이지만, 어느 날 저자의 눈에는 무한해 보이는 그들의 '자유'만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들은 갚아야 할 주택담보대출도 없고, 지불해야 할 청구서도 없고, 매일 똑같은 일과를 반복하며 사무실의 비좁은 칸막이 안에서 여덟 시간씩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로. 그렇다. 퇴근 후에 그들은 해야 할 집안일도 없다. 그들에게 시간은 무한한 상품이다. 우리 식 표현으로 아마 '생활에 찌든' 눈으로 봐서 그랬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이 두 문장은 독자 마음을 사로잡는다.
"누군가는 삶을 살고, 누군가는 삶을 살아낸다."
"어느 날 도망치듯 떠난 여행이 내 인생을 구했다."
책에 따르면 그때 저자의 이성은 깨달았다. 자신의 삶이 얼마나 기울어져 있는지, 자신이 얼마나 삶에 지쳐 있는지를. 그래서 집을 팔고 캠핑카를 구입한다. 미지의 공간, 미지의 시간으로 떠난다. 생활을 벗어나자 삶이 나타났다. 물론 저자도 처음에는 두려웠다. 처음 운전해보는 캠핑카. 길 한복판에서 갑자기 차가 멈추면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여자 혼자 떠나는 여행이라는 것도. 하지만 ‘혼자’일 때 생기는 위험은 꼭 여행 중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으며, 길 한복판에서 차가 멈추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닌 듯한 크고 예측불가능한 일은 언제라도 일어난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여행에 용기를 얻은 저자는 비로소 삶을 만난다. 어쩌면 그동안 그녀가 홀로 딸을 키우며 힘들게 지탱해온 건 ‘삶’이 아니라 ‘생활’이었는지 모른다. 여행을 하며 저자는 ‘진짜 삶’을 만난다. 그리고 삶을 누리고 있는 친구들을 만난다.
뇌종양을 앓은 이후 여행을 시작한 친구를 만나며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오롯이 누려야 함을 깨닫고, 삶이 자신에게 허락했으나 생활을 유지하느라 누리지 못한 신비하고 즐거운 순간들을 경험한다. 삶은 ‘행복하기 위한 ‘여행’임을 인지한다.
우리는 무엇이 진짜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지 모른다. 어쩌면 알고 있지만 해야 할 일들 때문에 하고 싶은 일들을 누르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이 일이 끝나면, 이만큼만 돈을 모으면, 이 정도의 성공 궤도에만 올라서면 등에 떠밀려 삶에 만족은 없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한다고 행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바로 내가 있는 이 자리에서 행복한 것이다.
누군가는 이 책을 읽고 지금 바로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고, 여전히 그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라고 주저앉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삶에 지친 당신이 무엇을 할 때 행복한가에 대해 한 번쯤은 생각해보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한 움큼의 용기를 심어줄 책이 될 것이다. 한번쯤 모든 것을 벗어 던지고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누구에게나 있을 법하다.
이 책 『어느 중년의 일상 탈출 고백서』는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소망을 몸소 실천한 저자 하이디 엘리어슨의 책이다.
저자에 따르면 저자 하이디 엘리어슨은 4개월의 짧은 연애 후 21살의 나이에 결혼한다. 전 남편 스티븐이 보였던 열정과 관심은 어린 저자에겐 낭만적이고 짜릿한 일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저자는 스티븐과 살아갈 긴 세월 동안 만날 여자 중 1명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결혼 2년이 되자 불화가 점점 심해졌고 딸 캐미가 6개월이던 해에 이혼한다. 그러고 전 남편 스티브는 다시 만날 수는 없었다. 여성 혼자몸으로 딸을 키우며 힘들고 치열하게 오직 돈을 벌어 딸을 부양하기 위해 열심히 살았다. 세월이 흘러 딸 캐미가 다른 지역으로 대학을 가면서 혼자 남겨지고, 캐미가 대학 간 지 6개월째 거대한 바위처럼 무거운 것이 저자를 짓누르고 혼자라는 것을 깨닫는다.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니 생기라곤 없는 중년여자가 보인다. 외로움, 목적 상실, 피로, 연애에 굶주림, 기대할 것 없는 하루하루가 저자를 덮쳐온다. 크리스마스 때 캐미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으로 그래도 참아왔지만 다 커버린 딸 캐미는 애인과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려 한다.
우울증이 저자를 휘감고 건강까지 이상이 생긴다. 심리 치료로도 치유되지 않자 캠핑카를 타고 여행을 마음 먹게 된다. 그렇게 집과 살림들을 모두 처분하고 그린몬스터라는 캠핑카와 반려견 라일리와 함께 여행을 시작한다.
그렇게 1년을 목적으로 시작한 여행은 어느덧 5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미국과 멕시코 국경을 넘나들며 다양한 여행지에서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목말랐던 사랑에도 빠지기도 한다. 자신의 삶을 온전히 즐기고 난 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면서 여행은 끝난다. 6년간의 캠핑카를 통한 대장정이 고스란히 한 권의 책에 담겨 있다.
어느 날 도망치듯 떠난 여행이 내 인생을 구했다는 부제처럼 저자는 이 여행을 통해 살아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그리고 삶의 목적과 행복도 되찾았다고 쓴다. 모든 것을 벗어 던지고 훌쩍 떠나는 여행. 독자가 똑같이 경험할 순 없지만 대리 만족으로 책 읽는 시간이 보람차다.
코로나 사태로 여행이 거의 불가능한 요즘 이 책을 통해 해외 여행한 기분도 만족스럽다. 시행착오적 요소도 보이지만 자신과, 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한 일상 탈출이라 공감도 간다. 여행의 재미도 만끽할 수 있을 정도로 사실적이라서 빨리 코로나 사태가 종식되면 미뤘던 해외 여행을 집콕 기간에 꿈꿔도 좋을 것 같다. 목적은 다르지만 일상 탈출이라는 점에선 저자와 다르지 않을 터다.
나는 내 집과 대부분의 소유물을 포기하면 얼마나 자유로워지는지, 그것이 없으면 얼마나 홀가분해지는지 알게 되었다. 여행을 하면서 살아가는 내 방식이 모든 사람에게 맞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생활 방식은 분명 내 인생의 이 특별한 시기에 내게 딱 맞았다.
언젠가는 그런 생각이 바뀔 수도 있고, 결국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나는 정말 내 삶을 사랑하고 매일 이런 모험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내 인생을 통틀어 이때만큼 독립심과 자유로움을 느낀 적이 없었고, 그 기분은 정말 짜릿했다.(p. 242~243)
나는 또한 자연, 동물, 그리고 이 세상이 선사하는 온갖 멋진 장소를 전과는 다른 눈으로 보게 되었다. 그리고 한동안 잃었던 희망, 낙천적 성격, 삶에 대한 열정을 되찾았다. 삶이 어둡고 우울할 때에도 바로 코앞에서 좋은 일들이 기다리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내게 무엇이 중요하고 앞으로 살면서 무엇을 원하는지 뚜렷이 알게 되었다.(p. 407~408)
저자 : 하이디 엘리어슨
프리랜서 작가이며 컨설턴트이다. RV 어드벤처 회사에 글을 싣고 온라인 뉴스에 RV 여행에 관한 기사를 50편 이상 썼으며, 교육 과정과 매뉴얼을 개발했다. 『어느 중년의 일상 탈출 고백서』는 그녀의 첫 작품이다. 현재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에 살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