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랑의 확률
이묵돌 지음 / FIKA(피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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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랑의 확률』이란 제목에서 매력을 느낀다. 사랑의 확률은 어느 누구와, 어느 관계이냐에 따라 다르겠지 하는 마음을 숨긴 채. 이 소설은 어떤 사랑을 다루고 있을까. 호기심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한다. 수학 용어가 튀어나오고 작가가 애써 모호한 표현으로 독자를 혼란스럽게 해도 여전히 '사랑의 확률'에 꽂힌 채 책읽기를 계속한다.

"사랑인지 아닌지 확실히 몰라, 누구도 모르지."

"사랑은 예고 없이 만나는 소나기 같은 것."

가끔 가다 소설 속 인물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들은 작가를 대신해 감정이입시켜도 별 무리가 없으리라는 생각이다. 사랑하는 마음, 사랑의 감정이란 수학처럼 공식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물론 일정한 패턴이 있지만, 그것이 반드시 그러하지 않다는 것. 그 결과값이 다름을 알면서도 우리는 매번 똑같은 입력값을 관계에 두는 건 아닐까.

한때 모두가 스무살이었고, 서툴지만 그래서 더욱 애틋했던 사랑을 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경험이 많아지면서 조금은 뻔한 이야기 앞에서 예전처럼 가슴이 떨리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떤 사랑의 확률』은 독자의 스무살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우리 시대의 20대는 16년 내내 공부만 하면서 살다가, 어느 날 덜컥 어른이 돼버린다. 미적분은 알아도 사랑은 모르는, 똑똑한 오늘날의 청춘들은 막상 어른이 되었을 때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다. 물질 만능주의 사회에서 자라 배는 부르지만, 영혼은 그만큼 더 공허해졌다.

사람이 싫으면서도 영원한 사랑을 필요로 했던, 한때 스무 살이었던 우리는 어떤 사람과 사건들을 겪고, 어떤 생각을 하면서 ‘진짜 어른’이 돼가는 것일까?

입시, 낯선 세계, 새로운 만남, 사랑과 이별, 취업준비에서 도피유학까지. 나약하고 우울한 이 시대의 젊음을 담은 청춘 소설 『어떤 사랑의 확률』은 대한민국에서 20대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외롭고 혼란스러운 일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동시에 따뜻한 위로와 희망으로 ‘밀레니얼 세대’ 특유의 섬세한 감수성을 어루만진다.

여러 매체에 칼럼과 수필을 연재하고 개인 SNS를 통해 독자들과 활발히 교류해 온 이묵돌 작가는 그동안 문단을 통하지 않고도 많은 독자와 글쓰기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실천하고 보여주었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새로운 방식의 글쓰기를 시도하던 이묵돌 작가가 이번에는 첫 장편소설을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려고 한다. 무(無) 근본 오랑캐 같은 글을 쓴다고 자신을 표현하지만 ‘등단 이전의 하루키가 20대에 글을 쓴다면 꼭 이런 느낌일 것 같다’라는 독자평처럼 그의 글에 열광하는 20대가 많다는 점은 이 시대 청춘들이 원하는 글쓰기가 과연 어떤 것인지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다.




1. 연애의 확률

2. 관계의 사칙연산

3. 마음의 증명

4. 우리의 삼각함수

5. 서로의 여집합

6. 감정의 절댓값

7. 불확정성의 원리

8. 사랑의 극한값


주인공 민혁에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사랑. 자신도 모르게 덜컥 어른이 되어버렸듯, 사랑 또한 서투르기 그지없는 어색한 모습으로 맞이하고 만다.

민혁의 모습을 통해 첫사랑의 설렘부터 진정한 사랑의 의미까지, 복잡한 수학 문제처럼 알쏭달쏭하기만 했던 기억들이 내 삶에 어떤 의미가 되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망설이느라 놓치거나 서툴렀던 사랑의 순간들. 어쩌면 그것은 예고 없이 찾아오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사랑은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는 사건이나 알고리즘 같은 게 아니다. 그냥, 아주 가끔 외로운 우리에게 닥쳐오는, 그러면서 아주 소중하고 의미 있는, 말하자면 날씨 같은 것이다. 산책하기 좋은 것 같아서 신나게 밖에 나갔다가도 예고 없이 닥치는 소나기는 어쩔 수 없듯이, 비가 쏟아진다고 해서 우산을 안 가져온 걸 후회하지 않아도 된다. 알고 보면 그럴 필요가 하나도 없다. 함께 비 맞을 사람이 곁에 있다면 더더욱…….

그리고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과거의 사랑이 떠올라 후회가 밀려온다면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 그 사람과 함께 한 추억이 언제나 내 기억 속에 존재한다면 더더욱……. 그리고 언젠가는 내 삶에 예고 없이 닥치는 소나기가 또 내릴 것이기에.




엄마는 학교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원룸으로 민혁을 쫓아냈다. 그러나 민혁은 난생처음 생긴 자취방보다 가까운 학교 도서관에 더 오래 머물렀다.

B대학 중앙도서관의 자유 열람실 66번 자리는 지정석 취급을 받았는데, 민혁이 평일 주말을 가리지 않고 거기서 숙식을 해결하기 때문이었다. B대학 학생들은 매일 같은 자리에서 곯아떨어진 민혁을 애처롭게 바라보며 쑥덕거렸다

"담당 교수가 얼마나 괴롭히면 저런 고생을 하고 있을까? 안쓰러워 죽겠네……."

"난 절대 대학원은 안 갈 거야. 졸업 학기에는 반드시 취업하고 말겠어."

"대단한 근성이야. 내가 저 사람 같으면 한참 전에 재떨이로 교수 머리를 내리쳤을 텐데. 저 교수가 사람이냐?"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민혁은 쌕쌕 숨을 내쉬면서 자고 있었다. 숫기 없고 지질한 남성의 전형이었지만 어떤 면에선 참 대범한 인물이었다.

「 연애의 확률」 중에서




"제발 좀 와. 제발 와서 청소 좀 해. 청소하고 살아야 인간이 깨끗해진다고. 네가 그렇게 추레하게 입고 다닐 수밖에 없는 이유가 뭔지 알아? 네 방이 이 모양 이 꼴로 더러워 처먹었기 때문이야! 세상에. 여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게 더러운 건데……."

"여자들 방이라고 다 깨끗한 건 아니잖아?"

민혁은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대꾸했다.

"어, 깨끗해. 너에 비하면 비교하는 게 실례일 정도로 깨끗해. 그리고, 원래부터 더러운 사람이라고 더러운 걸 좋아하겠냐? 오히려 반대지. 사람은 자기한테 없는 걸 가진 사람한테 호감이 가는 법이니까. 이 멍청한 놈아. 네 몸에 걸친 옷에서 무슨 냄새가 나는지 알아? 집을 무슨 쓰레기장으로 만들어 놨어."

"그딴 게 뭔 상관이야. 내가 못 맡으면 되는 거 아냐?"

"진짜 맞는 말만 골라서 하는구나. 처맞는 말."

「관계의 사칙연산」 중에서






가까스로 평정을 되찾은 민혁이 이어서 말을 꺼냈다.

"이번 주 일요일 시간 되세요?"

"음, 죄송해요! 저 일요일에는 많이 바빠서……."

"아, 아니에요. 제가 죄송해요. 너무 갑작스럽게."

"그날 썸남이랑 데이트해야 하거든요. 자주 가는 카페에서 알바하시는 분인데…… 진짜 너무 귀엽다니까요. 사진 볼래요?"

채은이 내민 휴대폰 화면엔 언제 찍었는지 모를 민혁의 사진이 띄워져 있었다. 사진 속 알바생은 애써 다리를 꼰 채 책을 읽고 있었다. 또 난생처음 마주한 세계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으로 파르르 떨고 있었다. 굳이 말하자면, 이제 막 알을 깨고 나오려는 아기 새처럼…….

「마음의 증명」 중에서








코인 노래방은 교착상태에 놓여 있던 두 사람의 관계 속에서 몇 없는 진전이었다. 민혁에게 음악이란 오랜 시간 듣는 즐거움으로 그쳤다.

노래방에 가 본 적도 거의 없었다. 학기말고사가 끝나고 어수선한 분위기의 친구들이 한사코 꼬드길 때조차 노래는 부르는 게 아니라 듣는 거야, 하고 선을 그었다. 설날이나 추석에는 별수 없이 따라가기도 했지만 무언가 골라 부르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랬던 민혁이 "자기야, 나랑 노래방 같이 갈래?"라는 채은의 제안에 흔쾌히 응한 건 가히 놀라운 일이라 할 수 있었다. 하기야 민혁으로서도 미적지근해진 두 사람의 관계며 마음 같은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새로운 무언가를 하자는 제안 자체가 새삼스러워진 기분으로부터, 어떤 식으로든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쨌든 민혁은 적당히 관계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으로 노래를 시작했다. 그러나 적잖은 시간, 수차례의 반복을 거치면서 자연스레 가창에 재미를 붙였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지만, 뭐든 요령이 붙어 조금씩 초보티를 벗어날 때가 가장 재미있는 것도 사실이다.

변함없이 계속되는 학업이며 지루한 일상 속에서 딱 그 정도의 취미가 필요했던 면도 있다.

「우리의 삼각함수」 중에서




샐리가 For Harry라는 비행기 티켓을 남기고 갔다. 사랑은 용기를 내는것, 그리고 안전지대를 때로는 과감히 벗어나게 한다. 이전의 나는 송두리째 없어지기도 하고. 얼마나 강력한 감정인가. 혼자서 종착점에 도착한다면, 너무 외롭다. 함께 웃고 뛰는 사람이 있기에 종착지에 도달하지 못해더라도 좋은 경험이라고 하지 않을까.

민혁의 사촌누나인 은희가 결혼해서 이제 아기 엄마도 되는데, 민혁의 엄마가 해주는 말이다.

"반드시라는 이유는 사실 없었다."

그냥 일어나 버렸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가끔 닥치는 소나기를 피할 수 없듯이, 그냥 그 순간에 빠져버린 것. 날씨. 그 말도 공감이 간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독자들은 "역시 사랑은 해볼만한 것이라는 것"이라고 느낄 것이다. 작가가 확률, 삼각함수, 절댓값, 여집합 등 어려운 수학 용어로 표현하며 아무리 골치 아프게 해도 사랑이란 누군가와의 감정적 깊은 공유로 내면을 더 풍요롭게 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물론 때로는 너무 아프게도 하지만, 그럼에도 마음껏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다는 것은 인간에게만 주어진, 신의 최고의 선물임을 확신한다.







저자 : 이묵돌


1994년 경남 창원에서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다섯 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대구로 이사했다. 기초생활수급자 세대로서 성인이 될 때까지 정부보조금을 받았다. 홍익대학교 경영학과에 진학하며 상경했지만 생활고를 겪다 자퇴했다. 중학생 때부터 글을 썼다. 서울에서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취미삼아 인터넷에 쓰던 글이 관심을 끌었다. 팔로워를 수십만 명쯤 모았다. 페이스북에서는 ‘김리뷰’라는 필명으로 알려져 있다. 책 몇 권을 내고 강연을 몇십 번 했다. 만 스무 살에 콘텐츠 기획자로 스카웃되면서 회사생활을 시작했다. 퇴사 이후에는 IT회사를 창업했다. 온라인 플랫폼을 기획하고 출시했지만 2년 뒤 경영난으로 폐쇄했다. 이후 여러 온라인 매체에 칼럼 및 수필을 기고하면서 프리랜서 작가 생활을 했다. 본관이 영천인 이씨는 어머니의 성이고, 묵돌은 오랑캐 족장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실제로도 무근본 오랑캐 같은 글을 쓴다. 굳이 의미를 갖다 붙이자면 몽골말로 ‘용기 있는 자’ 정도가 된다. 2019년에 수필집 『역마』, 『사랑하기 좋은 계절에』, 2020년에 『그러니까 우리, 갈라파고스 세대』, 『마카롱 사 먹는데 이유 같은 게 어딨어요』, 단편 소설집 『시간과 장의사』를 출간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에서 진행하는

체험단,리뷰단에서 제공 받아 작성한 솔직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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