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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어머니는 바람이 되었다
변종옥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7월
평점 :
이 책을 읽으며 마음속으로 가장 많이 되뇌었던 단어는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누구에게나 그렇듯 마음과 자신의 육체의 고향이다. 어머니는 잠시는 잊어도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존재이다. 자신이 죽을 때까지 그립고 포근한 느낌의 대상이다. 힘들 때도 찾고, 기쁠 때도 찾는다. 아마 죽을 때도 어머니를 한 번쯤 떠올려보고 생을 마감할 것이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어머니가 그리우면 당연히 아버지도 생각난다. 우리 모두는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받은 몸으로 살아가니까. 죽을 때까지. 그래서 우리 모두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맘속에 간직하고 있다. 살아 계시든 돌아가셨든. 돌아가셨으면 그리움이 더하면 더하지 줄어들거나 없어지진 않을 터다. 그렇게 우리는 어머니의 눈을 통해서 세상을 보고, 아버지의 눈을 통해 세상을 판단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가 우리에게 그랬듯이 우리도 자식에게 그렇게 사랑과 정성을 다한다. 그것이 삶이다. 삶의 과정이야 환경과 유전적 성향에 따라 다르고, 삶의 모습도 달라지지만 어머니는 언제나 절대 존재이다.
어머니의 눈으로 세상을 보니 주위 하찮은 사물 하나도 소중하다. 어머니는 그렇게 주위 풀꽃 하나, 사물 하나에도 사랑스런 숨결을 불어넣는다. 그래서 더 소중하다.
책 속에서 저자의 어릴 적 기억은 새롭게 다가온다. 세상 태어나서 처음으로 접한 어머니. 그리고 저자의 어린 시절의 고향 풍경은 가난하지만 정겹고, 희망을 갖고 열심히 사는 우리들 옛 모습이 그대로 재현된다. 저자 역시 풍족하진 않더라도 공부도 곧잘 하고 먹고 살 만큼은 살았나보다.
간호대학에 들어가고, 간호사 생활도 했으니 열심히 산 것 같다. 특히 프롤로그를 통해 카프가의 『변신』을 꺼내드니 책도 많이 읽은 듯하다.
물론 카프카의 『변신』의 내용이 저자가 책 속에서 하고 싶은 얘기와 맥이 닿아 있다. 잠자고 일어나니 해충으로 변한 카프카의 소설 속 인물과 자신의 처지와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하고 싶은 것 같다.
육체는 끔찍한 해충으로 변했지만 정신은 그대로인, 그래서 '돈 버는 기계'에 불과한 현실을 묘사한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얘기는 자본주의가 가져오는 인간관계 내지 가족관계의 변화를 예리하게 포착한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카프카의 주인공은 요즘 현대인이 처하게 되는 상황들을 아주 현실적으로 묘사해 충격을 주었음에 틀림없다. 경제력을 상실한 주인공은 가족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는 존재가 된 것에 대한 저자의 충격도 컸나보다. 다시 말해 저자가 살아온, 알고 있는 가족관계는 그것이 아니기 때문이리라.
앞서 말한 대로 풍족하지 않아도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 속에 정을 나누고 쌓아가는 삶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 저자는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살아보니 우리 현대인의 삶과 가족관계와 너무나 닮았다는 것을 깨닫고 어머니가 더욱 그리워졌을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을 쓰게 된 것이리라.
이 책은 소설 형식이지만 굳이 구분하자면 '자서전'에 가깝다. 태어날 때부터 어릴 적 환경, 가족, 그 시절 친구와 친척 얘기가 이어진다. 또 결혼 생활과 '시집살이' '시어머니 와병-병 수발' 등과 이사, 셋방살이, 아파트 장만, 이혼, 딸, 큰딸 결혼 등 우리 보통사람과 비슷한 삶의 모든 것을 대체적으로 연대순으로 서술하고 있다. 소설의 형식을 빈 것은 진실을, 진심으로 더 솔직하게 전하기 위해서였으리라는 짐작은 쉽게 할 수 있다. 수필가가 되고 소설도 쓰고 한 사람의 작가로 살고 있기에...
어머니 일은 해가 지고 어두운 밤이 되도록 마무리되지 않았습니다.
낮에 풀 먹여 밟기를 반복해 손질한 모시와 삼베옷을 앞 논 벼 포기 위에 널어놓았다가 밤이슬을 맞춰 촉촉해지면 숯불 다리미질을 하여 마무리 손질을 해야 했습니다. 봉숭아 꽃물을 손톱에 물들이려고 낮에 봉숭아꽃과 잎을 따 백반을 넣어 찧어놓고 손가락을 감싸줄 아주까리 잎도 마련해 두었습니다.
밤은 깊어가고 피어오르는 모깃불의 연기도 실같이 가늘어질 때쯤이면 연기를 타고 마당에 깔아놓은 멍석 위로 별들이 내려옵니다.
기다리다가 꾸벅꾸벅 조는 우리들 손톱에 어머니는 꽃물을 싸매주었습니다. 손톱 끝에 달린 봉숭아 꽃물은 저승 갈 때의 등불이라고 하셨습니다.
언니는 무서리 내릴 때까지 꽃물이 손톱에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그해에 찾아온다고 했습니다. 나는 무명실로 꽁꽁 묶은 손끝이 저릿하고 아릿한 느낌도 예뻐질 손톱을 생각하면 즐거웠습니다.
<- 본문 중에서>
‘수필을 쓰면서 대수롭지 않게 보이던 사물들이 새로운 모습과 향기로 다가오는 기쁨을 맛보게 되었다’는 저자의 글에는 사물을 바라보는 저자의 애정 어린 시선이 담겨 있으며 저자의 시선, 글을 매개로 하여 다시 생생하게 피어나는 사물의 문학적 발현을 찾아볼 수 있다.
문장에는 저자의 숨결이 담겨 있다. 호흡의 변화를 통해, 작품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사건을 변화시키며 전개해 나가는 저자 특유의 숨결이 작품 속에 그대로 녹아들어 있어, 이 숨길을 따라 작품을 읽어나가는 것 또한 독자에게 재미로 다가온다. 짙은 페이소스를 통해 독자를 작품 속으로 이끄는 강렬한 힘이 있다.
기쁨이 오롯이 담겨 있기도 하며, 슬픔이 축축하게 젖어들어 있기도 하다. 가슴 간질이는 설렘이 있다가도 ‘바쁜 애 불러다 놓고 또 안 죽으면 어쩌니’ 하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서글픔을, ‘바람이라면 어젯밤에 너에게 날아가 보았을 거야’ 하는 아쉬움과 애환이 담겨 있다.
기구할 수도 있는 한 인물, 혹은 가족사가 사실적이면서도 비극적이게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저자 특유의 맑고 순수함이 내포되어 있는 문체 때문으로 생각된다. 방황, 좌절, 욕망에서 다시 희망으로 끝맺는 저자는 비극적인 삶 속에서도 생은 계속된다는 인간에 대한 믿음과 인간애를 통해 우리를 한층 더 성숙하고 성장하게 만들어준다.
저자 : 변종옥
잔칫집에 갔다 돌아와 주머니에서 왕사탕을 꺼내며 ‘먹어봐라. 너 주려고 먹는 시늉을 하며 슬쩍 넣어 왔단다. 사람이 아무리 많이 모여 있어도 우리 딸보다 이뿐이는 없더라’ 하시던 편파적인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