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nk Book 핑크북 - 아직 만나보지 못한 핑크, 색다른 이야기
케이 블레그바드 지음, 정수영 옮김 / 덴스토리(Denstory)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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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 하면 떠오르는 것들을 나열하라고 하면 대부분 사랑과 연애, 하트 또는 로맨틱 무드, 혹은 밸런타인데이를 언급한다. 자연스럽게 단맛을 대표하는 색이기도 하다. 풍선껌과 솜사탕, 만화 「심슨 가족」에 나오는 유명한 핑크 도넛은 더욱 달콤하며, 핑크 드레스는 더욱 사랑스럽고, 핑크 꽃은 빨강 꽃보다 로맨틱할 것만 같다.

이 책 『핑크 북』은 그러나 핑크는 변신하는 색이라고 한다. 색상에 따라, 또 맥락과 주변 색에 따라 낭만적이지만, 대담하고 저속하기도 하다. 빨강과 하양 사이 핑크의 영역은 제법 멀듯, 역사와 다양한 문화권에서 핑크는 유행을 거듭해오며 자신의 색과 의미를 유연히 바꾸었다.

파스텔핑크, 페미니즘과 핑크의 상업화를 이끈 밀레니얼핑크, 가장 최신 유행을 이끈 형광 핑크까지 다양한 핑크의 향연을 이 책에서 감상할 수 있다.






핑크는 여성의 색이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어렸을 때부터 배운 대로 또 본 대로 핑크는 여성스러움의 대명사로 생각한다. 사실 ‘핑크는 여자, 파랑은 남자’라는 성별 코드가 고정된 시기는 고작해야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라고 이 책은 설명한다. 그런데 어떤 사연으로 핑크는 여성들의 색이 되었을까? 이 책은 색 자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핑크에 대한 색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이제 ‘누드’라는 독립적인 색 이름이 된 베이지핑크도 있다는 걸 본 적은 있지만 실제 의식하며 생각해 보기는 처음이다. 핑크를 확대 개발하고 의미와 적용에 전문적인 저자는 이 베이지핑크 색조를 살색이라고 한다면, 대체 누구의 살색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핑크를 규정하는 의미들을 여러분 각자가 어떻게 느끼든지, 이 책을 통해 그런 고정관념을 당연하지 않게 고민했으면 한다고 당부하면서.




책에 따르면 또 핑크색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어떨까라는 제안을 한다. 역사적으로 핑크를 어떻게 해석했는지를 설명하고, 왜 핑크가 지금처럼 여성들의 색이 되었는지를 알려준다. 사실 그 과정을 보니, 코카콜라가 광고에 빨간옷을 입은 산타를 등장시키면서 '산타=빨강'이라는 공식이 생겼듯. 핑크도 마케팅의 결과라고 해도 무방하다. 물론 산타처럼 극적이진 않지만, 핑크를 바라보는 현대인들의 시각을 보면 적어도 마케팅 관점에서는 꽤 성공한 셈이다.

책을 읽으면서 사람들이 일상에서 핑크를 소비하는 방식을 보면서 특정색으로 성별과 연관시키는 것이 참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그 색이 차별과 연관된다면 더 그렇다. 캐나다의 한 고등학교에서 핑크색 셔츠를 입고 등교한 남학생이 왕따를 당하는 것을 보고, 다른 친구들이 핑크 셔츠를 입고 등교하면서 시작된 핑크 셔츠 데이(Pink Shirt Day)를 보면, 색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물론 같은 이유로 극복할 수 있음을 핑크 셔츠데이로 알 수 있지만, 그럼에도. 색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경솔한 일인지. 하얀 헬멧, 노란 자켓처럼 색 자체가 주는 상징성은 존중하되 색은 색 그 자체로 보는 인식을 심어준다. 핑크든 빨강이든, 노랑이든. 파랑이든 색 자체로 아름답다. 남자가 핑크를 사랑하고 핑크 망토를 입은 히어로즈면 어떤가. 어울리기만 하면 된다. 핑크에 대한 편견도 없애고 잘 활용하면 새로운 개념도 창출해낼 수 있다는 영감을 주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훌륭하다.




이 책에서는 저자의 깊은 핑크 관찰자적 시선을 따라 사회적·문화적 배경에서 핑크를 넓게 이해하면서 맘껏 감상할 수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핑크의 추억을 꺼내며 아직 만나보지 못한 세계 곳곳의 핑크로 탐색 여행을 하듯 자연 속 핑크 동물과 식물을 마주하고, 핑크빛 가득한 도시를 여행하며, 역사의 순간에서 등장한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정장과 엘비스 프레슬리의 자동차를 만나는 놀라움의 연속이다.

굴라비 갱의 핑크 사리, 위장용 핑크 등의 반전 있는 핑크 이야기도 놓칠 수 없다. 우리 주변에서 무심코 만날 수 있는 핑크 반창고, 성소자들의 핑크빛 삼각형 이야기는 핑크가 어떻게 소통과 마케팅 도구로서 활용되었는지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최근 존슨앤드존슨은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짙은 갈색, 황토색 등의 5가지 색 반창고 사진을 공개했다. '인종차별 반대 반창고'를 다시 출시한다는 반가운 소식과 함께. 반창고 세계에서 분홍이 기본이자 정상 색이던 시대는 끝나가는 듯하다. ‘피부색’이나 ‘살색’ 하면 분홍 계열을 떠올리는 인식을 바꾸려면 더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어쩌면 우리도 수없이 다양한 핑크와 친해지기에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내 주변의 핑크가 담은 세상부터 찾아보는 건 어떨까? 다양한 색으로 채워진 주변 세상을 주의 깊게 바라보기는 불가능한 일이라도, 좀 더 관심 있는 눈으로 보는 것은 가능할 테니까. 일단 이 책 핑크북에서부터 아직 만나지 못한 세상에 대한 관심이 시작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거부감도 있을 것이다. 당연하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핑크를 소개하고, 자신의 생각을 독자들에게 따라오라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실험적으로 내놓고 독자의 해석과 판단을 스스로 내리게 한다.

삽화가 참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한번쯤 해보고 한편으로는 '변태'로 색에 대한 이상 집착의 소유자로 저자를 판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쓰고 삽화를 그린 케이 블레그바드는 일러스트레이터 겸 디자이너이다. 자신의 직업에 걸맞게 뛰어난 감각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아무튼 책을 읽는 내내 다양한 삽화가 눈을 즐겁게 해주는 건 사실이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전형적으로 '남성스러운' 인물들을 핑크로 표현하는 실험을 해본다. 핑크로 물들여진 인물들이 어떻게 달라 보이는가? 우스꽝스러워 보이는지, 아니면 더욱 매력 있어 보일까.

독자의 솔직한 생각을 말한다면 조금은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아마 익숙지 않아서가 가장 큰 이유겠지만 독특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왜 단지 핑크라는 이유만으로 독특해 보이는 걸까. '남성스러운' 인물에게 핑크를 물들이자 우스꽝스러워 보인다는 편견이 먼저 작용한 것 같다.

작가가 질문을 던지고 답을 내놓는 게 아니라 질문과 사진 자료만 남기고 장을 마무리하는 것은 독자들을 '핑크 호수' 속으로 풍덩 빠지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책의 중간 부분쯤 읽어가면 인터뷰한 내용이 나온다. 인터뷰 속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독자들에게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괜찮다.

인터뷰의 대상자와 같은 생각을 갖는 독자들은 그들과 생각을 공유하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처음 접한 색에 관한 인문학 도서이다. 색깔 전체를, 혹은 일부 색에 대해 쓴 책은 여러 번 본 적이 있지만 핑크 하나만으로 한 책을 쓴 것은 처음이다. 그리고 색에 관한 최근의 색은 대부분 우리들의 심리 분석이나 마음 치유에 사용된다.

그래서 이 책은 핑크색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 등을 없애는 데 큰 효과가 있었다. 핑크색 건물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있는데 여기에 나온 핑크색 건물은 더 큰 의미가 있어 독자의 편견을 제거해 주었다. 그 편견은 딱 한 가지 20세기 후반 우린나라 삼풍백화점 건물이었는데 그때 그 건물의 색이 핑크색으로 기억돼서였다. 참 쓸데없는 기억은 오래 간다며 슬며시 웃음까지 지어본다.






저자 : 케이 블레그바드(일러스트레이터 겸 디자이너)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지금은 뉴욕에서 커다란 고양이 한 마리와 어마어마한 양의 핑크 물감과 함께 살고 있다. 주로 여성 정체성과 다양한 심리와 관계들, 정신 건강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으며, 『뉴욕 타임스』와 『뉴요커』 등의 매체에 작품을 실었다. 그림 작업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디자이너로서 능력을 발휘하여 유니크한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인 에이스 호텔, 어반 아웃피터스, 앤트로폴로지와 일했다.


역자 : 정수영


연세대학교와 미국 카네기멜런대학교에서 디자인과 사람, 공학에 대해 공부한 후 기업에서 디자인 전략가로서 일했다. 글밥아카데미 수료 후 현재는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아트 마스터 클래스: 구스타프 클림트』 『아트 마스터 클래스: 클로드 모네』 『꽃 식물 수채화』 등이 있다. 그리고 틈틈이 아마추어 축구팀에서 핫핑크색 유니폼을 입고 뛰는 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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