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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걷는 여자들 - 도시에서 거닐고 전복하고 창조한 여성 예술가들을 만나다
로런 엘킨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20년 7월
평점 :
여성이 없는 도시를 상상할 수 있는가. 지혜롭고 강한 남성들이라도 여성이 없는 도시는 없다. 남성들이 힘과 지혜에 앞선다고, 전쟁에 이겨 패배한 사람들을 노예로 데려온다 해도 남성들로만 이뤄진 사회는 없다. 그럼 왜 남성들은 여성들이 밖에 나가서 자유롭게 돌아다니지 못한 사회를 만들었는가. 독자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여성을 소유 개념으로 대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자신이 소유한(?) 여성들을 남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그런 인식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점점 강했던 것 같다. '힘의 논리'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근대에 접어들고 인문학, 철학 등 모든 분야의 학문이 증진되고 풍요를 누리는 시대에 접어들었어도 여성에 대한 대우는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사회를 지배하고 이끄는 주체들인 남성의 인식은 바뀌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이다. 이후 수백 년이 지나면서 점차적으로 개선돼 왔지만 아직도 사회나 지도층의 뿌리 깊은, 잘못된 인식을 바꾸지 못한 증거들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직장에서의 성 차별은 여전히 남아 있고, 지도층으로의 여성 진출은 아직 쉽지 않다. 물론 수백 년에 비해 월등히 나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동등해졌다고 인식되진 않는다. 여성들이 동등하다고 인식할 때까지 미루려는 심산인가라고 추측할 뿐이다. 독자도 남성이다. 그리고 결혼하고 딸도 낳았다. 아직은 배우자와 딸이 남성과 똑같이 사회적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왜? 독자도 남성우월주의 인식이 머릿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이 책을 읽으며 고백한다.
1929년이다. 여자가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는 게 낯설지 않은 모습이 되었을 때다. 그럼에도 이 사진은 위반의 느낌을 준다. 하루가 끝나고, 여자는 이곳을 뜨고, 사진가도 떠나고, 해가 기울고, 그에 따라 가로등 그림자도 움직일 것이다. 그렇지만 과거의 이 장소의 모습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이 순간이 전부다. 벽을 배경으로 뚜렷한 윤곽을 그리며 금지와 저항의 장소에서 막 담배에 불을 붙이려고 하는 여자.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여자는 불멸하는 독특한 존재로 두드러지게 남았다.(p. 12)
환경 인권운동가 리베카 솔닛이 성폭력이 만연하고, 밤에 도시를 걷는 여성들을 성매매 여자로 보는 폭력적 시선으로부터 보호하고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 『걷기의 인문학』이란 책을 썼다. 이러한 작업에 발을 딛고서 이 책의 저자 로런 엘킨은 주제를 더 깊고 넓게 파고들어쓴 책이 『도시를 걷는 여자들』이다. 로런 엘킨은 여성이 도시에서 걸을 때 만나는 위험과 매혹을 탐구한다.
이 책의 원제는 ‘플라뇌즈(FLANEUSE)’다. 보들레르로 대표되는 근대의 도시 보행자, 천천히 걸으며 도시를 관찰하는 산보자를 뜻하는 말인 ‘플라뇌르(FLANEUR)’라는 남성형 명사를 여성형으로 바꾼 단어다. 단어의 성을 바꿈으로써 로런 엘킨은 이 남성형 명사를 둘러싸고 형성되어온 걷기의 서사를 전복한다. 여성은 어떻게 도시 환경에서 배제되어왔는가, 그럼에도 도시는 여성들에게 어떤 자유와 기쁨을 안겨주는가, 여성이 도시를 걷기 시작할 때 걷기라는 행위의 의미가 어떻게 뒤바뀌는가를 탐색한다.
책에 따르면 걷는 행위는 오랜 세월 예찬되어왔다. 많은 사상가들과 작가들이 걷기가 지닌 다채로운 의미, 사색과 예술과 혁명을 가능하게 했던 이 행위가 인류에게 갖는 의미를 탐구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공공장소를 걷는 일은 대단히 성별화되어 있는 일이기도 했다.
엘킨은 분명히 존재했으나 지워져온 여성의 지성사와 문화사를 되찾기 위해 전 세계의 대도시를 두 발로 걷는다. 그리고 자신보다 앞서 뉴욕, 파리, 런던, 도쿄, 베네치아를 누비며 위반하고 창조했던 여성 예술가들을 만난다. “도시의 창조적 잠재성과 걷기가 주는 해방 가능성에 긴밀하게 주파수가 맞추어진, 재능과 확신이 있는 여성”이라고 정의 내린 ‘플라뇌즈’의 초상을 구체적으로 그려내는 것이다.
조르주 상드, 버지니아 울프, 진 리스, 소피 칼, 아녜스 바르다 등의 삶과 작품을 통해 엘킨은 도시와 여성의 신산한 동시에 짜릿한 관계를 생생하고 다채롭게 보여준다.
로런 엘킨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고 여겼던 여성 예술가들을 읽어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19세기 작가 조르주 상드부터 얼마 전 타계한 누벨바그 감독 아녜스 바르다에 이르기까지, 엘킨은 여러 시대를 가로지르며 이들의 작품을 다시 읽고 이들의 또 다른 면모를 조명한다.
이를테면 엘킨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 여성이 방 밖으로 나갔을 때 맞닥뜨리게 되는 경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또 플라뇌즈에 관한 탁월한 에세이를 쓴 작가, 도시 공간을 온몸으로 감각하려 했고 여성과 도시의 관계에 대해 깊게 생각한 작가로서 버지니아 울프를 소개한다.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의 주요 텍스트로 읽히는 진 리스의 작가로서의 삶과 작품 세계가 파리라는 낯선 곳에서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지극히 생생하게 펼쳐 보여준다.
"도시에는 항상 여자들이 있었다. 도시에 대해 쓰고 자신의 삶을 기록하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사진을 찍고 영화를 만들고 등등 가능한 모든 방식으로 도시와 어울렸던 여자들이 많았다. [……] 도시를 돌아다니는 기쁨은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다를 바 없다. 플라뇌르의 여성 버전은 있을 수가 없다고 말해버리면, 여자들이 도시와 상호작용해온 방식을 남성의 방식 안에 가두게 되고 만다. 사회적 관습이나 제약에 대해 말할 수는 있으나 여성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지워서는 안 된다. 대신 도시를 걷는다는 게 여성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이해하려고 애써야 한다. 여성을 남성적 개념에 맞추려 하는 대신 개념을 다시 정의한다면 그럴 수 있을지 모른다. 아까 했던 이야기로 되돌아가 보면, 거리에서 보들레르를 지나쳐간 플라뇌즈가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다.(pp. 28~29)
남장을 하고 돌아다니고 수많은 애인을 거느린 것으로 유명한 조르주 상드는 혁명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자신의 작품 안에서 사회와 젠더에 관한 이상을 어떻게 펼쳐냈는지를 파고든다. 종종 헤밍웨이의 전 부인으로만 알려지는 마사 겔혼, 대범하고 용감한 종군기자였던 그녀가 ‘여성 종군기자’로서 맞닥뜨렸던 제약이나 픽션과 사실 사이에서의 고뇌를 소설가로서는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보여준다. 소피 칼에게서는 ‘추적’이라는 남성적 행위가 여성의 것이 되었을 때 어떤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는지를, 아녜스 바르다에게서는 카메라와 영화라는 매체 뒤에 여성이 설 때 시선의 의미가 어떻게 전복되는지를 읽어낸다. 잘 알려져 있는 이 예술가들의 새로운 측면을 발견하는 엘킨의 예리한 시선을 뒷받침하는 것은 그녀의 따뜻한 애정이다.
엘킨은 선배이자 동료인 이 여성 예술가들을 가깝게 여기고 유대감을 가지면서 그들의 이야기와 공명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한다. 이러한 애정 어리고 공감적인 시선은 자신의 이야기를 한 번 더 경유해, 이 예술가들에게서 관계, 고독, 시선, 창조성, 사회적 저항 등의 주제를 길어 올리는 페미니즘 비평을 가능케 한다.
리스는 버지니아 울프가 “관점의 차이”라고 부른 것으로 세상을 봤다. 리스가 만들어낸 여성 인물에게서 이런 면이 드러난다. 이들은 옷을 제대로 입지도 말을 제대로 하지도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도 못한다. 너무 이야기를 많이 하거나 너무 적게 하거나 잘못된 이야기를 한다.
도시에 오면 우리는 이제야 나 자신으로 살 수 있구나 싶지만, 파리에서조차 다른 사람의 판단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리스가 쓴 단편 중에 프랑스에 있는 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기다리며 우울증에 시달리는 젊은 영국 여자가 나오는 단편이 있는데, 거기에 우리 중 어떤 사람들은 “기계 밖에서” 산다는 말이 나온다. 여자는 간호사나 다른 환자들이 “기계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그들에게는 “힘, 확신”이 있지만 자기에게는 그런 게 없으며 그들이 자신의 결함을 알아차릴 것이라고 생각한다.(p. 96)
댈러웨이 부인이 소설에서 가장 처음으로 하는 대사가 이렇다.
“‘전 런던 거리를 걷는 게 좋아요.’ 댈러웨이 부인이 말했다. ‘시골길을 걷는 것보다 훨씬 좋아요.’”
울프에게 혼자 도시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아직까지 상상해보지 못한 자유였고, 울프가 본격적으로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계기가 이사였다면 글쓰기의 소재를 제공해준 것은 산보였다. 거리에는 울프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있었다.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울프는 머릿속에서 장면들을 그려보았다. 주변에서 보는 삶이 '거대하고 불분명한 재료 덩어리' 같았고 “나에게 전달되어 그것에 상당하는 언어가 되는 듯했다.” 눈에 보이는 사람들에 대해 궁금해하다 보니 '삶 자체'를 종이 위에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의 문제에 몰두하게 되었다.(p. 127)
『자기만의 방』에는 조용하고 분리된 개인 공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만 나오는 게 아니다. 이 글은 여자가 방 밖으로 나갔다가 부딪히게 되는 경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또 지금까지 다루어지지 않았던 여성과 허구, 여성과 역사에 대해 대담한 질문을 던지는 지적 무단침입이기도 하다.(p. 138)
『도시를 걷는 여자들』은 출간 이후 펜 어워드 파이널리스트에 오르고 《가디언》과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수많은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는 등 큰 주목을 받았다. 이 책은 비평가로서, 에세이스트로서, 작가로서 엘킨이 지닌 탁월함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예술 비평과 자전적 산문과 여행기를 수려하게 엮어내는 엘킨의 글쓰기에는 독자를 단숨에 다른 시대, 다른 공간으로 데려가는 힘이 있다.
엘킨은 미국에서 태어나 파리로 이주했고 여러 도시를 떠돌며 살아온 경험, 미국의 교외에서 자라나며 가졌던 도시에 대한 두려움과 선망, 이민자의 후손으로 어디에도 좀처럼 완벽하게 속하지 못하고 정착과 방황 사이를 오갔던 경험을 풀어놓는다. 이러한 자신의 이야기와 함께, 도시 공간을 유연하게 누볐던 여성 예술가들을 읽어내는 예리한 시선을 직조하여 흥미롭고 아름다운 태피스트리를 짜낸다. 여기에 문학과 예술과 도시공간을 충실히 연구해온 학자의 성실함이 탄탄한 배경 지식과 신뢰성을 더한다.
“달콤하게 날카롭고 선동적”(《가디언》)이며 “리베카 솔닛에 기초해 한발 더 나아간”(《파이낸셜타임스》) 작가이자 “그녀 세대의 수전 손택”(데버라 리비)이라는 찬사를 받은 이 첫 번째 책은, 그녀의 글쓰기가 우리를 어디까지 데려갈지 기대하게 만든다.
저자 : 로런 엘킨(LAUREN ELKIN)
작가이자 비평가. 책, 예술, 문화, 여행에 관해 쓴다. 《뉴욕타임스 북 리뷰》 《가디언》 《하퍼스》 《르몽드》 《런던 리뷰 오브 북스》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러먼트》 등의 매체에 기고하며 《화이트 리뷰》의 객원 편집자로도 활동한다. 1930년대 영국의 여성 문학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리버풀대학교의 명예연구원으로 있다. 뉴욕 태생이고 2004년에 파리로 이주했다. 좌안에 오래 살다가 지금은 우안에 살며 벨빌 근처를 배회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파리와 리버풀을 오가며 살고 있다.
역자 : 홍한별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옮긴 책으로 『야누시 코르차크의 아이들』 『우먼 월드』 『먹보 여왕』 『밀크맨』 『달빛 마신 소녀』『이 문장은, 내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바다 사이 등대』 『페이퍼 엘레지』 『몬스터 콜스』『가든 파티』 『하틀랜드』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