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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클래식 - 음악을 아는 남자, 외롭지 않다
안우성 지음 / 몽스북 / 2020년 8월
평점 :
메마르고 투박한 감정 상태가 단단하고 이성적인 거라고, 독자는 얼마간 착각하며 살아왔다. 그래야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고, 사회를 이끌 사회적 지위를 확보할 수 있다고 일방적인 교육을 받아왔다. 척박한 대한민국 사회에서 공부하고 살아 남기 위해선 감성보다는 이성이 우선시되고 중요하게 생각됐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일제강점기, 6.25 전쟁을 거치고 산업사회에 들어서서도 그런 사회적 인식으로 인해 교육도 그렇게 받았다. 음악이나 미술, 체육 등 예체능 과목은 대학 입시라는 관문 앞에서 철저히 무시당했다. 심지어는 대학 입학을 위해 영어 수학 국어 등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과목별 배점이 높기 때문) 예체능 과목의 시간은 '국영수'에 내주고 입시 학년에 가면 아예 교과목에서 빠지기도 했다. 16년을 그렇게 교육 받고 그렇게 사회에 나온 사람들은 당연히 음악이나 미술은 관심의 대상에서 제외했다. 삶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이 시기에 “남자가 뭐 그래”라는 말도 자주 들었다. 주로 여성에게서다. 노래도 못 부르고, 그림 솜씨도 형편없을 때 듣는 핀잔이다. 감정을 드러내고 솔직한 남자는 종종 경박하고 가벼운 사람으로 오해 받았다. 평범하고 좋은 사회인이 되기 위해,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살아가는 데 익숙해졌다. 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태도라고 은연중에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외로움을 느껴도 외롭다는 표정은 피한다. 외로움을 느낀다는 건 감정이 메말랐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 채...
삶의 절반을 넘어서고 경제적, 사회적으로 독립적 위치를 갖게 된 후 알게 된 '예술의 힘'을 그때까지는 몰랐다.
“음악은 우리를 산책으로 이끌고 사색으로 인도하며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하고 내 감정에 충실할 수 있게 도와준다.”
슬프면 슬픈 대로, 즐거우면 즐거운 대로 내 감정에 충실하게 사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을 보호하고 타인과의 진정한 소통도 가능하게 한다는 것. 상처에도 무뎌져 버린, 딱딱하게 굳은 마음을 어둠에서 구원해주는 것도 음악이 하는 일이라고 『남자의 클래식』 저자 안우성은 설명하고 있다.
독자는 적극 공감한다. 이 책을 만나기 전부터 클래식 음악에 꽤 심취했기 때문이다. 지휘자이자 바리톤, 음악 칼럼니스트인 안우성은 메마른 감정으로 마음을 닫은 채 외로워하는 남자들에게 클래식 음악을 권한다.
음악과 음악가의 삶을 통해 배우고 느끼고 자유로워지라고 말한다. 굳어 있는 남자들의 감정을 어루만지는 도구로 클래식 음악과 음악가들의 삶을 소개한다. 클래식은 어렵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에게 친해질 수 있는 길을 안내하기 위해서다.
딱딱하고 ‘평균적인’ 한국 남자였던 저자는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유학하는 동안 여러 음악가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사색과 낭만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책에는 저자가 만난 음악가들의 스토리가 등장한다. 낭만의 세계로 타인을 인도하고 순간순간을 작은 감동으로 채울 수 있는 남자가 진정한 젠틀맨이라는 걸 알게 해준 지도 교수, 친절이 최고의 매너라는 걸 깨닫게 해준 플라시도 도밍고, 일상 속 일탈을 통해 스스로 즐길거리를 찾고 여유를 찾는 남자의 모습을 보여준 오페라 코치 마크 로슨, 지휘자의 역할과 카리스마에 대해 생각하게 한 정명훈과 켄트 나가노, 금세기 최고의 오보이스트이자 누구보다 소탈한 소년의 모습으로 저자를 감동시킨 하인츠 홀리거 등. 그가 만난 음악가들의 스토리뿐만 아니라 모차르트, 베토벤, 슈만, 브람스, 카루소, 카살스 등 클래식 역사에 획을 그은 음악가, 연주가들의 스토리를 통해 그들의 음악적 정서와 독자들에게 알려주고픈 대가의 태도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높은 경지에 오른 음악가들은 엘레강스하다. 무대에 오르는 게 일상인 그들의 태도에 군더더기가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면 때문인지 음악계의 대가들 대부분은 고상해 보이는 한편 도도하거나 차가운 인상을 주기도 한다. 거기엔 이유가 있다. (중략) 이렇게 무대 위에 서면 ‘타인의 시선에 의한 자기 객관화’를 경험하게 되는데, 쉽게 말하면 남의 눈으로 초라한 자신을 마주하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이런 경험을 통해 태도에 관한 고민을 하게 되고, 궁극적 아름다움은 화려함이나 과장이 아니라 불필요한 행동을 덜어낸 간결함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 ‘대가의 우아함 또는 친절함’ 중에서
자신의 일에 열정을 쏟아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은 것은 모든 남자의 바람이다. 그러나 에너지를 헛되이 소진하지 않으려면 여유의 시간을 통해 ‘깨어 있음’을 유지해야 한다는 걸 생상스를 통해 깨닫게 된다. 비록 허덕이며 쫓기는 삶이라도 ‘못 놀면 죽는다’라는 다짐으로 여유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결국 바쁨 그 자체가 아니라 ‘즐기는 삶’이었음을 상기하며 말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위대한 대작곡가의 소탈한 음악을 더 사랑한다. 아마 이러한 사실을 진작 생상스가 알았더라면 더 많이 놀면서 더 유머러스한 작품을 많이 남기지 않았을까?
- ‘당신이 바쁘게 사는 이유’ 중에서
저자는 음악가들의 스토리를 통해 ‘내 감정에 귀를 기울이는 게 나를 돌보는 가장 중요한 행위’임을 강조하고 있다. 머리는 이성, 가슴은 감정, 몸은 행동력이라고 봤을 때 현대인의 이성과 행동력은 이미 과잉이다. 자기 계발서를 읽거나 몸 관리를 위해 PT를 받으면서 끊임없이 노력도 한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다면 이제는 내 감정에 귀 기울여야 할 때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누가 그리워서 만나고 싶은지, 누구와 산책하며 대화하고 싶은지 내 진짜 욕구에도 귀를 기울이라고 말이다. 감정이 메마른 삶은 불행한 삶이다. 내가 원하는 걸 알고 내가 무엇에 감동받는지 스스로 알아가야 한다.
아름다운 것을 더 아름답게, 진지한 것을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위해 음악을 일상으로 들인다면, 그런 사회라면 감정을 틀어막고 살도록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감정 단절을 겪고 살아가는 남자들에게, 원활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 남자의 감정에 진지하게 소통할 기회를 갖자고 말한다. 감수성이 예민한 남자들이 많아지고 격의 없이 솔직한 소통이 가능해지면 각자 지닌 외로움도 덜어낼 수 있을 거라고 제안한다.
“감정도 발달한다. 음악이나 미술, 영화 같은 사색거리를 찾아 그것을 향유하고 또 언어를 통해 구체적 감상으로 표현했을 때 검정도 성숙하고 세련되어진다.”
클래식을 좀 안다는 애호가들도 음악을 들을 때면 유독 기술적인 면을 많이 본다고 한다. 누가 얼마나 소리를 길게 내고 특출난 기술을 보여주는지만 본다면 결정적인 하이라이트 순간만 좋은 점수를 준다면 결코 예술을 예술로 즐길 수가 없다.
『남자의 클래식』에서는 음악 안에 감동받을 만한 여러 가지 요소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런 것들의 유사성을 발견하고 패턴을 읽어낼 수 있는 지혜가 생긴다면 음악 감상의 즐거움은 배가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남자의 클래식』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으나 남자들만을 위한 음악이 따로 있을 리 없다. 감정 단절을 겪고 있는 현대인들, ‘신전의 횃불을 지키는 사제’ 처럼 클래식 음악이 고상한 가치만을 추구해야 한다고 믿어온 클래식 애호가들, ‘음악의 쓸모’에 대해 알고 싶은 보통 사람들을 위한 글과 음악을 소개한다. 합창단 지휘자로, 클래식 음악 강연자이자 음악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최고의 무대에서 활동한 음악가 특유의 경험을 살려, 보통 사람들과 나누고픈 철학적 사유는 깊고 풍부하다.
그래서인지 저자가 이 책의 키워드로 사용한 '남자의 태도나 자격'을 진지함, 남자의 고독, 웰에이징, 지성인의 태도, 겸허한 마음, 상처와 치유, 상실과 절망, 시작의 순간, 남자의 진심, 결단의 순간, 남자의 신념, 기교보다 기품, 실력과 파격, 소통, 남자의 매너, 리더의 자격, 절대자의 자리, 남자의 낭만, 리렉스, 소탈함, 남자의 동심, 위엄과 위트 등 수많은 단어들이 멋지게 느껴진다.
음악가로서, 남자로서 저자가 전하는 말들이 낯설지 않고 오히려 익숙한 말들인데 잊고 살았음을 성찰하는 기회가 된다. 이 책이 클래식을 알고 싶은 독자들에게 정답게 읽히는 이유이다.
“눈물 나도록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도 반응하지 못하는 건 감정의 나사 하나가 고장 났다는 신호일 수 있다. 그런 사람에게는 감정 수업이 필요하다. 감정을 배우는 데 있어 음악이 좋은 교과서가 될 수 있다.”
- 에필로그 중에서
저자 : 안우성
독일과 영국에서 켄트 나가노 등 세계적 지휘자와 함께 솔리스트로 활동한 바리톤. 독일 프라이부르크 국립 음대 석사 과정, 최고 연주자 과정을 졸업한 후 독일, 이탈리아, 영국에서 오페라 〈마술피리〉, 〈어린이와 마법〉, 〈비밀 결혼〉 등에 주역으로 출연하였고, 독일에서 〈겨울나그네〉 전곡 독창회와 다수의 오라토리오 독창자로 협연하였다.
움베르토 조르다노 국제 콩쿠르, 루체로 레몬카발로 국제 콩쿠르 등 다수의 국제 콩쿠르에서 수상, 영국 오페라센터에서 주관한 ‘영 아티스트’에 선발되어 유럽연합장학금을 수상하고 영국에서 활동하였다. 독일 국영 TV 방송국 오케스트라와 독창 음반 제작, 독일 뮌헨 국립 오페라단 오펀스튜디오 전속 솔리스트, 독일 프라이부르크 오페라단 객원 솔리스트로 활동하였다.
클래식 아카데미 ‘클래식 월담’, 사회인 혼성 합창단 ‘오싱어즈’ 음악 감독 등 보통 사람들의 클래식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활동을 이어왔으며, 클래식이 개인의 삶에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에 관한 글을 신문과 잡지 등에 기고해 왔다. 대한항공, 차움 등의 초청 강연과 MBC ‘사색의 공동체 스미다’ 강연, 문화일보 ‘이 남자의 클래식’ 칼럼 연재 등을 통해 클래식 음악과 인문학의 접점을 모색해 가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