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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선의 세계사 ㅣ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후루가와 마사히로 지음, 김효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7월
평점 :
이 책 『노예선의 세계사』는 '머리말'에서 '로빈슨 크루소'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시작한다. 세계명작전집 중의 하나로 독자가 어렸을 때(초등학교 때) 읽은 상상력의 보고이자 큰 바다와 무인도에서의 삶 이야기... 어린 독자에게 무한한 즐거움을 준 최초의 책이다. 책 읽는 즐거움을 느낀 첫 책이기도 하다.
이렇게 인연을 맺은 이 책은 이후 정보화 시대에 들어서는 암호 푸는 데 역할을 하기도 했다. 비밀번호를 잊어벼렸을 경우 본인 인증 때 사용한다는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에 어김 없이 '로빈슨 크루소'를 적어놓았을 정도로.
그러나 이 책은 로빈슨 크루소의 앞뒤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독자에게 엄청난 충격을 준다. 그때 당시 '프라이데이'라고 이름 지어준 흑인이 노예로 팔려가던 중 납치된 피해자라는 것이다. 노예무역과 노예선에 대한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 저자가 시작한 머리말은 로빈슨 크루소에 대한 인연과 환상을 일시에 깨버리기에 충분했다.
무려 1,000만 명에 이르는 희생자를 냈다는 노예무역. 국경을 초월한 역사학자들의 노력으로 그 전모가 드러난다. TV나 영화를 통해 어느 정도 표현됐지만 ‘이동 감옥’ 노예선에서 그들은 어떤 처지에 놓여 있었을까. 노예무역과 노예제도에 맞서 일어난 이들은 누구일까. 어둠에 갇힌 노예선 바닥에서 다시 한 번 근대를 돌이켜본다.
'노예'라 하면 으레 '흑인'이 떠오른다. 가장 많은 인력이 필요했던 신대륙의 경제 발전에서 가장 큰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 바로 흑인 노예였기 때문이다. 또 어렸을 때부터 읽었던 위인전 중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미국 16대 대통령인 링컨이 '노예 해방'을 시킨 주역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드라마에서도 노예는 어김 없이 흑인이다. 실제 흑인들이 노예로 많이 투입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의 노예사(史)를 보면 정말 인간으로서의 대우는커녕 때로는 가축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 것을 볼 때마다 일어나는 백인에 대한 분노가 컸다. 그들 백인들이 이제 와서 '휴머니티'니 '인간존엄'이니 떠드는 것은 그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학설'이고 필요에 따른 거짓된 논리라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답답하다.
흑인들의 처절한 삶, 그들의 생명이 짐승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일하는 기계'로서 전락한 것은 열등해서가 아니라 백인들의 끝없는 욕망의 결과이다.
그동안 우리는 역사, 문화, 다큐 등 많은 자료를 통해 이미 우리들은 노예에 관한 글과 영상들을 많이 접해왔다. 70년대 '뿌리', 명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노예 12년'...
긴 세월 속에 노예로서 살아갔던 많은 사람들의 사연이 담긴 이야기들은 이미 우리들 역사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노예란 신분의 사람들을 싣고 역사의 한 부분을 차지했던 노예선을 통한 이야기를 다룬다.
총 3장에 걸친 큰 제목에는 노예무역이 탄생하게 된 상황인 근대 무역과 노예무역의 필요성 대두, 이런 노예선을 움직이기 위해서 새롭게 등장한 사람들의 직업과 생활들, 마지막으로 노예무역이 폐지되기까지의 여정을 다룬 만큼 노예란 신분을 넘어 그들을 싣고 대서양을 누비며 새로운 환경에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아프리카인(흑인 노예)들의 처절한 삶을 그렸다.
책에 따르면 흔히 알던 노예라고 하는 사람들의 인상이 떠오르는 아프리카 사람들 이전에 이미 유럽에서는 전쟁을 통한 포로들을 통해 노예제도를 실행하고 있었다.
유럽의 이슬람 세력을 막기 위해 최후의 보루였던 그라나다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잡힌 이슬람 출신 노예들을 한 예로 들 수 있는데, 이런 분위기 속에 본격적인 노예를 얻기 위해 선발주자로 나선 국가는 15세기부터 활약한 포르투갈 상인들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로빈슨 크루소의 모험에 나오는 주인공 또한 책 속에 그저 난파되어 홀로 남겨지고 무인도에서의 생활을 다룬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알았지만 저자는 주인공이 배를 타고 나선 이유와 배경에는 이런 무역을 통해 한몫을 잡으려는 사연이 담겨 있음을 알려준다.
이렇듯 포르투갈을 비롯해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가 뛰어든 노예무역은 삼각무역의 구조를 띠면서 더욱 서아프리카의 흑인들을 얻게 되고 그 과정에서 흑인들을 얻기 위해 물물교환식으로 아프리카 추장들과의 거래는 아프리카의 전쟁을 유발한 요인으로 작용함을 알게 된다.
이 책의 저자 후루가와 마사히로는 노예선을 주제로 대서양 노예무역을 둘러싼 세계사를 살펴본다. 먼저 트리니다드 출신의 역사가이자 정치가였던 에릭 윌리엄스의 대표 저서 『자본주의와 노예제도』를 통해 근대 자본주의 발전에 불가결한 존재였던 노예제와 그것을 떠받친 노예무역에 대해 고찰한다. 노예제의 세계사적 의미와 노예무역의 역사적 기원을 상세하게 파고들며, 그 잔혹한 실태를 드러낸다.
이 책은 아프리카에서 신대륙으로의 여정 이른바 ‘중간 항로(The Middle Passage)’를 많은 노예를 싣고 최대한 빠르고 손실을 최소화한 조건으로 운반했던 노예선. 실제로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 구조와 선장, 승조원, 노예들의 생활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또한 아프리카 각지에서 노예를 '획득'한 방법과 노예들이 경험한 노예선의 실상도 살펴본다. 노예무역으로 부를 쌓은 노예상인, 중개인 등의 역할에 대해서도 자세히 조사한다.
노예선을 운영하기 위해서 다른 직업들을 가진 사람들, 선장, 선의, 선원, 항해사들의 조합이 한 배에 수백 명의 흑인들을 싣고 출항해 북남미의 사탕수수나 커피농장으로 팔려 나가기까지의 이동수단이 됐던 노예선은 그야말로 참혹한 이동 감옥이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아픔을 준다.
영화에서도 등장한 꼼짝없이 누워서 쇠사슬에 묶여 하루 중 어느 시간만 할애해 억지로 춤과 노래를 시키고 다시 묶어놓는 방식으로 이동해 간 모습들은 노예와 노예무역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유럽 국가들의 경제활동을 주시했던 트리니다드 출신의 역사가이자 정치가 에릭 윌리엄스의 글을 통해서 더욱 실감 있게 전달된다.
긴 세월 동안 미지의 환경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흑인들은 점차 서머싯 사건을 쟁점으로 법정 공방전으로 이어지고 곧이어 아이티의 노예 반란과 다른 나라들의 노예 반란 현황, 유럽 정세의 혼란한 기운과 맞물려 노예무역에 대한 폐지에 다다른다.
하지만 여전히 노예제 폐지에 대한 의견은 다시 긴 세월을 통해 서서히 이루어진다. 오늘날 완전한 노예제 폐지를 법적으로는 이루어 냈지만 현대에도 노예제는 유지된다고 저자는 역설하고 되묻는다. 오늘날에도 노예제란 말은 없어졌지만 실제 각 나라에는 여전히 노예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고.
노예무역 폐지에 앞장선 영국을 중심으로 폐지운동의 주체가 된 사람들과 세력을 알아본다. 1772년의 '서머싯 사건' 판결을 통해 영국에 있는 흑인 문제를 고찰하고, 1787년에 결성된 런던 노예무역 폐지 위원회의 중심세력인 퀘이커 교도와 영국 국교회 복음주의파가 기여한 역할에 대해 살펴본다. 또한 각각의 노예제 플랜테이션의 실태와 노예제 폐지로 향하는 역사적 동향을 비교사적 관점에서 파악한다.
이 책은 노예선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대서양 노예무역과 노예제 또는 노예제 폐지운동에 관련한 인간의 활동을 생생히 그려냈다. 외면할 수 없는 또 하나의 근대사를 똑바로 마주보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과 과제를 준다.
과거의 노예 형태와는 다르게 채무 노예제, 계약 노예제, 자산 노예제로 불리는 그들의 삶은 과거나 현재나 마찬가지로 어렵다는 현실은 답답함과 함께 아직도 백인들의 선의에 의해 삶을 유지하려는 것인지 노예제 피해자 및 후손들에게 묻고 싶을 정도다.
금이나 다이아몬드, 카카오 콩을 재배하기 위해 필요한 노동력은 여전히 필요하기에 열악한 아프리카에서는 오늘도 어린 손들이 힘겨운 농장에 투입되고 있다. 노예제의 완전한 폐지는 갈 길이 아직도 멀다는 느낌이다.
노예선의 운영이나 무역을 하던 사람들이 불합리한 노예제를 폐지하는 법 제도에 이어 또 다른 형태의 '국가노예제도'라고 일컬어지는 '식민지시대'를 열었다는 점은 유럽 열강들의 경쟁 이익을 앞세운 자만과 극단적 이기주의를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우리나라도 34년 6개월을 일제의 식민지시대를 살았다. 피지배 민족의 한 사람으로서 분노는 어느 시대 어느 민족에 못지 않다. '휴머니즘'과 '인간존중'의 허울을 앞세워 끊임없이 욕망을 채우는 백인 지배 사상은 끝내 없어지겠지만 요즘도 그들 사회에서 자주 등장하는 인종 차별은 아직 그들의 이기심과 욕망만이 커다랗게 남아 있다는 반증이다. 이 책의 저자가 식민지시대의 장본인인 일본인이라는 점과 독자가 피지배국의 한 사람이라는 점은 좀 더 생각해볼 여지를 남긴다. 피지배국의 피해의식으로 보는 시선만은 분명히 아님을 밝힌다.
저자 : 후루가와 마사히로
1950년 일본 나라 현 출생. 1973년 오사카 대학교 기초공학부를 졸업하고 민간 기업에서 근무하다 도시샤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연구과 박사 후기 과정을 수료했다. 도시샤 대학교 경제학부 조교, 전임 강사, 조교수를 거쳐 현재는 도시샤 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전공은 대서양 노예무역사, 근대 노예제도사이다. 저서로는 『세계경제사-세계 자본주의와 팍스 브리태니카』, 『근대 세계와 노예 제도-대서양 체제 안에서』, 『이와나미 강좌 세계 역사 15 상인과 시장』, 『세계화와 아시아-21세기 아시아의 태동』, 『세계경제의 흥망 200년』 등 다수가 있다.
역자 : 김효진
일본 문화와 소설에 매료되어 더욱 다양한 작품을 국내에 소개하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번역가의 길로 들어섰다. 독자의 눈으로 글을 옮기고 저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친절한 번역을 늘 마음에 새기며 현재는 일본에 정착해 출판 기획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욕망산업 상 ㆍ 하』, 『가격파괴』, 『해적의 세계사』, 『농경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로마 산책』, 『교토』, 『우주론 입문』, 『아인슈타인의 생각』, 『독서는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