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만 있는 계절에 네가 왔다 K-포엣 시리즈 13
이영주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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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만 있는 계절에 네가 왔다』는 올해로 등단 20년을 맞은 이영주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인 동시에, 적절한 무게로 이영주 시인의 시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작은 시집이다. ‘K-포엣’ 시리즈 열세 번째 시집이다.

김나영 문학평론가는 시인을 시에 대해 “거대한 상실의 시간을 삼킨 채 존재하는 삶을 그린다”고 말했다.

또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깊게 드리워져 있는 불행 등을 부정하지 않고, '포개어진 손으로 백지를 가득 채우며' 삶에 대한 도전을 이어 간다고 평했다.

이따금 그 불안을 딛게 해준 사람들을 기억하며, 기록하며. 시인의 삶의 의지를 시인이 쓴 죽음에서 찾아낸 듯하다.

함께 출간된 『여름만 있는 계절에 네가 왔다』 영문판에는 이영주 시인의 시 세계를 오랜 시간 들여다 본 김재균 번역가의 번역이 실려, 시의 해석과 품격을 높였다.





이영주 시인의 시에는 늘 죽음이 어른거린다. 얼핏 죽음을 '삶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생각하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지옥의 다양성. 나가고 싶어. 나는 슬픔처럼 얼음에 끼어 있다. 하지만 넌 유리 유골 공예처럼 죽음까지 다 보이는데. 많은 사람들이 나를 밟고 지나가며 말했다. 걸어가면서 파편이 떨어진 한밤을 뒤돌아보곤 했다.(하략)

<빙하의 맛>


다마스쿠스의 이야기꾼들은 몇 세기가 넘도록 카페에 모여 있지. 나는 카페 문을 닫을 수가 없네.


이야기꾼들은 불빛 아래에 모여 서로의 사랑에 대해 물어본다. 세계에서 제일 끔찍한 일에 대해 물어본다. 어떤 자는 깊숙이 앉아서 생물이란 천천히 짓밟히면서 섬세하게 자란다고 하는데


아무도 듣지 않는 어두운 마음에 대햐여 이야기하고 있다. 의자 곁에서 조금씩 자라나는 검은 생물체와 마주보고 있어. 어떻게 이 오랜 시간을(하략)

<생활적인 카페 주인>





시인은 <시인 에세이>를 통해 덧붙인다.


안경을 썼지


이 세계는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매일매일 망명을 생각한다.

열하홉. 일기에 쓴 문장이다. 아, 이런 허세라니.

인간이 자아를 형성하는 데에는 동일실할 대상이 필요하다. 그 대상이 꼭 사람일 필요는 없다. 나는 돌 같은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이든 돌이든, 우리는 격렬한 불안의 세계로 내던져진다. 그 사라과 그 돌과 나는 다른 층위에서 걸어 나왔잖아. 서로 다를 수밖에 없잖아. 태어나서 죽는 위치도 다르니까. 심지어 죽지 않는 돌은 어쩌니. 물론 죽는 순서는 뒤비뀔 수 있다.

(하략)





김나영 문학평론가는 "이영주의 이번 시집은 그간의 이영주 시집의 존재 여부를 무의미하게 여기게 되는 지점에서 읽힌다. 대부분 새로운 시집은 앞선 시집들이 일궈놓은 성과의 연장으로서(그 의미가 하나의 맥락을 이루는가 그렇지 않는가와 무관하게) 읽히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이 시집은 주목을 요하는 하나의 지점을 갖는다. 어째서 이 시집에 묶인 시집들은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가가 아니라, 그들은 오랜 시간이 걸려 쌓은 이영주 시의 세계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존재하는가."

그는 이어 "무엇이 옳지 않다고 말하는 내용이 아니라, '말하기' 자체에 의미를 두듯이 이 시집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눈물집]에서 말하듯 "죽었는데도 왜 형태를 보존하는 일에 그렇게 힘을 쓰는지"와 같은 물음의 형식으로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삶이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데도 그 삶을 지속하는 것처럼 여기는 태도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어째서 어떤 삶은 그 삶과 연결된 또 다른 삶들에게 '삶이란 단절의 형식으로도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일까. 그 물음이 절실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것이 '하나의 삶'의 상실을 전제하기 때문일 것이다."고 조심스럽게 지적한다.





그런 점에서 '흘러가는 것'에 주목하는 이 시집 속의 특별한 시선에 주목해볼 수 있다. 여기서 흘러가는 것들은 '흐르는 것'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존재 방식으로만 존재하는, 비자발적인 존재의 다른 이름이다. 가족의 죽믕을 목격하고 경험한 삶에게 죽음은 생을 마치는 단 한 번의 사건이 아닐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죽은 듯 살아 있어야만 했을 그 모든 순간들에, 그 삶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듯 실제로 죽음을 맞을 때와 같은 굵직한 국면들 외에도 그 사이를 메우는 무수한 기억들 속에서 그는 죽음을 통해서만 살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영주의 시는 그 역설적인 삶의 방식ㅇ르 '흐르는 것'이라는 존재 양태로 그려낸다.

삶은 그저 흐르는 것 속에서 발견되고, 흐르는 것은 그것을 흐르게 하는 조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채로만 계속 흐를 수 있다는 것. 이 점을 시인은 말하고 있나 보다.

독자는 제목 속에서 '이 여름의 나'를 생각해본다. 코로나와 집중폭우 속 어수선하고 침울한 분위기 속의 고통도 자신의 힘으로 벗어나기 힘든 것이라면 동반하면서 그 흐름에 맞추어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고통스럽고 죽음 같은 고통이라도.





언제나 머리맡에 두고 읽고 싶은 한국 시의 정수를 소개하는 ‘K-포엣’ 시리즈. 시간이 흘러도 명작으로 손꼽힐 한국 시들을 독자들에게 소개함과 동시에 영문으로 번역하여 전 세계에 알리어 한국문학을 세계문학으로 발돋움시키고 있다.


저자 : 이영주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나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2000년 [문학동네]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108번째 사내』, 『언니에게』, 『차가운 사탕들』, 『어떤 사랑도 기록하지 말기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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