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살인 1
베르나르 미니에 지음, 성귀수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7월
평점 :
절판




추리소설은 독자의 시선을 끌기 위한 강력한 장치로 도입부 처음 장면에 엽기적 범죄 장면을 묘사하거나 일상의 평범한 생활 속의 느낌을 강하게 하기 위해 음험한 분위기 묘사를 즐겨 쓴다. 사실 이 소설을 읽기 전에 독자는 작가 베르나르 미니에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작품은 물론 매스컴에 주목 받은 사실도 몰랐다. 이 소설도 읽기 전 소설 스토리를 보고 엽기적 범죄 장면 묘사에 끌렸기 때문이다. 특히 '말러의 음악이 흐른다'는 부분이 크게 인상적이었다. 잔잔하다가 폭풍우가 몰아치는 현장 분위기를 돋구어 주는 음악. 책을 펼쳐 들면 바로 사건 현장이 나타난다.

"장대비가 퍼붓던 날 마르삭고교의 여교사 클레르가 고급주택가의 자택 욕조에서 밧줄로 온몸이 꽁꽁 묶인 사체로 발견된다.

헌병대에 최초로 신고한 사람은 이웃집 노교수이다. 그 집에 내려다보면 살해된 여교사의 저택과 정원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사체의 목구멍에 손전등이 불이 켜진 채 끼어 있고, 정원의 풀장 수면에는 19개의 인형이 떠있다. 집안 가득 볼륨을 최대한 높인 말러의 음악이 흐른다. 약에 취한 듯 정신이 혼미한 청년 위고가 풀장 가장자리에 앉아 있다가 경찰에 체포된다."





학창시절의 추억이 녹아들어 있는 마르삭의 사건현장으로 출동한 세르바즈 경정은 피해자의 집에서 2년 전 겨울 치료감호소를 탈출해 사라진 연쇄살인마 쥘리앙 이르트만의 그림자를 발견한다. 저택의 전등이 환하게 불을 밝힌 가운데 풀장의 수면 위에서 물결이 일렁일 때마다 흔들리는 인형들, 욕조에서 공포에 질린 눈을 미처 감지도 못하고 익사한 여교사의 사체, 집안 가득 울려 퍼지는 말러의 음악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이르트만이 과거에 남긴 행적과 닮아 있다. 끔찍하고 엽기적인 현장을 둘러보고 희생자의 신원을 파악한 세르바즈 경정은 매우 불길한 예감에 휩싸인다. 그의 딸 마르고가 마르삭고교에 다니고 있고, 현장에서 체포된 청년 위고는 딸과 같은 반이고, 위고의 엄마 마리안은 오래전 헤어진 연인이기 때문이다.

주네브 고등법원에서 검사로 재직하는 동안 무려 40여 명의 여성을 납치 살해한 쥘리앙 이르트만이 철통같은 보안을 자랑하는 치료감호소를 탈출한 이후 프랑스 경찰은 특별수사팀을 편성해 18개월 동안 추적했지만 결국 검거에 실패하는 한편 흔적조차 찾아내지 못했다.

이르트만은 뛰어난 머리로 교묘히 수사망을 빠져나가며 연쇄살인을 저질러온 인물이기에 그의 존재만으로도 위협이 된다. 그의 범죄대상은 언제나 여성이었고, 피해자의 시신은 단 한 구도 발견되지 않았다. 세르바즈 경정은 사건 현장을 꼼꼼하고 분석하고 나서 범인을 검거하기 위한 수사에 매진한다.





왠지 모를 음산한 흥분감이 밀려왔다. 그건 어떤 익숙지 않은 일이 일상을 뒤흔들 때 느끼는 감정으로, 올리버는 이 나이에 이르러 처음 그런 감정을 맛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풀장을 중심으로 정원을 훑었다. 정원 끝자락은 마르삭 숲이 시작되는 지점으로, 그 너머 2,700헥타르에 달하는 나무와 오솔길들이 펼쳐져 있었다. 그쪽으로는 벽도 철책도 없었고, 빼곡하게 열 지은 나무와 덤불들이 자연스러운 담장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비교적 최근 축조한 방갈로가 풀장 오른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올리버는 다시 풀장으로 주의를 돌렸다. 폭우로 인해 수면이 요동치고 있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지금 보이는 저것은…

수면에서 인형 여러 개가 연신 기우뚱거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래, 틀림없는 인형들인데… 아무리 그렇게 생각해도 소용없었다.

그걸 보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전율이 온몸을 휘감았다. 인형들이 서로 부딪치며 춤추는 가운데, 빗방울 통통 튀는 수면 위로 희부연 인형 옷자락이 넘실대고 있었다. < pp. 20~21 >





프랑스의 특수반을 비롯해 각국 경찰이 쥘리앙 이르트만을 체포하기 위해 특별수사본부를 편성해 검거에 나섰지만 하나같이 실패했다. 연쇄살인마의 귀환인가, 아니면 수사를 혼란에 빠뜨리려는 트릭인가?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 박사와 비견되는 연쇄살인마 쥘리앙 이르트만이 《눈의 살인》에 이어 다시 세르바즈 경정과 2차전을 벌인다. 한편 살인현장에 남아 있던 여교사의 제자 위고, 피해자와 은밀한 만남을 해온 국회의원 폴 라카즈, 여교사와 오랜 친구이자 한때 연인이었던 반 아케르가 용의선상에 오른다.

저마다 살인동기와 혐의점이 있지만 결정적인 단서가 드러나지 않는다. 용의자들을 중심으로 전개해오던 수사는 끝내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내지 못하면서 점점 더 짙은 안갯속으로 빠져든다.

소설의 배경이 되고 있는 피레네산맥 인근 지역은 작가가 태어나고 성장한 곳이고, 아름다운 숲과 호수, 짙은 안개, 계곡을 흐르는 물, 호수와 숲 언저리에 위치한 전원주택으로 유명한 곳이다. 작가는 그 지역 출신답게 실제로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숲길, 불길한 느낌을 자아내는 먹구름, 천둥과 번개, 쉴 새 없이 퍼붓는 비는 이 소설의 또 다른 배경이다. '물의 살인'이라는 제목이 이해되는 부분이다.





“정신이 들었을 때 오디오세트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가…….”

“무슨 특별한 음악이었나?”

“그게…….” 소년이 깊은 생각에 빠진 표정으로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었다. “제가 그 집에 있을 때 클레르는 종종 음악을 틀어놓곤 했는데 그런 음악은 처음이어서…….”

“어떤 음악이었는데?”

“고전음악이었어요.”

세르바즈는 위고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고전음악이라면? 등골을 따라 기어오르는 소름이 느껴졌다.

“그녀가 평소에 듣지 않는 음악이었나?”

위고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해?”

“제가 아는 한 그래요. 그녀는 재즈 아니면 록을 들었거든요. 심지어 힙합까지도. 그날 저녁 이전에는 다른 음악을 들은 기억이 없어요. 그래서 정신이 들자마자 순간적으로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던 기억이 나요. 어딘가 모르게 음울한 음악소리가 들려오는데, 집은 인기척 없이 휑하더군요. 정말이지 평상시와는 달랐어요.”

어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세르바즈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스멀스멀 고개를 들었다. 희미하고, 넓게 퍼져나가는 무엇. < pp. 109~110 >





이르트만은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혹시 성형외과의 힘을 빌리진 않았을까? 머리와 수염을 기르거나 염색을 하고 콘택트렌즈를 끼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 몸무게를 불리고, 말투와 걸음걸이까지 바꿔 새로운 일자리를 얻었을까? 이르트만을 떠올리자니 수많은 궁금증이 밀려들었다. 세르바즈는 만약 그가 완전히 다른 복장을 하고 얼굴에 분장까지 하고 나타나면 과연 알아볼 수 있을지 궁금했다.

인파 속에서 그 스위스인이 몇 센티미터 앞을 지나친다면…….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온몸을 훑었다.

세르바즈는 CD를 담은 투명봉지를 감식반원에게 돌려주며 투광기 때문에 두 눈을 깜빡였다. 별안간 뱃속이 쓰렸다.

쥘리앙 이르트만이 아내와 정부를 살해한 저녁 선곡한 곡이 바로 <킨더토튼리더>였다. 세르바즈는 초동수사와 이웃 탐문조사가 정리되는 대로 여러 곳에 전화해 몇몇 사람들을 불러들여야 한다는 것을 감지했다. 오래전 사랑했던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형사생활 중 가장 끔찍했던 살인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음악이 어떻게 하나의 범죄현장에 모일 수 있는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만큼은 알 듯했다. 그 자신, 검찰의 위임을 받은 수사관일 뿐 아니라 직접 이 사건에 연루된 입장이라는 사실. < pp. 121~122 >





“그중에서 단연 흥미로운 케이스가 있었는데, 고속도로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사람의 증언이었습니다. 사진 속 인물이 자기 주유소에 와서 기름을 넣고 신문을 사갔다는 거예요. 모터사이클을 탔는데, 머리를 염색했고, 턱수염을 길렀고, 선글라스를 착용했지만 틀림없이 그 자라는 거죠. 온라인상 사진 중 하나를 빼박았고, 신장과 체격이 일치하고, 어딘가 모르게 스위스 억양이 살짝 실린 말투였다는 겁니다. 게다가 이번엔 운 좋게도, 주유소에 설치된 감시카메라로 영상까지 확보했다는 거 아닙니까. 주유소 주인 말이 사실이었어요. 분명히 말하지만 그 자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가능한 일이에요.”

세르바즈는 북을 두드리는 것처럼 심장이 박동했다.

“주유소 위치가 어딥니까? 언제 그랬다는 거예요?”

“2주 전입니다. 경정님한테는 잘 된 일일 겁니다, 위치가 몽토방 북쪽 고속도로 A20, 두르 숲 구역이거든요.”

“모터사이클은 영상으로 찍혔나요? 번호는 조회해봤어요?”

“우연인지 의도적인지 카메라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모터사이클을 세워두더군요. 하지만 툴루즈 방향 좀 더 남쪽에 위치한 톨게이트에서 다시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미지가 아주 선명하진 않은데 번호는 처음 몇 개만 확인했고, 계속 조사 중입니다. 이제 경정님의 이야기가 왜 중요한지 이해하겠죠? 문제의 그 바이커가 진짜 이르트만이라면 현재 그는 경정님의 관할구역을 돌아다니고 있는 셈입니다.” < pp. 209~210 >





“그중에서 단연 흥미로운 케이스가 있었는데, 고속도로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사람의 증언이었습니다. 사진 속 인물이 자기 주유소에 와서 기름을 넣고 신문을 사갔다는 거예요. 모터사이클을 탔는데, 머리를 염색했고, 턱수염을 길렀고, 선글라스를 착용했지만 틀림없이 그 자라는 거죠. 온라인상 사진 중 하나를 빼박았고, 신장과 체격이 일치하고, 어딘가 모르게 스위스 억양이 살짝 실린 말투였다는 겁니다. 게다가 이번엔 운 좋게도, 주유소에 설치된 감시카메라로 영상까지 확보했다는 거 아닙니까. 주유소 주인 말이 사실이었어요. 분명히 말하지만 그 자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가능한 일이에요.”

세르바즈는 북을 두드리는 것처럼 심장이 박동했다.

“주유소 위치가 어딥니까? 언제 그랬다는 거예요?”

“2주 전입니다. 경정님한테는 잘 된 일일 겁니다, 위치가 몽토방 북쪽 고속도로 A20, 두르 숲 구역이거든요.”

“모터사이클은 영상으로 찍혔나요? 번호는 조회해봤어요?”

“우연인지 의도적인지 카메라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모터사이클을 세워두더군요. 하지만 툴루즈 방향 좀 더 남쪽에 위치한 톨게이트에서 다시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미지가 아주 선명하진 않은데 번호는 처음 몇 개만 확인했고, 계속 조사 중입니다. 이제 경정님의 이야기가 왜 중요한지 이해하겠죠? 문제의 그 바이커가 진짜 이르트만이라면 현재 그는 경정님의 관할구역을 돌아다니고 있는 셈입니다.” < pp. 209~210 >





“말씀드렸다시피 익사한 경우 사망 원인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다양한 현상을 분석하다보면 좀 더 확실한 추정이 가능하겠죠. 예컨대 혈액 내 스트론튬 농도가 그렇습니다. 일반적으로 혈액 안에 존재하는 스트론튬 농도가 여자가 발견된 욕조 물에 근접한 수준을 보일 경우 욕조에 잠겨 익사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음…….”

“사체의 푸르죽죽한 색조도 마찬가집니다. 침수현상은 그런 색의 형성 자체를 지연시키지요. 조직검사도 해봤지만 특별한 게 없었습니다.”

이 말이 세르바즈의 심기를 상당히 건드렸다.

“손전등은요?”

“네? 손전등이요?”

“그 문제는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글쎄요. 해석은 그쪽 일이고, 저야 팩트를 다루는 데 만족해야죠. 여자가 패닉 상태였던 건 분명합니다. 심하게 몸부림을 쳐서 몸을 묶은 끈이 살점을 깊이 파고들었어요. 문제는 어느 시점에 그랬느냐는 겁니다. 그렇게 본다면 아마도 두개골에 치명타가 가해졌다는 가설은 논외로 쳐야할 겁니다.”

세르바즈는 지나치게 몸을 사리는 법의학자의 말투에 슬슬 짜증이 치밀기 시작했다. 물론 델마는 아주 꼼꼼한 전문가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바로 그러하기에 더욱 조심스러워한다는 점 역시 머리로는 이해가 되었다.

“내가 얻고자 하는 건 뭔가 좀 더…….”

“딱 떨어지는 결론 말이죠? 분석이 낱낱이 행해지고 나면 아마 그런 게 나올 수 있을 겁니다. 현재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여자가 산 채로 욕조에 빠져 익사했을 확률이 95퍼센트에 달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정도면 그리 모호한 결론이라고 할 순 없죠, 안 그렇습니까?” < pp. 304~306 >





“한 가지 충고하겠습니다. 당신은 말할 때마다 은연중 ‘제가 생각하기엔’이랄지 ‘제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같은 표현은 쓰는데 좀 자제하세요. 유권자들은 정치인의 개인적 의견 따위는 듣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좋아하는 건 행동과 사실입니다.” 까칠한 말투였다.

이 대목은 묘하게 머릿속에서 맴돌며 사라지지 않는다. 이어지는 2권이 기대된다.


저자 : 베르나르 미니에(BERNARD MINIER)


세관직원으로 근무하며 단편과 중편소설을 써오다가 50대에 첫 장편 『눈의 살인』을 발표하며 늦깎이로 데뷔한 작가이다. 프랑스 남서부 피레네산맥 근처 베지에에서 태어났고, 인근 몽레조에서 자라고 학교를 다녔다. 주로 고향인 피레네 산맥 인근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쓰고 있다. 늦은 데뷔였지만 중단편 소설 을 습작으로 써오면서 쌓은 실력이 탄탄해 첫 소설 『눈의 살인』부터 언론과 독자들로부터 크게 주목받았다. 2011년 장편소설 『눈의 살인』을 발표하면서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데뷔작인 『눈의 살인』은 코냑추리소설대상을 수상했고, 프랑스 M6텔레비전에서 6부작 드라마로 제작돼 최우수 TV시리즈상을 받았다. 현재 파리 교외 지역에서 거주하며 여섯 편의 장편소설을 출간했고, 프랑스를 대표하는 스릴러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개성이 뚜렷한 인물들, 생생한 대화, 탁월한 심리묘사가 돋보이는 그의 소설은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기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물의 살인 LE CERCLE』은 프랑스 남서부에 위치 한 작은 대학 도시 ‘마르삭’에서 발생한 여교사 살인사건을 다룬다. 『눈의 살인』에 이어 마르탱 세르바즈 형사가 다시 사건 해결을 위해 소환돼 어느 한 비극적인 사건에서 비롯된 연쇄살인의 비밀을 파헤친다. 주요 작품으로 『눈의 살인』, 『자매 SOEURS』, 『밤 NUIT』, 『빌어먹을 이야기 UNE PUTAIN D'HISTOIRE』, 『불을 끄지 마』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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