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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틈 사이로 한 걸음만
제임스 리 지음 / 마음서재 / 2020년 7월
평점 :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나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
"난 항상 이곳에서의 마지막날을 꿈꿔. 하루 빨리 자유라는 걸 되찾고 싶어. 혼자서 목욕탕 가고, 마트 가고, 카페 창가에 앉아 사람들 구경하고..."
인간은 누구나 자유를 원한다. 또 국가라는 제도 하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자고, 놀고, 일하고 등의 살아가는 일을 자유롭게 하도록 법으로 보장한다. 특히 어떤 일을 선택해야 할 상황이라면 자신이 선택할 권리도 보장돼 있다. 단 법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를 보장하고 있다. 이 같은 인간으로서의 기본 권리는 오늘날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법으로 범죄라고 규정하고 국가 공권력을 들여서도 못하게 하는데도 근절되지 법과 공권력의 사각지대가 있다.
이른바 관습이고, 사회의 필요악이라고 규정하며 실제로 도외시했던 성매매 행위가 그중의 하나다.
지금은 국가나 법에 의해 워낙 강력한 처벌이 따르기 때문에 예전처럼 내놓고 하는 매매 행위는 줄어든 듯 보이지만 점점 은밀한 거래로 숨어들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문틈 사이로 한 걸음만』은 ‘성매매특별법’ 제정 및 시행에 계기가 된 성매매업소 화재 사고 2건을 배경으로 하는 실화 소설이다.
1차 사고가 일어난 지 1년 6개월이 채 되기도 전에 일어난 2차 사고, 앞서 비극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조적으로 전혀 개선된 점 없이 더 많은 희생자를 내고야 만 당시의 잔혹한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이 소설은 우리 사회가 성매매 여성에게 지우는 혐오와 편견이 어떠한 것인지를 똑바로 직시한다. 성매매 여성들은 선불금과 그에 따른 이자 등 금전적인 올가미에 걸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불어나는 빚을 감당할 수 없다.
이와 같은 빚과 폭력, 감금 등 성매매의 폐단은 성매매 여성이 성매매에서 탈출하는 것을 극도로 어렵게 만든다.
그뿐만 아니라 이 소설은 경찰, 공권력, 지역사회와 성매매의 뿌리 깊은 유착을 숨김없이 보여주며 우리 사회가 왜 그동안 성매매와 관련된 문제에 있어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이 소설은 취업 사기 등으로 성매매라는 올가미에 걸린 여성들의 사연을 알려줌으로써 성매매의 추악한 민낯을 보여준다.
여기 한 여성이 있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극복하기 힘든 가난으로 중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중퇴해야 했다. 또 다른 여성이 있다. 그녀는 처참한 가정폭력이 일상이었던 아동학대 피해자다. 그리고 또 다른 여성은 사랑했던 사람에게 임신한 채 버림받았다. 막을 길 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훔치며 임신중절 수술을 한 그녀는 육체에 남은 아픔보다도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에 고통스럽다.
친족 간 성폭력, 윤간 등 여성성이 무참히 말살된 범죄 피해를 당한 여성도 있다. 생각하기도 끔찍한 이 피해들을 중복해서 당한 여성들도 있다. 그리고 사회적 기반이 전혀 없는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고난을 겪은 이 여성들은 끝내 성매매라는 세상에 존재하는, 최악의 늪에 빠지고 만다.
‘고등학교 중퇴의 가출소녀’라는 딱지가 붙은 소희가 살아가는 현실은 혹한의 겨울, 허허벌판에서 서늘한 바람을 맨몸으로 맞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살을 에는 바람은 그칠 줄 모르고 그녀를 티켓다방에서부터 전국의 여러 유흥업소를 거쳐 마침내 감금된 채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는 군산 개복동 성매매업소로 데려오고야 만다. 어느 날, 종일 소름 끼치는 시커먼 연기와 매캐한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코앞의 동네, 완벽하게 똑같은 구조의 업소에서 화재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이 사고로 해당 업소의 성매매여성 5명이 안에 갇혀 탈출하지 못하고 사망한다. 업소의 모든 출입문에는 쇠창살과 이중 잠금장치가 설치되어 있어서 밖에서 누군가가 자물쇠를 열지 않는 이상 밖으로 나가는 길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었다. 그녀들은 굳게 잠긴 문 앞에서 단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한 채 목숨을 잃었다. 소희는 업소의 좁은 창문을 통해, 온 동네를 시커멓게 휘감은 매캐한 연기를 멍하니 바라본다.
이 소설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성 구매자 남성들은 성매매여성들의 성을 하룻밤 샀다는 이유로 마치 그녀들의 인격까지 모조리 산 것처럼 행동한다. 이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폭력적 착취와 인권유린이 발생한다.
최근 ‘미투운동’이 일어나며 변화의 바람이 불었지만, 정치인, 사회 유명인사, 연예인에서부터 연인 관계에 있는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성범죄는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성 상품화와 왜곡된 성적 가치관이 지배하는 사회, 성매매여성의 탈성매매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기형적인 성 산업의 구조는 소설의 배경이 된 화재 사고가 일어난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혀 다를 바가 없다.
바로 이 점이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어른의 머리와 가슴을 뜨끔하게 한다. 범죄의 악랄함, 잔혹성과 함께 미성년자 피해자들이 많아서 더욱 뜨거운 도마 위에 오른 ‘n번방 사건’ 또한 우리 교육현장의 성교육은 실패했고 이 사회의 성 문화는 뼛속 깊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 점이 이 소설의 출발이다.
이 소설은 또 주인공 소희가 호주 원정 성매매를 하는 내용도 등장하는데 이를 통해 해외로까지 뻗어 나간 대한민국 성매매의 공고한 카르텔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성매매가 합법이냐 불법이냐는 논쟁을 떠나서 효과적인 성교육과 윤리의식이 뒷받침되는 올바른 성 문화를 세워나가는 일이 시급하다는 메시지를 소설은 전한다. 또한, 이 소설은 성매매로 인한 인권유린을 철저히 파헤침으로써 성매매가 인권 문제이자 사회 문제임을 외치고 있다.
이 소설에는 자신이 결정하고, 추구하는 삶의 궤도 위에 올라서기에는 상상 이상의 모욕과 두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여성이 등장한다.
등장인물 초희, 미희, 미애 그리고 주인공 소희 등 그들 모두, 자신을 삼킬듯한 아니 삼켜버린 잔인한 현실 속에서 도망쳤지만 그들이 도착한 곳은 결국 '성매매업소'였다. 아무리 전력으로 뛰어봤자 그들을 둘러싼 현실은 여전히 난공불락 그 자체였다.
자줏빛 붗빛 아래에 창가 앞에 한 개의 인형처럼 줄이어 앉아있는 성매매여성들. 그들의 현실이 본격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한다. 벗어날 수 없는 감시와 잔혹함. 화재사건으로 인해 사망에 이르기까지 그녀들에게는 최소한의 자유조차 성립될 수 없다. 왜냐하면 애초에 사회 속에서 사람이 아닌 인형 또는 쾌락적 장난감 정도로 치부되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화학성 화장품을 진하게 바르고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지 못하면, 그만큼 자신을 더욱 옥죄어오는 채무 그리고 압박. 그 안에서 소희는 지환에 이어 효석이라는 진정으로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는 남성을 만나지만 그들 역시 어느 순간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다.
우연한 기회를 얻어, 효석이 다니는 군산의 한 기업에 들른 겸 그곳 화장실로부터 전력으로 도망친다. 익산역으로 그리고 서울로 향하던 중 쓰러지고 들르게 된 대학병원, 그곳에서 마주하게 된 망가질대로 망가진 그리고 피폐해진 몸. 몸과 마음이 더 이상 제기능을 다하지 못하게 될지언정 그녀의 신분은 늘 상품 또는 인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호주로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기까지 그녀를 둘러싼 현실은 여전히 불변이다. 철조망, 사슬 그 자체인 건물로부터 결코 벗어나지 못하고 문앞의 조폭들로부터 단 한 순간도 벗어나지 못한 그녀들은 결국 죽음으로써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성매매가 이루어지는 2층에서, 창가 앞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자줏빛 음탕한 그 창가 앞에서 늘 강요되는 그녀들에게 자유를 향한 가장 작은 보폭 한 걸음도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그 잔인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겠다는 작가의 굳은 의지를 제대로 느끼게 된다.
저자 : 제임스 리
제임스 리는 작가이자 여행칼럼니스트로서 현재까지 116개국 해외여행을 했으며, 호주 시드니 법대대학원 수료(SAB코스), 전 KOTRA 전문위원이다. 호주 시민권자로 십 수년간의 호주 이민 생활 끝에 눈으로 직접 본 시드니 카지노 한인 피살사건, 한인 이민 브로커 피살사건 등을 다룬 논픽션 소설 『불법체류자』 (2017년)를 출간하였고, 자전적 체험을 근간으로 한 소설 『1980화악산』(2018년)을 통해 군대 내의 뿌리 깊은 폭력과 부조리, 동성애 등을 다뤘다. 이처럼 작가는 소설을 통해 우리 사회의 가장 민감한 문제를 들춰내 약자에 대한 폭력을 비판하며, 소외되고 억압받는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그 외 인문서로서 『돈: 세계사를 움직인 은밀한 주인공』(2019년), 『소소하지만 확실한 세계사 상식』(e-book, 2018년), 『법을 알면 호주가 보인다』(e-book, 2016년 개정판), 『법을 알면 호주가 보인다』(2004년)가 있다.
방송활동으로는 [밖으로 나가면 세계가 보인다]라는 주제로 K-TV에 특별대담 초청 출연한 바 있으며, 현재 [법률저널]과 미주 [The Korean News]에 ‘제임스 리의 여행칼럼’을 수년 째 연재 중이다. 그 밖에 미래부, 법제처, 서울시, 충청남도, 광양만경제자유구역청, 지방행정연수원, 서울도시철도공사, 충북기업진흥원, 한양대, 부산대, 영남대, 한국산업기술대, 한국-호주 친선협회, 선농문화포럼, CEO 포럼 등 중앙부처 및 지자체에서의 강연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온라인 활동으로는 Daum 카페 『해외여행사랑- 밖으로 나가면 세계가 보인다』 운영자로 활동 중이며, 페이스 북에서는 ‘리제임스’라는 아이디로 오늘도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에서 진행하는
체험단,리뷰단에서 제공 받아 작성한 솔직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