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살아갑니다
박영희 지음 / 숨쉬는책공장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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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르타주(Reportage)는 사회현상이나 사건을 충실히 기록하거나 서술하는 보고기사 또는 기록문학. 르포르타주란 원래 프랑스어로 탐방·보도·보고를 뜻하는 말이며, 약칭하여 '르포'라고도 한다. 흔히 논픽션과 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논픽션은 픽션의 상대어로서 좀더 포괄적인 개념이며, 르포르타주는 논픽션 중에서도 특히 저널리즘에 가까운 유형을 지칭한다.

르포르타주의 요소는 이미 계몽주의 시대의 여행기나 사회조사에서 나타나지만, 문화적인 중요성을 띠고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20세기 이후의 일이다. 그 배경에는 교통과 매스컴의 발달, 정치·사회 문제에 대한 전지구적 관심의 확대, 그리고 사회주의 이념에 입각한 혁명적 기록문학의 등장 등이 자리잡고 있다.

문학적 형상성에 대한 배려보다는 사실 자체를 직접 제시하는 데 주력하는 르포르타주는 심미적 가치나 예술성의 측면에서 본격문학에 비해 열등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사건 자체에 대한 즉물적인 기록이 잘 다듬어진 예술적 허구보다 훨씬 더 박진감있는 흥미를 유발하기도 한다. 르포르타주의 대표적인 작품들은 모두 중요한 사회적 사건을 대상으로 하며 치밀한 취재와 구성, 그리고 현실에 대한 비판정신을 두루 갖추고 있다. [출처 : 문학비평용어사전]





르포문학의 본래 의미에 충실한 이 작품에서 독자들은 일상에서 자주 마주치지만 미처 헤아리지 못한 그들의 직업적 애환을 만난다.

매연에 둘러싸여 일하면서 통행객들의 점잖지 못한 말투나 성희롱까 당해도 이에 항의하거나 성희롱으로 고발하기도 어렵다.

말로 하는 성폭력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업무인 것이다. 그래도 좁은 부스 안에서 고통스런 업무를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는 오로지 '살기 위해서'다.

또 무급 근무를 이어가며 페업을 막았지만 누적 적자를 이유로 결국 폐업한 진주의료원에서 일한 의료 관계자 및 공중보건의 등도 우리가 예상치 못한 사회적 피해자들이다. 작가는 한때 호황으로 수출 역군으로 대우 받기도 한 조선소 목선제작 목수도 배가 이젠 일본산 플라스틱 선박으로 대체돼 선박수리공으로 일 있는 날만 바라보는 일당제 최저 대우를 받아도 감사하다며 일해야 하는 처지다. 페지값이 떨어져 하루 종일 일해서 몇 천원씩 받던 것도 이젠 1천~2천원에 불과하다.





저자 박영희는 이번에 낸 책 『그래도, 살아갑니다』에 사회 소외 계층에 초점을 맞추고, 이들의 직업적 특수성, 근로 환경, 임금 등 사회적 차별을 받고 있는 현실을 고발한다. 르포 문학의 주 테마인 사회 비주류 계층의 삶을 조명한 것이다.

그들이 소외 계층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와 현실을 조목조목 직업별로 만나 현장 확인, 인터뷰, 국가의 대안 마련 등을 파고들었다.

전 국민의 노력을 밑바탕으로 우리 경제가 좋아지면서 국민소득도 크게 높아졌다. 우리는 개발도상국에서 이젠 선진국 대열에 올라설 정도에 이르렀다. 지난 1960년대부터 정확한 통계를 낸 이후 마이너스를 기록한 일은 한 번도 없을 뿐만 아니라 70년대 후반까지는 고속성장을 이뤘다. 국민소득 증가는 국민의 국가의 부강을 의미한다. 나라가 부자면 성장 과정에서 노력한 사람들이 분배의 보상을 해줘야 정의로운 국가다.

그러나 성장 과정에서의 불평등 분배는 차치하고도 부자가 됐는데도 소외 계층은 대를 이어 비주류다. 신분 상승의 기회는 오히려 줄어드는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분배 차원에서의 저소득 소외 계층에 대한 복지 혜택을 늘려나가도 여전히 그늘진 내 이웃은 햇볕을 제대로 쬐지 못한다. 그래서 경제 성장 못지 않게 분배도 중요한 국가의 일이다. 민주주의 국가, 시장경제의 자본주의 국가에서 분배가 정의롭게 이뤄지지 않아 늘 사회 문제로 존재한다.





국민 소득 증가는 소비 증가를 불러온다. 소비 증가는 귀금속 등 주얼리의 시장도 커진다. 주얼리 등 사치품 시장은 규모화되고 기계화된다.

이 경우 주얼리 시장이 커질 때까지 노동력을 제공하고 적은 임금을 받아 삶을 유지하던 사람들은 일할 자리마저 위협받는다.

산업화의 그늘에서 묵묵히 일하던 사람들은 업종 전환을 하거나 비슷한 다른 저임금 일자리라도 있으면 감사해 하며 일하는 처지로 밀려난다. 이렇게 밀려난, 이젠 일하는 날보다 안 하는 날이 많은 귀금속 세공사의 이야기도 가슴을 찡하게 울려온다.

'페이 닥터', 얼마 전 아파트 한 주민의 갑질 폭행으로 극단적 결심을 한 아파트 경비원도 사회보장의 사각지대에서 근무하고 있다. 물론 일정 기간 근무하면 실업급여 등의 수급 혜택은 받을 수 있지만 갑질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은 전무한 상태. 정도가 심하거나 상해 이상의 피해를 당해야 고발이 가능하지만 이 경우 대개는 일을 그만둘 각오를 해야 한다.

이밖에도 사회 소외 계층이 일하는 곳은 대부분 인권 보장, 사회 보장 등은 아직 확보되지 못했다. 국가가 노력해 정책적으로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완전히 실현되기까지는 사회적 차별이나 부당 대우 등을 감내해야 그나마 일할 기회가 주어진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각자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그래도, 살아갑니다』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간하는 격월간지 『인권』의 ‘길에서 만난 세상’의 내용을 책으로 꾸몄다. ‘길에서 만난 세상’의 내용이 책으로 담긴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길에서 만난 세상’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앞서 살펴본 대로 팍팍하고 힘겨운 상황 속에서 누구보다 더 힘껏 삶을 이어 간다. 그럴 수밖에 없는 처지로 몰린 탓이다. 작가는 취재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르포 형식으로 담았다. 이 책에는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 기간제 교사, 대리운전 기사, 지방 병원 간호사, 유기농 농사꾼, 지방 대학 청년들, 세공사, 선박 수리공, 경비원, 고려인, 장타령꾼 등 17편의 르포가 실렸다.

“사회적인 현실에 대해 주관을 섞지 않고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르포인 만큼 그 삶들의 면면이 그야말로 생생하게 담겼다.

인생이 녹록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래도, 살아갑니다』 속 사람들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보통의 다른 이들보다 더 힘들고 불안한 삶을 '버텨나간다'. 긴 호흡으로 바라보면 사실 많은 사람들이 하루하루를 그리고 일상을 열심히, 절실하게 살아 낸다. 극히 일부 사람을 제외하고는 잘사는 사람들도 삶을 치열하게 살아온 결과다.

그런데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어떤 대목들에서는 우리 사회의 오류 혹은 미흡함이 엿보인다. 『그래도, 살아갑니다』는 우리 사회의 모습과 우리, 그리고 이웃과 나를 돌아보며 지금보다는 더 나은 미래를 꿈꾸게 한다.





대리운전을 하면서 몇 차례 돈을 떼인 적도 있었다. 목적지에 다다르자 고객(차주)은 현금이 없다면서 양주석 씨의 통장 계좌번호를 알려 달라고 했다. 물론 그 돈은 입금되지 않았다. 대구에 서 구미까지 장거리 대리운전을 뛴 날은 그보다 더 황당한 일도 벌어졌다.

휴게소에 차를 정차한 뒤 고객이 부탁한 담배를 사 왔더니, 그사이 차주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양주석 씨는 그날 대리운전비 5만 원과 일당벌이마저 접어야 했다.


“저는 유명 강사의 특강을 썩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 하나같이 성공한 사람만 있고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없는 거죠? 자신의 꿈조차 말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청년 세대에게 성공 사례만 잔뜩 나열하는 강연이 오히려 불편했습니다.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대기업 입사 서류전형에서 지방 대학생 서류가 나오면 너무도 자연스럽게 말하잖아요. ‘지방대? 그거 한쪽으로 밀어 놔. 지방에서 배웠으면 얼마나 배웠겠어.’ 당부컨대 이 같은 장면과 대사는 자제하고 좀 더 신중해 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공공 의료는 탁상공론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말일세. 혹시 자네, 건강한 적자와 착한 적자라는 말 들어 봤나? 이 둘을 양손에 쥔 게 바로 공공 의료의 현실이네. 100세 시대에 정부만 바라보고 있는 고령 세대를 어찌할 것인가? 중년에서 노년으로 급속히 변해 가는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당장의 수익성보다는 좀 더 멀리 보자는 뜻이네.”





양재순 씨가 노령연금으로 받는 돈은 월 20만2,000원. 한 달 약값과 부식비로 들어가는 돈이 더 많다고 했다. “20만 원이면 적지요. 다음 달부터는 기름보일러도 돌려야 하고요. 그렇지만 어쩌겠어요. 괜한 소리했다가 이거라도 안 주면 콩나물 구경도 어렵게 되잖아요.”


세공을 비집고 들어온 액세서리(주얼리)시장도 광주 씨의 불안을 더욱 가중시켰다. 탄탄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정밀세공을 위협하는 액세서리 시장은 그동안의 귀금속 시장을 한순간에 바꿔 놓았다. 수작업이 기계화를 따라갈 수 없는 현실 앞에 광주 씨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경비 업무 중에서 제일 힘든 게 택배물 관리죠. 경비실이 비좁아 물건을 쌓아 둘 장소도 없을 뿐더러, 16개 택배 회사로부터 무더기로 택배물이 들어온다고 생각해 보세요. 자칫 분실했다간 주민들과 두고두고 말썽거리가 되지 않겠어요.”


정씨 할아버지가 고물을 줍느라 보내는 시간은 하루 10시간. 이동거리는 20km 내외. 일과를 아침에 시작하는 직장인들과 달리 할아버지는 오후 4시부터 고물을 줍는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그 무렵에 나가야 퇴근을 앞둔 사무실에서 신문을 내놓고, 상점과 약국에서 종이상자를 내놓기 때문이다.





“고려인들과 상담을 해 보면 안타까울 때가 참 많아요. 뿌리를 내릴 만하면 강제 추방을 당했잖아요. 고려인 1세대가 러시아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추방을 당했다면, 그다음 세대는 1990년대 사회주의가 붕괴하면서 갈 곳마저 잃어버렸다 할까요. 중앙아시아에서 소수민족 밀어내기가 노골화되자 몸을 피해 한국을 찾아온 거잖아요."


“졸업식 때 제일 비참하더군요. 3학년 담임을 맡고도 졸업식에 참석할 수 없으니 이보다 비참한 현실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기간제 교사는 겨울방학과 동시에 무급 신세로 전락하고 맙니다.”

발목을 다쳐 깁스를 하고 다닐 때였다. 연가를 내고 싶었지만 형탁 씨는 차마 입을 떼지 못했다. 3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데다 자신은 유급휴가를 낼 정교사 신분이 아니었던 것이다.


간호사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직장 내 괴롭힘을 일컫는 은어가 있다.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태움’이다.

태움은 주로 대형 병원에서 선배 간호사가 후배 간호사를 교육한다는 명목으로 행해지는데, 미래가 있는 직업일 거라고 입사한 선미 씨도 이미 거쳐 온 과정이다. 무려 1년 동안 영문도 모른 채 왕따만 당한 기분이었다.





저자 : 박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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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그때 나는 학교에 있었다》 《즐거운 세탁》 《팽이는 서고 싶다》 《해 뜨는 검은 땅》 《조카의 하늘》, 르포집 《해외에 계신 동포 여러분》 《두만강 중학교》 《만주의 아이들》 《나는 대학에 가지 않았다》 《내 마음이 편해질 때까지》 《보이지 않는 사람들》 《아파서 우는 게 아닙니다》 《사라져가는 수공업자, 우리 시대의 장인들》 《길에서 만난 세상》(공저), 평전 《김경숙》 《고 마태오》(공저), 시론집 《오늘, 오래된 시집을 읽다》, 서간집 《영희가 서로에게》, 여행 에세이 《하얼빈 할빈 하르빈》 《만주를 가다》 《안중근과 걷다》(공저), 청소년 소설 《운동장이 없는 학교》 《대통령이 죽었다》를 펴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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