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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에렉투스의 유전자 여행 - DNA 속에 남겨진 인류의 이주, 질병 그리고 치열한 전투의 역사
요하네스 크라우제.토마스 트라페 지음, 강영옥 옮김 / 책밥 / 2020년 7월
평점 :
지난 2015년 유럽으로 가려는 중동지역 난민들의 행렬이 이어지면서 ‘난민의 여름’이라는 진통을 겪은 유럽 대륙, 그리고 2018년 제주도에 온 예맨 난민을 받아들이는 문제로 인해 사회적 갈등을 겪은 우리나라와 이주민(인종)에 대한 불합리한 정책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는 미국 등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많은 권력자들은 이주를 고약한 바이러스와 같은 이미지로 부각시켰고, 이로 인해 사람들은 이주(난민), 폭력, 질병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난 수천 년간 인류의 이동과 이동성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인류는 이토록 눈부신 발전을 이룩할 수 없었을 것이란 게 학계와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주는 인류의 역사에서 빼놓고 생각할 수 없는 부분으로, 우리는 아주 오래된 인간의 뼈를 통해, 죽은 자의 유전자 프로파일뿐만 아니라 이러한 유전적 특질이 확산된 방식, 쉽게 말해 우리의 조상이 언제 어디에서 나타나 어디로 이동했는지 알 수 있다.
이 책의 이야기는 인류의 이주와 관련해 중대한 전환점이 된 작은 손가락의 뼛조각에서 시작된다. 이 작은 손가락은 새로운 인간 유형이 알려지고 초기 유럽인들과 네안데르탈인의 유사성을 직접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때 발견된 새로운 인간 유형은 현생 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의 공통 조상인 호모 에렉투스로, 그때까지 호모 에렉투스의 DNA 염기 서열은 분석된 적이 없었다.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발견된 이 작은 뼛조각을 통해 우리는 최초의 유럽인들은 왜 검은색 피부를 가졌는지, 민족이나 국적을 유전자로 구분할 수 없는지와 같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게 되는 놀라운 연구 결과를 가져왔다.
작은 손가락뼈 분석 자료를 토대로 한 이 책은 빙하기에서 시작해 진화의 실체를 완벽하게 밝히기 직전인 현대까지 이주를 통한 인류의 역사와 문화, 언어 및 사회구조의 변화, 전염병의 대유행 등 호모 에렉투스의 유전자 여행을 가이드하고 있다.
유전자 분석으로 과거를 추적해보면 우리 모두는 이민자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다. 우리 인류는 새로운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장소를 옮겨 다니며 인간은 새로운 도전을 했고, 앞으로도 이러한 유전자의 여행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인류 이주의 역사를 샅샅이 파헤치고 있다.
호모 에렉투스, 유전자 지도, 그리고 고고학. 이 책은 이 세 가지를 연결하고 융합해 탄생했다.
호모 에렉투스는 160만년 전부터 25만년 전까지 지구상에 생존했던 직립원인으로서 현존하는 화석 인류에 근거해 인간의 조상으로 정의되고 있다.
게놈 프로젝트가 최근 급발전함으로써 고고학자들은 그동안 화석으로 존재해왔던 인류의 원형이 되는 뼈의 유전자 본석이 가능해졌다. 시베리아에서 발견된 작은 손가락 뼛조각 하나가 우리를 새로운 원시 인류의 세계로 안내하는 근간이 된 것이다. 이 뼛조각을 분석한 학자들과 관련 전문가들의 노력으로 정확한 원시 인류의 실체를 알아낸 것이다.
고고유전학은 이제 인류의 조상인 원시 인류의 시대까지 DNA에서 역사를 추출해낸다. 이 결과로 이제까지 알고 있던 인류의 조상 네안데르탈인은 일부분 허상에 불과했다.
이 책의 공동 저자 요하네스 크라우제와 토마스 트리페는 서문에서 이렇게 시작한다.
"유럽은 이런 일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발칸반도를 넘어 대륙의 중심으로 밀려드는 이주 물결은 그야말로 시대의 전환을 이루는 사건임을예고한다. 이것은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농경 문화의 대가족들이 유입되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 새로운 땅을 차지하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터를 잡고 살아왔던 유럽인들에게는 기회가 없었다. 처음에는 유럽인들이 물러났고, 그 다음에는 고대 유럽 문화가 사라졌다. 유럽 대륙의 정착민들과 침입자들의 모습은 달랐다. 이렇게 민족의 교류는 시작되었다."
이후 8,000년이 흘렀다. 그리고 이제서야 겨우 민족 대이동에 관한 보다 정확한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기존 고고학의 연구 결과를 뒤집는 놀라운 결과를 이끌어내고, 근거가 부족했던 고고학 이론을 확정하는 증거가 된다.
여기에 발전된 의학의 DNA 분석 기술은 고고학 분야에서 다양하게 이용되고 있다.
오랜 세월 인간의 삶에 영향을 준 개와 말, 질병의 매개가 된 박쥐, 곰쥐, 물개, 아마딜로 같은 동물, 질병의 원인인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의 DNA마저 실험대에 올랐다. 고고학과 유전학이 결합한 고고유전학은 시간이 파묻어버린 모든 비밀의 열쇠로 등장한다.
공동 저자는 책에서 인간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 인간은 어디에서 왔는가? 인간은 어떻게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되었는가?에 초점을 맞췄다.
책에 따르면 요하네스 크라우제가 분석했던 손가락뼈는 '데니소바인'의 것이었다. 일명 '데니'라고 불리우는 이 소녀의 유전자는 원시 인류에 대한 기존 지식을 상당 부분 수정했다. 네안데르탈인과 같은 시대를 산 또다른 인류 종이 있다는 것이 밝혀짐과 동시에 두 종의 유전자가 섞여 있음이 드러났다. 또 이후의 연구에서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이 현생 인류와도 DNA를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20여년 전만 하더라도 현생 인류가 다른 인류 종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가설은 배척됐다.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겨졌다. 그러나 게놈 비교 결과 현생 인류는 네안데르탈인은 물론 데니소바인의 유전자도 일부 가지고 있었다. 2005년 이후 고고유전학은 비약적인 발전을 해왔고 이 책에서는 최전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학자의 연구 결과물이 담겨 있다.
책의 주요 내용을 기술하면서 추가로 알아야 할 정보는 따로 단락을 만들어 독자들이 읽고 이해하기 쉽게 배열돼 있다. 예를 들면 3장에서는 인류의 이주에 대해 언급하며 큰 원인은 기후가 꼽히므로 기후 변화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공동 저자는 친절하게 '과거와 현재의 기후 변화'라는 단락을 추가해 기후 변화와 이주의 관계를 설명해 문외한인 독자도 읽기 쉽게 배려했다.
이 책에는 유전자 연구를 통해 밝혀진 새로운 정보들이 가득하다. 사르디니아 섬 사람에게는 수렵민과 채집만의 유전적 요소가 섞이지 않은 초기농경민의 순수한 유전자가 남아 있다. 아메리칸 인디언의 유전 정보는 아시안인의 것보다는 유럽인의 것과 더 가깝다.
시궁쥐는 페스트로부터 유럽인을 구했다. 한센병은 유럽에서 아시아로 전파된 것이다. 지금 들은 예만 봐도 우리가 지금까지 배우고 알던 것과는 다른 놀라운 결과들이 많다. 이 같은 결과을 얻기 위해 수행한 일련의 유전정보 분석 과정과 논리적 맥락도 자세히 기술돼 있다.
독자가 워낙 지식이 없는 고고인류학의 '~~인' 등 낯선 단어가 많이 등장하고 유전자의 발달에 대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다. 어쩔 수 없이 그냥 넘어가도 지금까지 이 책에서 보여준 놀라운 연구 결과는 앞으로 우리 인류가 지구상에서 함께 살아야 할 많은 이유에 대한 정보가 많아 읽을 만하다. 조금 더 관심 있는 독자들이 천착해 연구 활동을 할 수 있는 초기 단계라는 점도 매우 고무적이다.
이 엄청난 연구 결과를 간단히 이야기하려고 저자들은 인류 역사와 유전공학을 넘나들며 다양한 내공을 풀어낸다. 감탄스럽다.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것은 쉽다. 쉽게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 어렵다는 말은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체화된 말이다.
이 책은 두명의 저자가 쓴 책인데, 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쪽은 요하네스 크라우제다. 그는 DNA를 통해서 인류의 역사를 풀어낸다. 우리가 읽는 역사책은 대부분 결과만 이야기 해준다. 과정을 함께 얘기하려면 엄청나게 길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중요한 부분은 원인, 과정, 결과, 전망 등도 함께 나와만 하지만... 아무튼 이 저자들은 누가 더 기여를 했는지는 독자가 따질 몫도 아니고 신경 쓸 이유도 없다.
'아프리카인들이 북쪽으로 이동했다.' 혹은 '가부장제도가 생겨났다'는 사실에 대해 저자들은 고고유전학 유전공학 등에 기반해 추론해 과학적으로 입증했다. 다른 저자는 토마스 트라페이다. 그는 요하네스 크라우제가 서술한 글을 보충 설명해준다. 그도 분명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저자 : 요하네스 크리우제
고대 DNA 연구분야에서 떠오르는 인재로 인정받고 있는 요하네스 크라우제는 1980년 독일 라이네펠데에서 태어났으며, 독일 예나의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 연구소와 막스플랑크 하버드 연구센터를 맡고 있다. 그는 네안데르탈인 게놈 해독과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원시 인류 형태를 발견하는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지금도 팬데믹의 역사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현재 그는 독일 라이프치히에 거주하고 있다.
저자 : 토마스 트리페
1981년 독일 존더하우젠에서 태어난 토마스 트라페는 과학 및 정치분야 전문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디 차이트(DIE ZEIT)〉, 〈쥐트도이체 차이퉁(S?DDEUTSCHE ZEITUNG)〉,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에 글을 기고하고 있으며, 현재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