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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대표 한시 312수 - 한시가 인생으로 들어오다
이은영 편역 / 왼쪽주머니 / 2020년 7월
평점 :
『우리가 사랑한 대표 한시 312수』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각각 당대를 대표하는 학자이자 문인이며 시인이었던 이들 194명의 한시 312수를 전한다.
중국 최고의 시인으로 추앙받는 이백에서부터 두보, 도연명, 조선시대 대표적인 실학자 박지원과 정약용, 일본 무로마치 시대의 선승 잇큐 소준까지 시대와 나라, 인물을 망라한다. 더욱이 김청한당, 허난설헌, 황진이 등 여성 시인들의 시가 수록되어 있어 한시의 다양함과 깊이를 더했다. 한·중·일 당대를 대표하는 학자이자 문인들의 시에서 동양 문학의 멋과 진수를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역사 속 인물들은 한시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조선시대 유학자 이황은 ‘꽃 내음 옷에 가득 달그림자 몸에 흠뻑’ 적시며 매화나무 주위에서 사색에 잠겼으며, 명랑대첩 한 달 전 충무공 이순신은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에 빠진다. 스물일곱 꽃다운 나이에 요절한 허난설헌은 ‘규방 어디를 봐도 봄기운이 없다’며 공부하러 간 남편을 외로이 기다린다.
또, 다산 정약용은 ‘꽃이 활짝 피었으니 그 열매 또한 풍성할 것’이라며 유배지에서 딸의 결혼에 가지 못하고 시 한 수를 보낸다. 한 시 한 수엔, 그 시대의 시름이, 인간으로서 외로움이, 기쁨과 절망, 희망이 담겨 있다.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은 명쾌한 해석이다. 당시의 상황을 친절하게 설명했을 뿐만 아니라 한시를 재미있게 읽는 방법도 소개한다.
한시 속에 담긴 이야기를 따라 중국 당나라로, 조선시대 이황의 앞뜰로, 정약용의 유배지로 시간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시 한 수는 마치 드라마를 보듯 우리를 선명한 옛 시대로 인도할 것이다.
오래 전 역사가 된 선인들은 인생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물론 과거와 현재는 많이 다르다. 첨단기술이 발달했고, 더 이상 왕과 신하도 존재하지 않는다.
여성도 적극적으로 사회에 진출하고, 남녀노소 자신의 생각을 쉽게 글로 남길 수 있다. 하지만 과거에는? 적어도 글을 쓰는 사람들은 특권층이었고, 그들의 삶은 하층민의 삶과 달랐으며, 지금처럼 통신이 발달하지 않아서 서신 하나를 보내도 몇 날 며칠 혹은 몇 달이 걸렸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어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다는 것.
312편의 한시는 아무리 세상이 변하더라도 바뀌지 않는 인생의 본질을 말한다. 그리움, 사랑, 번뇌, 우정, 욕망과 같은 인간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대부분 한시를 쓴 작가들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들이다. 나라를 세운 왕건, 이성계, 나라를 위해 싸운 이순신, 안중근, 새로운 학문을 개척한 실학자 박지원, 정약용 등, 모두 인생의 풍파를 거칠게 겪은 이들이다. 역사가 된 이들은 한시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저자 이은영의 안내로 한걸음씩 천천히 따라 들어간다.
역사의 거인이 된 인물들도 홀로 남겨진 달밤에는 어린아이처럼 님(가족, 애인)을 그리워하고, 외롭다고 말한다.
가족에게 받은 편지를 읽고 기뻐하고, 보낸 편지가 언제쯤 도착할지 가슴 졸인다. 자연 속에서 마음을 치유 받기도 하고, 거사를 치르기 직전 웅숭깊은 마음가짐도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다. 우리네 인생살이는 때론 순풍이 불기도 하고, 역풍이 불기도 한다.
언제나 즐거울 수만은 없다. 바람 잘날 없는 인생,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
『우리가 사랑한 대표 한시 312수』엔 <한시가 인생으로 들어오다>란 부제가 붙어있다. 천천히 음미하며 읽으면 유한한 시간 속에서 삶의 본질은 무엇인지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한시인만큼 한글세대인 요즘 사람들은 한자로 된 시를 읽으면 머리부터 아플지 모르지만 편역자의 해설과 주석 등을 통해 시의 의미는 물론 시어에 깃든 시인의 마음에 조금씩 다가갈 수 있으니 한자에 놀라는 일은 없으면 좋겠다.
독자도 오랜 만에 한시를 접한다. 한시는 5언(5자) 아니면 7언(7자)의 구절로 되어 있기 때문에 2자 3자 혹은 4자 3자로 구을 떼어 여러번 반복해서 읽다보면 자연 머리 속에 암기가 된다. 굳이 우리말로 풀어서 외우면 문장이 길어 지는데, 뜻 글자인 한문으로 외우면 기억하기도 쉽고 머리 속에 오래 남는다. 그리고 한시를 공부하면서 한자를 공부하다 보면 자연 어휘력도 풍성해진다. 우리말의 70%는 한자어에 기원을 두고 있다.
綠의新?酒(녹의신배주) 새로 담은 술에 거품이 괴고
紅泥小火爐(홍니소화로) 작은 화로에는 숯불이 벌겋소
晩來天欲雪(만래천욕설) 저녁 되면 눈이 올 것 같은데
能飮一杯無(능음일배무) 어떻소, 술 한잔하려요?
백거이의 <문유십구>란 제목의 시다. 한자로는 20자지만, 우리말로 풀이하면 글자가 더 늘어난다. 시 내용을 살펴보면, 대충 이런 내용이다.
한 겨울에는 점심 먹고 나면 금방 해가 떨어진다. 옆 동네 친구 유아무개에게 급히 시 한 수를 써서 기별을 넣는다.
갓 담은 술이 있는데, 어서 와서 같이 한 잔 하자고!! (p. 210)
술은 역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좋아하는 사람과 더불어 함께 마실 때 기분도 좋고, 즐거움도 배가 된다.
口耳聾啞久(구이롱아구) 벙어리와 귀머거리가 된 지 오래지만
猶餘兩眼存(유여양안존) 그래도 아직 두 눈은 멀쩡하다
紛紛世上事(분분세상사) 어지럽고 헝클어진 이 놈의 세상사
能見不能言(능견불능언) 할 말은 못 해도 다 보고 있다. (p. 203)
박수량의 <낭음>이란 시다. 기묘사화 때 파직 당했던 박수량이 간신들에게 경고한 시라고 한다. 경고 치고는 서슬이 퍼렇다. 입을 틀어막고, 귀를 막으려고 하지만, 눈 마저 억지로 감기게 할 수는 없다. 말은 못해도 두 눈 부릅뜨고 지켜 볼 것이다. 그러니 허튼 짓 할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마라. 나쁜 짓은 은폐하고 숨기려하고 감추려 하지만 언젠가는 다 드러나게 되어있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 지금 정치판을 보면, 답답하기 그지 없다. 선거때에는 그렇게 국민을 위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척 하더니, 지금은 정당 싸움에 여념이 없다. 서로 자기가 잘났고, 자기 정당만 옳단다.
박수량이 지금 정치하는 이들을 보면 뭐라고 할까 그게 궁금하다.
사실 이 책에서 가장 눈에 들어 온 것은 바로 정약용의 한시다. 사적으로 정약용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정약용의 한시가 여덟 편이나 실려 있다.
시선 이백의 한시가 여섯 편 시성 두보의 한시가 네 편인 것에 비하면 상당한 비중으로 실려 있다. 정약용의 한시는 다른 사람들의 한시와 달리 인간적인 측면이 돋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강진 귀양살이 시절에 온갖 근심에 싸여 지내며 지은 우래(憂來)라는 12장의 시의 첫 장부터 젊은 시절엔 성인이 되고 싶었는데, 중년에야 현자라도 바랐네. 노년이 돼서는 바보라도 달게 여기니, 그런 걱정에 잠도 못 이루네고 하며 꿈도 크고 하고픈 일도 많았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탄식을 한다. 삶과 세월, 꿈과 나이 등 인간으로서 심정을 보탬도, 꾸밈도 없이 읊는다.
이보다 조금 이른 시기에 쓰여진 驚雁(경안)이라는 시에서는 정약용이 나이 40세 때인 천주교와 관련되어 경상도 오지로 귀양 가는 길에 과천까지 동행한 부인과 마지막 밤을 함께 보내며, 거대한 권력 앞에서 한갓 미물에 불과한 기러기 신세가 되어 날이 밝으면 앞날을 기약할 수 없이 헤어져야 하는 부부의 신세를 한 쌍의 기러기로 비유하여 심금을 울리고 있다.
문학은 흔히 시와 문으로 구분되는데, 그 중에서도 시는 문학의 꽃으로 불린다.
이 책에는 역대 중국과 우리나라의 시인 중에 내용이 좋은 작품들을 일정한 주제에 맞게 테마별로 나누어 실어놓았다. 추사 김정희, 익제 이제현, 다산 정약용, 우암 송시열, 연암 박지원, 중국의 유명한 시인인 두보와 소식, 이백, 백거이 등 무려 194명의 한시 312수를 만날 수 있다.
사실 시는 어렵다. 산문과 달리 내용이 함축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재밌고 매력적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이 꽁꽁 감추려 한 뜻을 자간을 따라 곱씹어 읽고 생각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속에 숨겨진 뜻이 번뜩 하고 머리 속을 친다. 이 책은 원문의 뜻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 책이 돋보이는 이유다.
학교 다닐 때 한시 등을 읽고 마음에 들면 여러 번 암송해보기도 했지만 요즘은 찾아 읽지 않으면 보기도 어렵고 읽을 기회도 없다.
이 책 속의 한시들과 유명 작가들을 보니 다시 한시를 차분히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나마 독자의 문학에의 열정이 아직 남아 있다는 안도감은 든다. 이 책은 오랫동안 곁에 두고 틈나는 대로 공부하듯 들여다볼 생각이다.
책이 잘 만들어져 한자나 한시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도록 설명을 곁들여 놓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책 마지막에 실린 한시 작가 소개는 생각날 때마다 쉽게 찾게 잘 정리돼 우리 역사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기에 좋은 책이다.
저자 : 이은영(편역)
오랫동안 동양고전을 공부했다. 특히 묵자의 《묵가》에 대해 꾸준히 연구해왔다. 현재 한국묵자연구회 이사이자 서울묵자학당 회장으로 매주 고전강독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주간신문이나 월간잡지에 한시 감상 및 《논어》 강독에 관한 글을 연재 중이다. 저서로는 《이은영의 한시 산책》, 《한시로 읽는 사람과 생각》 등이 있다.
전주고와 성균관대학교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20여 년간 직장 생활을 했다. 이어 약 20년 동안 중소기업의 최고기술경영자(CTO)와 최고경영자(CEO)를 역임하다 은퇴해 지금은 한시 읽는 즐거움으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