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걸으면 좋겠습니다 - 남난희의 지리산 살이
남난희 지음 / 마인드큐브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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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나의 신이자 나의 부모, 나의 연인이고, 영원한 ‘내편’이다. 나에게 산이 그러하듯, 누구에게나 그런 대상이 있을 것이다. 꼭 산이 아니어도 괜찮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 자신이 좋아하고 가까이하는 대상에게 정성을 다하고, 몸과 마음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다 보면, 누구나 덜 아픈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산에서 위로를 받고 산에서 행복하듯, 당신도 그런 대상과 함께 하며 아픔에서 벗어나기를 기도한다. 오늘도 나는 걷는다. 당신도 걸으면 좋겠다.”

『당신도 걸으면 좋겠습니다』는 지리산 자락에서 살고 있는 산악인 남난희의 네 번째 책으로, 그녀가 10년 만에 내놓는 에세이집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걷는 일의 즐거움에 대해, 그리고 시골살이의 행복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산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라는 시구가 저절로 떠오른다. 한반도 남쪽에서 가장 높고 큰 산. 지리산의 품에 안겨 살아가는 그저 산이 좋아 산에서 사는 거라는데 왜 독자에게는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올까.





남난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우리나라 여성 최초로 백두대간을 종주한 사람이라는 것(1984년)과, 세계 여성 최초로 히말라야 강가푸르나 봉을 오른 사람이라는 것(1986년), 그리고 ‘금녀의 벽’이라 불리던 설악산 토왕성 빙벽을 두 차례나 등반한 사람이라는 것(1989년) 등이다. 그렇게 ‘오르는’ 산을 추구하며 산악인으로 이름을 날리던 남난희였지만, 지금은 오르는 것을 고집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리산 자락 ‘낮은 산’에서 더 많은 산을 만나고 더 깊은 산과 교감하며 살고 있다.

그의 그러한 지리산살이가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겼다. 현재 저자는 ‘산악인’이라기보다 ‘걷기 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지리산학교 숲길걷기반을 운영하고 있고, 지리산걷기학교에서도 교장을 맡고 있다.

곧 출범을 앞둔 ‘사단법인 백두대간평화트레일’에서도 이사장을 맡아 활동할 계획이다. 그런 만큼 이 책에는 ‘걷기’에 대한 저자의 애정과 경험이 많이 녹아들어 있다. 저자의 『하얀 능선에 서면』(1990년)이 높은 산을 지향하고, 『낮은 산이 낫다』(2004년)가 낮은 산을 바라본다면, 이번 책 『당신도 걸으면 좋겠습니다』는 그 높고 낮음의 경계가 다 지워진 ‘넓은 산’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딱 한 번 지리산에 오른 적 있는 독자로서는 '다시 오르고 싶지 않은 산'이 돼버린 지리산. 그곳에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존경스럽다.

산악인에게는 다를지 몰라도 지리산은 엄청나게 큰 산이다. 높이도 그렇지만 백두대간에서 뻗어내린 산맥의 마지막 부분에 자리잡아선지 산세도 험하고(등산 경험이 별로 없는 독자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첩첩산중이란 말이 어울리는 상황을 내려다봤을 때 오히려 공포감이 들기도 했다.

오죽 힘들었으면 다시는 안 온다는 생각을 했겠는가. 그러나 산악인에게는 마치 안방처럼 느껴질 정도라니...

그곳에 살겠다고 결심한 저자의 모습을 그려보니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 전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더욱이 산에서 생활의 각종 모습, 가끔 만나는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맛깔나게 글을 써 부럽기도 하다. 그의 다정하면서도 자세한 안내를 따라 그때 맛보지 못했던 지리산에 푹 빠져드는 일은 일종의 행운처럼 느껴진다.

지리산의 사계를 찍은 사진도 책 곳곳에 배치해 읽는 재미와 함께 보는 사치도 누려본다.





남난희 그가 산악인으로 호칭되는 것은 단순히 지리산에 살아서가 아니라 지금으로부터 수십 년 거슬러올라가 그의 등산 이력이 밝혀준다. 그의 산에 대한 사랑과 고집은 아마 이때부터 시작됐으리라. 그래서인지 산에 대해 아는 것도 많다.

걷다가 맷돼지를 맞닥드렸을 때의 상황을 묘사한 글에선 정말 영화를 보는 것처럼 눈앞에 그 상황이 아른거려서 긴장케 한다.

덩굴식물은 자세히 보면 한 방향으로만 감고 올라가는 듯 보인다. 지구의 자전때문인지? 어쨌든 한동안 산을 오가며 내가 확인한 덩굴은 모두 시계 반대방향으로 감으며 올라가고 있엇다. 예외는 없다. 독자는 덩굴식물의 방향을 생각해본 적도 없는데 앞으론 덩굴식물을 보면 감고 올라가는 방향을 유심히 보게 될 것 같다.

"어미새의 다급하던 목소리는 애처로움으로 바뀌었다. 고양이 놈이 나를 보고 놀라서 도망가며 남겼을 아기새의 신체 일부일 것 같은 무언가를 물어다가 가장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장작더미 위에 갖다 놓고는 그것이 살아있는 새끼인 양 벌레를 물어나르기 시작했다. 더 부지런히, 더 열심히. 아비새도 힘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내 집에 둥지를 만들고 알을 낳고 새끼를 돌보던 새들이 순식간에 고양이들의 공격을 받았을 때 본 장면은 가슴이 먹먹하다."





하지만 이 또한 생태계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면 참견할 수 없는 거겠지... 속 깊은 마음까진 헤아릴 순 없지만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기에 아들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냈음을 알게 됐다. 지리산살이의 결심을 굳힌 계기가 됐을까. 버티기 힘든 고통 또한 조금씩 산에서 치료를 받고 있을 터. 혼자서 산에 살다보면 무서운 일도 있고, 외롭기도 할 텐데 치유를 위해 산을 택한 것 같아 더 가슴이 찡하다. 험한 산행도 많이 했으니 산에서의 생활도 잘 이겨낼 것이라는 믿음에는 변함없다. 저자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 아닐지.. 길게 언급하지 않고 오히려 애써 감추려 하는 부분이어서 더욱 조심스럽다.

동물에게 관심을 주지 않고, 그들만의 삶과 사이클을 해치지 않으려고 하는 등 우리가 본받아야 할 많은 것을 배웠다.

마치 내가 잠시 여기에 살짝 얹혀살다 떠날 거란 생각으로, 유난스럽지 않게 산생활을 하고, 산을 걷고 산이 허락하는 만큼만 누린다는 신념은 산에 대한, 산이 품은 모든 것에 대한 사랑 없이는 생기지 않을 것이리라.





"산은 제게 운명인 것 같아요. 누구나 산에 가고 싶어하지만 제 경우는 산이 저를 받아줬다 생각해요. 그래서 항상 산에게 감사하며 삽니다. 젊은 날의 나는 그때 만난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지금의 나는 산에게 감사해요. 사람들이 지금 나 사는 것을 보고 이렇게 TV도 안 보고 신문도 안 보면, 누가 전화기 만들고 누가 공장 돌리느냐 하는데요. 다 나처럼 살아라 말하지는 못해요. 하지만 각자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좋은 세상이 된다 생각해요. 여긴 제 자리고 제가 살아가는 방식이에요."

그의 이런 인생관은 산을 사랑하고 산과 함께하는 사람이 지닌 산의 품성을 닮았다.

"산은 예수님, 부처님처럼 대답이 없잖아요. 산이란 게 대답이 없어 좋고 그래서 나에겐 산이 일종의 종교예요. 그런데 아무리 혼자 다녀도 사람을 만나야 이야깃거리가 나와요. 나 같은 사람은 산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만나니까 산이 참 고마울 수밖에 없지."

"젊을 때 나는 열혈 알피니스트죠. 세상에 오르고 정복해야 할 존재가 산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산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은 안줄에 두지도 않았죠.오로지 오르고 올랐다 할까요. 하지만 산에 오르면 오를수록, 도 개인적인 여러 곡절을 거치면서 어느 순간 산이 가르쳐 주더라고요. 그냥 묵묵히 들어주고 받아주는 포용해주는 산에게서, 나또한 그렇게 살아야겠디는 걸 느꼈습니다."





저자 : 남난희


지리산학교 숲길걷기반 교사, 지리산걷기학교 교사, (사)백두 대간평화트레일 이사장. 경북 울진에서 태어나 1981년 한국등산학교를 수료했다. 유난히 눈이 많이 오던 1984년 1월 1일부터 국내 최초로 76일 동안 백두대간 단독 종주에 성공하여 산악계의 샛별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여성 세계 최초로 해발 7,455미터 높이의 히말라야 강가푸르나 봉에 올라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 뒤 ‘금녀의 벽’으로 불리던 350미터의 국내 최장 설악산 토왕성 빙벽 폭포를 두 차례나 등반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1994년부터 지리산에 내려와 살다가, 2000년 강원도 정선에서 일반인을 위한 자연 생태 학습의 장인 ‘정선자연학교’를 세워 교장을 맡았다.

그러다 2002년 여름 태풍 루사가 온 나라를 휩쓰는 바람에 그동안 피땀 흘려 이룬 모든 것을 잃고 나서 다시 지리산으로 돌아왔다. 현재 지리산학교와 지리산걷기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백두대간을 국제적 수준의 트레일로 만드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저서로 백두대간 단독 종주의 기록 에세이 『하얀 능선에 서면』과 산문집 『낮은 산이 낫다』, 그리고 아들과 함께한 57일의 백두대간 등산 에세이 『사랑해서 함께한 백두대간』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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