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장례식장 직원입니다
다스슝 지음, 오하나 옮김 / 마시멜로 / 2020년 7월
평점 :
절판




살면서 장례식장을 찾는 경우는 흔한 일이다. 대부분 조문객의 신분으로 찾는다. 독자 역시 조문을 위해 찾은 장례식장은 대한민국 전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다. 어느 곳이든 장례는 모든 인간에게 공통으로 찾아오는 삶의 마무리 의식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경건하고 엄숙하다.

그러나 죽음이 비극이고, 슬픈 일이라는 인식 때문에 어둡다. 다만 장례를 치르는 예식 분야 담당자는 슬퍼만 할 수 없는 일이고 가끔은 너무 무겁지 않게 분위기를 유도하려 엄숙함을 가장하기도 한다. 독자도 부모님을 최근 10여년 내 모두 여의었다. 마지막 모습을 직접 보고 장레를 치렀지만 슬픔과 두려움에 장례 절차 따위는 주위에서 하는 대로 방관했다. 그래서 장례식을 치르는 시신부터 장지에 묻힐 때까지의 과정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의 분위기를 살필 겨를이 없었다. 이 책을 접하면서 그때 그 분들이 왜 그랬나 하는 생각을 추슬려봤을 뿐이다. 다시 한 번 장례식을 도와준 그분들께 감사드리며 이 책을 읽어 나갔다.

제목마저 무척 가볍게 다뤘지만 글 내용은 전혀 가볍지 않다. 폭로성 글로 읽히는 오해를 낳을 수도 있다. 저자가 너무 무겁지 않게 쓰려는 흔적이 보일 뿐 내용은 소설처럼 술술 읽힌다.





『나는 장례식장 직원입니다』는 출간 즉시 종합 베스트셀러 TOP10에 진입하며 대만에서 돌풍을 일으킨 에세이집이라고 한다.

장례식장에서 실제로 근무하는 20대 청년의 자전적 일화 모음집으로, 장례식장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일들을 블랙 유머 넘치는 코믹하고 감동적인 스토리로 풀어냈다. 저자 다스슝은 매일 시체를 다루는 일을 하면서도 명랑하고 낙천적인 인생관을 잃지 않는 사람이다.

자신을 ‘아무 생각 없는 뚱보 오타쿠’라고 칭하면서도, 자기 일을 좋아하고 현재의 삶에서 기쁨을 찾는다.

이런 저자의 태도는 총 57편에 달하는 짧고 유머러스한 경험담 속에 강렬한 철학으로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구체적으로 이 책에서는 장례식장에서 일하며 보고 들은 죽은 자들의 갖가지 사연과, 시신 복원사나 장의사, 시신 운반사, 안치실 경비원 등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면면들, 그리고 이 세계에서만 겪을 수 있는 기이하고 으스스한 괴담 등이 펼쳐진다.

무엇보다 이 흥미로운 소재를 풀어내는 저자의 재기 넘치는 발랄한 문체, 탁월한 글 솜씨가 인상적이다. 이미 이 책을 읽은 독자의 평대로, 한 번 펼치면 끝까지 눈을 뗄 수 없는 글의 매력이 느껴질 것이다.





장례식장이라 하면 흔히 어둡고 무겁고 슬픈 장소를 떠올린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인 다스슝의 시선을 통과하는 순간 이곳은 가볍고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따뜻하고 흐믓한 세계로 변모한다. 이를테면 저자는 장례식장에서도 손님들에 “반갑습니다”라고 인사를 했다가 “내 가족이 죽었는데 넌 반갑냐?”라는 타박을 받고, 어두운 새벽녘 순찰을 돌다가 “나 좀 도와줘”라고 붙드는 여자의 손을 무서워 뿌리치고 도망쳤다가 다음 날 쓰레기 치우는 할머니로부터 버르장머리 없는 청년으로 꾸지람을 듣는 등, 어딘가 허술한 20대 청년이다. 그는 가난하고 못 배웠고 부자가 되겠다는 꿈도 없으며 스스로를 ‘아무 생각 없는 뚱보 오타쿠’라고 칭하는 사내다. 그러나 그는 자기 일을 좋아하고 일하면서 만나는 모든 사연에서 살아갈 힘을 얻는 낙천적이고 소탈한 사람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점은 장례식장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오싹한 일조차 저자의 시선을 통과하면 기이하면서도 우습고 이상하면서도 따뜻한 일들로 바뀐다는 것이다.





장례식장은 매일 시체를 나르거나 꿰매거나 안치실에 보관하거나 경을 읽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일하는 곳이다.

하지만 이 에세이에서 그들은 냉정하고 과묵한 사람들이 아니라 평범하면서도 귀엽고 명랑하면서도 개성 넘치는 인물들로 등장한다.

시신 복원사인 여자는 머리의 반쪽이 없는 시체에 충전재를 넣어 봉합하는 일을 하면서도 바퀴벌레는 무서워하는 만화 같은 인물이고, 24시간 대기조로 살며 시체 운반 차량을 모는 기사들은 힘든 일을 하면서도 언젠가 경험담을 모아 책을 낼 꿈을 꾼다.

가슴팍에 용머리를 문신한 미남 기사는 “전에는 칼로 사람을 이쪽으로 보내는 일을 했다면, 지금은 시신 운반 차량으로 사람을 이쪽으로 보내는 일을 한다”며, 직업을 돈벌이 수단이 아닌 젊은 날 저지른 실수를 만회하는 기회로 삼는다.

독자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으스스한 괴담들도 들려준다. 죽은 시신의 장례를 정성 들여 치러줬더니 보답처럼 위패 앞에 세 개의 숫자가 쓰인 종이가 놓여 있었는데 그게 로또 3등 번호였다든지, 편의점 창가에 스친 여자애의 얼굴이 낯익어서 떠올려 보니 안치실 관속에 누워 있던 그 얼굴이었다든지. 여름밤 더위를 한순간 서늘하게 만들 실화들로 가득하다.





시신의 생김새에 따라 별칭을 부르는 것이 불편할 사람도 있다. 인간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평생에 한두 번도 시신을 접할 일이 없는 사람과 매일 몇 차례씩 시신을 처리하는 사람들의 감정상태가 같을 수 없으며, 직업적으로도 그것은 옳지 않을 것이다. ‘장례식장’은 사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가장 상징적인 공간이다.

그러다 보니 ‘장례식장 직원’이라는 직업에 대해서도 각자의 선입견과 신비를 가질 수 있다.

이 책은 이 특수한 공간에서 특별한 일을 하는 사람들의 생생히 묘사하면서, 현장의 실태라든가 죽음을 처리하는 이 시대의 방식을 간접적인 형태로나마 알게 해주는 매개가 된다.





그렇다고 르포 에세이처럼 고발성 짙은 글은 아니다. 오히려 블랙 유머와 인생 교훈이 교차하는 코믹한 철학 에세이에 가깝다.

킥킥거리며 빠르게 독서를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저자의 재기 넘치는 문체와 탁월한 글 솜씨에 있다.

출판사에 따르면 원래 이 책은 대만 유명 사이트에 인기리에 연재되던 <장례식장 직원의 별별 사건>을 모아서 단행본으로 엮은 것이다.

웹상에서 연재될 때부터 반응이 폭발적이었던 저자의 글은, 내용이 추가되고 정리되어 출간된 이후에도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힘든 일을 하면서도 삶에 대한 낙관적 태도와 유머, 타인에 대한 호의를 잃지 않는 저자의 인생관은 에피소드마다 진하게 배어 있어 독자의 마음도 덩달아 행복하고 즐겁게 해줄 것이다.





유가족들이 자리를 뜨자 장례업자는 슬쩍 몸을 돌리더니 할머니 손에서 반지를 빼 곧장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신기하지 않은가? 화장터에 가지도 않은 내가 이 일을 어떻게 알고 있을까? 사실은 화장터 동료가 그날의 일을 말해줬다.

반지를 몰래 가져가는 일이 아주 없진 않은데, 특히 이 할머니는 화장에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고 잘 타지도 않았다고 한다. 유가족들은 난감했을 것이다. 장례식에 들인 비용도 엄청나고 할머니가 가장 아끼던 물건도 챙겨드렸는데 어째서 가시는 길이 이렇게 어렵단 말인가!

그때 장례업자가 튀어나와 말했다. “할머니가 이 세상에 미련이 남으셨나 보네요. 우리 할머니 가시는 길 평안하시라고 불사(佛事)라도 지내드리는 게 어떨까요?” 그렇게 들인 돈에는 0이 다섯 개나 붙었다는 사실까지만 말하겠다.

- 「금반지의 행방은?」중에서


하지만 아기의 아빠는 줄곧 이 아기가 자신의 아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제대로 보살피지 않았고, 결국 예감은 적중했다. 아기의 진짜 아빠는 바로 아기의 할아버지였던 것이다……. 부자관계여야 하는 둘은 형제관계가 되고 말았다.

그러다 아기가 병으로 사망했다. 하지만 도망간 엄마는 당연히 책임지지 않았고, 아빠인 줄 알았던 형 역시 책임질 생각이 없었으며, 할아버지인 줄 알았던 친부는 더욱 책임지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냉동고에서 2년을 보낸 뒤에야 결국 누군가 나타나 서명을 해줬다. 그러지 않았다면 우리 쪽에서 그 사람들을 시신 유기로 고소했을 것이다. 그렇게 아기의 시신은 마침내 이곳을 졸업하여 다음 단계로 갈 수 있었다.

- 「아무도 찾지 않는 시신」중에서





엄마 품에 안긴 아이는 마치 깊은 잠에 빠진 듯 평화로워 보였다. 아마 손이 차갑게 식어 있다는 걸 몰랐다면 곧 깨어 날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난처한 표정으로 장의사를 쳐다봤다. 장의사는 내 표정의 의미를 눈치 채고 유가족들을 향해 말했다.

“죄송합니다. 규정상 냉동고 하나에 한 구의 시신만 넣을 수 있습니다.”

그러자 사망한 남자의 형제로 보이는 가족이 나섰다.

“사고 현장에서부터 제수씨가 아이를 안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검시가 끝나면 원래 상태로 돌려놓을 테니 지금은 이대로 냉동고에 넣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부탁드립니다. 돈이 문제라면 세 명 분의 냉동고 이용료를 지불하겠습다. 그냥 같이만 있게 해주세요. 떨어뜨려놓고 싶지 않아요.”

이번에는 장의사가 나를 향해 난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규정은 규정이었다.

만약 같이 보관했다가 나중에 두 시신이 달라붙거나 손상이라도 입으면 뒷일은 책임질 수 없었다. 지금까지 이런 경우는 한 번도 없었으니 안타깝지만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

- 「엄마 품속의 아기」중에서





나는 보디 백을 열어 이름표를 채우면서 시신 상태를 훑어봤다. 기사님이 가족들의 눈길을 피해 내게 말했다.

“피터팬이야.” 이렇게만 말하면 여러분은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목매달아 죽은 시신을 ‘그네 타기’, 투신자살한 시신을 ‘피터팬’, 부패가 심한 시신을 ‘헐크’, 번개탄을 피우고 죽은 시신을 ‘검둥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끔찍한 시신들을 어울리지 않는 별명으로 부르는 이유는, 무겁고 심각한 사건들을 처리하는 동안 유가족들과 같은 감정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다.

그렇다고 유가족들 앞에서 함부로 말을 꺼내지는 않는다. 이는 존중의 유무와는 관련이 없다. 어디까지나 일은 일이고, 해야 할 일은 조금도 소홀하지 않는다.

-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못하는 죽음」중에서


다만 궁금한 것은 왜 다들 목매는 방법을 선택했는가인데, 할머니 역시 젊은 시절 목을 매려고 했단다. 밧줄을 동그랗게 매달면 그 동그라미 너머의 세상이 달라 보인다고 했다. 마치 그쪽에서 누가 손짓하며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이다.

“이 동그라미 바깥에선 고생할 필요 없어. 매 끼니 걱정 안 해도 되고, 병으로 고통받지 않아도 돼.”

남편이 자살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도 따라가려고 밧줄을 묶었는데, 밧줄 너머로 남편이 손짓하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 그 동그라미는 할머니를 한 발 한 발 동그라미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 순간, 어떤 큰 힘이 할머니를 다시 바깥으로 끌어당겼다. 돌아보니 어린 딸이었다. 그와 동시에 동그라미 밖의 세상은 사라져버렸다. 남은 건 자신 앞에 놓인 잔인한 현실뿐이었다.

- 「동그라미 밖의 세상」중에서





사람이란, 에어컨 켠 차 안에서 번개탄을 피워 자살하는 게 존엄성을 지키는 일일까? 아니면 기저귀를 차고 호흡기를 단 상태로 우유만 받아먹다 어느 날 가래가 목에 걸려 사망하면 존엄성이 있는 걸까. 나는 요양보호사 일과 장례식장에서 시신을 맞이하는 일 둘 다 할 수 있었기에 기쁘다. 덕분에 나는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됐다. 때론 내가 정말 잘살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다음 생에는 도박도 하지 않고 엄마도 때리지 않는 아빠를 만날 수도 있겠지.

어쩌면 다음 생에는 오랫동안 병수발을 들지 않아도 되는 건강한 아빠를 만날 수도 있겠지.

어쩌면 다음 생에는 스물여덟 살 때 만났던 그녀와 용감하게 결혼이란 걸 해볼 수도 있겠지.

어쩌면 다음 생에는 ‘있다’와 ‘이따’를 확실히 구분할 줄 아는 내가 될 수 있겠지…….

- 「존엄성을 지킨다는 것」중에서


나는 청소를 시작했고, 그녀는 부족한 잠을 보충하러 침대로 들어갔다. 바닥을 쓸며 나는 생각했다. 남들은 남녀가 만나서 촛불 켜놓고 로맨틱한 식사도 잘만 하는데, 나는 핏자국 가운데서 점심식사라니. 남들은 남녀가 만나서 콘돔을 끼는데 나는 장갑이나 끼고 걸레질이나 하다니. 그런 생각을 하는 도중 갑자기 바닥이 수월하게 닦였다. 뭐지?

바로 내 눈물 때문이었다. 20분쯤 지나자 더 이상 쓸 수 있는 걸레가 없어서 그녀에게 말했다.

“옷 좀 줄 수 있어? 두 벌 정도만 있으면 청소를 깨끗이 끝낼 수 있을 것 같은데.” 하지만 그녀는 한사코 거부했다.

여자란 다 그런가 보다. 죽으려고 마음먹은 날에도 옷은 포기를 못한다. 그날 나는 깨달음을 얻었다.

죽은 사람 집을 청소하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이었는지 말이다. 산 사람의 집을 청소하다 보니 여기를 닦고 저기를 정리하라는 둥 참견하는 게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 「자살 미수자와의 하룻밤」중에서





저자 다스슝의 레터


저는 장례식장의 직원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주로 가난한 사람들의 시신을 냉동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혹은 연고자가 없는 무명인들의 시신을요. 제가 장례식장에서 일하니 괴이한 일을 흔히 겪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많지 않고요. 오히려 시신을 자주 보다 보니 죽음 앞에 놓인 인간의 본성을 더 많이 알게 됐습니다. 아, ‘인간’이란 이런 동물이구나! 라는 좀 다른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장례식장에서 좋은 동료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뚱보 경비아저씨는 제가 좋은 일이 있으면 같이 기뻐해주고 슬픈 일이 있으면 극복하도록 같이 노력해주는 분입니다.

제 꿈은 돈을 모아 흉가를 사는 것이고 가장 숨기고 싶은 사실은 저의 어마어마하게 뚱뚱한 몸이죠.

가장 후회되는 일은 스물여덟 살 때 땅에 떨어진 돈 봉투를 줍지 못한 일일 정도로 저는 그냥 평범한 소시민이에요. 장례식장은 모두들 아시다시피 한 사람이 마지막으로 자신의 가족, 친구, 그리고 세상과 작별하는 곳이에요. 그리고 제 직장이기도 하지요. 저는 그전에 계속 서비스업에 종사하다가 이 업계에 오게 된 거라 고객을 미소와 친절로 대해야 한다는 직업정신이 몸에 배어 있었어요. 그래서 처음엔 실수를 좀 했죠. 전화를 받을 때 밝고 높은 톤으로 “반갑습니다!”라고 했다가 “내 가족이 죽었는데 넌 반갑냐?”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고요.

장례식장에서 일하지만 기본적으로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딱히 집이나 차를 사고 싶지도 않고 여자 친구나 큰돈이 있었으면 하지도 않아요. 저는 제 일을 좋아한답니다. 일을 하면서 겪는 일이나 이야기들은 인생의 교훈이 됩니다. 그것이 나쁜 것이든 좋은 것이든 상관없이 다 의미가 있어요. 지금은 밥을 먹고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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