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지기 쉬운 마음을 위해서
오수영 지음 / 별빛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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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착하고 여린 사람은 세상의 모든 일이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아 혼자서 몰래 앓는다. 그렇게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며 서서히 마음에 금이 가기 시작하고 급기야 깨져버린다. 한 번 깨져버린 마음을 한 조각씩 주어 담아 다시 이어붙여 볼 수는 있겠지만 한 번 깨졌던 흔적은 끈질지게 살아남아 그 사람의 여생을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


2020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심성을 잘 표현해내고 있는 말이다. 작가가 서문 첫머리에 이 글을 둔 의도는 소시민의 삶을 사는 보통 사람들이 어디서, 어떻게 상처받고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집약된 말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이렇게 시작한 산문집이라 사적인 글 위주의 책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안에 가족이 있고, 그의 삶이 있고, 특히 독자의 삶도 있었다.

여리기도 하고, 힘이 있는 글은 전적으로 작가의 경험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깨지기 쉬운 마음들에게 전하는 오수영 작가의 글은 평온한 마음으로 읽기 좋다.





우연히 눈에 띈 책 안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나를 만날 때의 기분이다. 공감이 그렇게 쉽게 형성되는지 독자는 이 책을 보며 느꼈다.

그 묘한 동질감과 위로가 참 오래 남았다. 『깨지기 쉬운 마음을 위해서』는 그 제목처럼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다뤄야만 할 것 같은 책이다. 공들여 읽었다. 마음에 닿은 부분은 다시 읽고 두 번, 세 번 보기도 했다. 깨지기 쉬운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건 얼마나 힘겨울까. 또 한편으로 얼마나 많은 것들을 품고 있는 걸까. 예민한 성격의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 독자도 담이 작고 소심한 덕에 마음을 졸이면서 살아가는 날들이 많다.

상황과 말들을 곱씹으며 스스로를 옥죄이는 성격이다. 그런 점이 싫을 때도 많지만 성격이라 그리 쉽게 바뀌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러기에 어쩌다 만난 작가의 글에 동질감을 느끼며 독자에게는 큰 위로와 격려가 됐다. 연대감이라 표현해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수년 전부터 에세이 읽는 것을 좋아한다. 에세이는 쓴 사람의 세계로 초대받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단절되었던 전혀 다른 세계로의 초대. 낯설고 두렵고 기대되는 마음이 모두 겹치면서 글 속으로 빠져든다. 대부분 감정이입이 쉬워 이해하기에도 도움이 된다.

몇 페이지를 넘기지 않아 제목과 잘 어울리는 글들이다. 표지마저 잘 고민한 흔적이 있다. 사람의 얼굴이면서도 깨진 마음 같아 보인다.

개인적으로 커버의 재질이 마음에 들어서 만지작 만지작 하게 된다. 책도 일반적인 크기보다는 작아서 독자의 작은 손에 쏙 들어온다.

미리 밝히지만 오수영 작가는 남성 작가다. 이름도 그렇고, 문장이 여린 느낌이 날 때마다 여성 작가로 오해할 수 있어 독자들에게 미리 말해둔다. 그도 그럴 것이, 남성 작가라고 생각할 만큼의 필체가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읽어보면 남성 작가들만의 우직하면서도 힘 있는 문장들도 눈에 띈다. 이전에 항공사 승무원으로 일했다는데 그와 관련한 이야기들도 있다.





『깨지기 쉬운 마음을 위해서』는 독립적으로 자유롭게 문학 활동을 하는 오수영 작가의 2년 만의 신작이자, 그의 세계를 대변할 오롯한 증거다. 이 책은 작가 오수영이 오랫동안 ‘깨지기 쉬운 마음’과 함께 하면서 지나 온 작은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이자, 생활과 문학, 장면과 시가 있는 정직하고 아름다운 기록이다. 그는 제목처럼 깨지기 쉬운 사람이지만 그렇기에 신중하고 조심스럽다.

누군가를, 무엇을 위한다는 말은 달가워하지 않을 정도로 자신의 부끄러움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용기를 내어 말한다. 그에게 있어 가장 깨지기 쉬운 마음에게. 그만의 방법으로. 이 책은 정말 제목처럼 깨지기 쉬운 누군가를 위한 선물이 될 것이다.





"날마다 다른 일상을 보낸 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같은 모습의 밤의 풍경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분명 많은 것들이 변해가고 있지만 이 풍경 앞에서는 결국은 제자리로 돌아온다. 바깥의 소란에 휩쓸렸던 날도, 내면의 고독에 잠겼던 날도, 여기서 밤의 거리를 내려다보면 잠시나마 일었던 파문이 잠잠해진다. 어디에도 없는 어디서도 없는 이곳이 바로 내가 가장 나다울 수 있는 장소이다."


눈시울이 붉어지고 콧날이 시큰해졌다. 독자에게 참 필요한 말이었고 위로의 말처럼 귓가를 스쳐 마음이 따스해졌다. 문제가 생기면 남 탓보다는 내 탓을 하는 것이 마음이 편했고 따박따박 논리 있게 말을 하기보다는 돌아서 눈물을 머금으며 감정에 묻어버렸던 시간들도 떠오른다. 그 시간들 속에 불안했던 마음까지도. 조금 더 나이를 먹으면 초연해질까 싶었던 순간들이 쌓여 벌써 50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웅크리고 나약하기만 하다.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겠지만 독자를 제일 괴롭히는 내게 주문처럼 다가왔던 글이었다.

마치 독자를 위로하기 위해 쓰인 듯한 글을 볼 때의 유대감은 절실하다. 특히 독자에게 그렇다. 성별도 나이도 모르는 작가에게 품는 고마움이 번진다. 좋은 작가를 만났다는 기쁨도 함께 번져간다.





모든 것은 지나가기 마련이라는 말은 슬픔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닌 행복에도 공평하게 적용되는 말인데 우리는 제멋대로 그것을 받아들인다.

마치 슬픈 일만 모두 지나갈 것이고, 행복한 일들은 영원히 우리에게 머물게 될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모든 것들이 결국은 소멸되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애초부터 다 부질없다는 회의적인 말이 아니다.

영원히 지속되는 순간은 존재하지 않기에 우리는 지금의 이 순간을 최대한 붙잡아둬야 한다는 것이다. (p. 77)


말은 과정이고 행동은 결과이다. 혹시나 결과만을 원하는 사람일지라도 과정이 따뜻하고 아름답다면 더욱 충만한 감정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가끔씩 말로 인해 마음이 소란스러운 날들이 찾아온다면, 말을 상대방에게 건네는 선물이라고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가 누군가에게 줄 선물을 고를 때처럼 세심한 마음으로, 상대방이 이 선물을 받게 되면 어떤 표정을 짓게 될까 궁금해하면서, 그렇게 단어를 고르고, 말투를 골라서, 정성껏 건넨다면, 우리의 말에서 향기로운 꽃이 만개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p. 135)





사랑에 대한 소문들이 사람들 주위를 배회한다. 사랑은 할수록 손해라는 말이, 설렘의 달콤함에 취하지 말라는 말이,

그 사람의 전부를 믿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 불변의 진리가 되어 사람들로 하여금 안전벨트를 조금 더 움켜쥐게 만들곤 한다. 사랑에 대한 무수한 소문들 중에서 우리는 어떻게 진짜의 말을 가려낼 수 있을까. (p. 22)


사랑한다는 말은 연애에 있어서 커다란 동력이 된다고 할 수 있지만 그러면서도 매끄러운 연애를 위해서 사랑한다는 말을 무기로 사용하게 된다면 우리는 그 말에 담긴 의미를 포착하지 못하고 사랑과 사랑의 언어에 대한 허무에 빠지게 될 것이다. (p. 53)


말은 과정이고 행동은 결과이다. 혹시나 결과만을 원하는 사람일지라도 과정이 따뜻하고 아름답다면 더욱 충만한 감정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가끔씩 말로 인해 마음이 소란스러운 날들이 찾아온다면, 말을 상대방에게 건네는 선물이라고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가 누군가에게 줄 선물을 고를 때처럼 세심한 마음으로, 상대방이 이 선물을 받게 되면 어떤 표정을 짓게 될까 궁금해하면서, 그렇게 단어를 고르고, 말투를 골라서, 정성껏 건넨다면, 우리의 말에서 향기로운 꽃이 만개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p. 135)





저자 : 오수영


연약한 마음은 나약함의 상징이 아닌 남들보다 섬세하게 세상을 관통할 수 있는 선물이라고 믿으며 살아간다.그 믿음이 바로 깨지기 쉬우면서도 결코 깨지지 않는 단단한 마음을 간직한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 하며.


시인 오은


오수영은 신중하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을 슬로 모션으로 바라볼 줄 안다. 거기에서 마주하는 삶의 이면을 그는 외면하지 않는다.

거울에서 유리 조각의 날카로움을, 눈부신 추억 속에서 돌아갈 수 없는 회한을, 이사 갈 집을 둘러보면서도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찾을 생면부지의 누군가를 떠올린다. 엄마와의 마지막 산책이 될지도 모를 상황에서조차 엄마의 손을 처음 잡는 것처럼 꼭 잡는다. 깨질까 걱정되는 마음을 하나둘 헤아리며 그는 조금씩 단단해진다.

『깨지기 쉬운 마음을 위해서』에 실린 많은 글들이 사랑 끝에서, 이별 앞에서 쓰였지만 그것이 어떤 시작처럼 다가오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깨지기 쉬운 마음 앞에서 나는 잊기 어려운 표정을 마주한다. ‘진짜의 마음’으로 내일을 향해 이륙하는 사람의 당찬 얼굴을.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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