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렴한 것들의 세계사 - 자본주의에 숨겨진 위험한 역사, 자본세 600년
라즈 파텔 외 지음, 백우진 외 옮김 / 북돋움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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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렴한 것들의 세계사』에서 말하는 '저렴'이란 무엇인가. '저렴하다'는 사전적으로 '물건 따위의 값이 싸다'는 의미다.

자본주의는 생명 생성 관계에 값을 매겨 생산과 소비의 회로 속으로 집어넣고, 그 회로 속에서 이들 관계는 가능한 한 낮은 비용으로 떨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저렴화는 셈해지지 않던 생명 생성 관계가 가능한 한 적은 화폐 가치로 바뀜을 뜻한다. 간략하게 말해 자본주의가 위기를 일시적으로 벗어날 수 있게 하고 생명력을 지속시킬 수 있게 하는 전략이라는 것이 저자가 말하는 '저렴화'다.

자본은 계속해서 교환되고 순환되어야 자본의 역할을 하는 것이고 일이 잘되면 이윤이 발생하고 더 많은 노동력과 기계, 원자재에 투자한다.

노동력의 저렴화는 노예 제도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현대에도 노예 제도와 비슷한 대량 생산 농장들이 있다. 노예는 사회가 아니라 자연의 일부로 취급받으며 투자자들에겐 더 많은 일손을 찾아야 했고, 그래서 가능한 한 값싸게 노동자를 가르치고 유지해야 했다. 게다가 노예들뿐만 아니라 군인, 사무원, 선원의 임금은 값이 매겨지고 현금으로 몫이 치러진다. 현금에 의존한 이러한 고용은 자본가의 힘을 크게 했다.





자본주의가 생각하는 생명은 어떤 것일까?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에서는 콜럼버스가 있었던 시대의 신세계 탐험에서부터 시작한다. 당시 탐험가들은 식민지를 찾았고 식민지에 살고 있던 토착민 여성을 유린하거나 살해했다.

이렇게 무력을 사용하기도 하면서 저항도 받았다. 그 뒤에도 여성이나 임금노동자, 토착민, 심지어 지배 계급의 일원까지도 복종하라는 압력에 맞서 싸웠고 자본가들도 이런 저항에 대응해 새로운 프런티어를 개발했다.

그리고 스페인이나 영국은 식민지의 노동력이나 토지에 관심을 두었다. 당시 농장의 지주들은 대규모 토지 소유, 소작농과 그에 딸린 장인 등을 통해 운영하여 토지와 노동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는 생각하지 못했던 자본주의의 전략과 저렴화에 대해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는 담대한 역사서인 동시에 도발적인 사회과학서다. 자본주의는 18세기 산업혁명의 영국이 아니라 15세기 대서양의 섬에서 시작되었다는 관점에서 유럽과 신대륙의 역사를 다룬다.

자연, 돈, 노동, 돌봄, 식량, 에너지, 생명, 이 일곱 가지를 저렴하게 유지하면서 지속적으로 거래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자본주의의 오랜 전략이었음을, 그 작동의 원리를 각 장에서 파헤친다.

‘자본주의는 세계를 싸구려로 만듦으로써 작동해왔다’는 저자들의 메시지는 기후 위기, 극단적 불평등, 금융 불안 같은 현재의 위기가 자본주의가 감춰온 비용이 비로소 우리에게 청구서로 날아들었음을 서늘하게 지적한다.

이들 위기는 별개의 해법으로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라는 총체를 제대로 이해함으로써 재구성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세계의 역사를 하나의 시선으로 꿰뚫는 지적인 충만함을 넘어 현재의 세계를 관통하는 문제의 근원을 직시하고자 하는 독자라면 이 한 권으로 탁 트인 시선을 갖출 수 있다.





지구의 미래, 인류의 앞날에 적신호가 켜졌다. 기후 변화, 기후 위기를 넘어 기후 비상사태라 부르기 시작했고, 불평등이 극단을 향해 치닫고 있다. 해결의 기미가 보이기는커녕 전 세계적인 새로운 위기 요인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우리는 이 세계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가. 문제는 절박하고 해답은 미약하다.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는 것이야말로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그런 면에서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는 이 '시계 제로'의 시대를 담대하게 진단하고 처방하는 책이다.

약 1만 2천 년 전부터 현재까지의 시기를 지질학적으로 홀로세라고 부른다. 그중 최근 2천 년을 따로 떼어 인류세(Anthropocene)라고 부르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구 환경의 변화에 인류가 크게(그리고 나쁘게) 영향을 끼쳐왔기 때문이다.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의 저자 라즈 파텔과 제이슨 무어는 여기서 더 나아가 현재를 인류세가 아니라 자본세(Capitalocene)라고 명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장지상주의에 중독된 사회에 통렬한 비판을 가하며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았던 《경제학의 배신》의 저자 라즈 파텔, 생태학과 자본주의를 결합한 연구를 거듭하고 있는 제이슨 무어는

이 책에서 “1400년대 이후의 역사를 자본세로 부름으로써 자본주의를 경제 시스템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나머지 지구 생명망의 관계를 엮는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자본세 600년의 역사가 어떻게 구축되었는지, 그 자본주의는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파고든다.

원제 ‘A History of the World in Seven Cheap Things-A Guide to Capitalism, Nature, and the Future of the Planet’이 가리키듯 일곱 가지 저렴한 것들의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바로 자본주의와 자연을 제대로 이해하고 지구의 미래를 가늠하도록 안내한다.

이 지적 여정의 목적지는 명확하다. “세계 생태계(world-ecology)라는 개념 속에서 자본주의 시스템의 기원과 진화,

불평등의 재생산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명호, 생태지평연구소 부소장)함으로써 “21세기 들어 절체절명의 위기에 맞닥뜨린 인류의 처지를 직관적으로 이해”(홍기빈,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소장)하고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를 자문”(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하는 힘을 담았다.





이 책에서 주로 쓰이는 개념들을 먼저 짚어보자. 저자들은 자본주의 발전의 역사를 세계 생태계, 저렴함, 프런티어라는 개념을 도구로 설명한다. 세계 생태계는 세계 체제라는 익숙한 개념에서 나아가 “자본주의가 무한 축적이라는 힘에 추동되어 프런티어를 지구 전역으로 확장한 생태계”라고 정의한다. 세계의 폭력적이고 착취적인 관계가 다섯 세기 전 자본주의에 뿌리를 두고 현재까지도 유기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이다.

이 책은 자연, 돈, 노동, 돌봄, 식량, 에너지, 생명 등 일곱 가지 저렴한(cheap) 것들의 역사에 주목한다.

저렴하다는 것은 “모든 것을 가능한 한 적은 보상을 주고 동원하는 폭력”이다. 이전에는 셈해지지 않았던 것까지 화폐가치로 환산해 가능한 한 적게 값을 매기는 전략이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의 역사는 이 모든 것을 더 저렴하게 만든 역사다.




그러나 노동이건 돌봄이건 에너지건, 모든 것에는 돈이 들고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이 든다. 여기서 프런티어가 등장한다. 프런티어는 바로 그 “새로운 저렴한 것들을 확보할 수 있고 인간과 다른 자연의 저렴한 노동을 강제할 수 있는 장소”다. 즉 권력이 작동하면서 이윤을 창출하는, 자본주의에 최적화된 장소다.

자본주의는 이 프런티어를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더 많은 곳으로 확장하면서 이윤을 창출한다.

이 책은 이러한 개념 도구들을 사용해 일곱 가지 저렴한 것들의 역사를 들춰 자본주의 600년 역사를 낱낱이 살핀다.

이 지적이고 담대한 여정은 결국 자본주의라는 세계 생태계가 현재의 우리 삶을 어떻게 옥죄고 있는지 날카롭게 포착한다.





저자들은 미래의 지적인 생명체들은 인류의 흔적으로 플라스틱과 함께 닭 뼈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닭을 꼽은 이유가 있다. 닭은 현재 미국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육류다. 그런데 이 닭은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유전자를 조합해 가슴 근육을 부풀린 결과물이다. 육계 농장과 사료용 토지에는 공공 자금이 투입된다. 또 막대한 에너지도 싸게 공급된다.

계육 공장은 시급 25센트를 받는 노동자들로 굴러간다. 이 노동자의 86%는 질병을 앓고 있고 대개 가족의 돌봄에 의존한다. 또 이런 시스템 덕분에 닭은 저렴한 식량으로서 다시 노동자들에게 공급된다. 치킨 한 박스에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가 그대로 담겨 있음을 저자들은 날렵하게 포착해 보여준다.

과연 치킨만 그럴까. 저자들은 소빙하기와 흑사병이 봉건제를 무너뜨린 14세기 유럽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대서양의 마데이라섬이 설탕 농장으로 만들어진 건 국가, 자본가, 지배 계급이 새로운 이윤의 원천을 찾아나서면서부터였다. 여기서 잉여를 만들 수 있음을 확인한 지배 계급은 ‘신대륙’ 전체로 프런티어를 확장한다. 그 과정에서 모든 것은 저렴해졌다.





이 책은 특히 ‘신대륙의 발견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궤적을 좇는다. 그의 흔적을 통해서 자본주의가 구축한 인식 세계의 허상을 보여준다. 사회와 자연, 식민지 개척의 주체와 객체, 남성과 여성, 서구와 나머지, 백인과 비백인,

자본가와 노동자 같은 이분법이야말로 대부분의 인간과 나머지 자연의 생명이 저렴한 것으로서 지배의 대상이 되는 데 기여했음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저자들은 이제 프런티어는 전에 없이 작은 반면 새로운 투자 기회를 찾는 자본의 규모는 어느 때보다 크다고 진단한다. 그간 세계를 저렴하게 만들며 유지되어온 세계가 더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생태적인 위기를 겪으면서 우리는 자연이 결코 저렴한 것이 아님을 깨닫고 있다. 문제를 해결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저자들은 그러므로 이분법의 세계에 갇힌 인식의 틀을 부수는 담대한 상상을 제안한다.

그리고 인식, 보상, 재분배, 재상상, 재창조라는 답을 내놓는다.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그에 걸맞은 제대로 된 보상이 필요하다. 이는 보상을 받는 사람만이 아니라 누가 지불할지를 따지는 일이 중요한 과정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의 이분법과 저렴화 전략이 없는 세계를 담대하게 상상하고 창조할 때 가능하다.





저렴한 자연과 저렴한 노동이 창조되려면 다른 노동이 아무 보수 없이 이뤄져야 했다. 노동을 수행할 신체를 만들고 운영하는 일이 그 노동의 대부분이었다. 이번 장에서는 이른바 번식 노동, 즉 돌보고 영양을 공급하고 인간 공동체를 양육하는 노동을 살펴본다. 그런 노동은 대부분 무보수다. 그래야 임금노동 시스템 전체가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불노동이 없다면, 특히 돌봄 노동이 없다면 임금노동은 몹시 비쌀 것이다.

- p.158

저렴한 식량 모델은 이런 식으로 작동했다. 자본주의 농업 혁명은 저렴한 식량을 제공했다. 노동자들은 더 적은 임금을 받고도 굶어 죽지 않을 수 있었기에 저렴한 식량은 최저임금의 기준을 낮췄다. 프롤레타리아화 규모가 커지면서 결과적으로 고용주들이 받는 임금 청구서는 줄어들었고 착취 비율은 높아졌다. 저렴한’ 노동자들을 보증하는 식량 잉여가 증가하는 한, 축적 자본은 늘어날 수 있었다.

- p.191





저렴한 석유가 왜 그렇게 중요할까? 화석연료 없이는 자본주의를 할 수 없어서가 아니다. 소매업자, 제조업자는 전기가 고대 화석에서 나오든 풍차나 태양 전지판에서 나오든 신경 쓰지 않는다.

저렴한 석유가 그렇게 중요한 것은 태양에너지 체제로 이행하려면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지만 오늘날 자본가들이 여기에 지원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 기업은 다양한 재생에너지 계획에 분명 돈을 걸 것이다. 그러나 전 세계 모든 기업이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로 대규모 전환하는 데 필요한 45조 달러를 내놓을 것이라고는 믿기 어렵다.

- p.235

인종, 국가, 인쇄 자본주의는 긴밀하게 이어졌다. 저렴한 돌봄과 저렴한 노동을 필요로 한 전략은 인종 서열을 만들고 재생산했고, 그럼으로써 인체는 파악되고 범주에 따라 분류되고 사회와 자연의 경계에서 감시되었다. 국내 질서를 고정해놓고 미래의 민족적인 위대함을 보상으로 제시하는 인쇄물과 이야기는 이런 질서를 유통시켰고 공고화했다.

- p.260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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