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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숨결
박상민 지음 / 아프로스미디어 / 202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박상민 작가의 첫 번째 장편 소설인 『차가운 숨결』의 원제는 『그날 밤 소녀는』이었다고 한다. 이 책 마지막 부분에 <작가의 말>을 통해 직접 밝혔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처음에는 수아의 이야기를 메인 플롯으로 한 단막극 분량의 내용이었는데 원고를 본 편집 담당자가 새로운 플롯 두 가지와 충격적인 반전을 제안해 꽤 긴 분량의 장편 소설이 됐다는 얘기이다. 편집자의 '촉'이 소설의 내용이 장편 소설에 맞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러나 이 제안이 작년 12월의 일인데 불과 4개월 여만에 장편 소설로 탈바꿈한 것은 작가의 집필 능력의 내공을 보여준다.거기다가 '현직 의사'라니 굉장히 바쁜 시간을 보냈을 생각을 하니 능력보다 작가에의 열정을 보는 것 같아 반갑다. '현직 의사가 쓴 감성 메디컬 미스터리'라는 점은 독자들에게 크게 어필된 듯하다. 독자가 많다는 얘기다.
현직 의사의 프리미엄, 미스터리물, 독자들의 독서 취향 등이 잘 어우러져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 같아 기쁘다.
이 책은 진실을 추적하는 흥미진진한 미스터리 스릴러, 의료계 내부의 문제를 폭로하는 사회물이다. 동시에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이뤄지는 휴먼 드라마, 어려운 환경 속에서 피어나는 로맨스까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퓨전 미스터리 소설이다.
한 대학병원에 입원한 여대생 수아. 그녀의 아버지는 작년에 이 병원에서 갑작스러운 사고로 사망했다.
그 죽음의 배후에 어머니가 있다고 확신하는 수아. 주치의 현우는 수아의 간절한 부탁에 그날 밤의 진실을 파헤치기로 약속한다.
그렇게 시작된 외로운 싸움과 혹독한 시련. 진실을 아는 이들은 모두 침묵하고, 우정을 나누던 환자들은 차례로 사망한다.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에게까지 죽음의 손길이 뻗쳐 오는데… 이 병원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외과 1년 차 현우의 병원 생활은 만만치가 않다. 매일이 고난과 힘듦의 연속이던 날 그의 환자로 예쁜 대학생 한수아가 배정된다. 그녀는 일 년 전 그 병원에서 아빠를 잃었던 학생이다. 처음 수아가 엄마와의 관계가 이상한 것을 눈치챈 현우는 그녀를 돕고 싶어 한다.
그리고 수아에게서 자신의 아빠의 죽음에 뭔가의 음모가 있음을 듣게 되고 현우는 자신의 위치에서 조사할 수 있는 것들을 하기 시작한다.
믿었던 사람이 의심이 가며 설마 하는 마음이 들 때 현우의 믿음에 쐐기를 박아주는 사람이 있으니 더욱더 의심에 확신을 하게 된다. 친절하고 상냥했던 사람이 왜 그랬을까. 믿을 수 없는 상황 앞에 병원에 있는 환자를 구하기 위해 그는 행동을 해야겠다 마음먹기 시작하는데.
'병실에 누워 있는 환자들은 하나같이 고통스러워 보였다. 그들을 보며 아이는 생각했다. 저 사람들에게는 죽음이 가장 좋은 안식처라고' 후반부 나오는 저 문장으로 동기는 해결되지만 아직은 결말로 가기는 좀 개연성이 부족할 즈음이다. 작가는 준비해둔 놀라운 반전으로 또 한 번의 소름 돋는 충격을 준다. 마지막의 결론이 무엇인지 독자에게 판단을 던지는 마무리에 추리소설의 격을 높였다
책에 중간 부분 까만 양면에 한쪽은 물음표, 다른 한쪽은 느낌표를 해둔 것은? 마지막 책을 덮었을 때 독자의 느낌을 미리 작가는 예상했으리라. 꿈이더라도 우리가 보고 싶고, 듣고 싶으면 그것이 바로 현실이라는 점을...
『차가운 숨결』은 감성 메디컬 미스터리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작품으로, 로빈 쿡과 테스 게리첸의 메디컬 스릴러, 가이도 다케루, 치넨 미키토의 메디컬 미스터리 등 기존의 메디컬물과 약간 다른 결을 지니고 있다. 메디컬 미스터리와 휴먼 드라마를 결합한 이 작품은 앞으로 한국 미스터리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한 여대생의 비극적인 사연으로부터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극적인 사건 전개, 충격적인 결말, 의외의 범인 등 미스터리적 요소는 물론 사실적인 묘사를 통한 리얼리티와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담고 있다. 소설은 두 가지의 이야기를 동시에 보여준다.
한 가지는 어린아이가 병원에 입원한 아빠를 자신의 잘못으로 위험에 빠뜨려 죽게 되는 이야기와 주인공인 의사 이현우의 병원 생활. 둘 모두 배경은 역시 병원이다.
흥미롭고 재미난 요소가 많은 책이다. 특히 책을 덮을 무렵,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결말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메디컬 미스터리는 롤플레잉 게임의 스토리 전개처럼 중간 중간 실마리를 던져주는 체크포인트가 숨어 있다.
책의 앞부분에서는 몰랐던 일들이 책장을 덮을 때쯤 명확하게 밝혀진다. 때로는 명확하지 않을 때도 있는데, 독자의 상상력에 맡기는 경우다. 솟설 속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텍스트로 읽었던 장면들이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작가가 숨겨 놓은 실마리를 풀기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리게 된다. 앞에서 봤던 장면이나 사람들과의 대화를 생각하다 보면 작품에 더 몰입하게 되고, 흩어진 조각들을 모아 퍼즐 판에 맞추듯 안개가 걷히듯 미스터리한 상황들이 하나의 그림으로
그려진다.
그동안 의학 소재 드라마는 빈번하게 만들어져 우리에게 친숙하다. 드라마로 가장 유명한 것은 <하얀 거탑>이다.
메디컬 드라마가 정착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생각한다. 최근의 <낭만 닥터 김사부>나 <슬기로운 의사생활>까지 메디컬 드라마는 소설로서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준다. 그러나 이 드라마를 쓴 분들은 현직 의사는 아니다.
소설 부문에서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작가는 특별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 앞에서 언급한 가장 이름이 알려진 외국 작가는 로빈 쿡인데 이 작가의 소설 『코마』는 오래 전에 나왔다. 또 테스 게리첸의 『외과의사』는 10여 년 전에 나왔다. 이 작품들은 의학적 디테일은 물론 사회적 소재, 스토리의 구성 등 텍스트를 읽는 즐거움을 독자들에게 주기에 충분했다.
우리나라 텍스트로 최근에 나온 것은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에 가까운 이국종 교수의 『골든 아워』와 남궁인 교수의 『만약은 없다』이다.
이 작품들은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팩트야말로 그 어떤 픽션보다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우리에게 던져주었다.
이번에 읽은 소설 『차가운 숨결』은 현직의사 박상민씨의 장편 데뷔작이다. 한국형 메디컬 스릴러를 표방한 이 소설은 작가가 의사이기 때문에 자신의 전문성을 충분히 살렸다. 주인공은 외과 레지던트 1년차인 이현우이고, 한수아가 충수염으로 혜성대학병원에 실려오면서 둘의 관계가 시작된다. 남녀간 애정관계의 시작은 아니었다.
수아 아빠가 몇 달 전 이 병원에서 사망했으며 그 죽음에 엄마와 의사 강나리 선생 사이에 모종의 음모가 있다고 수아가 의심을 하고 있다. 수아는 아빠의 사망에 대한 의문을 밝히고 싶어하고 이현우는 그것을 도와주겠다고 장담하고 나선다.
현우는 병원 진료기록에 접근하기 쉽기 때문에 간단하게 수아의 의심을 해결해 줄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수아 아빠 한재훈의 차트에 접근하려고 하니 락이 걸려 있었고, 의뢰없이 CT기록을 들여다보는 것이 타과 담당의에 대한 모욕이란 것을 간과했고, 사망진단서와 사인검토 보고서가 다른 이유를 밝혀내야 했다. 수아의 부탁을 들어주려고 시작했고 쉽게 알아낼 수 있을거라 예상했으나 그건 착각이었고, 파면 팔수록 산 너머 산이었다.
한재훈 죽음의 원인을 밝히려고 조사하는 도중에 병원내 수상한 죽음이 자꾸 발생하는데 사인이 칼륨수치 증가로 인한 심정지였다. 현우는 의심가는 상황들을 확인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수아는 엄마를 의심한 근거가 부족했다는 걸 깨달아가며 둘은 점점 가까워진다.
수아보다는 현우의 심적 변화가 두드러진다.
이 소설은 수아 아빠의 사망원인을 찾는 것이 주된 줄거리지만 대학병원 내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와 권력관계, 존엄사, 의사의 윤리관 등도 다루고 있다. 작가가 현직 의사이기 때문에 의학 용어와 전문 처치 방법등이 세밀하게 서술되어 현실감이 있다. 독자들에게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을 준다.
그러나 사망한 환자들의 공통 사인을 찾는 데에 집중하기 때문에 드라마적 요소는 그리 많지 않다. 마지막에 그 이유를 밝히긴 하지만 반전이 있고, 이중적인 혹은 ''열린 결말'이라 독자에 따라선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그런 결말이 김빠진다고 할 수도 있고, 그것이 상상할 여지를 준다고 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용 사이사이에 이름을 밝히지 않은 아이가 등장하는 에피소드를 넣은 점은 좋았다.
그 아이가 등장인물중 누구일지를 예상해보는 재미가 있었으나 독자 예측은 틀렸다. 작가의 치밀한 구성 능력인 것 같다.
이 작품은 조금은 더 전문적 영역의 메디컬 스토리를 시간에 쫓기지 않고 이어나갔으면 하는 욕심이 든다, 독자의 지나친 욕심인지 모르겠지만 소설 속에 구현된 인물적 연결고리와 의사로서 내부의 인간적 욕망, 딜레마를 조금 더 농밀하게 다루기를 희망한다. 작가의 문학적 열정이 이른 시간 내 충분히 독자에게 호소력 있는 메디컬 소설 작가로 자리잡기를 기대해본다.
저자 : 박상민
한림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한림대학교 성심병원에서 인턴을 수료했다. 의학과에 재학 중이던 2016년 단편 「은폐」로 한국추리작가협회 신인상을 수상하며 데뷔. 『리벤지 바이 블러드 - 2017 올해의 추리소설』『어른은 권력이다 - 2018 올해의 추리소설』 등의 단편집에 공저자로 참여했고, 단편 「잊을 수 없는 죽음」은 KBS 라디오 문학관에서 드라마로 방영되었다. 2020년 공중보건의사로서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대구의료원에서 파견 근무를 했다. 의사로 활동하는 한편 틈틈이 추리소설을 집필하고 있으며, 메디컬 미스터리뿐 아니라 본격 미스터리, 범죄 스릴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을 구상 중이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에서 진행하는
체험단,리뷰단에서 제공 받아 작성한 솔직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