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이 휩쓴 세계사 - 전염병은 어떻게 세계사의 운명을 뒤바꿔놓았는가 생각하는 힘 : 세계사컬렉션 17
김서형 지음 / 살림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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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도의 복잡성과 불확실성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불안감과 초초함은 거의 패닉 수준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후 코로나19)의 확산에 전 세계 인류가 공포와 불안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WHO가 공식 선언한 이후 정확한 사망자 수를 헤아리기도 어렵게 확산되고 있다.

백신은커녕 치료제도 없어 뒤늦게 본격 연구에 들어섰지만 언제 개발돼 나올지도 미지수다.

희망마저 안 보이는 암흑 세계로 치닫는 정세 속에서 일상은 자취를 감췄고, 유령도시도 속출하고 있다.

치료제나 백신이 개발되도 코로나19 이전의 일상 복귀는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온 인류를 불안하게 한다.





다행히 코로나 방역에 아직까지는 비교적 방역을 잘한 우리나라도 아직도 국민의 관심이 코로나에 쏠려 있다.

뉴스에서 매일같이 치솟는 코로나19 확진자 수를 확인하면서, 너도나도 마스크를 쓰고 손소독제로 손을 씻어내고, 유례없는 온라인 개학과 화상 수업도 실시하는 등 최선의 대응을 하지만 전염병의 위력을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느꼈다.

전염병은 먼 나라에서 일어나는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을 뒤바꿔놓은 나의 일이 된 것이다.

사스나 에볼라와는 다르게 전염력이 엄청나 정부의 필사적인 방역 대책도 빛이 바래고,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제는 더 이상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사실 전염병은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역사학자인 윌리엄 맥닐이 ‘인류의 역사는 곧 전염병의 역사’라고 주장한 것처럼, 전염병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늘 인류와 함께해왔다. 전염병에 대한 높아진 관심을 방증하듯, 전염병을 다룬 역사책들도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앞서 재레드 다이아몬드 미국 학자는 저서 『총, 균, 쇠』에서 병균을 인류의 운명을 결정지은 핵심 요소로 꼽았다.

지금도 의학계나 역사학계에서는 전염병의 역사에 관한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국내에서 출간된 전염병 관련 역사책들은 의학사에 한정해 역사적 인물이 걸린 질병에 초점을 맞춘다거나 전염병이 세계사에 미친 영향만을 주요하게 다뤘다.





이 책 『전염병이 휩쓴 세계사』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질병사(史)를 전공한 역사학자 김서형 교수는 전염병의 발생 원인과 역사에 미친 전염병의 영향뿐만 아니라, 전염병이 확산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배경에도 큰 방점을 둔다.

빅히스토리(거대사) 분야의 탁월한 연구자이기도 한 저자는 좀 더 거시적으로 ‘글로벌 네트워크’라는 새로운 개념을 가지고 전염병의 역사에 접근한다.

요약하자면, 인류가 이동하고 교류하면서 형성된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물건이나 지식뿐만 아니라 전염병도 함께 퍼져나가면서 역사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크게 고대의 ‘아프로-유라시아 교환 네트워크’, 대항해시대와 식민지시대의 ‘아메리카 네트워크’, 산업혁명 시기의 ‘산업 네트워크’, 현대사회의 ‘글로벌 네트워크’로 나누어서 알아본다.

이로써 독자는 인류의 운명을 뒤바꾼 전염병의 역사를 좀 더 입체적이고 다각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더불어 역사 속에서 전염병의 도전에 인류가 어떻게 응전해왔는지 성찰해보면서, 이른바 ‘전염병의 시대’가 되어버린 21세기에 소중한 지혜와 교훈도 얻게 될 것이다.





‘글로벌 네트워크’는 빅히스토리(거대사)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개념이다. 데이비드 크리스천 교수가 제시한 ‘빅히스토리’는 민족이나 국가, 문명 단위를 뛰어넘어 전 지구적 패턴으로 세계사를 조망하는 역사관이다.

특히 빅히스토리에서 말하는 ‘글로벌 네트워크’는 역사의 흐름을 혁명적으로 바꿀 만큼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대하다.

글로벌 네트워크는 16세기 대항해시대의 항로 개척이나 20세기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지구 전체가 하나로 연결되는

현대적인 현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호모사피엔스가 전 지구적으로 이동하면서 이미 글로벌 네트워크가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전염병의 확산에 주된 원인이 된 글로벌 네트워크를 시대별로 소개한다.

고대의 ‘아프로-유라시아 교환 네트워크’인 실크로드와 바닷길, 몽골제국의 넓은 영토와 체계적인 도로망은 전염병의 이동 경로가 된다. 대항해시대 이후에는 대서양 삼각무역을 비롯한 ‘아메리카 네트워크’가 전염병을 교환하는 통로가 된다. 산업혁명 시기에는 농촌에서 도시로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산업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전염병이 도시를 휩쓸면서 여러 가지 사회문제가 대두되기도 한다. 네트워크가 전 지구적으로 촘촘히 연결된 오늘날에는 전염병의 확산 속도가 무섭도록 빠르다.

최근 코로나19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국경을 폐쇄하는 극단적인 조치까지 취해야 할 정도다.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확산으로 전염병의 세계사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십수 년 전에 나온 전염병 관련 역사책이 ‘역주행’하면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 시기를 놓치지 않고 서둘러 전염병 관련 해외 역사책들이 번역되어 소개되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책들은 의학사적 관점에서 전염병 자체에만 집중하거나 결과론적으로 전염병이 역사에 미친 피해나 영향 정도만 서술한다. 하지만 이것으로 전염병의 세계사를 충분히 설명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전염병은 제아무리 전염성이 강하더라도 접촉이나 교류가 일어나지 않으면 파급력 있게 확산되지 않는다.

하지만 『전염병이 휩쓴 세계사』는 역사상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 전염병이 어떻게 그런 결과를 낳게 되었는지 주된 원인 또는 배경으로 ‘글로벌 네트워크’에 집중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역사를 다룰 때 엄밀히 말해서 ‘인간에 의한’ 역사만 살펴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적인’ 활동만 역사를 형성하는 데 유의미하고 다른 것은 부차적인 요소로 치부했다. 하지만 지구의 전체 역사에서 인간이 거주한 시기는 한 점에 지나지 않는다. 더군다나 지구상에는 인간만 홀로 살지도 않았다.

인간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인간을 둘러싼 외적 요소까지 총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전염병을 역사의 무대 위로 다시 올려놓는 작업은 매우 뜻깊다고 하겠다.

역사학자 윌리엄 맥닐도 ‘인류의 역사는 곧 전염병의 역사’라고 주장한다.

인류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전염병을 알아야 하고, 반대로 전염병을 이해하려면 인류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나아가 인류의 미래를 대비하고 예측하기 위해서도 전염병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전염병은 인류 역사의 총체적인 국면과 맞물려 있는 ‘역사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전염병이 어떻게 세계사를 뒤바꿔놓았는지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실크로드를 따라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전파된 천연두는 거대한 서로마제국을 멸망시킨 결정적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바닷길을 통해 전파된 페스트도 동로마제국을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했다.

유라시아에서 대제국을 건설한 몽골제국은 의도치 않게 중국에서 발생한 흑사병을 유럽에 퍼뜨렸다.

흑사병은 십자군전쟁과 함께 중세 교회를 붕괴시키고 근대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힌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아메리카 식민지 개척 시대에는 아프로-유라시아에서 유럽인 개척자나 아프리카 원주민(노예)과 함께 건너간 온갖 전염병으로 아메리카 원주민이 멸종되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염병 치료약 개발이 비극을 낳는 경우도 있었다. 아프리카의 풍토병인 말라리아 치료제가 개발되자 유럽의 강대국들은 너도나도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삼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식민 지배를 받은 아프리카는 지금도 전염병을 통제하거나 예방할 능력이 없다. 전염병이 전쟁에 미친 영향도 무시하지 못한다.





수많은 병력이 대륙과 대륙 사이를 이동하면서 전염병을 옮기게 되는데, 전염병 자체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기도 하고, 총칼보다 전염병으로 인한 전사자가 훨씬 더 많을 때도 있었다.

국제보건기구(WHO)는 21세기를 ‘전염병의 시대’로 규정했다. WHO는 1968년 홍콩독감과 2009년 신종플루에 이어 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포했다. 세계사는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코로나19를 비롯해 에볼라바이러스, 사스, 조류인플루엔자, 신종플루가 전 세계를 불안에 떨게 했듯이, 21세기에는 ‘글로벌 전염병’이라는 유령이 전 세계를 배회하고 있다.

세계는 그 어느 시기보다 가까워지고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 전염병도 전 지구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반대로 전 세계적으로 발생한 전염병이 식민지를 오래 경험한 아프리카처럼 한 지역에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따라서 글로벌 전염병이 만연하는 시대에 사는 우리는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한 국제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역사가 증명하듯이, 앞으로 인류의 미래는 전염병의 도전에 전 세계가 어떻게 응전하느냐에 달려 있다.





전염병은 인류의 이동으로 그 세력을 더욱 키워나갔고, 글로벌 네트워크가 확장되면서 전염병의 확산은 인류의 생각 이상으로 크게, 또한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 책에서 앞서 일례로 든 실크로드의 경우를 살펴보면 로마 제국의 멸망에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친 전염병은 다름 아닌 천연두였다. 당시 천연두로 사망한 로마인들은 400-500만 명이라고 하는데, 이는 로마 전체 인구의 1/3에 해당하는 숫자이다. 이 사례만 보더라도 전염병이 세계사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추측해볼 수 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전염병이 남긴 상흔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염병’이라는 단어가 총 736회가 등장한다고 한다. ‘염병’은 주로 장티푸스를 가리키는데, 이 전염병은 대체적으로 극심한 기근과 함께 창궐했다고 한다.

영양실조 상태의 사람들이 더욱 쉽게 전염병에 걸리고, 전염병을 이겨낼 면역력도 낮을 수밖에 없음을 생각한다면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 아닌가 싶다.





이처럼 전염병은 인류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세계사에 큰 획을 그었다. 코로나 19가 오늘날 우리의 사회를 완전히 바꿔놓은 것처럼...

아마 앞으로도 수많은 전염병들이 그렇게 인류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단순히 치료제를 개발하는 것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

이 책은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면면들을 전염병의 확산의 원인이 되는지도 돌아봐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한다.


저자 : 김서형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에서 논문 「1918년 인플루엔자와 미국 사회: 전쟁, 공중 보건 그리고 권력」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화여자대학교 지구사연구소 연구교수,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대학 연구원을 지냈고, 현재 러시아 빅히스토리 유라시아센터 연구교수로 활동 중이다.

『인류 최대의 재앙, 1918년 인플루엔자』 『세계사의 새로운 대안 거대사』(공역) 『왜 유럽인가』(공역) 등을 옮겼고, 『TEACHING BIG HISTORY』 『EDUCATION AND UNDERSTANDING: BIG HISTORY AROUND THE WORLD』 『빅히스토리: 인류 역사의 기원』 『김서형의 빅히스토리: FE 연대기』 『그림으로 읽는 빅히스토리』 『초등학생을 위한 빅히스토리』 등을 집필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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