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아리랑 1
정찬주 지음 / 다연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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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민주화운동'이 5.18의 공식 명칭이다. 그러나 직접 참가한 사람이나 '남겨진 자'들은 명예 회복을 위한 행진을 멈출 수 없다.

남겨진 자들은 같이 싸웠고, 죽은 '님을 위한 행진곡'을 지난 40년간 혼신의 힘을 다해 불러왔다. 오로지 남겨진 자로서 죽은 이들을 위해서다.

1980년 5월 광주 일원에서 일어난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잔인한 방법으로 진압하면서 엄청난 희생자를 낸 5.18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책임자는 증언을 거부하거나 책임을 전가하기에 급급하고, 일부 동조세력은 '남겨진 자'에게 위로는커녕 "괴상한 괴물집단을 만들어 국민의 세금을 축내고 있다"고 매도하니 아직도 남겨진 자의 의무를 다하기에는 머나먼 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젠 그래도 우리 국민들은 시위대를 향한 과잉진압, 수많은 희생자, 발포 책임자는 누구일까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귀 막고 눈 막아도 알 건 알게 된다. 민주사회에서는...

특히 시민들의 삶에의 뜨거운 열정과 의지가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해지는 것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확실하게 스스로 체험해온 지난 역사를 아는 국민이기 때문이다.





이 책 《광주 아리랑》은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 14일간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다룬 다큐소설이다.

그때 광주에서 벌어진 사건들과 그 안에 얽힌 수많은 인물을 40년이 지난 지금 사실적으로 느끼기에는 쉽지 않다. 특히 피해 당사자나, 가족, 시민들이 아닌 정권을 노린 가해자들은 아직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폭도, 괴물집단이라고 하니...

공식 문서(그것도 조작된 것이 많지만)도 당시의 상황을 실감나게 전달하기에는 부족하다.

이럴 때 작가들의 상상력에 의존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다.

글 쓰는 사람들은 확인된 사실만으로도 당시의 진실을 찾아내 리얼리티를 더할 수 있으니까.

작가 정찬주는 이 소설을 통해 당시 항쟁 참가자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부활한 듯 우리의 가슴을 먹먹하게 할 정도로 되살려낸다.





작가는 지금까지 제대로 조명하지 않은 광주시민 개개인을 집중적으로 다룬 이 작품을 통해 그들이 계엄당국 측에서 줄곧 몰아간 폭도가 아니었음을, 그저 안식을 찾지 못한 채 고달프게 살아간, 그러나 따뜻한 가슴을 가진 민초일 뿐이었음을 새삼 깨닫고 재발견하게 해준다. 당시 사실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더 절절한 한이 느껴지기도 한다.

광주는 특별한 도시가 아니라 가슴 따뜻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보통의 도시였음을 느낄 수 있다.

1980년 5월, 광주에는 따뜻한 가슴들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2020년 우리들은 따뜻한 가슴을 통해 그들이 자신을 희생해가며 얻어내려 한 것이 무엇인지를 전해받는다.

40년이 지났지만 희생자들과 남겨진 자들이 그토록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울컥하게 전해진다.





앞서 밝혔듯 《광주 아리랑》은 광주민중항쟁 40주년 회심작이다.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 14일간을 다뤘다.

이 작품은 정찬주 작가의 세 가지 관점이 유기적으로 이어진 대작으로, 이른바 ‘5월 광주 소설’의 최종 완성판이라 글쓴이도 출판사도 자부한다.

첫째, 메타포아(은유)를 버리고 콜로세움의 검투사처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작가는 실화를 소재로 삼더라도 소설이라는 사실을 기록하는 보고서가 아닌, 진실을 탐구하는 묵시록에 가깝다고 말한다.

작가가 많은 사실을 바탕으로 많은 고민과 사색을 한 결과일 것이다. 그래서 논픽션의 다큐와 픽션의 소설을 오가는 다큐소설이다.

둘째, 지금까지 잘 조명되지 않은 광주시민들을 중심에 두고 있다. 등장인물은 주방장, 상인, 운전수, 페인트공, 용접공, 가구공, 선반공, 공장 여공, 예비군, 예비군 소대장, 대학교 교직원과 수위, 비운동권 학생, 영업사원, 재수생, 구두닦이, 농사꾼 등등이다.





이들 역시 80년 5월에 계엄군과 맞서 싸웠던 엄연한 실존이자 최대 피해자로서, 한 사람 한 사람 ‘광주 5.18 역사로서의 소설’에 주인공이자 증인으로 생생히 조명되고 있다.

셋째, 등장인물들을 통해 광주시민이 계엄당국에서 줄곧 주장한 폭도가 아님을 온전히 증언한다.

그저 안식을 찾지 못한 채 고달픈 사람들이었지만 따뜻한 가슴을 가진 민초들이었을 뿐이다.

이를 작품 전반에 드러내며 80년 5월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람들이 왜 울분을 토했고 계엄군과 맞서 싸웠는지 있는 그대로 이야기한다.





또한 꼭 항쟁에 가담한 사람들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끝내 총을 들지 못하고 양심의 소리에 괴로워하는 '남겨진 자'들의 고통도 같은 무게로 다루고 있다. 이 모든 것은 결국 인간의 보편적인 본성과 행동을 이심전심으로 무겁게 교감시켜준다.

작가는 말한다. 이 소설을 읽는 모든 이가 《광주 아리랑》을 통해서 80년 5월의 광주를 실상 그대로 바라봐 주기를 바란다고.

정말 광주는 특별한 도시가 아니라 가슴 따뜻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보통의 도시였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시위 중에 들었던 횃불이 밤하늘의 별이 된 도시라고. 작가는 40년 전 5월의 광주를 향해 따뜻한 눈물을 흘려주기를 바라고 있다.





"어제는 부활절이었다. 무슨 인연에선지 부활절 새벽에 80년 5월 광주 이야기 《광주 아리랑》을 200자 원고지 2400여매 분량으로 탈고했다.

나는 불교 신자지만 ‘예수의 부활’이 오월광주 영령들에게도 영원한 생명의 꽃으로 뿌려지는 듯하다.

《광주 아리랑》에 등장하는 인물은 식당 주방장, 요리사, 시장 상인, 운전수, 페인트공, 용접공, 가구공, 선반공, 방직공장 여공, 예비군, 예비군 소대장, 대학교 교직원과 수위, 비운동권 학생, 영업사원, 재수생, 구두닦이, 농사꾼 등등이다.

이들도 80년 5월에 계엄군과 맞서 싸웠던 엄연한 실존이자 최대 피해자였던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나는 이분들을 한 분 한 분 ‘광주 5.18 역사로서의 소설’에 주인공이자 증인으로 영원히 기리고 싶었다.

화강암 같은 개결한 역사의 비석에 이름을 깊이깊이 새기듯."

- 「작가의 말」 중에서






선도차 지대 팀장은 문득 머리끝이 쭈뼛했다. 광주로 내려오면서 잠깐 꾼 꿈이 생각나서였다.

자신이 피바다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김 중위는 전남대 정문을 빠져나오면서 참지 못하고 또다시 욕지거리를 뱉었다.

“쌍놈의 새끼들! 잡기만 해보래이. 부랄 한쪽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끼다.”

자신의 군홧발로 시위하는 학생들의 사타구니를 짓이기겠다는 욕설이었다.

지금까지 시위진압 훈련을 해온 것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고 싶다는 듯 험악한 말을 뱉어냈다. 달도 없는 칠흑 같은 밤이었다.

- 「지형정찰」 중에서





마지막으로 이승룡을 불러 세웠다. 그에게도 안경을 겨냥해 주먹을 휘둘렀다. 인정사정없이 잔인했다.

공수부대원들은 학생이 실명을 하건 말건 관심이 없었다. 이승룡은 공포가 엄습해 반항할 생각조차 못한 채 부들부들 떨었다.

그래도 가죽 장갑이 안경을 향해 날아오자 본능적으로 얼굴을 돌렸다. 공수부대원이 피식 웃었다.

그러더니 얼굴을 다시 돌려놓고 안경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순간 안경이 깨지면서 양미간의 살이 깊게 찢어졌다.

이승룡 일행이 구타를 당한 지 40여 분쯤 지난 뒤였다. 본부로 끌려가서 보니 이미 머리가 깨지고 얼굴이 퉁퉁 부은 학생 30여 명이 붙잡혀 와 있었다. 그중에는 시위와 상관없는 학생이 많았다. 시험공부 중인 학생도 있고 건축 작품을 준비하던 학생도 있었다.

- 「야만의 밤」 중에서





공수부대원들이 지나가는 행인을 아무나 붙들고 진압봉을 휘둘렀다. 청바지에 긴팔 티를 입은 여학생을 잡아당기더니 길바닥에 내팽개쳤다.

여학생의 티가 벗겨져 가슴이 보일 만큼 난폭하게 질질 끌고 갔다. 그뿐만 아니라 자전거를 타고 가던 사오십으로 보이는 남자를 붙잡은 뒤 진압봉으로 두들겨 팼다. 시민들 보란 듯이 자전거는 길바닥에 사정없이 던져 망가뜨렸다.

지켜보는 시민들은 두려움 때문에 아무도 항변을 못했다. 문장우 역시도 처음에는 말을 못하다가 꾸역꾸역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

“야, 개새끼들아. 니들이 대한민국 군인이냐? 죄읎는 사람들까지 왜 때려!”

그제야 상가 건물에 있던 사람들이 공수부대원들에게 욕을 퍼부었다.

“광주 사람 죽이러 왔냐, 나쁜 놈들아!”

박효선도 한마디 큰 소리로 말했다. 연극으로 다져진 목소리였으므로 발음이 정확했다.

“군인 후배들, 내 말 쫌 들어보소. 광주 사람들은 당신들의 적이 아니요. 당신들이 보호해야 할 시민들이요.

부당한 명을 받았으면 거부하시오. 그런 명령불복종은 죄가 안 돼요.”

- 「깨지는 꿈」 중에서





두 번이나 ‘호소문’을 읽은 박금희는 그래도 공수부대원들이 광주시민을 총칼로 찔러 죽인다는 부분에 수긍하지 못했다.

도청에서 벌어진 일도 공수부대원이 대검으로 여대생의 유방을 건들이며 희롱했지 찔렀다고는 믿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저녁을 막 먹고 나서였다. 벽시계가 8시를 가리켰다. 남광주시장 부근에 사는 학교 선도부 부원인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 심부름으로 남광주시장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공수부대원들이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는 전화였다.

“금희냐?”

“응.”

“골목에서 언니 친구 미자 언니가…….”

친구는 더 말을 잊지 못하고 울었다. 선도부 부장인 박금희보다도 더 당찬 친구인데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뒷말을 꺼내지 못하고 흐느꼈다.

박금희는 놀란 채 다독였다.

“차분허게 얘기해봐.”

“공수가 칼로 미자 언니 가슴을 찔렀어.”

- 「호소문」 중에서





한일은행 저쪽에서도 공수부대원들이 나타났다. 이른바 앞뒤 쪽에서 공격진압하는 협공작전이었다. 이제는 밀고 밀리는 공방전이 아니었다.

시위대는 금남로 이면도로나 골목으로 피했다. 진각도 일고여덟 명의 젊은 청년과 힘껏 뛰어서 전남체육사로 들어가 셔터를 내렸다.

공수부대원들이 금남로의 시위대를 제압했는지 확성기 소리가 들렸다.

“폭도들은 자수하라! 폭도들은 자수하라!”

전남체육사 안으로 피신하고 있던 청년이 욕을 했다.

“니들이 폭도제 우리가 폭도냐? 씨발 놈들아!”

진각은 오랜만에 들어보는 욕이라서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밖은 한동안 정적이 흘렀으나 다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시위 학생이나 시민을 붙잡아 진압봉으로 두들겨 패는 듯했다. 그리고 상가 셔터를 군홧발로 차는 우당탕 소리가 났다.

M16소총 개머리판으로 찍는 둔탁한 소리도 연달아 들려왔다. 진각이 숨어든 전남체육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셔터를 군홧발로 차는 소리가 났다.

“개자식들아, 빨리 나와! 부수고 들어간다.”

- 「우리가 폭도냐?」 중에서





한 청년은 도망치다 붙잡혔는지 허리띠로 손발이 함께 묶인 채 신발을 입에 물고 있었다.

일부 공수부대원은 공원 앞 식당에서 국밥을 먹고 있었다. 팀장인 듯한 중사는 엎드린 청년들을 보고 히죽히죽 웃으면서 낮술을 마셨다.

나상옥이 그 앞을 지나가려고 하자, 한 아주머니가 달려와 붙잡았다.

“젊은 사람덜을 무조건 잡아다가 족치고 있응께 가지 마씨요.”

순간, 나상옥은 ‘젊은 사람들을 잡아다가 족친다’는 아주머니 말에 부아가 치밀었다. 지나칠까, 말까 망설였다.

그러는 사이에 한 공수부대원이 나상옥에게 말했다.

“빨리 꺼져!”

그래도 나상옥이 버티고 있자, 공수부대원이 오라는 손짓을 했다. M16소총을 멘 공수부대원은 1미터짜리 긴 박달나무 진압봉을 들고 있었다.

나상옥은 맨손으로는 버겁겠다 싶어 슬그머니 피해버렸다. 월산동 집으로 돌아온 나상옥은 분을 삭였다.

그런데 한 번 치민 분한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적개심 같은 것이 막연히 솟구쳤다.

- 「2차 차량 시위」 중에서





《광주 아리랑》에서는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다 주인공이다. 죽었든 살았든, 필연이든 운명이든, 옳든 그르든 극한 상황에서 나름의 선택을 했던 주인공들이다.

그런 인물들과 행위들을 모자이크해 14일간 광주민주화운동의 실상을 눈앞에 펼쳐놓은 거대한 벽화가 《광주 아리랑》이다.

작가를 드러내지 않으려 몰인정한 가슴으로 그린 그 벽화에서는 되레 따뜻한 가슴들의 이야기가 직접 흘러나오고 있다.

이러저러한 주제와 기법으로 가지를 쳐가고 있는 5월문학 40년. 무엇보다 당시의 실상이 전설화, 풍문화, 관념화돼가고 있는 시점에서 나온 《광주 아리랑》은 5월문학의 원본이 될 것이다.

아리랑 민요가 수없이 편곡, 개사되며 오늘도 불리고 감상되듯 『광주 아리랑』 인물들 각자가 다 주인공이 돼 제 세상 펼칠 작품들이 나올 것이다.

그러면서 그날 광주의 따뜻한 가슴들의 진실을 영원히, 감동적으로 전할 것이다.

- 「서평 (이경철 문학평론가 · 전 중앙일보 문화부장)」 중에서





작가 : 정찬주

자기다운 삶으로 자기만의 꽃을 피워낸 역사적 인물과 수행자들의 정신세계를 탐구해온 작가 정찬주는 1983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작가가 된 이래, 자신의 고유한 작품세계를 변함없이 천착하고 있다.

호는 벽록(檗綠). 1953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고, 상명여대부속여고 국어교사로 교단에 섰다가 십수 년간 샘터사 편집자로 법정스님 책들을 만들면서 스님의 각별한 재가제자가 되었다.

법정스님에게서 받은 ‘세속에 있되 물들지 말라’는 무염(無染)이라는 법명을 마음에 품고서, 전남 화순 계당산 산자락에 산방 이불재(耳佛齋)를 짓고 2002년부터 자연을 스승 삼아 벗 삼아 집필에만 전념 중이다.

장편소설 『산은 산 물은 물』, 『소설 무소유』, 『암자로 가는 길』(전 3권)을 비롯하여, 이 땅에 수행자가 존재하는 의미와 우리 정신문화의 뿌리를 일깨우는 수십 권의 저서를 펴냈다.

장편소설로는 인간 이순신을 그린 대하소설 『이순신의 7년』(전 7권), 『천강에 비친 달』, 『다산의 사랑』, 『칼과 술』, 『못다 부른 명량의 노래』, 『니르바나의 미소』, 『다불』, 『가야산 정진불』(전 2권), 조광조가 꿈꾼 나라를 다룬 『나는 조선의 선비다』(전 3권) 등이 있고, 산문집 『법정스님 인생응원가』, 『법정스님의 뒷모습』, 『불국기행』, 『자기를 속이지 말라』, 『공부하다 죽어라』, 『정찬주의 다인기행』, 중국 선(禪)유적지를 답사한 여행기 『뜰 앞의 잣나무』와 『행복한 중국 선여행』 등이 있고, 동화 『마음을 담는 그릇』, 『바보동자』 등이 있다. 행원문학상, 동국문학상, 화쟁문화대상, 류주현문학상을 수상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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