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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함께 유럽의 도시를 걷다 - 음악과 미술, 문학과 건축을 좇아 유럽 25개 도시로 떠나는 예술 기행
이석원 지음 / 책밥 / 2020년 4월
평점 :
십수 년 전 유럽여행을 간 적이 있다. 9개국(2개 공국 포함)을 보름만에 강행군하는 패키지 여행이어서 '수박 겉핥기식' 관광이었다.
그래도 파리부터 시작한 그때 여행은 유럽 문물을 직접 눈으로 처음 본 것이라 기억이 생생하다. 주요 관광지만 들르는 식이어서 건축물과 박물관, 풍경 감상 등이 대부분이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여행이 아니라 영화관에서 유럽 관광 다큐멘터리를 감상한 것 같다.
다시 차분하게 계획을 세우고 '여행다운 여행'을 귀국하는 길에 홀로 다짐했는데 그 계획은 지금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물론 염두에 두고 장기(한 달 이상) 여행에 무게를 두고 있다. 경비도 마련하고 있지만 당장 실천할 정도는 마련하지 못했다.
더욱이 코로나 펜데믹 이후론 계획도 무작정 연기된 상태다. 그래서 이 책은 독자로서는 특별한 관심을 갖고 읽었다.
음악, 미술, 문학, 건축에 중점을 뒀다니 유럽 여행을 앞두고 있는 독자로서는 꼼꼼히 보고 읽을 책이다.
『예술과 함께 유럽의 도시를 걷다』는 유럽의 여러 도시들이 품고 있는 환상과 낭만, 그리고 사색과 그리움에 대한 책이다.
이석원 작가는 10여 년 동안 유럽의 여러 도시를 여행하며 그 도시가 담고 있는 미술, 건축, 음악, 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의 향기를 글과 사진으로 담아냈다.
또한 각 나라와 도시가 겪어온 험난한 역사까지도 글 쓰는 사람 특유의 예리한 감각으로 꼼꼼하게 챙겨 전하고 있다.
2005년 프랑스 파리의 오래된 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를 처음 가봤다는 작가는 그곳에서 공간을 채우고 있는 낡은 책들에게서 풍기는 묵은 종이 냄새가 꽤 상쾌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그 후로 이런 느낌을 다시 받은 곳은 우리나라 충북 단양의 작은 책방 새한서점. 작가는 이곳에서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서와는 또 다른 낡은 그리움을 경험하게 된다.
작가는 오래된 것을 보고 느끼는 것을 그리움이라고 표현한다. 실제로 우리가 접하기 훨씬 이전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사람들의 본능이라고.
그래서 사람들은 유럽을 찾는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가 읽고 보고 듣고 느끼는 거의 모든 것의 원천을 찾기 위해, 그리고 독자가 경험하지 못한 낡은 그리움에 대한 그 무엇을 직접 확인해보기 위해서 말이다.
유럽 예술의 역사는 그리스 로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세계 예술의 주류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런 까닭에 많은 예술작품을 품고 있는 유럽의 여러 도시를 여행할 때 우리는 어떤 낯섦이나 환상을 품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은 유럽의 클래식 음악과 인상주의 미술, 오래된 건축물을 좋아하며 그것들을 찾아 돌아다니기를 즐겼다는 작가가 10여 년 동안 유럽 20개국 25개 도시를 여행하며 그 도시가 겪어온 지난한 역사와 그들이 지켜낸 예술의 향기를 글과 사진으로 정리한 것이다.
베토벤과 모차르트를 따라 빈의 거리를 걷고, 고흐처럼 아를의 론 강변에 앉아서 물에 비친 별빛을 보고, 헤르만 헤세의 시선으로 피렌체 두오모 꼭대기에서 붉게 핀 꽃들을 내려다보며 유럽의 도시를, 낡은 그리움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유럽의 예술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 아무런 상념 없이 즐기는 여행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현대 문화의 한 줄기를 찾아보는 또 다른 면에서의 즐거움임을 느끼게 한다.
런던은 바로크 시대부터 근대와 현대를 관통하는 음악의 성지다. 런던에는 헨델도 있고, 엘가도 있으며,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런던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그리고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있는가 하면 레드 제플린과 퀸과 비틀스도 있다.
교교히 흐르는 템스강을 내려다보며 테이트 모던 미술관 쪽에서 밀레니엄 브리지를 건넌다.
300여 년 전 이 자리에서 울렸던 한 음악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면서. 그건 독일 출신 바로크 음악의 대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Georg Friedrich Handel)과 런던에 얽힌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독일 작센 출신인 헨델은 1710년 독일 하노버의 선제후인 게오르크 루트비히의 총애를 받으며 하노버 궁정 악장으로 일했다.
그러다가 런던으로 휴가를 떠난 헨델은 짧은 휴가였지만 런던의 매력에 푹 빠졌다. 그가 런던에서 작곡해 공연한 오페라 [리날도]는 공전의 히트를 쳤다.
아리아 [Lascia ch’io pianga(울게 하소서)]는 런던 상류층뿐만 아니라 앤 여왕까지 눈물을 흘리게 했다.
-「영국 런던_헨델이 사랑한 도시 비틀스마저 품었다」중에서
“신의 눈을 가진 유일한 인간.” 클로드 모네(Claude Monet)를 두고 폴 세잔이 한 말이다.
세잔이 신의 영역까지 살짝 침범하면서 극찬한 모네의 눈. 도대체 세잔은 모네의 어떤 면을 두고 ‘신의 눈’을 가졌다고 했을까?
프랑스 남부 엑상프로방스에서 만났던 세잔은 ‘모네 관심 유발자’ 역할을 했다. (중략) 모네의 집이 유명한 것은 그의 마지막 연작으로 알려진 「수련」 때문이다. 그 「수련」이 바로 이 모네의 집 또 다른 정원인 물의 정원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모네가 직접 가꾸고 꾸민 물의 정원은 흡사 깊은 자연 속 습지 같은 느낌이다.
온갖 버드나무와 수풀로 좁아진 시야 속에 들어온 것은, 모네가 신의 눈으로 바라보며 빛과 색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 수려한 수련들이었을 것이다.
비록 나는 수련의 개화 시기가 아니라 꽃은 없고 연잎만 볼 수 있었지만 아름다운 자연으로 곱게 치장한 연못과 그 위에 떠 있는 연잎으로도 모네가 보았던 그 수련들이 떠오른다.
사실 모네의 집은 모네 사망 후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다시피 했다. 아름다운 꽃의 정원은 잡초와 벌레들로 가득했고,
물의 정원은 아무렇게나 자란 수초들로 지저분했다. 그러던 것을 1966년 모네의 아들이 이 집과 가구 등 유품을 지베르니시에 기증한다.
지베르니시는 모네가 쓰던 가구와 물건들을 곱게 복원했고, 그래서 지금도 모네의 집은 19세기 말 프랑스의 가정집을 그대로 유지한 채 많은 사람들의 눈을 행복하게 해주고 있다.
-「프랑스 지베르니_ 빛과 색, ‘신의 눈’ 모네를 찾아가는 시골길」중에서
높고 긴 성벽을 따라 늘어선 사람들의 행렬은 길다. 정문 위의 두 사내. 잔뜩 일그러진 얼굴이 고통스러워 보인다. 구불구불한 머리카락도 뒤틀린 심정으로 드러낸 왼쪽의 노인. 그에 비해 단정한 단발머리에 잘생김으로 무장한, 지성과 감성이 적절히 배합된 평안한 표정의 오른쪽 미청년. 왼쪽의 노인은 미켈란젤로이고 오른쪽의 청년은 라파엘로다.
르네상스 시대 3대 미술가 중 한 명인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와 라파엘로 산치오(Raffaello Sanzio)가 정문에서 사람들을 맞는 이곳이 바로 바티칸 박물관이다.
바티칸 박물관 정문에 왜 하필이면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가 조각되어 있을까? 그리고 그들은 왜 저렇게 다른 모습으로 함께한 것일까?
이들이 사실상 바티칸 박물관을 만든 주인공이다. 바티칸 박물관은 16세기 이후 역대 교황들의 궁전이었다.
교황 율리우스 2세가 당대 최고의 조각가와 화가인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를 바티칸으로 불러 궁전을 만들게 했다.
그 후 1774년 교황 클레멘트 14세가 이곳을 일반에 공개했다. 박물관을 비롯해 바티칸의 건축물들은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의 작품 전시장이다.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의 위대한 프레스코화와 조각이 원형 그대로 사람들을 맞는다.
-「바티칸 시국 바티칸시티_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를 따라 르네상스를 걷다」중에서
세비야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세비야 대성당. 바티칸의 산피에트로 대성당과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크다는데, 실제 보니 그 크기가 가늠이 안 된다. 이슬람 지배 시절 모스크 자리에 다시 세운 대성당은 콜럼버스가 발견한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져온 금과 은으로 치장해 화려함의 극치를 이룬다.
무려 20톤의 금을 입힌 세계 최대의 황금 제단은 압도적이다. 그리고 그 황금 제단을 가능하게 했던 콜럼버스의 묘. 이사벨 여왕 사후 자신을 외면한 스페인에 실망한 나머지 ‘다시는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겠다’는 유언 때문이었을까?
그의 관은 스페인의 왕 4명에 의해 공중에 들려 있다. 그 모양새가 대성당의 위용만큼이나 압도적이다.
그런데 세비야는 오페라의 도시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오페라 5편의 배경이 세비야다.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를 비롯해 베토벤 유일의 오페라인 [피델리오]와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 비제의 [카르멘]이 세비야를 무대로 하는 오페라들이다.
-「스페인 세비야_ 피가로와 함께 오페라의 도시를 걷다」중에서
빈을 위대한 음악의 도시로 만든 일등공신 모차르트는 청년이 되어 빈에 진출하지만 아주 오래전에 빈에 온 적이 있다. 쇤브룬 궁전이다.
모차르트는 6세이던 1762년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초청을 받아 이곳에 온다.
쇤브룬 궁전은 마리아 테레지아의 자존심이라고도 불린다. 1695년 오스만튀르크를 물리친 기념으로 짓기 시작해
마리아 테레지아 치세에 완성되었다. 프랑스 루이 14세의 베르사유 궁전보다 규모는 작지만 아름다움에서는 뒤지지 않겠다는
마리아 테레지아의 자존심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곳이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6세 꼬마 모차르트의 신기에 가까운 피아노 연주를 들으면서 감탄했다.
그리고 연주를 마친 모차르트를 자신의 무릎에 앉히고 소원을 물었다.
모차르트는 여제의 막내딸 마리아 안토니아 공주를 보며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는 훗날 프랑스 대혁명 때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마리 앙투아네트다.
사실 모차르트가 진짜 마리 앙투아네트와 결혼하고 싶다고 마리아 테레지아에게 말했는지는 알 수 없다.
호사가들에 의해 지어진 이야기일 수도 있다. 아무튼 모차르트는 마리 앙투아네트보다 2년 먼저 죽었기 때문에
첫사랑의 참혹한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와 빈_ 모차르트의 향기를 따라가는 알레그로 칸타빌레」중에서
프라하를 남북으로 가르며 독일 엘베강까지 이르는 블타바강은 프라하의 젖줄이다. 그리고 이 강 위에 프라하를 더욱 빛나게 하는 존재가 있다. 바로 카를교다. (중략) 카를교는 체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추앙받는 카를 4세의 이름을 딴 석조 다리다. 원래 목조 다리가 있던 자리에 카를 4세가 아름다운 고딕 양식의 돌다리를 만들었다.
폭 10미터, 길이 520미터의 보행자 전용 다리인 카를교는 다리 양쪽 난간에 30명의 보헤미아 성인의 동상이 있어 그 아름다움을 더한다.
그런데 이 다리에는 희한한 수열의 비밀이 있다. 135797531. 1357년 7월 9일 5시 31분을 뜻한다. 카를 4세가 이 다리의 초석을 놓은 날짜를 시간과 분까지 표시한 것이다.
7과 9의 순서가 바뀐 것은, 유럽에서는 영국을 제외하고 날짜가 달보다 앞에 표기되기 때문이다.
-「체코 프라하_ 비겁함을 뒤집어쓰고도 지켜낸 중세 도시 건축 박물관」중에서
라트비아 리가로의 여행은 아르누보 건축 여행이기도 하다. 아르누보는 말 그대로 ‘새로운 예술’을 뜻한다. 1890년부터 1910년까지 프랑스, 영국을 비롯한 전 유럽과 미국에서 대유행하던 예술 경향이 아르누보다.
그리고 바로 그 시기 아르누보 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며 유럽 근대 건축사에 큰 족적을 남긴 미하일 예이젠시테인(Mikhail Eisenstein)이 리가의 아르누보 건축물들을 꽃피웠다. (중략) 구시가로 들어가는 길의 자그마한 광장에는 블랙헤드 길드의 전당이 있다.
블랙헤드 길드는 주로 북아프리카를 활동 무대로 한 상인 조직인데, 이 길드의 회원은 모두가 미혼이다. 이들의 수호성인은 북아프리카 출신 로마 전사 성 마우리티우스. 길드의 이름을 블랙헤드라고 정한 이유다. 이 전당은 주로 상인들의 숙소와 연회장으로 사용되던 곳으로 리가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라트비아 리가_ 아르누보 건축의 정수를 찾아 떠나는 발트해의 보석」중에서
자주 갔던 곳, 익숙한 곳이라도 어느 시기 어떤 환경일 때, 어떤 관점으로 여행을 하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느껴진다.
작가 역시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유럽의 클래식 음악, 인상주의 미술, 건축물에 대한 관심을 갖고, 유럽의 다양한 도시를 여행하면서 예술적 경험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유럽의 각 지역에서 짧은 관광을 즐긴 것이 아니라 스웨덴에 살면서 유럽의 다양한 도시, 지역을 여행한 작가가 각 도시가 담고 있는 미술, 건축, 음악, 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에 대해 설명하기 때문에 기존 여행 관련 에세이나 여행 가이드북에서는 알 수 없는 디테일한 정보를 알 수 있었고, 감각적인 여행 모습들이 잘 드러나 쉽게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예술가와 그들이 만들어 낸 작품들이었지만, 그동안 알지 못했던 작품 속에 숨겨진 진실과 의미, 예술가가 그 작품을 완성하게 된 이유에 대해 새롭게 알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작가 : 이석원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 후 지금까지 신문사 기자로 살았다. 유럽의 클래식 음악과 인상주의 미술, 오래된 건축물을 좋아하며 그것들을 찾아 돌아다니기를 즐겼다. 그러다가 스웨덴에서 2년 반을 살았다. 유럽에 살며 유럽을 체험하기 위해서였다. 블로그와 SNS로 그 유럽들을 공유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