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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정지 버튼을 누르고 싶었던 순간들 - 마이 페이보릿 시퀀스
이민주(무궁화)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5월
평점 :
조금은 가볍게 읽을 수 있었다. 제목은 길지만 내용은 짧다. 작가의 글솜씨 탓인지 모르지만.
내 사진첩에는 요즘 말하는 '인생 샷'이 있는지 잠깐 가늠해본다.
영화를 무척 좋아해서 많은 영화를 봤다. 내 머릿속에는 한국영화 100년이 들어 있다고 허언도 해댈 정도로 한때 영화를 '닥치고' 봤다.
그러나 인생샷은 영화를 보는 과정에서도, 영화속이 아닌 현실의 삶에서도 쉽게 떠오르진 않는다.
내가 인생샷을 너무 크게 생각했나보다. 남들이 다하는 졸업, 취직, 결혼, 자녀를 낳고 키우는 일은 인생샷 범주에서 빼고 생각했으니...
그것이 내 인생이고, 그 중에 수많은 인생샷이 남아 있을 텐데. 인생샷은 잠시 접어두고 이 책을 말한다.
작가는 일러스트레이터다.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많은 사람이 사랑한 영화 속 장면을 그림으로 그렸다고 한다.
작가의 고백대로 "영화를 보면서 ‘정지 버튼’을 누르고 그 장면을 곱씹어보는 것은 바로 그 장면에서 ‘나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깜짝 놀란 것은 작가가 그린 그림은 단 한 장이었다니(폭발적인 인기가 쏟아졌을 때)...
'영화 같은 삶' '삶 자체가 영화다'라는 표현을 잘 쓰고 흔히 듣는다. 매우 드라마틱한 사건이 있을 때 영화 같은 삶이란 표현을 잘 쓴다. 또 삶이 영화처럼 극적이고 힘들고 어려운 역경을 견디고 이겨낸 영웅적 삶을 일컬을 때도 '영화 같은 삶'이라고 비유한다.
작가와 독자가 다른 점은 작가는 영화 속의 한 장면을 자신의 삶의 한 장면으로 투영시켰고, 독자는 영화의 한 장면을 자신의 삶에 투사했다는 점이다.
자신의 삶에 대한 시각차라고 할까. 아무튼 신선한 관점이다.
작가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첫 그림을 올린 이후 〈리틀 포레스트〉, 〈패터슨〉,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족구왕〉, 〈빌리 엘리어트〉 등 많은 사람이 사랑한 영화 속 한 장면을 그려냈다.
이 책 『인생에서 정지 버튼 누르고 싶었던 순간들』은 그가 그린 그림에 자신만의 시퀀스를 더한 새로운 이야기다.
영화처럼 펼쳐주는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들은 독자들의 바쁜 일상을 ‘일시 정지’하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누구나 마음에 품고 있는 영화 하나쯤은 있다. 주인공의 감정에 이입해 함께 울고 웃었던 자신만의 ‘가장 좋아하는 장면’도 있다.
독자 역시 영원히 그 장면에 멈춰 있고 싶어서, 혹은 그 장면으로 돌아가서 그때와는 다른 선택을 하고 싶다.
“저요, 사는 게 뭔지 진짜 궁금해졌어요. 그 안에 영화도 있어요.”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영화에 젊은 날을 다 바쳤으나, 결국 영화 때문에 모든 것을 잃고, 그럼에도 또다시 영화에서 삶의 의미를 찾은 찬실이. 어떤 일에 열정과 진심을 다했던 일, 사람, 꿈과의 관계에서 행복을 얻고, 때로는 실망하지만 또다시 관계를 맺어나가는 과정들은 참 평범하지만, 영화 같다. 우리의 인생처럼.
영화는 아주 가까이에 있다. 타인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무심하게 재생한 영화의 주인공은 인종도 성별도 사는 곳도 다르지만, 때때로 우리의 이야기가 된다. 영화는 평범한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아내고, 우리는 영화를 통해 삶을 되돌아보기 때문이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 영화로 꼽는 영화들은 대체로 소박하다. <리틀 포레스트>, <패터슨>, <벌새>, <소공녀> 등 잔잔한 흐름 안에 가슴을 쿵 하고 울리는 장면들이 있다.
일러스트레이터 무궁화 작가는 『인생에서 정지 버튼 누르고 싶었던 순간들』을 쓰고 그리며 영화 속에서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 순간들, 독자들도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담았다.
본래 영화에 관심이 없었던 무궁화(이민주) 작가가 영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영화가 내 이야기로 느껴지기 시작한 순간부터였다고 한다.
남들 다 하는 취업 준비는 안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족구에 열정을 쏟는 <족구>의 만섭이를 보면서 작가 또한 취업 준비 대신에 그림에 열중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걸어도 걸어>의 료타를 보면서 엄마의 부탁을 미루고 있는 자신을 반성했고, <우리>의 지아와 선을 보면서 대학 시절 절친했던 친구와 멀어진 관계를 이해하고 과거의 자신과 화해하게 되었다.
작가에게 영화는 고민을 털어놓는 상담소였고, 관계를 돌아보는 거울이었으며,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말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영화는 그렇게 작가가 현재를 되돌아보고, 스스로의 삶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만들어나가는 힘을 준 것이다.
이 대목은 우린 '영화처럼 살고 싶다'일 때 '내 삶은 영화 속 한 장면'으로 보고 극복한 생각의 차이를 보여준 것이다.
이 책에는 총 26편의 영화 명장면을 담은 일러스트와 에세이가 담겨 있다.
친구들과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요리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도시에서 지친 마음을 달래는 <리틀 포레스트>의 혜원, 지루하게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일상의 사소한 변화들을 담아내며 시를 써내려가는 <패터슨>의 패터슨, 그리고 타인과는 다른 선택을 하고 방황을 하면서도 자신의 가치관을 지키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소공녀>의 미소까지.
많은 사람이 인생 영화로 꼽는 영화들의 명장면을 통해 우리의 사소한 일상을 특별하게 그려낸 이야기들을 담았다.
작가가 담아낸 그림과 글, 영화 속 명대사들을 읽다 보면 나만의 시퀀스를 발견하고 행복한 순간을 다시금 떠올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래도 기죽지 않으려 노력했다. 만섭이가 만신창이가 된 발로 끝내 토너먼트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처럼 나도 내가 좋아하는 걸 지키고 싶었다.
불안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원래 인생을 불안을 껴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데 조금 더 불안하게 산다고 해서
큰일이 나진 않을 거라 굳게 믿었다. “남들이 싫어한다고 자기가 좋아하는 걸 숨기고 사는 것도 바보 같다고 생각해요.”
만섭이의 말을 주문처럼 외웠다. 이게 내 모습인걸.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내 모습이 좋았다.
- p.13
“은희야, 힘들고 우울할 땐 손가락을 봐.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도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어.”
그저 눈을 맞춰주고 말 한 마디만 해주면 충분한 시절이다. 사춘기의 우리를 잡아주는 건 작은 온기가 담긴 손길이다.
어린 벌새의 날갯짓이 멈추지 않도록 도운 건 영지 선생님이 조용히 건넨 따뜻한 우롱차 한 잔이었을 것이다.
문득 2020년의 은희는 어떤 어른이 됐을지 궁금하다. 나는 과연 영지 선생님 같은 어른으로 자라났을까?
- pp.44-45
우리는 과거의 일들을 기억과 추억으로 분류한다. 둘은 명확히 다르다.
기억이 단순히 지나간 일이라면 추억은 지나가는 일들 중 조금 더 세게 끌어안고 싶은 기억이다.
이제 과거에 대한 나쁜 기억이 행복한 기억으로 덧칠되기를. 너의 ‘프루스트 마들렌’은 우리가 한남동에서 먹었던 딸기 케이크이길 바란다.
현재를 살아가는 너는 더 이상 아픈 기억에 지배당하지 않아도 된다. Vis ta Vie! 네 삶을 살아라.
- p.100
가장 가깝다고 느껴도 어느 순간 멀어지는 가족이라는 이름의 타인과 타인. 아무리 쉬지 않고 걸어도 걸어도 서로에게 닿기가 참 힘들다.
마치 이어달리기에서 너무 멀어진 선발 주자를 뒤늦게 쫓아가는 후발 주자를 보는 것 같다.
열심히 따라가 바통 터치를 하려는데 자꾸만 손이 엇갈려 바통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만다.
급하게 바통을 주워 건네지만 이미 늦어버린 전달. 우리는 늘 조금씩 늦는 탓에 후회라는 굴레 속에서 살아간다.
- p.120
사랑뿐 아니라 타인과 인연을 맺는 모든 관계에서 우리는 상대방이 내게 오롯이 집중해 주길 바란다. 다른 사람과 시간을 보내느라 내 연락을 늦게 확인하는 상대방의 모습을 볼 때면 서운한 마음도 생긴다.
저 사람은 나만큼 내게 집중하지 않는구나. 사만다는 말한다. 사람 마음은 상자 같은 게 아니라서 다 채울 수 없다고,
사랑할수록 마음의 용량은 커지는 거라고, 나는 당신과 다르지만 그게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라고, 테오도르는 이해할 수 없었다.
“너는 내 것이야, 아니야?” “난 너의 것이지만 너의 것이 아니기도 해.”
- pp.192-193
저자 : 이민주(무궁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디자이너. 처음부터 영화에 큰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연히 접한 한 편의 영화 덕분에 영화를 보는 눈이 바뀌었다. 다른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영화를 보고, 기록하고, 그리는 일에 큰 관심이 생겼다.
우리의 일상이 이미 영화 같다는 생각으로 독자들이 자신의 삶에서도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고 싶게 만드는 영화의 장면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켜켜이 쌓인 기록들이 우리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지 모른다는 소박한 바람과 함께. 최근에는 회사에 들어가 디자이너로 일하며 평범하지만 특별한 자기만의 시퀀스를 새롭게 만들어나가고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에서 진행하는
체험단,리뷰단에서 제공 받아 작성한 솔직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