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닯구나, 잊혀진다는 것은
은애숙 지음 / 상상마당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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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집에는 나의 체험과 환상이 녹아 있다. (중략) 오래전 <약혼자들>을 쓴 작가 알레산드로 만초니처럼 생생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

"우리가 망각한 지나간 역사와 오래 전 대지와 성벽 속으로 사라진 사람들의 목소리와 갈망을 작품으로 살려내고 싶다."

"여성 작가로서 역사가 지나친 기록들, 곧 역사의 흐름에서 소외된 채 자녀 양육과 가사 노동을 전담해 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

『애닯구나, 잊혀진다는 것은』 소설집 '작가의 말'을 통해 밝힌 은애숙 작가의 집필 취지다.

여성 중심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작가의 의도처럼 이 책에 수록된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여성 화자들은 묘한 통쾌감을 준다.

<떼소로 미오>에서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 어머니의 무례함을 겪고 결별을 하기로 마음 먹는다든지, <기다림>에서 아내가 사라진 후 후회하고 기다리는 가부장적인 남편의 모습이라든지, <아득한 꿈>에 나오는 여학생이 교수를 유혹한 뒤 뒷담화로 개털이라고 말하는 등의 모습에서 왠지 희열감이 느껴진다.





2편의 중편과 5편의 단편소설 끝에 안휘 소설가이자 평론가의 작품해설은 독자들이 읽고 느낀 점을 문학적 관점에서 정리해 독자의 소설 감상의 질을 높여준다.

"『애닯구나, 잊혀진다는 것은』에는 은애숙 작가의 체험과 환상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저자가 추구하는 문학은 내재된 슬픔과 이 슬픔을 응시하는 체험, 달랠 수 없고 위로되지 않는 슬픔의 체험,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의 체험이 여과되고 정돈되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에 은애숙 작가만의 문학적 상상력, 작품을 끌어나가는 힘, 작가적 관조 등이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아르헨티나 출신의 시인이자 소설가·수필가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로부터 문학적 깨우침을 얻은 탓에 은애숙의 작풍은 지성의 심연을 유영하는 ‘환상적 사실주의’ 형식을 많이 따르고 있습니다.

그런 흐름은 지난 첫 번째 소설집 『마리아 환상 사용법』에 이어 두 번째 소설집에도 꾸준히 이어집니다."





"그러나 은애숙의 소설들은 리얼리즘의 영역도 허투루 흘려넘기지 않고 섭렵하고 있습니다. 작가 알레산드로 만초니처럼 생생한 이야기를, 우리가 망각한 지나간 역사와 오래전 대지와 성벽 속으로 사라진 사람들의 목소리와 갈망을 작품으로 살려내고 싶다는 저자의 바람은 그대로 작품 안에 투영되어 하나하나의 중편, 단편들이 각자의 빛을 지닌 채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하나의 이야깃거리, 혹은 주제가 어느 작가만의 독특한 문학적 상상력과 합쳐질 때 이토록 찬란하고 생생한 이야기들로 탄생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애닯구나, 잊혀진다는 것은』을 통해 은애숙 작가가 지닌 작가로서의 힘, 경험과 사색, 지적 탐험을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은애숙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애닯구나, 잊혀진다는 것은』 작품마다 색다른 실험이 시도되고 있다는 측면에서 고무적이다. 왕성한 창작열에 지적 탐험 욕망을 함께 지닌 작가가 실험정신이라는 필수 덕목까지 장착했으니 미더운 소설가로서 날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는 듯하다.

『애닯구나, 잊혀진다는 것은』에 나오는 소설들을 공통적으로 관통하는 메세지는 저자가 서두에 밝혔듯 늘 남성들의 주변적인 존재에 불과한 여성들, 그들이 중심이 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즉 페미니즘의 성격을 띄고 있다.

그리고 작가는 꿈을 소재로 많이 사용했고(3편) 종교와 관련된 인물(3편)과, 이탈리아의 배경(2편)도 하나 이상의 소설에서 쓰인다.





<기다림>에서는 판수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아내에게 욕설은 기본이고 폭력을 쉽게 행하는 인물이다. 그의 아내는 인내심이 강하고 가족을 위해 모진 희생을 다하는 전형적인 가부장시대의 아내다.

사람은 잘해주는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더 잘해줘야 할텐데 어찌된 것인지 잘해주는 사람에게 더 모질게하는 성향이 있다.

판수의 성질과 폭력에 못이겨 결국 아내는 집을 나간다. 가부장적이고 남을 잘 의심해서 주변사람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하는 판수는 아내가 없어지자 당장 밥도 제대로 차려먹지 못한다. 주변 이웃도 마음을 트고 지는 이들이 없어 외롭기까지하다.

그러다 술에 취해 객사할 뻔한 일이 생기는데 지나가던 천주교 신부에 의해 목숨을 구하고 그 인연으로 종교에 귀의한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아내가 돌아온다면 정말 잘해주리라 다짐하지만 자식들도 아내가 어딨는지 모르고 아내의 행방은 묘연하다.

어느날 쓰러지는데 암판정을 받는다. 다행히 종교의 힘으로 마음은 평화롭지만 그토록 기다리던 아내는 마지막까지 돌아오지 않고 소설은 끝난다. 아내한테 있을 때 잘하라는 이야기다.

남성의 권위와 돈의 힘 앞에서 무참히 짓밟히는 여성의 모습을 통해 늘 희생하고 참아야만 했던 여성의 삶을 작가는 조명하고 있다.





<낙원의 새마음운동>도 판타지 소설이다. 루저같이 살고 있는 주인공 이도궁에게 어느날 꿈에 신이 나타나서 일주일에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린다면 정치를 할 수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약속을 한 이도궁은 정말로 하나씩 물건을 버리게 되고 무소유을 실천하게 된다.

그런 행위를 통해 얼마나 불필요 한 것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으며 절제를 배우게 된다. 절제로 탐욕이 힘을 잃게 되자 묘한 해방감을 느끼게 된다. 낙원은 군 이름이다.

이도궁은 낙원군의 군수 후보로 출마하게 되는데 아무것도 없는 그에게 마법같이 후원금이며 사람들이 몰려든다. 그리고는 결국 군수가 된다. 그가 필요없는 물건들을 정리하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모습이 여러 사람들에게 미담으로 알려지고 사람들도 그에 감동받고 동조하여 필요없는 물건들을 나누는 운동에 동참한다. 이렇게 나온 물건들은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팔아 수익을 얻고 다시 그 돈은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기금으로 쓰이게 된다. 이런 긍정적 시너지가 선순환을 이루며 사람들의 마음도 따뜻해지고 어려운 사람들이 사라지면서 낙원군은 이름대로 낙원이 되어간다.

하지만 이도궁도 명성이 점점 높아지면서 교만의 싹이 트고 권력욕이 솟구친다. 그러다 사고로 한 소녀가 죽게 되고 이도궁은 생명보다는 권력을 선택하게 된다. 결국 신이 나타나 이도궁의 모든 것을 빼앗아갈 운명에 처한다.

<낙원의 새마음운동>에서도 작가의 아이디어가 참 돋보인다. 신이 필요없는 물건들을 버리라고 하자 주인공은 처음에는 어색해 한다. 하지만 정치인이 되기위해 비자발적이지만 불필요한 물건 나누기를 실천하면서 점점 비움에서 오는 긍정적인 영향들을 체험하게 되자 점점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실천하게 된다. 작가는 만약 모든 사람이 그렇게 꼭 필요한 것들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다면 많은 자원을 아낄 수 있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데 사용하는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제안을 하는 것이다.






<내 안의 호수> 주인공은 일찍 엄마를 잃는다. 다행이 엄마에 대한 마음의 빈 자리를 채워준 사람이 있었으니 엄마와 잘 알고 지내던 권사 아줌마였다. <기다림>에서 신부님이 나왔다면 여기서는 권사 아줌마가 주인공을 도와준다. 하지만 엄마가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는 새엄마를 구한다.

주인공은 새엄마에게는 정이 가질 않는다. 그래서 계속 권사 아줌마를 엄마처럼 따르고 있었는데, 새엄마가 권사 아줌마에게 어떤 이야기를 한 이후부터 아줌마는 주인공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되고 사회적기업에 다니던 주인공은 새로 직원으로 사람이 그때 권사 아줌마인 것을 알게 되고 둘은 오랜만에 재회한다. 성인이 되었지만 어려서 엄마 없이 자라 생긴 마음의 공허함이 그 무엇으로 채워지지 않았던 주인공은 아줌마와 함께 있을 때면 그것이 채워지는 것을 느꼈다. 둘의 나이는 30세 이상 차이나지만 점차 엄마뻘 되는 여인에게 사랑을 느끼고 급기야 고백을 생각하는 단계에 이른다. 그러나 결국엔 아줌마의 둘째 딸과 사귀어 장모, 사위 관계로 인연을 이어가기로 한다.

<내 안의 호수>를 읽으며 서른 살 위의 여성에게서 이성의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상상해보게 된다.

사위와 장모의 관계 정도로 소설에서는 마무리 되지만 작가는 그 이후 이야기를 독자의 상상력에 여지를 열어두었다.





<떼소로 미오>는 로마를 배경으로 그곳으로 여행을 떠난 두 여성의 이야기다.

<떼소로 미오>에서는 가부장적인 주인공의 남자친구와 독선적이고 권위적인 남자친구의 어머니가 나온다. 거기서 나오는 한국 남자의 모습은 다소 부정적이지만, 이탈리아 남자는 사랑을 위해서라면 물불가리지 않는 모습으로 나와 자연스레 비교가 된다.

<떼소로 미오>에서 나오는 주인공의 어머니는 평생을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자기 없는 삶을 살아오다 자식들이 모두 성장해서 자리를 잡자 기다렸다는 듯이 황혼 이혼을 선언한다. 늘 희생하고 억눌려 살아온 여성의 삶을 조명한다.

주인공이 엄마가 한국인인 이탈리아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저돌적이고 뜨겁게 들이대는 이탈리아식 사랑법에 많은 여성독자들이 설레일 것 같다. 떼소로 미오는 '내 사랑'이라는 뜻이다.




<진혼의 노래>는 13세기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는데 지체높은 부잣집 딸에 아름다움까지 겸비한 여성이 그 많은 고관대작의 자식들이 구애해와도 거들떠 보질 않다가 한 거렁뱅이 수도승에게 사랑에 빠져 모든 것을 버리고 그를 따라 나섰다가 이단으로 몰려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이야기다.

교황청의 폐단이 극에 달하고 가톨릭이 썩을대로 썩어버려 이에 많은 개혁적인 성직자들이 일어나는 시기였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이단으로 몰려 처형당하게 된다. <진혼의 노래>에서는 돈에 눈이 먼 기득권 종교가 면죄세라는 것을 만들어 돈을 주면 모든 죄가 용서된다며 신을 팔아넘기는 장사치로 전락하는 장면도 나온다.

작가의 다른 소설에서도 종교는 등장하지만 주류가 아니라면 <진혼의 노래>는 종교를 중심 주제로 삼은 소설이다. 거렁뱅이 수도승의 이름은 돌치노(Dolcino)인데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이단으로 나온다. 하지만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기득권인 가톨릭의 입장에서 보면 혁명가인 돌치노는 나쁜 놈이 되어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돌치노에 대한 부정적 기록에 대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옳지 않다. 이단으로 기록되는 돌치노에 대해 작가는 상상력을 발휘해 긍정적인 모습을 그려내보고 싶었던 것 같다. 일본의 역사에 안중근 의사가 테러리스트로 기록되었다고 그것이 사실이 아닌 것 처럼 돌치노에 대한 정사의 설명만으로는 그를 평가 할 수 없을 것이다. 작가는 이 점을 염두하여 <진혼의 노래>를 쓴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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