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사람의 조건 휴탈리티
박정열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생경한 단어 '휴탈리티(hutality)'는 첫 대면했을 때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우리 인간 고유의 속성을 뜻하는 휴머니티(humanity)와 인재의 잠재성을 의미하는 탤런트(talent)를 합해 인간의 본질, 기계와 달리 우리만 가지고 있는 해석 역량, 우리 안에서 나오는 인재성을 합친 뜻이라는 것도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됐다.

저자 박정열은 프롤로그를 통해 이 단어가 어떻게 조합된 말인지는 밝혔지만 자신이 창안한 신조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독자로서도 의구심이 들지만 저자가 이 단어가 왜 이 시점에서 필요한지를 밝힌 것으로 보아 저자의 신조어로 생각한다.

자신이 만든 단어가 아닌데 이렇게 정확하게 만든 과정을 알 수는 없지 않은가?

이 책의 제목으로 선택된 단어 휴탈리티의 뜻을 알고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을 받아들일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사전에도 아직 정식으로 등재되지 않은 단어를 주제로 왜 필요한가를 역설하는 저자의 뜻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다.

우리 사회의 '사유의 리더'라고 말할 수 있는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추천하는 것도 저자의 주장에 동조하고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우리는 'AI 시대'에 돌입했고, 어떤 인재들이 필요한가에 대한 저자의 주장은 이미 설득력을 얻었다.

형편없는 실력이지만 바둑에 대한 얘기로 이 책을 읽으려는 독자에게 비유해 여기에 써둔다.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 프로기사 이세돌의 대국은 전 세계 바둑팬뿐만 아니라 인공지능 관계자들에게도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한 판을 제외하고는 모두 알파고에 패배, 인공지능 바둑의 놀라운 발전을 목격했다.

중국의 커제라는 바둑기사와의 대결은 한 판도 내주지 않고 3대0으로 끝냈다.

이후 세계 정상급 기사들은 물론 프로바둑 기사들도 인공지능 바둑을 교과서처럼 사용하고 있다.

인공지능을 바둑에서는 이길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한 셈이다.

그러나 영원히 컴퓨터를 스승으로 모시고 살 수는 없다. 승부 자존심을 떠나서 스스로 만든 기계와의 경쟁에서 지다니. 이렇게 되면 인간의 존립을 결국 인공지능에 의해 지배당하게 되는 꼴이다.

이 지점이 저자가 고민해서 이 책을 통해 대안을 제시한 것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이해했다.

독자로서는 생경한 휴탈리티에 대해 배우고, 우리 시대 어떤 지식을 얻어 발전해야 하는지에 대한 비전에 크게 공감한다.



이 책의 서두는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완벽해지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어. 난 내 존재 자체로 경이로워지면 돼."

소설가 조지 오웰이 남긴 말이다.

나직이 자신에게 건네보자.

어떤가? 선물 같지 않은가?

내 존재 자체로 경이로워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인공지능이란 슈퍼 기계가 등장하고 인간은 미래의 일자리를 걱정하며 위축되어 있다.

지금처럼 우리 인간이 저평가된 시대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기술은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이런 모습은 마치 근대 산업화를 지나며 나타났던 ‘인간 소외’의 최신판 데자뷰가 아닐 수 없다.

인공지능 시대의 중심에 서 있는 우리 인간의 생존력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걸까?



사람과 조직에 대한 본질적 이해를 업의 테마로 정하고 23년간 고민의 여정을 이어 오고 있는 《AI시대 사람의 조건 휴탈리티》의 저자 박정열은 나 자신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의 여정을 통해 우리 삶의 존패 또는 번영의 스토리가 생겨난다고 말한다.

이제 그가 말하는 ‘휴탈리티’를 통해 기술이 진보해도 여전히 주목받아야 할 인간의 능력이 무엇인지 깨닫고, 기술보다 해석이, 데이터보다 의미 연결이 더 중요한 이유에 대해 알아본다.

사람은 많은데 쓸 만한 인재가 없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해마다 열리는 수많은 채용박람회장은 늘 인산인해이고, 학력도 높고 스펙 좋은 사람들이 넘쳐나는 데도 말이다. 《AI시대 사람의 조건 휴탈리티》 이 책에서는 인재는 누구인지 인재라면 갖추고 있어야 하는 본질적인 역량은 무엇인지부터 알아나간다.



인재라면 누구나 갖추고 있어야 하는 본질적 역량은 기술 역량과 해석 역량이다.

기술 역량은 외부로부터 지식을 수용하고 이를 활용해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능력을 말하고, 해석 역량은 경험으로부터 자신과 세상에 대한 의미 체계를 만들고 이를 통해 변화에 주체적으로 대응해나가는 능력을 말한다.

기술 역량이 데이터, 알고리즘, 생명공학을 통해 보다 나은 슈퍼 기계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한다면 해석 역량은 슈퍼 기계와 우리의 관계는 어때야 하며, 슈퍼 기계를 어떤 용도로 누가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지를 논의하고 결정하는 능력이다.

기술 역량이 우리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에 대한 것이라면 해석 역량은 우리의 어떤 욕구가 얼마나 충족되는 게 바람직한지에 대한 것이다.

이런 해석 역량은 감수성(sensing)과 감지성(sense making), 두 가지로 대별된다.

감수성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복잡하고 다양한 변화를 받아들이는 섬세한 촉과 같다면, 감지성은 복잡하고 애매모호한 상황 속에서도 의미를 만들고 연결하는 능력이다.

이렇게 볼 때 기술 역량은 지속적으로 개선돼야 하지만 해석 역량은 갈수록 세련돼져야 한다.

인재라면 어때야 할까? 업데이트되는 지식과 기술을 잘 소화해 실제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활용할 수 있는 사람, 계속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자신과 세상이 맺어야 할 유의미한 관계를 주체적으로 형성해나가는 사람이 바로 인재이다.

이에 따라 AI시대의 중심에 서 있는 우리는 배우고(learning), 배운 것을 폐기하고(unlearning), 새로 배우는 (relearning)을 지속할 수 있어야 한다.



기계, 데이터, 알고리즘에게 미래의 주인공 자리를 빼앗긴 우리 인간의 모습은 〈루시〉, 〈어벤져스〉와 같은 영화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영화 속 세상만큼이나 현실 세계의 변화도 무섭도록 빠르다.

이런 기세와 속도라면 머지않아 컴퓨터 프로그램이 대부분의 인간을 직업 시장에서 몰아내고, 세계의 부와 권력은 슈퍼 기계를 소유한 집단이나 개인의 손에 들어갈지도 모른다.

그러면 아마도 전례 없는 사회적 불평등이 발생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여전히 우위에 있는 우리 고유의 영역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AI시대에 살아남는 방법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각각의 개별자, 즉 개인으로 존재한다. 개인(individual)이라는 영단어의 의미는 글자 그대로 ‘더 이상 나뉠 수 없다’는 뜻으로 다른 이들과 구분되는 독특한 완전체라는 말이다.

이것이 우리의 진정한 자아이고 거기서 세상의 모든 의미와 권한이 나온다. 개개인의 독특함(unique)은 바로 경험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대목에서 비로소 도드라진다.

데이터화되지 않기에 슈퍼 기계가 원천적으로 범접하기 어려운 우리만의 청정 지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이 진행되는 바로 그 지점, ‘감지(sense making)’가 시작되는 바로 그곳이다. 기술이 진보해도 여전히 주목받아야 하는 인간의 능력이 바로 이것인 것이다.

휴탈리티(hutality)는 우리 인간 고유의 속성을 뜻하는 휴머니티(humanity)와 인재의 잠재성을 의미하는 탤런(talent)를 합해 인간의 본질, 기계와 달리 우리만 가지고 있는 해석 역량, 우리 안에서 나오는 인재성을 뜻한다. ‘

휴탈리티’는 슈퍼 기계의 진보에 방향을 제시하고 미래에 있을 인간 경험의 질감을 풍성하게 만들어줄 해석의 힘을 가능하게 해준다. 빅데이터를 이기는 인간의 조건인 해석과 의미 연결은 휴탈리티를 통해 기능하게 된다.




아이폰을 처음 개발할 당시 애플의 직원들은 주당 100시간씩 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장시간 근로에 대한 불평불만을 하지 않았다. 모두 자발적으로 일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컴퓨터와 폰과 인터넷을 한 사람 한 사람의 손 안에’라는 신념을 이 세상에 실현하려는 내적 동기(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세상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하고 싶은 성장, 존중, 기여 및 관계 욕구)로 충만해 있었고, 그 일에 스스로(자율성 욕구) 몰입했다.

근로 시간의 길고 짧음에 대한 시시비비는 그들에게 의미 없었다.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하나하나의 과정을 통해 그들은 평범한 존재의 순간을 넘어 더 높은 수준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느끼며 이를 만끽했다.

20세기 미국의 화가이자 미술 교사였던 로버트 헨리(Robert Henri)는 내적 욕구의 진수를 엿볼 수 있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림 그리기의 목적은 그림을 만들어내는 데 있지 않다. 혹시 그림이 만들어졌다면 그것은 부산물일 뿐이며, 그리기 과정이 유용하고 흥미롭고 가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다. 진정한 예술 작업의 목적은 언제나 평범한 존재의 순간보다 더 높은 차원으로 존재하는 것, 그 순간에 이르는 데 있다.”



그의 말을 단어만 조금 바꿔보면 아래와 같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일하는 목적은 성과를 만들어내는 데 있지 않다. 혹시 성과가 나왔다면 그것은 부산물일 뿐이며, 일하는 과정이 유용하고 흥미롭고 가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다. 진정한 일의 목적은 언제나 평범한 존재의 순간보다 더 높은 차원으로 존재하는 것, 그 순간에 이르는 데 있다.’

내면의 동기부여 상태는 어떤 행동 그 자체에 완전히 빠져드는 것이지, 어떤 목표를 달성하는 것과는 무관하다는 말이다.

우리는 어떤 외부의 조명에도 여과 없이 우리를 맡겨서는 안 된다. 오직 내 안의 것들만이 나를 움직일 수 있도록 허락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그러려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의 내적 욕구는 무엇인지, 그것이 외적 욕구와 자극들에 억눌려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한다.

나의 안으로부터 울려 나오는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이려는 시도가 필요하다.실제로 우리는 본질을 캐내는 질문보다는 현상을 확인하는 질문을 압도적으로 많이 주고받으며 살고 있다.

하지만 양은 적더라도 우리의 삶에서 진보를 일궈내는 것은 현상을 확인하는 질문이 아니라 본질을 깨내는 질문이다.

삶의 동력을 주고 의미 있는 여정을 계속하도록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많이 해야 한다.

본질적 자문과 이에 대한 성찰이 습관으로 자리 잡은 사람은 삶을 이끄는 화수분 같은 동력이 흘러나온다.

그 동력은 몰입의 강을 만들고 창의의 바다로 연결되며 나의 ‘오리진(Origin)’을 끌어낸다. 이때 우리는 AI시대 생존력인 휴탈리티를 만나게 된다.



우리 각자가 가지는 인간 고유의 특유함에 대한 본질적 성찰과 그로부터 나오는 동력을 폄하하는 태도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만든 것들에 의해 우리 스스로를 소외시킨다.

그리고 숱한 복잡성 속에서도 여전히 건재해온 최고의 동력 원천을 근원적으로 상실하게 만들 것이다.

우리 자신에 대해 아는 만큼 소외의 피폐감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기계에 둘러싸여 기계와 비교되며 잦아들어버린 나만의 청정 영역인 휴탈리티를 찾고 밝혀 드러내야 한다.

- p.10, 「우리는 모두 저평가되어 있다」 중에서

기술 역량은 자신의 우선순위와 방향을 스스로 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발명한 것으로 무엇을, 왜,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할 능력이 없다. 진보한 유전공학 기술을 암 치료에 이용해야 할까, 슈퍼 히어로를 만드는 데 써야 할까,

우유 생산량이 대폭 증가된 젖소를 만드는 데 써야 할까에 대해 기술 역량은 말이 없다. 어떤 용도를 다른 용도보다 더 선호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기술 역량은 중립을 고수한다. 이 이유를 만들어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해석 역량의 역할이다.

우리에게는 기술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우리 자신과 세상을 객관화해서 인지하고 의미 체계를 구성함으로써 방향을 제시해 그 결과를 해석하는 힘이 필요하다.

- p.37, 「인재를 검증하는 두 가지 역량: 기술 역량과 해석 역량」 중에서



21세기는 우리를 해킹해서 우리보다 우리를 훨씬 더 잘 아는 알고리즘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초기 관건은 누가 데이터를 더 많이 소유하는가에 있다. 데이터를 확보하려면 뭔가를 공짜로 자꾸 주어야 한다.

상호 이득이라며 공짜로 나누도록 하는 와중에 데이터 부스러기가 떨어진다.

이 데이터에 대한 미래의 진짜 임자는 당장 공짜로 뭔가를 제공한 자가 될 것이다. 데이터 소유자는 어마어마한 프리미엄을 독점할 확률이 높다. 공유 경제를 표방하지만 사실은 더 고도화된 소유 경제인 것이다.

- p.136, 「데이터를 소유한 자가 미래를 소유한다」 중에서

내재화가 잘 되지 않고 내사화로 빠지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재화와 내사화의 갈림길에서 결정적 방아쇠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자기 의미로의 전환’ 여부다.

자기 의미로 전환했다는 것은 무엇일까? 앞서 언급한 인재상 제시의 세 가지 요소가 힌트다. 가치판단, 사실적 기준, 행동 지침 이 세 가지가 모두 명확히 제시되지 않으면 그 인재상은 내재화되지 않는다. 어느 하나라도 결여된 상태로 인재상이 제시되면 ‘자기 의미로 전환’하는 데 결함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 말은 곧 외부로부터의 자극이나 경험이 완전히 자기 의미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의미가 가치판단, 사실적 기준, 행동 지침이라는 세 겹 줄로 탄탄하게 구성돼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 p.162~163, 「내재화 VS. 내사화」 중에서



삶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경험으로부터 지혜를 얻으려면 경험에 대한 감수성과 감지성이 필요하다.

뭔가 세상에 대해 의미 있는 말을 하고 싶다면 우리의 감각을 최대한 동원해 열린 마음으로 경험을 수용하고,

수용한 경험을 맥락 속에서 감지해 프로네시스를 얻어내야 한다.

이 프로네시스는 결국 느낌표에서 나온다. 삶의 모든 국면에서 느낌표를 만들어내는 습관이 필요한 이유다.

--- p.241, 「경험을 통해 지혜를 얻어내는 법, 프로네시스」 중에서

저자 : 박정열

‘사람과 조직에 대한 본질적 이해’를 업의 테마로 정하고 지금까지 23년간 그 고민의 여정을 이어 오고 있다. 연세대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이어 연세대에서 경영학 석사, 서울대에서 교육학 박사를 취득했다. 사람과 조직에 대한 본질적 이해를 심화시키기 위해서는 철학, 경영학, 교육학의 학제적 통섭과 콜라보가 있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E.LAND, LG LEADERSHIP ACADEMY, INSIGHTGROUP, NEMOPARTNERS, KPMG를 거치면서 공공기관 및 중소대기업 약 109개 조직, 18,000여 명과 만나 소통하며 교감하였다. 학문을 통한 체계적 고민과 현장의 질감 있는 경험을 겸비하기 위한 여정이었다.

현재는 HMG(HYUNDAI MOTOR GROUP UNIVERSITY)에 재직하며 그 이해 여정을 더욱 심화(ENRICH), 확장(ENLARGE)시켜가고 있다. 최근 〈지식근로자의 일터학습민첩성 진단도구 개발〉이 한국인력개발학회 최우수 논문으로 선정되었으며, 미래인재마인드라는 프로그램을 기획 개발하여 인재 개발의 새로운 혁신을 일으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에서 진행하는

체험단,리뷰단에서 제공 받아 작성한 솔직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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