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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자가 들려주는 일상 속 행복
마르크 오제 지음, 서희정 옮김 / 황소걸음 / 2020년 3월
평점 :
세상 사람들 모두는 행복한 삶을 원한다.
살면서 가장 원하는 게 무엇인가를 물으면 대부분 '행복'이다.
그럼 '행복하게 사는 것'은 어떤 상태로 사는 것인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가족과 함께, 이웃과 더불어 웃으며 사는 것"이라고 답한다.
그렇게 살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엔 "... 돈" 그리고 가족, 이웃이다고 어렵게 답변한다.
그렇게 된다면 행복한 삶인가라는 질문엔 "그렇지, 뭘 더 바라겠는가"가 답이다.
어물쩍한 답변엔 자칫 '돈'이 삶의 행복을 결정짓는 가장 필요한 전제고 중요한 답이다는 뜻이 들어 있는 듯하다.
돈이 주요한 전제이지만 그렇다고 돈이 모든 걸 해결해준다는 자신감은 없어서일 것이다.
그럼 언제가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가. 대부분 같은 대답을 할 것이다.
순간순간 의식할 때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지 삶 자체가 모두 행복으로 채워지는 건 아니다.
여기에 『인류학자가 들려주는 일상 속 행복』의 저자 마르크 오제(Marc Auge)는 답한다.
“드물게 찾아오는 순간들이 있어 인생은 살아볼 만하다.”
이 책은 전통적인 장소에 대비되는 비장소(NON-PLACES) 개념으로 현대사회의 인간관계를 새롭게 해석해 세계적인 거장 반열에 오른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가 노년에 이르러 인류학적 관점으로 쓴 행복에 관한 짧은 에세이다.
저자은 이 책에서 사람들은 어떤 정황과 여건에서 행복을 또렷하고 섬세하게 감지하는지 자신의 경험과 문학작품, 샹송과 음식, 여행과 영화 등을 통해 풀어 썼다.
저자는 인류학자답게 일상의 구체적인 행동과 사건, 태도에서 행복을 찾는다.
“사적인 노스탤지어이자 미화된 과거, 혹은 공동의 유토피아이자 미화된 미래라는 두 가지 성격을 띠는 시간적 개념으로 보인다”며 조심스럽게 행복의 개념에 다가간다.
그리고 일상 속 행복이 중요한 이유는 개인의 삶을 영위하게 하는 것은 물론, 타인과 관계를 유지하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길을 열어가게 해주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인터넷 서점에서 ‘행복’을 키워드로 책 제목(부제 포함)을 검색해보면 1만 300여 종이 나온다고 한다.
서점 측에 따르면 제목에 ‘사랑’이 들어간 책이 2만 500여 종으로 단연 많고, ‘성공’ 7800여 종, ‘건강’ 6500여 종, ‘부자’ 2300여 종 순이다.
사랑과 성공, 건강, 부(富))가 행복을 위한 조건이라면, 저자의 말대로 우리나라에도 행복 추구라는 트렌드가 존재한다는 걸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마르크 오제는 이용자 간 관계 부재, 역사성 부재, 고유한 정체성 부재라는 특징을 띠는 공항, 대형 쇼핑몰, 고속도로 등 전통적인 장소와 대비되는 곳을 ‘비장소’라는 개념으로 정의하며,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상호작용을 새롭게 해석한 인류학자답게 종전의 행복에 관한 책들과 차원이 다른 행복 탐구를 선보인다.
효율과 생산성을 중시하는 소비사회에서 개인의 삶이 갖는 의미에 의문을 던지고, 행복 추구가 현대사회에서 왜 트렌드가 됐는지, 행복 전도사를 자처하는 이들이 말하는 행복의 개념은 무엇이 문제인지, 행복하다고 규정된 순간들에 담긴 의미와 역할은 무엇인지 짚으며 행복 탐구에 나선다.
저자는 관념적인 행복을 탐구하기보다 인류학자답게 일상의 구체적인 행동과 사건, 태도에서 행복을 찾는다.
그에게 일상 속 행복의 목록은 끝이 없다. 빼앗겨봐야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지 실감할 수 있는 일상 속 소박한 행복부터 얼굴, 풍경, 책, 영화, 음악, 익숙한 것과 새로운 것을 만나는 행복, 갑자기 나타났다가 슬며시 사라지는 기억 속에 저장된 행복, 회귀 혹은 첫 번째 경험의 행복, 추억과 변치 않는 사랑의 행복…. 그중에서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오는 행복’에 주목한다.
인생에는 절대로 행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 갑작스레 찾아오는 행복이 있으며, 이 행복은 우리가 일상을 버티도록 도와준다고 주장한다.
그 사례로 자신의 가족이 치른 장례를 든다. 장례 치르기에는 집안 어른이 세상을 떠나셨음을 진심으로 애도하면서도
가족과 멀리 떨어져 사는 친척들을 만나고 짧으나마 감정적 유대를 쌓으며, 함께 하나의 사건을 행복을 나누는 행사로 바꾸는 힘이 있다는 주장에서는 인류학자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다.
“사적인 노스탤지어이자 미화된 과거, 혹은 공동의 유토피아이자 미화된 미래라는 두 가지 성격을 띠는 시간적 개념으로 보인다”며 조심스럽게 행복의 개념에 다가가던 저자는 일상 속 행복이 중요한 이유를 행복이 개인의 삶을 영위하게 하는 것은 물론, 타인과 관계를 유지하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길을 열어가게 해주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오랜 세월 인간의 삶을 탐구해온 인류학자가 노년에 이르러 행복이란 무엇인지 명쾌하게 정의하고, 우리가 왜 행복해야 하는지, 행복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떡해야 하는지 그 길을 제시하는 대목은 공감을 넘어 깊은 울림을 준다.
인생에는 절대로 행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 갑작스레 찾아오는 행복이 있다.
- pp.23-24
작은 자유를 한동안 박탈당해보면 일상의 진가가 무엇인지 깨닫고, 일상이 얼마나 중요한지 깊이 느낀다.
- p.36
행복은 사적인 노스탤지어이자 미화된 과거, 혹은 공동의 유토피아이자 미화된 미래라는 두 가지 성격을 띠는 시간적 개념으로 보인다.
- pp.53-54
행복의 미덕은 행복이 우연한 만남과 사건에 따라 달라진다고 해도 여전히 그 우연을 기대하고 찾을 수 있는 데 있다.
또 마침내 행복을 찾았을 때도 계속 행복을 찾으려고 애써야 하는 것을 아는 데 있다.
- p.64
모든 인간에게 삶이라는 여정은 『오디세이』에 버금가는 모험담이다.
- p.84
문학 속 이야기는 이처럼 시간과 행복을 대하는 태도가 헤아릴 수 없이 담긴 보고(寶庫)다.
모든 샹송에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감정과 마음가짐이 집약돼 있다.
그런 의미에서 샹송은 그 곡을 자기 것으로 소화한 사람의 것이다.
- p.131
혼자서도 훌륭한 음식이나 좋은 와인을 맛볼 수 있겠지만, 정겨운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면 그 기쁨이 배가된다.
- p.138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우리는 나이를 먹으며 나이의 속박에서 벗어나 시간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법을 배우는 것 같다.
- pp.162-163
사람들이 각자 삶의 창조자가 되면 그들은 자기만의 존재성과 타인과 관계를 동시에 인식함으로써 만족감을 갖는데,
이 행복은 몸의 감각도 아우른다. 이런 총체적 인식의 순간을 나는 행복이라고 부른다.
- pp.189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