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리더들이 논리학을 배우는 이유 - 리더들의 성공비결 논리학을 주목하라!
치루루 지음, 권소현 옮김 / 힘찬북스(HCbooks) / 201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논리학은 매우 어려운 학문이다."

"논리학은 학문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분야지만 학문을 하는 모든 사람이 논리학을 따로 배우진 않는다."

학교 다닐 때 들은 말이다. 논리학을 배워야 하는 전공도 아니어서 그쯤으로 알고 논리학과는 멀어졌다.이후 직장 생활을 하면서 논리학은 말을 잘하는 평론가나 정치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단어쯤으로만 인식했다.

실제 생활에서 말로 상대를 설득시켜야 할 때도 시중에 나와 있는 출판물에서 '대화법'을 말하는 책을 읽고 따라 해본 정도.

이 책을 주목한 이유는 논리학을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왜 세계의 리더들이 논리학을 배우나'는 점 때문이다.

성공이라 해도 좋고, 의미 있는 삶을 산 사람이라 해도 좋을 많은 사람들이 논리하과 무관하다는 건 꽤 충격적이었다.

심지어 학문이 아닌 경제 활동이나 예술을 하는 사람도 논리학을 따로 배운 적이 있다는 말은 내 삶을 되돌아봐야 할 정도로 인상적이었다.(물론 이 책에 담은 내용은 아니지만...)

이 책은 논리학의 종류와 역사 등을 풀어놓은 책이지만 '왜 논리학인가'라는 나의 의문에 충분한 답을 준다.

삶은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풀어야 하는 아이러니한 기분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는 만물의 유전하는 법칙을 Logos라 일컬었다.

또 『신약성서』 요한복음 1장 1절에서도 또한 그 Logos란 말은 아주 의미 깊게 표현되어 있다고 한다.

이 책은 논리학을 문제투성이인 세상을 성공적으로 살아내기 위한 방대하고 과학적인 인류의 발명품이라고 전제하는 것 같다.

세계의 리더들은 논리를 통해 ‘최선의 선택, 올바른 결정, 이성적인 방법’을 배웠으며,

이를 통해 새로운 관점과 치밀함으로 세상과 교류하며 관계를 설정하고 지혜를 얻었다는 것.




논리학이란 사유의 규칙에 대한 연구다.

논리와 논리학의 발전은 구체적 → 추상적 → 대칭 논리의 세 단계를 거쳐 발전했다.

또한 협의와 광의 등의 형식, 변증, 연역, 유추 등등 체계도 매우 방대하고 복잡하다.

이러한 방대함과 복잡함은 독자들이 논리학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논리학은 기초적인 학문으로, 논리학 기본 이론을 연구할 때 학문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원칙과 방법을 중시합니다.

또한 논리학은 도구적인 학문으로, 기초학문을 포함한 모든 학문에 분석, 비판, 추리, 논증을 위한 도구를 제시합니다.

논리학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힌 말이다.




15인의 위대한 논리학자들의 이론과 주장, 논리학의 처음과 끝을 강의 형식을 빌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구성했다.

논리학을 잘 모르더라도 전혀 기초가 없더라도 이 책을 통해 기초원리, 용어, 논리학의 생장과 변동에 대해 알게 되면 세상을 바꾼 논리학이라는 것에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계속해서 저자의 머리말을 주목한다.

논리학은 새로운 형식에 직면해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달라지고 변화하는 형세 속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채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과 같다.

실용성 위주의 논리적 상식을 수업 형식을 빌려 설명하고, 재미있는 논리적 현상 제시하여,

복잡하고 어려운 논리학을 단순하고 쉽게 설명한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이 책의 서두에 나오는 저자의 머리말 중 가장 인상적이고 오래 남은 것은 이 부분이다.

"논리학은 지혜와 행복을 얻는 예술입니다. 우리가 사회에서 교류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이 논리학입니다.

논리학은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학업, 일, 대인관계 등 논리학 지식과 원리는 어디에서나 필요합니다."

심오한 이론이나 복잡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는 일단의 기초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논리학자처럼 사고하고, 논리학자의 사유 방식을 통해 문제를 고민하고,

논리학적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기초가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경험을 통해 많은 순간이 ‘논리적인 순간’인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선택 방법, 결정 방법, 이성을 발휘하는 방법을 배우고 논리학을 이해해서 논리적인 순간에 빛나지 못했던 지난 과거를 회상할 수 있을 것이다. 논리학은 똑똑한 사람들의 선택이고 리더들의 무기이다.

무기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면 대응할 방법을 찾을 수 있고 이를 통해 리더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인간관계를 포함하여 모든 관계에서 이기는 자의 한쪽은 논리가 차지하고 있다.

승자가 추구하는 ‘최선의 선택, 올바른 결정, 이성적인 방법’을 논리학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이 책을 통해 논리로 사유하고, 논리로 해결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 나오는 말이지만 미리 차용한다.

“논리학은 일상생활에서 생명의 근원이자 소금과 같은 존재이다.

만약 생활 속에서 논리가 없어진다면 생명이 규칙과 법칙을 잃은 것처럼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또한 논리학은 어디서든 볼 수 있는 물처럼 눈에 띄지 않아 소홀히 하기 쉽지만, 우리는 그것과 떨어져 살 수 없다.

논리학이라는 ‘황금 열쇠’를 통해 여러분의 잠재력을 발굴해나가길 바란다.”

존 폰 노이만(John von Neumann)의 말이다.





지금 선거철이다. 코로나19로 중병을 앓는 가운데 투표를 한다.

선거운동을 하는 후보들은 각자의 선거운동 방법으로 하지만 대개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하나는 논리적인 방법으로 이성에 호소하는 것이고 하나는 가장 쉬운 지역감정이나 정치적 이해관계를 감정에 호소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 중에서 어떤 것이 폭발력이 있게 효과적인지는 선거가 끝나봐야 한다.

대개 감정에 호소하는 방법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이 선거결과를 분석한 사람들의 평가다.

우리의 언어생활에서도 논리보다는 감정에 호소하는 방법이 훨씬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고, 감정으로 상처를 받는 경우가 훨씬 비일비재하다.

논리라는 것이 학문이나 특수한 공간에서는 많이 요구되기는 하지만 실제 생활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논리(학)에 관심을 갖는 것은 무엇일까?




SNS에 올라온 글을 보면 논리적이기보다는 감정이나 느낌에 호소하는 글들이 훨씬 많다.

심지어 논리학에 관한 리뷰조차도 그런 게 다수이다. 여기에서 궁금증이 폭발한다.

감정적인 글들은 비논리적인 것 같은데 왜 대중은 비논리적인 주장에 더 귀를 기울이고 그 주장을 수용할까?

논리적으로 쓰는 글은 어려워서 그런가? 어려운 것을 쉽게 풀어쓰면 분량이 길어지기 마련이다.

길게 쓰면 읽히지 않는다. 읽히지 않는 글은 글로써 효용가치가 없다.

오래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면 분명히 분별할 수 있는 일도 대중은 남의 말이나 글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싶지 않는 것 같다.

이쯤 생각하면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논리학을 공부하다보면, 논리학 자체에 대한 의문과 학문과 현실의 괴리에 대한 의문이 넘쳐나게 되고,

의문을 해소하고자 했던 것이 오히려 더 의문에 파묻히는 꼴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논리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상황에 직면하든 성장할 수 있다."( p. 111 ) - 스티븐 레이먼

구체적 논리와 추상적 논리에 질서를 부여하는 논리학에는 아주 많은 전문용어가 나온다.

귀납, 연역, 변증, 유추, 분석, 인상과 관념, 보편과 본질, 오류 등의 용어는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게 한다.

그들만의 현학적인 대화에는 예가 없으면 쉽게 접근하기가 매우 껄끄럽다.

멋있게 보이는 친구이기에 친하게 지내고 싶기도 하지만 머리가 복잡해지기 때문에 웬만하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불가원불가근(不可遠不可近)의 존재이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이 논리학과는 그만큼 친하지 않음의 연속이었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는 것이다.

선거라는 정치적 행위를 떠나서 일상의 내면의 소리에 대해서도 그렇다. 논리학은 그저 소수 전문가들의 리그로 생각되는 영역이었다.

하물며 살아 움직이는 남녀간의 관계에서는 그들만의 마음은 화성과 금성 사이의 거리에 있다.

하지만 한 꺼풀을 벗겨내면, 논리는 자신의 인생을 현명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방법이 숨어 있다는 진실에 접근할 수 있게 한다.

특히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만의 고유 영역을 지키면서 남과의 진실된 관계를 만들어 가는 도구가 된다.




논리라는 것이 과연 우리 일상생활에서 유의미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알기 어렵게 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때로는 강력한 무기가 되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때로는 맹물 속의 맹탕처럼 말장난 같이 보이는 것은 무기력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역설의 역설 상황에서는 감성이나 궤변이 선동의 힘이 되어 훨씬 위력이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쉽지 않다.

특히 정치에서는 막말과 가짜뉴스가 먹히고 지식들이 동원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게 한다.

거짓말을 백 번 반복하면 진리가 된다(p. 99)는 것은 역사적으로 증명된 것이기도 하다.

특히 악의 평범성으로 대표되는 나치의 유태인 학살 앞에서는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하였다.

하지만 동시에 역사는 긴 안목으로 보면, 모든 것은 시간이 걸려서라도 사필귀정(事必歸正)의 길로 가는 것이었다는 것을 보여 주기도 한다.

지극히 미시적인 존재의 삶이 아니라면 진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전략(p. 153)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게 논리학이 인간에게 필요한 제일의 이유일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