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 - 유쾌하고 신랄한 여자 장의사의 좋은 죽음 안내서 시체 시리즈
케이틀린 도티 지음, 임희근 옮김 / 반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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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는 모든 인간에게 공통으로 찾아오는 삶의 마무리 의식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경건하고 엄숙하다. 그러나 죽음이 비극이고, 슬픈 일이라는 인식 때문에 어둡다.

다만 장례를 치르는 예식 분야 담당자는 슬퍼만 할 수 없는 일이고 가끔은 너무 무겁지 않게 분위기를 유도하려 엄숙함을 가장하기도 한다.

독자도 부모님을 최근 10여년 내 모두 여의었다.

마지막 모습을 직접 보고 장레를 치렀지만 슬픔과 두려움에 장례 절차 따위는 주위에서 하는 대로 방관했다.

그래서 장례식을 치르는 시신부터 장지에 묻힐 때까지의 과정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의 분위기를 살필 겨를이 없었다.

이 책을 접하면서 그때 그 분들이 왜 그랬나 하는 생각을 추슬려봤을 뿐이다. 다시 한 번 그분들께 감사드리며 이 책을 읽어 나갔다.

제목마저 무척 가볍게 다뤘지만 글 내용은 전혀 가볍지 않다. 저자가 너무 무겁지 않게 쓰려는 흔적이 보일 뿐 내용은 소설처럼 술술 읽힌다.



저자 케이틀린 도티는 20대에 여성 장의사로서 장례업계에 발을 들였다.

이 책에는 화장터에서 일하며 죽음과 함께한 경험들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시체 한 구 한 구에 얽힌 흥미진진한 에피소드와 함께, 시신을 운반하고 화장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저자와 함께 재로 가득한 화장장을 거니는 듯한 간접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문장 곳곳에 위트가 가득하지만 그 안에 담긴 사유는 결코 가볍지 않다.

시카고 대학에서 중세사를 전공한 저자는 역사와 종교, 문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죽음을 다양한 맥락에서 사유한다.

백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장의사에게 물어보세요」의 운영자이기도 한 그는 유쾌하고도 깊이 있는 글쓰기로, 죽음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전한다.



우리 모두는 죽음을 마주하기 어려운 사회에 살고 있다. 시신을 직접 본 적이 있는가? 죽어가는 사람의 곁을 지켜본 적은?

늙고 병든 몸이 요양원과 병원을 거쳐 시체가 되고, 영안실, 장례식장, 무덤과 화장터에 이르러 해체되는 과정은 모두 일상과는 유리되어 있다.

다들 죽음에 관한 것은 멀리하지만, 젊음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애쓴다. 운동과 식이요법, 기능성 식품을 부지런히 챙기는 것은 죽음을 하루라도 늦추기 위함이다. 이런 문화에서는 무방비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기 쉽다.

그때가 되면 내가 원하는 나의 죽음은 어떤 형태이며, 사랑하는 사람을 어떻게 추모해야 할지 충분히 숙고할 새도 없이, 장례업계의 표준화된 프로세스를 따라가기에도 벅찬 상황에 놓이게 된다.

결국 죽음을 회피하는 것은 삶을 주체적으로 마무리할 권한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죽음을 직시할 것을 권하며, 저자는 특유의 유머러스하면서도 신랄한 어조로 독자를 시체들의 공간으로 초대한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죽음을 가장자리로 밀어내고, 시신을 강철 문 뒤에 두고, 환자와 죽어가는 사람들을 병실에 몰아넣는다.

죽음을 너무나 잘 숨기는 바람에, 우리가 죽지 않는 첫 세대라고 거의 믿어도 될 지경이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모두 죽을 것이며 우리도 그 사실을 안다. 위대한 문화인류학자 어니스트 베커는 이렇게 말했다.

“죽음에 대한 생각과 두려움은 다른 무엇보다도 인간이라는 동물을 따라다닌다.” 죽음이 두려워서 우리는 대성당을 세우고, 아이를 낳고, 전쟁을 선포하며, 새벽 3시에 고양이 동영상을 본다.(p 21)

시신들은 산 사람으로 하여금 현실에 매여 있게 한다. 웨스트윈드에서 일하기 전까지, 나는 상대적으로 시신을 못 본 삶을 살아왔다.

이제 나는 화장장 냉장고에 쌓인 시신들을 수십 구씩 다룬다. 시신들을 대하다 보면, 나 자신의 죽음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대면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영광스럽게 포장해도 시체는 우리가 먹고 싸고 끝내 죽을 수밖에 없는 동물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려준다.

우리는 모두 앞으로 시신이 될 사람들인 것이다.(p 240)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사랑하는 누군가가 죽었을 때 충격을 받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그건 “왜 사람들은 죽는가?”, “이런 일이 어째서 나한테 일어나는가?” 같은 더 큰 실존적 물음의 짐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슬픔에 초점을 맞출 수 있을 거라는 뜻이다. 죽음이란 당신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죽음을 부정하는 문화는 잘 죽는 데 장애물이 된다.(p 323~324)

이러한 부정은 여러 형태를 띤다. 젊음에 대한 집착, 몸이 자연스레 노화하는 것이 괴상한 것이라는 생각을 파는 사람들이 굳이 쓰라고 강요하는 크림과 화학물질과 각종 해독 식이요법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어린이 500만 명 중에 310만 명이 굶주려 죽는데, 우리는 노화방지 상품을 만드느라 1년에 1000억 달러 이상을 쓰고 있다.

죽음에 대한 부정은 우리의 기술과 건축에서도 나타난다. 이는 우리가 도로에 치여 죽는 동물들보다는 맥북의 매끈한 선과 더 비슷한 점이 많다는 환상을 만들어낸다.(p 235)



역사적으로, 죽음 의례는 말할 것도 없이 종교적 신앙과 결부되어 왔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점점 더 세속적으로 변해간다.

미국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종교는 ‘무교’로, 미국 인구의 약 20퍼센트를 차지한다.

자신이 강한 종교적 신념을 가졌다고 하는 사람들조차도, 한때 강력했던 죽음 의례가 요즘은 편의 위주로 바뀌었고 그 의미가 덜해졌다고 느낀다.

이런 시대에 현대 생활에 관한 의례를 만들어내는 창조성에는 한계가 없다. 자유는 짜릿하지만 또한 짐이기도 하다.

우리는 죽는다는 사실과 무관하게는 살 수가 없으며, 죽음을 마주하는 세속적 방법을 계발하는 것은 매년 더 중요해질 것이다.(p 301)



우리 사회에서 구할 수 있는 ‘죽음의 기술’에 대한 교과서는 없다. 그래서 나는 나름대로 그 책을 쓰기로 했다.

종교인만 읽으라는 것이 아니라 점점 그 수가 늘어나는 무신론자들, 불가지론자들, 그리고 막연히 ‘정신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내가 볼 때 좋은 죽음이란, 지금까지 하던 일을 잘 정리하고, 전할 필요가 있는 좋고 나쁜 말을 전하고, 죽을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다.

좋은 죽음이란 수많은 고통과 괴로움을 견딜 필요 없이 죽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좋은 죽음이란 죽음을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죽을 시간이 왔을 때 싸우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좋은 죽음이지만, 전설적인 정신분석가 칼 융의 말대로 “내가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이야기를 들어봤자 도움이 안 될 것이다.” 인간이 죽음과 맺는 관계는 오직 그 사람만의 것이다.(p 310)



저자는 죽음의 언저리에서 몸소 겪은 아주 생생한 경험들을 기록하며 우리를 죽음 가까이로 데려간다.

이 책은 저자가 화장장에 취직해 시체를 면도하던 출근 첫날부터 시작된다.

그는 어제 죽은 시신부터 부패한 시신까지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시체 박스를 확인하고, 화장로에서 삐져나온 재를 들이마시고, 인간의 지방이 녹아내린 기름을 뒤집어쓰기도 하며, 시체를 둘러싼 온갖 에피소드를 유머러스하게 들려준다.

또한 시체 운구부터 씻김, 화장, 분쇄에 이르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며 생생한 화장터 르포르타주를 완성한다.

20대 여성으로서 장의사라는 직업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가 이토록 죽음에 천착하는 것은 어린 시절 목격한 죽음 때문이다.

우연히 쇼핑몰에서 추락사한 아이를 보고 당시 여덟 살이었던 그는 큰 충격에 빠진다.

그러나 죽음을 부정하는 문화 안에서 어떤 설명도, 위로도 들을 수 없었다. 이때부터 죽음에 대한 병적인 집착이 시작되었다.

대학에서 중세사를 전공한 것도 죽음을 학문적으로 가까이 접하고자 했던 욕망의 결과물이었다.

졸업 후 그는 화장터에서 일하며, 이 경험을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스스로 치유하기 위한 방편으로 삼는다.

저자는 다른 사람들은 이런 일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우리 사회가 죽음에 관해 터놓고 생각할 수 있도록 다방면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인기 유튜브 채널 「장의사에게 물어보세요」를 운영하며, 초등학생부터 백세 노인까지 다양한 이들이 보내오는 죽음과 관련된 질문에 솔직한 답변을 들려준다. 또 대안적인 죽음 문화를 탐구하는 장례업 전문가, 연구자, 예술가 집단인 ‘좋은 죽음 교단’을 이끌고 있기도 하다.



이 책은 죽음을 진지하게 다루면서도 유쾌한 태도를 잃지 않는다.

저자는 집착에 가까운 호기심으로 온갖 기이한 시신들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보며, 멀리서 보면 비극인 죽음을 가까이에서 희극으로 승화시킨다.

그는 시신을 정성껏 닦고 입히고 단장시키며, 그들이 한때는 누군가의 사랑을 받았던 인간이었음을 잊지 않는다.

대답 없는 시체에게 농담을 건네고, 그들이 지닌 사연에 울고 웃을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무뚝뚝한 상사 마이크, 말 많은 운구차 기사 크리스, 재미없는 농담만 골라 하는 방부처리사 브루스까지 정 많은 화장터 동료들이 등장해 소름끼치게 음울하고, 이상하게 웃긴 저자의 캐릭터와 어울리며 인간미 넘치는 드라마를 보여준다.

여기에 저자의 감각적이며 깊이 있는 글쓰기가 읽는 재미를 더한다.

바람 잘 날 없는 ‘웨스트윈드’ 화장터의 일상을 킬킬대며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죽음을 친숙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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