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한가운데 영원의 길을 찾아서 - 100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의 신앙 에세이
김형석 지음 / 열림원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김형석 교수를 처음 만난 지 무려 40년이 흘렀다. 독자 입장으로 그의 저서를 통해 만난 것이다.

그의 부드럽고 유연한 종교에 대한 해석, 철학적 사고, 삶에 대한 의지 등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그가 만100세를 맞이했다는 사실은 이 책이 출간되면서 처음 알았다.

사실 정확하게 표현해 그동안 김형석 교수를 잊고 있었다는 말이 정확하다. 내 삶에 바빠 그를 생각할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형석 교수도 큰 사회적 활동을 하지 않았는지 내 삶의 안테나 범위 밖이었나 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뒤늦게 후회했다. 나에게 감명을 줬던 김형석 교수의 존재마저 잊고 있었다는 자책하며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 어렵지 않은 단어와 글의 전개로 그의 삶에 대한 철학적 접근, 신앙관 등이 오롯이 전해져 온다.

또 다른 감동과 앞으로 내 삶에 이 노교수의 존재가 크게 자리잡고 있을 거란 예감도 든다.



김형석 교수는 2020년의 첫 신앙 에세이를 펴내며, 우리가 신을 만나야 하는 궁극적 이유를 증명한다.

인류에게는 왜 신앙이 존재하는가? 김형석 교수는 인격적 성장과 치유의 목적 즉, 인간적 삶 속에서 그 답을 찾는다.

내 소유만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더 높은 차원에서의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지 못하며 자각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소유물은 결국 우리를 떠나가며 그 순간 인생은 허무해진다.

그러나 인격적으로 성장하는 인간은 소유물보다 한층 더 높은 목적을 갈명하고 염원하게 된다. 영원을 목표로 신념을 가지게 된다.

이른바 ‘삶의 피안에 있는 영원’을 향한 몸짓이다. 신앙은 이 몸짓에서 출발하여 그 여정은 끝을 맺지 않는다.

시간 속에서 영원을 바라며 유한 속에서 무한을 염원하는 것은 신앙의 과제이자 본질이다.



김형석 교수의 신앙론의 핵심은 ‘죽음에 이르는 병’ 즉, 생(生)의 고통을 자각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논리적 과학이나 도덕이면 족하다고 본다.

그들은 구태여 종교에까지 이를 필요가 없으며 특히 육체적 행복, 현세적 이권, 세속적 권력만으로도 인생은 충분한 것이라 믿는 이들에게는 종교가 불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신은 그들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신이 당신을 위해 존재한다면,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강 너머 저쪽의 신의 품을 향해 넘어가려는, 생명을 건 모험적 결단을 내릴 준비가 되어 있는가?



먹고살기도 바쁘고 고단한 고행의 길에 태어나 살아가면서, 우리는 왜 굳이 신을 만나려고 할까.

종교는 절망적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인간의 욕망, 삶에 대한 실존적 희망에서 탄생했다.

원시인들은 죽음을 체험하면서 종교의 힘을 갈망했고, 현대인은 정신적 회의와 절망의 상황 속에서 영원한 것과

인간적 삶의 긍정적 힘을 갈구하고 있다. 인간의 삶에는 물리적 한계가 있다.

또한 정신의 세계는 허무를 만나면 갈 길을 잃게 된다.

당신이 미처 알아채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신은 당신이 길을 잃었던 그 순간 이미 당신 곁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것이 우리가 종교를 통해 신의 행방을 찾아 떠나는 탐구의 출발점이며, 신이 실재하는 곳을 알기 위하여 끊임없이 공부하는 이유인 것이다.

대중들은 김형석 교수가 기독교 신자라고만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는 수십 년 전 철학에 관심을 갖기 이전부터 하나의 철학 사상적 배경으로서 종교를 인식하고 성경을 읽었다.

그러는 동안 김형석 교수는 두 가지 문제를 깨달았다고 한다.



하나는 종교 사상을 창으로 삼아 서양 철학을 바라보면 그 역사의 세계가 무한으로 확대된다는 놀라운 발견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기독교가 지니고 있는 철학적 근거가 서양 사상의 어떤 전통보다도 인간학적 근거를 형성하고 있다는 인식적 발견이었다.

김형석 교수의 이 신앙 에세이는 그가 지난 100년을 살며 신앙의 테두리에 서서 바라본 다양한 종교의 안과 밖 세상, 그 참모습을 그대로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김형석 교수의 지극한 벗이었던 김태길 교수가 평생을 철학도로 성실하게 고민하며 삶에 있어 영원한 것이 무엇인가를 모색하다가 말년에 말없이 신앙으로 귀의하면서 세상을 떠나갔던 기억, 그리고 1940년대 일본 유학 시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한다.”는 단 한 구절의 말씀만으로 그리스도인 되었던 학우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진리와 철학을 위해 출발했던 지성인이 신앙을 품게 되는 경이로운 과정을 실제적 체험으로 들려주고 있다.

인간의 타고난 성품까지도 바꾸어 줄 수 있는 유일한 치유의 길이 오직 신앙에 있음을 가슴으로 깨닫게 하는 대목이다.



희망의 인생 이야기, 사랑의 철학 이야기…….

그리고 우리에게 남은 단 하나의 삶의 과제가 있다면 그것은 ‘영원에의 길’일 것이다.

톨스토이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질문했듯, 우리는 왜 고통투성이 삶을 사는지 이따금 묻는다.

100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는 이 질문에 답하면서, 종교를 넘어선 ‘신앙’에 대해 말한다.

사람들은 교회를 떠났고, 예배당은 적막하다. 이 적막의 시대, 철학계의 거장이 우리에게 전하는 신앙 이야기는 새벽별처럼 고요하며 강렬하다.

믿음은 강요당해 온 비이성적 전통이 아니라, 휴머니즘의 울타리 안에서 공생(共生)의길을 열어주는 인간 완성의 진리라는 것이다.



다른 종교에 대한 부정적 비판이나 배타적 교리를 지양하는 김형석 교수의 신앙론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의 인간다운 삶을 약속해 줄 수 있으며, 어떻게 해야 자유와 평화를 증대시킬 수 있을지 종교 스스로 제시해야만 한다고 지적한다.

생업에 열중하고 가정을 돌보며 주어진 일상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 예수가 우리에게 바랐던 진정한 소망이라면, 신앙의 테두리 안팎에 던져진 우리 삶은 어떻게 꾸려져야 마땅하겠는가?

신을 믿는 사람들,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 신과 무관한 사람들, 그리고 신을 생각하는 사람들. 그 모두에게 바치는 이 영원의 책은, 태어났으니 죽을 일만 남은 우리 나그네들의 삶에 주어진 진짜 축복의 종소리를 전해줄 것이다.



내가 대학에 있을 때는 주로 철학 분야의 강의를 했다. 그러면서도 종교에 대한 관심을 결코 멀리할 수 없었다.

내 삶을 위한 영원한 의미와 가치를 염원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에는 종교 문제를 내 글로 직접 취급하기도 했다.

그 결과로 태어났던 저서가 『종교의 철학적 이해』였다. 철학과 기독교의 문제를 연결 짓는 과제들을 찾아보고 싶었다.

종교학이나 종교 심리 같은 과학적 문제가 아닌 종교의 철학적 과제에 대한 질문과 대화였다.

그 기간을 중심으로 집필했던 신앙의 이야기들을 열림원 편집부에서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 이 책자가 되었다.

특히 “종교는 왜 필요한가?” “현대인에게도 종교는 도움을 주고 있는가?” “종교적 세계관과 인생관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등의 문제를 찾아 해명하고 싶었다.

1960년대에는 『이성의 피안』이라는 저서가 독자들의 관심을 끈 바도 있었는데, 열림원의 이번 신앙 에세이는 종교와 인생 그리고 신앙생활의 본질적 가치에 해당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현대는 과학의 시대로 변했다. 그렇다고 종교적 관심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역사가들은 지난 20세기의 세계 사상을 이끌어 온 지도자들은 철학자보다는 신학자들이었다고 지적한다.

아직도 세계 인구의 다수는 종교적 세계관 안에서 살고 있다. 종교에 대한 관심은 인간의 의미와 삶의 가치에 대한 물음이다.

또한 인류 역사의 궁극적 기대와 희망은 종교적 가치관에서 비롯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종교 사상은 인류의 초창기부터 역사와 더불어 영구히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의미와 사상적 가치를 추구하는 지성인이라면 ‘영원한 것’에 대한 기대와 갈망을 포기할 수 없다.

그것이 우리 인생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 번 쯤 음미해 보아야 하는 내용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글들을 쓸 때의 저자가 그러했듯이…….

100세 철학자, 김 형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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