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보는 그림 - 시끄러운 고독 속에서 가만히 나를 붙잡아 준 것들
김한들 지음 / 원더박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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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산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의 표지 그림으로 유명한 독일 화가 팀 아이텔을 아는가?

『밤이 선생이다』뿐만 아니라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를 비롯해 신형철의 『느낌의 공동체』,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도리스 레싱의 『사랑하는 습관』 등 다양한 책의 표지에서 팀 아이텔의 그림을 만날 수 있다.

팀 아이텔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그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저자를 소개하기 위함이다.

2011년 가을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린 팀 아이텔의 아시아 첫 전시를 비롯해 다양한 미술 전시를 기획해 온 김한들 큐레이터의 첫 산문집이 출간됐다.

김한들 큐레이터는 뉴욕주립대 빙엄턴에서 미술사를 전공하고 돌아와 학고재, 갤러리현대 등에서 십 년 넘게 전시 기획을 해 왔다.

지금은 대학에서 현대 미술사와 비평 강의를 하며 [월간미술] 비평 연재를 비롯해 [세계일보], [VOGUE KOREA] 등 다양한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다.


이 책은 갤러리와 미술계라는 일터를 배경으로 저자가 20~30대를 지나며 마주한 삶의 인상적인 순간들을 진솔하면서도 감각적인 문장으로 그려 보이고 있다. ‘혼자 보는 그림’이라는 책의 제목과 ‘시끄러운 고독 속에서 가만히 나를 붙잡아 준 것들’이라는 부제를 통해 느끼겠지만, 그림을 실컷 보며 일하는 게 좋아 고된 일상 속에서도 하루하루를 버티며 조금씩 단단해져 간 한 청춘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 하나 이 책의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은 본문에 삽입되어 있는 그림이다.

큐레이터인 저자가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네 명의 동시대 미술가 전병구, 박광수, 팀 아이템, 알렉스 카츠의 그림이 글과 조화를 이루며 함께하고 있다.



책은 총 4부로 나뉘어 있다.

1부는 저자가 큐레이터가 되고, 큐레이터로 지낸 일상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하루도 평온치 않았던 날들의 기록’을 남긴 전병구 작가의 그림을 배경으로 담담하게 펼쳐 내려간다.

“좋은 그림을 마음껏 보며 살고 싶다는 생각”(24쪽)으로 큐레이터가 되었지만, 잠시 일을 쉬는 사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없는 현실을 견디지 못해”(22쪽) 구급차를 두 번이나 타기도 했던 저자는 이제 이탈리아의 한 이름 모를 해변에 앉아 휴식을 즐긴다.

“삶을 지키는 것은 결국 마음”(32쪽)이고 그 마음은 훗날 이런 순간의 온기를 기억하는 데서 온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2부는 혁오의 ‘톰보이’ 뮤직비디오 감독으로도 널리 알려진 박광수 작가의 작품과 함께한다.

1부의 키워드가 ‘일상’이라면, 2부는 ‘슬픔’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했던 무엇인가가 존재했던 자리. 그것은 작아지거나 옅어질지언정 사라지지 않는다.

슬픈 경험과 기억은 내 몸과 삶에 각인되어 나와 함께 살아간다.”(66쪽) 물론 저자는 슬픔이 가진 힘을 믿는다.

“슬픔은 계단이 된다”(102쪽)라고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에 앞서 우리가 “그 어떤 것보다 탄탄하게 구축해야 하는 것”이 “바로 나와의 시간을 보내는 방법”(95쪽)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그림을 보는 것이야말로 자신과 자신의 내면을 연결해 주는 가장 적절한 행위라고 소개한다.



3부의 키워드는 ‘고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부정적인 의미의 고독은 아니다.

저자는 ‘선택적 고독’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누군가에 의해 외로운 형편에 놓인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홀로 있는 상황에 자리 잡은 것”(116쪽)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고독은 애달프거나 구슬퍼 보이는 게 아니라 여유롭고 현연한 태도로 집중한 채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다.

팀 아이텔의 그림에서 만나게 되는 이들처럼 말이다.

저자는 시(詩)에 대한 애정을 고백하면서, 자신이 팀 아이텔의 그림을 좋아하는 것은 그의 그림이 시와 닮아서라고 말한다.

수수하고 옅더라도 오래 남아 문득문득 떠오르는 것에서, 사진기로 직접 찍은 스냅숏에서 시작하는 그의 그림이 결국은 어디인지 누구인지 드러나지 않는 보편적 대상으로 거듭나 결국 해석의 문을 활짝 열어 버린다는 점에서 그의 그림을 좋아한다고 털어놓는다.



4부는 팀 아이텔의 집에서 발견한 알렉스 카츠가 그린 팀 아이텔의 초상화 이야기로 시작한다.

아흔이 넘은 대가의 내공이 담긴 붓놀림은 숨길 수가 없다. 카츠는 지금도 매일 그림을 그린다.

몸이 좋지 않은 날은 단 15분일지라도, 60년 넘게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림을 그려 왔다.

“오랜 시일에 걸친 꾸준한 노력”(153쪽). 저자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공통점은 결국 ‘성실함의 가치’로 돌아온다.

4부에서는 카츠의 그림과 함께 ‘희망’을, ‘내일’을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사랑’을, ‘열정’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따듯한 기운으로 포근히 나를 감싸 함께 머무르는”(166쪽) 오후 햇볕의 소중함을 이야기한다.

바르셀로나의 한 작은 광장을 평등하게 감쌌던 햇볕의 온기. 그 온기가 결국 나를 더 살아가게 하는 것이니까.


큐레이터 체험 에세이도, 작품 감상 에세이도 아닌 이 책은, 미술과 시가 일상인 사람,

그가 인용한 화가 모란디의 말처럼 “지금 보고 있는 것을 성실하게 보는” 사람이 자신의 내면과 주변과 세계를 감각하고 사유한 기록이다.

-문소영(미술 전문 기자, 작가)

저자는 글을 쓰다 마음이 눅눅해지는 순간이 찾아오면 써 온 글들을 종이에 인쇄해서 햇빛이 들어오는 창가 앞에 두고 한참을 기다렸다고 한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고 마음도 종이처럼 바삭해졌다고 전한다.

미술과 문학과 영화와 일상을 오가는 한 큐레이터의 진솔한 기록이,

그리고 글의 배경으로 때로는 글의 주인공으로 함께한 동시대 미술가들의 그림들이 독자 여러분의 마음 또한 바삭하게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미술 기자로 일하면서 내가 매혹된 사람들 중에는 작가들 못지않게 큐레이터도 많다.

큐레이터. 영화에선 언제나 멋지게 차려 입고 화이트 큐브 안을 또각또각 걸으며 엘리트 관람객에게 작품을 설명하는 그들.

하지만 내가 매혹된 큐레이터들은 미술가의 작업실, 갤러리 전시실, 창고, 도서관을 정신없이 종횡무진하며, 작가만큼 작업에 대해 고민하고, 다큐 PD처럼 전시를 구상하며, 인부처럼 무거운 그림을 번쩍 들고, 기자만큼 글을 많이 쓰는 사람들이다.

그런 큐레이터 중의 한 사람인 김한들이 쓰는 글이기에 이 책은 예사롭지 않다.

큐레이터 체험 에세이도, 작품 감상 에세이도 아닌 이 책은, 미술과 시가 일상인 사람, 그가 인용한 화가 모란디의 말처럼 “지금 보고 있는 것을 성실하게 보는” 사람이 자신의 내면과 주변과 세계를 감각하고 사유한 기록이다.

여기에 그가 특히 아끼는 네 명의 미술가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하루도 평온치 않았던 날들의 기록”을 남긴 전병구, “잊히는 것만큼 잊는 것도 두려운” 것을 상기시키는 박광수, “다 말해 주지 않기에 여운을 남기는” 팀 아이텔, “바르셀로나에서 보았던 오후의 햇빛”을 다시 던져 주는 알렉스 카츠의 그림들이 함께한다.

이들과 함께 “최선의 마음으로 알아챌 수 있는 사물들의 통역가”가 되고 싶다는 김한들이 통역하는 세상은 한층 풍부하고 아름답다.

문소영 (미술 전문 기자, 작가)



그림에 문외한이니 배운다는 마음으로 천천히 읽어야지 하였다가 단숨에 흡수해 버린 책이다.

미술이라는 흰 뼈를 제 근간으로 두되 그에 살 붙인 근육과 지방은 다양한 문화 전반에서 끌어올 줄 알았다.

예서 중요한 키워드는 아마도 ‘절로’일 것이다. 자연처럼 스스로 그러할 줄 아는 글의 귀함을 간만에 이 책을 통해 찾은 듯싶다.

이 탄력적인 영민함은 무엇보다 저자의 솔직함에서 비롯한 바 클 것이다.

기교라는 어떤 척으로부터 한참이나 먼 사람. 그 가면 쓰기에 능하지 못해 사회생활 가운데 다친 적이 꽤나 잦았을 것 같은 사람.

그런데 그 과정이 또한 어쩔 수 없었겠다 싶은 사람. 왜? 무얼 어떻게 보고 그 무얼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몸으로 타고난 사람 같으니까.

그런 청춘은 매 순간 아플 수밖에 없고, 그렇게 매 순간 흔들리는 일로 보는 우리에게 매 순간 자극이라는 떨림을 줄 것이 분명하니까.

『혼자 보는 그림』이 품은 예술에 있어서의 그 ‘태도’란 것을 덕분에 여러 번 되씹고 있는 와중이다.

‘혼자’라는 거, ‘봄’이라는 거, ‘그림’이라는 거, 그 풍경을 바라볼 때 발생하는 ‘거리’라는 거. “내가 가고 싶은 자연은 어디에 안 간다.

풍경은 언제나 거기에 있다.” 이 뚝심에 무한한 신뢰를 감출 수가 없음은 기본이고 말이다.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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